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뱀을 죽일 땐 머리를 잘라라 2
* * *
“신홍수가 당했다고?”
호박색 위스키를 들이켜려던 남자의 손이 멈췄다.
젊고 깨끗한 피부에 비해 그 손은 막일을 하는 사람처럼 검은 때가 많이 끼어 있었다.
“네……. 불곰파를 급습하러 갔는데 소식이 없고, 불곰파 조직원들은 멀쩡히 돌아왔다고…….”
“거기에 박웅도 함께 간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박웅마저 소식이 끊겼습니다…….”
그의 앞에 서 있는 정장차림의 남자가 안경을 올려 세우며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올려 세워도 안경은 주륵 미끄러졌다. 뻘뻘 흘러내리는 식은땀 때문이었다.
“…….”
정장차림에게 보고를 받던 남자는 마시던 위스키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옆자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일단 앉아서 얘기하지, 정 실장.”
“괜찮습니다! 이대로 서 있겠습니다!”
“앉으라니까?”
거듭된 남자의 말에 정 실장이라 불린 정장은 더는 거부하지 못했다.
바들바들 떨리는 팔다리를 어색하게 움직이며 남자의 옆자리에 앉았다.
어두운 술집에서 남자 둘이서 딱 붙어 있는 상황은 어딘가 어색했다.
정 실장을 더욱 긴장케 만드는 건 옆에 있는 남자에게서 풍겨져 오는 비릿한 냄새일 것이다.
“정 실장. 난 사실 신홍수가 그리 달갑지 않았어. 그 놈 눈빛을 봐. 내가 앉은 자리까지 탐내는 눈빛이라니까? 거두어들인 부모를 노리다니, 살모사(???)가 부모를 죽이는 뱀이란 뜻이라지? 그 점에서 보면 그 놈이 우리 살모사파에 잘 어울리긴 하겠네.”
“그렇지 않습니다! 살모사파의 두목은 오직 사장님 뿐……!”
“그래. 나도 알아. 내가 우리 조직의 이름을 살모사파라고 지은 이유도 그거야. 그냥 홧김에 부모 새끼들을 죽였다가 멍청하게 감옥 갔다 온 과거에 자신을 반성하자는 의미에서 지었거든.”
“그, 그랬었지요.”
“그런데 정 실장이 신홍수 그놈 영입할 때 뭐라고 했지? 수완은 뛰어나니 우리 조직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 줄 거라면서? 그 결과가 이건가? 아까운 조직원들 데려갔다가 한 놈도 못 돌아오는 거?”
“사, 사장님! 어떻게든 원인을 알아내고 손실을 메꾸겠습니다!”
정 실장이 필사적인 목소리로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남자의 손은 어느새 테이블에 꽂혀 있는 나이프를 뽑아 정 실장의 무릎을 찍어 눌렀기 때문이다.
푸욱!!!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정 실장은 고통어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발버둥칠 때마다 남자가 누르는 나이프가 허벅지의 상처를 넓히며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나이프가 꽂힌 자리에 피가 고이고, 그 중 발버둥으로 튄 피가 남자 손에 검은 얼룩 위에 덧씌워졌다. 피가 묻은 형태는 검은 얼룩과 놀랍도록 흡사했다.
“사, 살려주십시오, 사장님! 살려주십시오!!”
“걱정 마, 안 죽여. 이건 그냥 벌일 뿐이야. 상벌은 확실히 하는 게 지도자의 덕목 아니겠어? 자, 벌을 받았으니 이제 벌충하기 위해서 움직여야지.”
젊고 깨끗한 피부의 남자는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신홍수도 충분히 뱀상인 사람이었지만, 웃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그보다 훨씬 독사에 가까웠다.
“하루 시간 줄게. 이 사태의 원인을 낱낱이 파헤친 뒤 내게 가져와.”
***
노인의 아침은 빠르다.
몇 년 전에 남편을 여의고, 지금은 도시 외곽에서 작고 낡은 여관을 홀로 운영하던 박칠순 노인은 어느 때와 같이 아침 산책을 위해 밖으로 나섰다.
