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역린과 목줄 4
* * *
“정보 확실한 거지?”
“네, 형님! 확실히 이 창고에 살모사파가 집결해 있다고 합니다.”
거대한 창고 옆으로 집결해 있는 수상한 일동.
그들이 수상한 이유는 모두 어딘가에 붕대를 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붕대를 감은 사람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상한 집단.
그들은 바로 얼마 전에 레반에게 쥐어터지고 나중엔 도움을 받았던 불곰파의 일원들이었다.
아직 발목 붕대와 목발을 떼지 못한 우정석은 긴장된 눈으로 창고를 바라보았다.
“이 미친 살모사파 새끼들이……. 감히 우리 애들을 납치하고 심문한 것도 모자라, 그 판도라의 상자나 다름없는 괴물을 건들려고 해? 단단히 돌았구나?”
“저 형님……. 굳이 우리가 갈 필요가 없는 거 아닙니까?”
우정석이 이를 갈며 중얼거리고 있을 때 옆에 있던 부하 하나가 의견을 냈다.
“정보대로라면 살모사파가 괴물의 ‘형님’이라는 자를 알아내서 납치했다는 소리인데……. 그냥 살모사파의 자충수잖습니까? 그 괴물의 어그로를 끌어서 뭔 좋은 일을 보겠다고요? 그냥 가만히 놔두면 살모사파가 알아서 전멸할…….”
“이 멍청한 새끼야!!!”
퍼억!!
“크헉?!”
우정석이 목발을 거꾸로 잡아 휘두른 일격에 부하가 괴성을 지르며 넘어갔다.
다시 목발을 휘두를 듯 깽깽이 발로 서 있던 우정석이 호통 치듯 말을 이었다.
“그 형님의 존재가 우리 측 조직원을 털어서 알아낸 정보라는 걸 잊었냐!? 그쪽에서 보면 거기서 거기라고! 오히려 우리가 복수하기 위해 일부러 정보를 흘렸다고 생각할 수 있단 말이야!!”
“그, 그렇군요!”
그렇기에 불곰파의 모든 전력을 이끌고 온 것으로도 모자라, 부상을 입은 우정석 본인도 직접 나선 것이다.
겨우 인연을 끊은 줄 알았던 괴물, 레반이 자신들의 조직에 쳐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가뜩이나 신홍수 일파를 붙잡은 덕분에 그가 운영하고 있던 가게를 몇 개 빼앗아 불곰파는 현재 상승세를 달리고 있다.
예전의 명성만큼은 아니지만 조직을 크게 불려놓을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또 다시 레반이 강림한다고? 그것도 눈깔이 단단히 돌아간 상태로?
차라리 모든 걸 접고 시골로 내려가 농사나 짓는 게 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의 위급 상황이었다.
“형님이라는 자를 우리가 먼저 구해야 해! 그래야 오해를 피할 수 있고, 빚도 지워두는 셈이야! 혹시 알아? 그 형님이라는 자와 친분이 생겨서 우리 조직에 엄청난 보탬이 될지?”
“오옷! 그렇게 깊은 뜻이!”
“알아들었으면 연장 챙겨! 준비가 끝나는 대로 쳐들어간다!”
“넵!!”
부하들을 선동한 우정석은 조심스럽게 창고로 접근했다. 적들이 준비하지 못하게 빠르게 치고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창고 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면 밖에서 망을 보는 인원 정도는 있기 마련인데, 아무도 없지 않은가?
심지어 창고 안에 조명은 켜져 있지만 느껴지는 인기척은 전혀 없었다.
분명 정보로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살모사파의 전력이 전부 모여 있다고 했는데 말이다.
“너, 정보 확실히 물어온 거 맞냐?”
“물론입죠! 붙잡혀 있던 녀석들이 말하길, 형님이란 자를 잡았으니 이제 이놈들은 필요 없단 소릴 똑똑히 들었답니다! 이 장소도 우리가 역으로 습격해 붙잡은 놈들을 족쳐서 알아낸 거고요!”
“흐음…….”
하지만 그 말과 달리 창고 주변의 분위기가 묘하다.
기분 나쁜 적막이라고 할까. 간혹 들리는 파도소리조차 시원하기커녕 땀처럼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느낌이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이상 뭐라도 확인하고 가야겠다는 심정으로 창고의 입구를 향했다.
“……!? 이건 뭐야!?”
입구를 확인한 우정석은 기함을 질렀다. 뒤따라온 부하들의 반응도 크게 다를 것 없었다.
처음 그것을 봤을 땐 현대 미술로 꾸며놓은 무언가인 줄 알았다.
잔뜩 우그러진 철판 외벽.
그곳에 사람이 박혀 있었다.
인형 따위가 아니라 진짜 사람이었다. 아직 살아있는지 가슴이 미약한 기복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살아있는 사람이 철판을 우그러뜨린 채 박힐 수 있는 것인가? 일부러 이렇게 꾸며놓기도 힘들어 보인다.
만약 누군가 이 기이한 광경을 일부러 연출했다면, 그것은 분명 상식을 벗어난 힘을 가진 자일 것이다.
