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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30화 (30/173)

〈 30화 〉 뱀을 죽일 땐 머리를 잘라라 ­ 1

* * *

레반이 신월시에 있을 시각.

대학 강의가 끝난 난 레테라를 데리고 거리로 나섰다.

레반이 신월시의 스카이피아 카페를 돌고 있을 동안 우리는 이쪽의 스카이피아를 돌아다녀보기로 한 것이다.

성월시에 있는 스카이피아 가맹점은 세 곳.

나는 대학교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번화가 쪽을 첫 목표로 향했다.

번화가란 젊음의 거리.

때문에 이곳엔 젊고 활기가 넘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천생 아싸에다 집돌이인 내게 있어선 숨이 막히는 장소였다.

그러한 사람들의 물결에 지친 나는 스카이피아에서 커피를 사고 한쪽에 놓인 벤치에 앉아 숨을 돌렸다.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나니 심신이 좀 안정된다.

내 옆자리에 앉은 레테라도 같은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동물원의 동물처럼 구경하고 있었다.

“사람이 많네요.”

“번화가니까.”

“저기 저 남녀가 찰싹 붙어서 다니는 건 뭔가요?”

“연인이겠지. 데이트 하는 거 아니겠어?”

“데이트?”

처음 듣는 단어라는 듯 레테라가 고개를 기우렸다.

도서관 책으로는 데이트라는 단어를 접하기 어렵나? 확실히 그건 서적보단 실제 이미지로 접하는 경우가 많긴 하겠다.

저쪽 세계가 연인과의 오붓한 시간을 보낸다는 개념이 없을 만큼 막장이기도 했고.

“남녀가 함께 놀러 다니면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내는 활동이야.”

“그럼 저희도 데이트 중인가요?”

“…….”

호기심, 그리고 약간의 기대감 섞인 시선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나 신요현.

탄생 후 22년이라는 역사 동안 여자의 존재는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초등학교 땐 학예회에서 동급생 여자애 손을 잡아본 게 전부. 그 뒤 남중 남고를 다니며 아싸로서의 가치관이 확립되었고, 그러다 보니 대학교에 와서 여성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본 적이 없었다.

그랬던 내가 인생 최초의 데이트를 하고 있다.

상대는 내가 만들어낸 게임 캐릭터.

이 사실을 기뻐야하는 건지 슬퍼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기뻐하기엔 내 스스로가 비참해질 것 같고, 슬퍼하기엔 레테라 자체가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이렇게 반응하기도 저렇게 반응하기도 뭐하다.

“……지금은 그냥 정보 수집 중인 걸로 하자.”

결국 난 데이트라는 것을 부정하기로 했다.

겁쟁이라 욕하지 마라. 데이트임을 인정했다간 내 안에서 치명적인 가치관 붕괴가 일어날 것 같다고.

한편, 데이트임을 부정당한 레테라는 눈에 띄게 시무룩해졌다. 그러다 혼자서 뭔가를 납득한 듯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레아라는 여자의 몸매가 확실히 잘 빠졌긴 했지…….”

“잠깐. 너 지금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거야.”

뭔가 터무니없는 오해를 하는 낌새였기에 재빨리 따지고 들었다.

“레아는 오라버니가 만든 첫 캐릭터였죠. 그럼 그게 오라버니의 이상형인 거 아닌가요? 나올 덴 나오고, 들어갈 덴 들어가 있는 몸매요. 그에 비해 전…… 그 망할 근육돼지가 말한 대로 절벽가슴…….”

레테라가 침울해지다 못해 그대로 무거워진 공기에 짓눌려 땅으로 파고들어 갈 것만 같았다.

레테라는 슬랜더한 체형이지만 결코 레아에 비해 결코 못난 건 아니었다. 그녀도 그녀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레테라에게 전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말재주가 그리 뛰어난 것도 아니었으니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레테라의 기운을 돋구어주기 위해 도전을 감행했다.

“레테라! 너에게 남자 게이머 서글픈 습성에 대해 얘기해주마.”

“네?”

끓어오르는 수치심을 억누르며 레테라의 어깨에 손을 얹고 당당히 외쳤다.

“남자는! 남성 캐릭터의 엉덩이보단 여성 캐릭터의 엉덩이를 보며 게임 플레이를 하는 걸 선호한다!”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뭔 미친 소리냐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최대한 그곳에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저 시선에 말려버리면 끝장이다.

“우리가 게임 플레이를 할 때 보는 건 대부분 캐릭터의 뒷모습이야. 확실히 레아를 만들 때 내 개인적인 취향이 들어간 건 인정할게. 하지만! 게임을 플레이 할 때 깨달았지! 가슴 큰 캐릭터는 의외로 게임하는 동안 그 매력 포인트를 감상할 기회가 적다고!”

주변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듣지 마라. 레테레를 위해서다. 여기서 애매하게 멈추면 안 돼.

레테라의 눈만을 바라보자.

내 목소리에 힘입어 점차 활기를 되찾아가는 저 눈을!