하지만 문 열자마자 그녀는 묘한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며칠 전부터 자신의 여관에 장기 투숙 중인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 중 두 명은 외국인처럼 보이는데 한국어를 잘하고 가끔 일도 도와줘서 용돈을 좀 주었던 기억이 있다.
그들 중 덩치가 듬직한 남자 하나가 마당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건 물구나무가 아니었다.
두 팔을 기대는 것 없이, 그저 머리 하나만을 땅에 박은 채 몸을 거꾸로 세우고 중심을 잡는 신묘한 자세를 취하고 있던 것이다.
차력쇼라도 하는 것일까?
노인은 잔뜩 언짢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청년에게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 있나?”
“신경 쓰지 마세요. 천하의 빌어먹을 멍청이에게 벌 주는 중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청년의 표정은 죽은 자신의 남편이 짓던 표정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 나갔다가 큰 사고치고 돌아온 자식들을 혼냈을 때의 그 표정이다.
“……뭐, 너무 심하게는 하지는 말게나.”
무슨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하기로 하며 노인은 여느 때와 같은 아침 산책을 위해 밖으로 나섰다.
***
죽을 뻔했다.
진짜 손 한 번 못 써보고 죽을 뻔했다.
조미료인 줄 알고 찍어먹었던 가루가 알고 보니 강력한 마약일 줄은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환각인지 진짜였는지 모르지만 어젯밤엔 황천강까지 목격하고 와버렸다.
그랬던 내게 지금 멀쩡히 서 있을 수 있는 건 레반과 레테라가 쓰러진 나에게 먹인 물건 덕분이었다.
여신의 눈물.
HP를 모두 회복하고 상태이상마저 완전히 없애버리는 SoR의 최고봉 회복 아이템.
효과가 너무 좋다 보니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 최대한 아껴두려고 했던 비장의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내가 쓰러지고 정체를 모를 발작까지 일으키자 눈이 돌아간 두 사람은 주저 없이 여신의 눈물을 내게 먹였다.
아깝긴 했지만 덕분에 나는 멀쩡히 살아났다.
그냥 살아나기만 했을까. 육체 자체가 새롭게 태어난 것처럼 가볍고 활기가 넘치기까지 한다. 아마 마약의 가장 큰 문제점인 중독성과 후유증도 나타나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건 그거고.
내 몸이 나았다 한들, 내가 겪은 끔찍한 경험과 그 원인이 된 레반의 행위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폭력 조직 습격!
폭주 바이크를 타고 도심 내에서 광란의 질주!
마지막엔 조직 항쟁에 뛰어든 것도 모자라, 마약 탈취까지!
정신을 차리고 레반이 신월시에 한 짓을 전해들은 순간 혈압이 확 끓어올랐다.
여신의 눈물이 신체를 싹 고치지지만 않았어도 고혈압으로 쓰러졌을 것이다.
그 이후부터 레반은 계속 이 자세를 취하고 있다.
두 손만이 아닌 두 발조차 쓰지 않는 대가리 박기.
일명 그랜드 대가리 박기였다.
삼 점으로 무게가 분산되던 기존 대가리 박기와 달리 오로지 머리와 목만으로 감당해야 하는, 체벌이라기 보단 고문에 가까운 자세다.
중심 잡기 난이도가 극악이고, 보통사람이라면 따라하는 것만으로도 크게 다칠 수 있는 위험한 자세였지만 레반은 묵묵히 그 자세를 유지했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내가 죽을 뻔한 것에 대해서 큰 책임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몇 시간이나 유지되는 그 사죄의 자세를 바라보며 나 또한 활화산처럼 끓어올랐던 분노를 어느 정도 다스렸다.
레테라가 돌아온 건 그 즈음이었다.
레반이 가져온 대량의 마약과 훔친 바이크를 아무도 없는 뒷산으로 가져가 싹 다 태우도록 그녀에게 지시했었다.
마약은 몰라도 바이크 같은 경우는 도로의 방범 카메라 등으로 추적당할 위험이 있었다.
“오라버니. 전부 태우고 왔어요.”