거기에서 붕대를 감은 사람들은 일제히 공통된 한 사람을 떠올렸다.
“혀, 형님……. 이거 설마…….”
“이미 왔다 간 거 아닙니까……?”
단순한 흔적만으로도 트라우마가 일어나는지 부하들이 덜덜 떨면서 말하였다.
우정석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뒷걸음질 치며 부하들에게 말했다.
“아, 안 되겠다. 일단 돌아가…….”
콰직!!!
그의 말이 끝맺기도 전, 철판에 박혀 있던 사람 하나가 피를 뿜으며 터져나갔다.
철판 반대편에서부터 튀어나온 거대한 검에 몸에 꿰뚫린 것이었다.
촤악!!
“허…….”
그 때문에 쏟아진 피를 우정석을 비롯한 부하들은 영락없이 뒤집어썼다.
처음엔 너무 현실감 없는 광경에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이 눈앞의 광경을 현실인지 악몽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있을 동안, 사람 하나를 꿰뚫은 대검은 옆으로 움직였다.
마치 명필가가 일필지휘로 거대한 글자를 새겨 넣듯, 대검은 철판에 박혀 있던 인간들을 모조리 도륙내고 지나가는 광경은 거의 예술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우지근!!
대검이 사라지자 남겨진 시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철판이 무너져 내린다.
철판이 넘어지고 확하며 풍겨 온 지독한 혈향에 불곰파의 일원들은 모두 헛구역질을 일으켰다.
게다가 이건 혈향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위장에서 다 소화되지 못한 음식물에 냄새, 지려버린 오줌 냄새, 터져 나온 머리에서 흘러나온 뇌수의 냄새.
거친 일을 해온 그들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역겨운 냄새의 향연이 창고 안쪽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 안쪽에 무엇이 펼쳐져 있는지 감히 확인하기도 두려워졌다.
그런 무너져 내린 창고 입구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온 몸이 피투성이지만 정작 그 자신에게 상처는 단 하나도 없었다.
피에 절여지다 못해 내장 조각이나 머리카락 등이 그대로 남은 대검을 어깨에 짊어진 그가 창고 밖에서 나타난 불곰파 일행을 바라보았다.
새로운 적이냐는 듯 당장이라도 쏘아져나갈 것만 같았던 그의 흉흉한 눈빛에 불현 듯 의아함이 스친다.
“……응? 네놈들, 어디서 본 적 있는 거 같은데?”
불곰파의 일원들을 알아본 레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마……. 마…….”
우정석이 덜덜 떨리는 입술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입이 굳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조금 전 뒤집어 쓴 핏물이 입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에 번뜩 정신을 차린 그가 외쳤다.
“만수무강 하셨사옵니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우정석이 대표로 큰절을 올렸고, 뒤따라서 그의 부하들도 따라서 이마를 땅에 박으며 예를 갖추었다.
우리는 당신의 적이 아님을 전력을 다해 어필하기 위해.
***
내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다 끝나 있었다.
난 오늘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
내 손으로 죽인 건 아니지만, 내 손으로 핵폭탄 발사 스위치를 눌러버렸다면 그것 또한 마찬가지인 게 아닐까.
사람의 피 냄새가 이렇게 지독할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사람의 몸 안에서 흘러나온 내용물이 이렇게 역할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어떤 사람은 하반신이 잘려나간 채 살고 싶다는 듯 바닥을 긁으며 죽어 있었고, 어떤 이는 목 위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그 사라진 목인 듯한 얼굴이 내 근처까지 굴러와 있다.
양쪽 눈 중 하나는 없었다. 그건 바로 머리 근처에 떨어져 굴러다녔다.
내 쪽을 향하고 있는 눈알이 나를 원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전쟁이라도 일어난 듯한 끔찍한 참상을 나는 말없이 바라보았다.
뒤편에서 레반과 레테라가 소리죽여 다투고 있는 소리가 들리는 건 덤이다.
“그러니까 너무 막 죽였잖아!”
“나한테 떠넘겨 놓고 남 탓이냐!”
“나라면 저렇게 정신없게 안 죽였어! 최대한 깨끗하게 모가지만 땄을 거라고!”
“지랄한다! 지는 머리를 밟아 터트린 주제에! 그리고 사람 죽이는 방식에 깨끗하고 자시고가 어디 있어!”
아무래도 예상 이상으로 충격을 받은 듯한 날 걱정하는 모양이다.
본인들은 소리를 죽이고 있지만, 그 소란스러움에 내가 충격에 잠겨있을 겨를도 없었다.
확실히 혼자 있는 것보단 나은 듯싶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끝나는 법이 없으니까. 차라리 그들처럼 소란스러운 게 나았다.
“레반.”
“네, 형님!”
“포션 아직 남았지?”
“남아있긴 하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평생 이렇게 외눈박이로 살아가는 것보다 낫겠지. 줘 봐.”
안일혁 그 망할 놈 때문에 한쪽 눈이 망가져 있는 상태였다. 왼쪽 갈비뼈는 피멍까지 들었다.
이대로 병원에 가서 치료받는 것보단 포션이 빠르고 후환이 없는 해결책일 것이다.