“중요한 건 뒤태야! 가슴보단 엉덩이! 남자 엉덩이보단 여자의 엉덩이를 선호하는 게 남성 게이머의 뼛속 깊숙이 각인된 본능이라고!”

주변에서 경찰의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목소리마저 들려온다. 아아! 안 들려! 안 들린다고!

“너의 얇은 목선, 잘록한 허리, 매혹적인 힙이 레아와는 다른 너만의 매력이자 강점이야! 그러니까 주눅 들지 마! 자신감을 가져!”

“네! 오라버니!”

필사적인 호소로 인해 레테라는 완전히 활기를 되찾았다.

그래. 내가 데이트인 것을 부정했다고 그게 네가 매력 없다는 뜻이 아니야. 오히려 함께 있는 게 과분할 만큼의 매력이 있다고.

아무튼 레테라가 기운을 되찾은 건 다행이었다.

이제 그녀에게만 집중하느라 신경 쓰지 못했던 현실을 직시할 차례였다.

웅성웅성웅성!

어느새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변태인 건가?’라는 목소리나, ‘남자들은 진짜 다 그래?’라는 대화 소리, ‘듣도 보도 못한 참신한 프러포즈’라며 감탄하는 소리도 섞여 있었다.

이렇게 주목 받는 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 중 하나다. 실시간으로 정신 데미지를 입거든.

“레테라. 튀자.”

“네!”

나는 레테라를 이끌고 전속력으로 그곳을 달아났다.

***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해가 저물고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길거리 가로등에는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도시에는 곳곳에 어둠을 쫓아내기 위한 빛이 하나둘씩 켜진다.

우리는 대형 교차로에 있는 스카이피아 가맹점에 도착했다.

이곳 역시 사진 속의 건물은 없었다.

대형 교차로를 마주하는 가게 근처에는 작은 건물이 함께 늘어서 있을 뿐이었다.

이제 한 곳 남았다고 생각하며 그곳으로 향하려 할 때였다. 문뜩 도로 위에 있는 대형 전광판이 눈에 밟혔다.

전광판에는 8시 저녁 뉴스가 나오는 중이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2시간 전, 신월시 시내에서 오토바이 하나가 시내에서 폭주하고 경찰차가 쫓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처음엔 과속 차량 단속으로 시작되었던 추격전은, 오토바이의 과격한 운전으로 인해 경찰차의 수가 늘어나고 헬기마저 동원되는 규모로 번졌습니다.]

“신월시? 레반이 있는 곳이잖아.”

걸음을 멈추고 뉴스 내용에 집중해보았다.

아나운서를 비치던 화면이 바뀌더니 상공에서 어느 도로의 전경이 비치고 있었다. 헬기로 촬영한 영상 같다.

영상은 도로를 질주하는 검은색 바이크를 따라가고 있었다.

교통법규라는 개념자체가 없는 건지, 브레이크라는 게 뭔지를 모르는 건지, 영상 속 검은 바이크는 풀악셀에서 전혀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도심을 질주했다.

[대낮에 나타난 폭주족은 2인 1조로, 경찰은 해당 오토바이의 기종과 번호판을 검은 테이프로 가려놓은 수법으로 볼 때, 전 폭주족 출신이자 폭력범죄 전과가 있는 범 모 씨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또한 해당 오토바이는 현재 경찰의 추적을 뿌리치고 완전히 자취를 감춰 현재 수색 중에 있습니다.]

“오토바이로 저런 움직임을 낼 수도 있군요. 저도 한 번 타보고 싶네요. ……오라버니?”

“…….”

레테라는 아무 말 없이 전광판만을 주시하는 나를 이상한 듯 바라보았다.

번화가에서 레테라에게 말한 적 있다시피, 게이머들은 게임에서 캐릭터의 뒷모습을 자주 접한다.

영상에 찍힌 2인 1조. 그 중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덩치 큰 남자의 뒷모습.

그 뒷모습이 어째 낯설지 않았다.

남성 게이머는 확실히 여성 캐릭터를 선호한다.

단순히 예뻐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자기 취향을 표현하는 걸 수도 있다.

취향에 따라 레아와 레테라를 만들었던 내가 레반을 만든 건, 네가 남자에게도 취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한동안 그만두었던 SoR을 다시 시작했을 당시, 나는 아무런 꿈도 목표도 없는 자신에게 정말로 비참함을 느꼈다.

그렇기에 SoR에서 새 캐릭터를 만들 때,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레반을 만들었다.

강하고 우직한 남성상.

내가 게임을 하면서 항상 보았던 레반의 강인한 뒷모습에는 그런 내 소망이 담겨져 있었다.

그런데 그것과 같은 느낌이 영상 속 폭주족에게서도 느껴졌다.

해상도가 조금만 더 높았다면 확신할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아쉽게도 더 좋은 화질의 영상은 나오지 않고 뉴스는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버렸다.

“설마……. 아니겠지…….”

마음속에 감도는 불안감을 씻어내려 그렇게 중얼거려 보았다.