“그래. 잘했어.”
“그런데 가루를 태우니까 그 주변을 날던 새들이 잔뜩 떨어졌는데, 어떻게 할까요?”
돌아온 레테라의 양손에는 웬 새들이 잔뜩 붙잡혀 있었다. 마약을 불태울 때나던 연기를 들이마신 거였다.
눈이 풀려 있고, 간혈적으로 움찔거리는 걸 보니 살기엔 글러 보인다.
“……양지 바른 곳에 묻어줘라.”
봉변을 당해버린 새들에게 두 손 모아 사죄하며, 다음 생에는 좋은 곳에서 태어나길 기도했다.
레테라가 햇볕이 잘 드는 장소에 새들을 묻어주고 온 뒤, 나는 레반에게 말했다.
“레반. 이제 자세 풀어.”
하지만 레반은 자세를 풀지 않았다.
다시 한 번 그의 이름을 부르며 재촉했다.
“레반.”
“……전 형님께 큰 폐를 끼쳤습니다. 저 같은 건 이대로 땅에 머리를 박은 채 개미와 친구가 되는 게 낫습니다.”
아무래도 나에게 마약을 먹인 게 상당한 충격으로 남은 모양이다.
마약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게임 속 독에 비유해서 설명해주었을 때 레반의 반응은 거의 할복하기 직전의 사무라이였다.
그냥 내버려 뒀다면 진짜 배를 갈랐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침울해진 레반을 보며 레테라는 위로하기커녕 더욱 모질게 대했다.
가뜩이나 레반과 사이가 나쁜데, 내가 위험에 처하기까지 했으니 그 분노로 그녀의 목소리는 겨울바람처럼 차가웠다.
“너 따위가 개미와 친구가 되는 게 가당키나 해? 차라리 흙속으로 들어가서 거름과 동화되지 그래?”
평소라면 반발하며 싸울 레반도 지금 그저 대가리를 박은 채 흐느낄 뿐이었다.
“크흑! 그래. 나 같은 돌대가리에겐 개미조차도 과분해. 그냥 이대로 땅에 파묻어줘. 이 육체가 썩으면 적어도 식물이 자라나는 데엔 쓸모가 있겠지.”
“좋아. 거기 딱 기다려. 내가 당장 파묻어줄게.”
“그만둬, 레테라.”
새를 묻어줄 사용하던 삽을 들고 다가가는 레테라의 모습을 보며 진심이라는 걸 안 내가 제지했다.
단호한 내 말에 아쉬운 듯 물러나던 레테라에게서 시선을 돌려 레반을 바라보았다.
“너도 마찬가지야, 레반. 네가 정말 나에 대해 미안하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몸만 괴롭힐 게 아니라, 머리를 맞대며 앞으로의 일에 대해 함께 고민해달라고.”
“…….”
그 말에 레반은 마지못해 자세를 풀었다.
머리를 박고 있던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은 레반을 향해 내가 물었다.
“네가 만났던 조폭들에게 얼굴 안 팔린 거, 확실하지?”
“네. 모자와 선글라스를 항상 쓰고 다녔고, 오토바이를 탈 때는 헬멧과 고글을 꼈습니다.”
“이곳에 올 때 고속도로는 이용하지 않았고?”
“그렇습니다. 지리를 잘 모르다보니 지도를 살펴가며 이동하다 일반 도로를 통해 달려왔습니다.”
“음. 차라리 잘 됐어. 톨게이트를 통과하면서 CCTV에 찍히진 않았으니까.”
머리를 두드리면서 상황을 정리해본다.
마약 탓인지, 여신의 눈물의 효능인지, 머릿속이 평소보다 깨끗해서 잘 돌아간다.
레반의 말만 들어보면 그를 추적할 만한 단서 같은 건 남기지 않은 모양이다. 유일한 단서인 바이크야 방금 전 태워버렸고.
“확실히 걱정은 없을 거 같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당분간 숙소에서 자숙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그리고 아까부터 계속 물어본 말이긴 한데, 조폭 녀석들과 은원 없기로 한 거 확실하지?”