포션이 엄청난 고통을 동반한다는 걸 아는 레반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주머니에서 병을 꺼내 내 손에 쥐어주었다.
나는 그 주홍색 액체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다가올 고통을 대비한다.
“……크윽!!!”
두 번째로 겪는 일이었지만 역시 고통이 엄청났다.
우악스러운 손이 내 상처부위를 벌리며 파고들어와 마구 주무르는 듯한 끔찍한 감각이었다.
고통 때문에 균형을 잡을 수 없어 바닥에 쓰러진다.
그런 내 모습에 두 사람은 안절부절 거렸지만 그들로서는 그저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내 몸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바닥에 말라가는 피와 뒤섞일 무렵 고통이 삭으라들었다.
칼에 찔렸던 눈과 부러졌던 갈비뼈를 매만진다.
시야가 멀쩡하게 돌아와 있었고, 갈비뼈에서도 더 이상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후우…….”
고통에서 해방된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바닥에 고인 피에 옷이 더러워지는 걸 신경 쓰지 않은 채 주변에 널려 있는 시체들을 둘러보았다.
“사과는 하지 않을 거야.”
안일혁을 비롯한 그의 악행을 돕던 빌어먹을 작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나와 내 가족의 삶을 짓밟고 유린하려고 했어. 난 그걸 절대 용서 못해. 마지막에 준 기회마저 네놈들은 스스로 차버렸지. 자업자득이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여전히 무겁고 아팠다.
양심이란 스스로 올바르게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다. 양심이 아픈 건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한 게 아닐까 의심되기 때문이고.
신체의 고통은 사라졌지만 이쪽의 고통은 오래갈 것 같다.
“……지금 내가 하는 이 말이 변명일 수 있겠지. 아니, 변명밖에 안 되겠지. 하지만 난 그것으로 죄책감을 덜고 남은 인생이나 살아가련다. 욕하고 싶으면 저승에서 실컷 하셔. 그전에 자신들의 행동은 양심 있었는지 잘 생각해보고.”
양심은 스스로를 통제하기 위한 용도지, 양심 없는 사람이 양심 있는 사람을 질타하고 공격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그렇게 내 양심을 공격하는 듯 원망스럽게 바라보던 눈알을 툭 치며 치워버리고, 피 묻은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걸로 마음의 정리는 어느 정도 마쳤다.
이제 다른 문제로 눈을 돌릴 차례다.
“그나저나 이 시체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좋지?”
처리하기 곤란할 정도의 대량학살 현장을 보며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레반이 내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해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거라면 저기 있는 저놈들이 해준다고 합니다. 처음엔 그냥 죽일까 생각했는데, 이런 쪽의 뒤처리는 자신 있다고 해서 살려뒀습니다.”
“응?”
레반이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 창고의 입구 쪽을 바라본다.
거기엔 처음 보는 사람 수십이 명령을 기다리는 개처럼 반듯하게 무릎 꿇고 앉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제까지 시체들을 신경 쓰느라 눈치 채는 게 늦었다.
나는 황당함이 담긴 시선으로 입을 열었다.
“……누구세요?”
“하, 하하하…….”
가장 앞에 무리의 리더인 듯한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
결국 그날 창고에서 일어났던 참사는 불곰파라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깔끔하게 지울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레반이 마약을 얻을 수 있게 도와준 조직이라는 모양이다.
그 마약 때문에 죽을 뻔한 경험이 이는 난 그냥 이들을 경찰에 넘길까 고민했지만, 이제 그런 위험한 일에서 손 떼고 오로지 합법적인 사업만 할 것이라는 불곰파 보스의 말에 일단 눈감아주기로 했다.
확실히 이 정도의 시체를 처리하는 건 그들의 도움 없이 힘들어 보인다.
그렇게 그들의 도움을 받기로 한 김에 나는 한 가지 더 그들에게 의뢰를 하였고, 그 후 숙소인 여관으로 돌아왔다.
마음의 정리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겪은 충격은 쉽게 지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위드 소프트웨어의 단서를 쫓는 것도 그만두고 주말 내내 잠만 잤다.
그런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레반과 레테라였지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애써 웃어보였다.
그렇게 주말 내내 잔 덕분에 어느 정도 정신력이 회복되었다.
월요일부터는 평소처럼 대학교에 다닐 수 있었지만, 언제나와 같았던 풍경이 오늘따라 낯설게만 느껴졌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납치당한 것이 크게 마음에 남은 건지 레반과 레테라는 대학교까지 졸졸 따라다녔다. 덕분에 외부인 견학을 너무 자주하는 거 아니냐며 과대에게서 눈치를 좀 받았다.
진지하게 휴학을 고민해봐야 싶을 찰나, 레반의 휴대폰이 울렸다.
나 이외의 전화가 그에게 갈 일은 없었기에 희한한 일었다. 하지만 짐작 가는 일이 있었기에 그의 통화를 지켜보았다.
잠시 뒤, 통화를 마친 레반의 입에서 예상대로의 말이 튀어나왔다.
“형님. 불곰파가 사진 속의 장소를 찾았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