휴대폰으로 레반에게 연락해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금방 관두었다.

[띠링!]

타이밍 좋게 레반의 문자가 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와 똑같이 스카이피아 주변 건물을 찍은 사진들이었다.

설마 경찰에게 쫓기면서 한가하게 사진을 찍는다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레반의 성실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나는 레테라와 함께 다음 장소로 향했다.

레반이 보낸 사진 중, 한쪽 구석에 우연히 찍혀 있는 한 사람.

엄청난 일을 겪은 듯 폭삭 늙어버린 남자의 존재가 어떠한 의미인지 알지 못한 채…….

***

“결국 마지막 장소도 꽝이였어…….”

밤이 늦은 시간.

아슬아슬하게 막차 버스에 탈 수 있었던 나와 레테라는 숙소인 여관으로 향하는 밤길을 걸었다.

대학 강의를 마치자마자 온종일 돌아다닌 탓에 내 몸은 천근만근처럼 무거웠다. 존재 자체가 초인인 레테라는 멀쩡했지만.

“결국 이쪽에도, 저쪽에도 우리가 찾는 건물은 없었네요.”

성월시와 신월시.

양쪽의 스카이피아 가맹점을 모두 살펴보았지만 결국 헛수고였다.

이는 수색 범위를 전국으로 넓혀야 한다는 끔찍한 사실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럼 대체 몇 달이나 소모될지 알 수 없다.

이쯤 되니 사진을 남긴 놈을 향한 분노가 다시 한 번 차올랐다.

“대체 사진 한 장 던져주고 초대장이라고 말하는 건 무슨 심보야? 초대장이면 주소라도 좀 적어놓던가!”

투덜거리는 나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달래던 레테라가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사진 속 건물은 정체가 뭘까요? 이렇게 찾아가기 어렵게 만든 곳은 보통 대단한 게 있기 마련이던데요.”

“글쎄. 미믹처럼 우리를 골려주기 위한 다른 함정이 있는 장소일 수도 있고, 아니면 회사를 옮긴 위드 소프트웨어 본사일 수도 있겠지.”

뒷장에 ‘초대장’이라고 적힌 걸 보면 후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그래도 만일의 가능성은 생각해둬야 한다.

“그놈들의 정체가 뭔지, 너희들이 이쪽 세계에 온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미믹은 왜 그 건물 지하에 놓아둔 건지, 도발적인 쪽지로 약 올린 이유가 뭔지, 묻고 싶은 게 산더미야.”

“……왠지 죄송해요. 저희들 때문에 고생만 하시는 거 같아서.”

이 모든 고생의 시작이 자신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레테라는 씁쓸한 얼굴로 사과의 말을 건넸다.

“사과할 필요 없어.”

하지만 난 사양했다.

딱히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다. 그냥 내 스스로 이들을 돌보겠다고 결심했고, 이것은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확실히 힘들기도 하고,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라 낯설기도 하지만…….”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관이 좀 외진 곳에 있다 보니 주변의 불빛은 약하다. 그러다보니 도심 속에 있는 것보다 훨씬 별들이 잘 보였다.

내가 평화로운 삶을 사랑하긴 하지만, 그런 삶만 고집한다면 고생한 뒤에 집으로 돌아가면서 올려다보는 밤하늘이 어떤 느낌인지 알지 못하겠지.

“……조금은 재미있어. 게임 속이 아니니까 진정한 의미에서 함께 모험하는 기분도 들고.

“오라버니…….”

솔직한 심정은 말한 것뿐이데, 그것만으로 감격한 듯 레테라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 숙소로 잡고 있는 여관으로 돌아오자, 우리는 익숙한 인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형님!”

“레반!”

“돌아왔네, 근육돼지?”

반가운 목소리로 뛰쳐나오는 것은 바로 레반이었다.

신월시로 떠난 지 아직 하루가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돌아와 있던 것이다.

“형님! 다녀오면서 선물을 구해왔습니다. 지난번에 형님이 쓰셨던 마법의 가루입니다!”

레반은 바로 주머니에서 비닐 뭉치를 꺼내 펼쳤다. 그러자 드러나는 건 새하얀 가루였다.

“마법의 가루? 아아, 그거?”

그러고 보니 편의점에서 사 온 조미료를 마법의 가루라고 비유하긴 했었다.

그걸 선물로 사 오다니,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런데 포장된 비닐에 시중에 판매되는 것과 다른데?

혹시 소금이나 설탕을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 가루에 손가락을 찍고 한 번 맛을 봐보았다.

혀에 닿은 가루에서 느껴지는 맛은…… 뭐, 뭐지, 이거?

“형님?”

“오라버니?”

“이, 이거 조미료가 아…닌…….”

그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혀가 이상하게 꼬이고, 세상이 젤리 속에 갇힌 것처럼 휘어지며, 시야가 자꾸 빨주노초파남보로 바뀌는…… 어.

털썩!!

나는 그대로 입에 거품을 물며 기절했다.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레반과 레테라의 목소리를 들은 건 덤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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