나 같은 민간인은 그쪽에 연관되기 싫은 법이다.
내 질색하는 표정을 읽었는지 레반은 확고함이 담긴 목소리로 답했다.
“확실하게 압박을 주고 왔습니다. 혹여 주제도 모르고 접근했다간 자신들이 죽는다는 걸 놈들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압박을 어떻게 주었길래…… 아니 됐다. 충분히 상상 가네.”
레반의 힘을 직접 목격했다면 함부로 어떻게 할 생각 따윈 못할 것이다.
종합해보자면, 레반이 저지른 일로 곤란해지는 일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자꾸 가슴 한구석이 불안한 건 내가 새가슴이기 때문일까?
***
“차, 찾아왔습니다!”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정 실장이 달려왔다.
살모사파의 보스, 안일혁은 새 옷을 갈아입으며 째진 눈으로 정 실장을 살폈다.
“정말로 하루 만에 찾아왔군. 조금 늦어도 상관 안 하려 했는데 말이야.”
“하, 하하…….”
메마른 웃음을 흘리던 정 실장은 속으로 욕했다.
‘상관 안 하긴 무슨! 자정을 지나는 순간 양쪽 다리를 잘라낼 거면서!’
물론 내색은 하지 않았다.
안일혁은 선반에서 새 술을 꺼내 잔에 따랐고, 그것을 의자를 향해 가져갔다.
정 실장은 그 뒤를 따르며 조금 전 얻어낸 정보에 대해 말해주었다.
“불곰파의 조무래기 중 하나를 붙잡아 심문해보았습니다. 의외로 쉽게 털어놨더군요. 그런데 그 내용이 약간 어처구니없습니다.”
“뭐지?”
“자기들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이 신홍수 일파를 쓸어버렸다고…….”
달그락.
술을 마시전 안일혁의 잔에 담긴 얼음 조각이 흔들린다. 그의 불편한 심기를 대신 대변에 주듯이.
잔을 내려놓은 안일혁의 한 손에는 어느새 나이프가 쥐어져 있었다. 지난번 정 실장의 무릎을 헤집은 그것과 같은 것이다.
그걸 본 정 실장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지금 장난 하냐?”
“저, 저희도 어이가 없어서 몇 번이나 심문해보았지만 대답은 같았습니다! 심지어 그 뒤에 붙잡은 또 다른 불곰파 녀석도 똑같은 소리를 내뱉었습니다!”
“…….”
안일혁은 생각에 잠겼다.
다른 조무래기의 입에서까지 똑같은 소리가 나왔다면 가능성은 셋일 것이다.
단체로 정신이 나갔거나, 그렇게 말하기로 미리 입을 맞췄거나, 아니면 그 말이 정말이라거나.
“……그 인물에 대한 말은 더 없나?”
“그 부분에 대해선 횡설수설하긴 했는데,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이 하나 있었습니다.”
“뭐지?”
“그건 인간이 아니라는군요.”
안일혁은 어이가 없었다.
정 실장도 이해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인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인간이 아니면 뭔데? 유령이라도 된다는 거야?”
“저도 잘……. 아무튼 절대 그자를 찾지 말라는 말까지 하더군요. 자기들까지 죽을지 모른다면서.”
“기가 차는군.”
중국 브로커를 통해 얻은 마약으로 단체 마약 파티를 벌인 것인가 뭔가?
어이없는 소리뿐이었지만, 만약 그 얘기가 사실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일이다.
자신들의 조직에 큰 손해를 입힌 녀석이 멀쩡히 살아 있으면 조직의 보스로서의 체면이 안 선다.
“그놈의 소재지는?”
“추적을 의식한 건지 놈이 산간도로를 이용해 사라져서 알아내는데 고생하긴 했지만……. 그래도 뛰엄뛰엄 설치된 교통 카메라로 추적해보니 의심되는 곳이 하나 있었습니다.”
“거기가 어딘데?”
종이를 넘겨가며 지명을 찾던 정 실장의 입에서 의심되는 장소명이 흘러나왔다.
“성월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