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콘크리트의 던전 1
* * *
확실히 난 지난 주 살모사파의 뒤처리를 맡은 불곰파에게 한 가지 의뢰를 더 했었다.
바로 그동안 찾아다니고 있던 사진 속 건물을 찾는 것이었다.
로드뷰로 직접 찾아갈 숫자를 줄였다고 해도, 건물에 대한 유일한 단서인 스카이피아 가맹점은 여전히 많았다.
그것들을 둘러보는데 불곰파의 인원들을 이용한다면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판단은 맞았다.
지난 주말 동안 불곰파는 전국을 뒤져가면서 사진 속의 건물을 찾아내었다.
여기까진 잘 된 일이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 건 이 이후였다.
“……저놈들 저기서 뭐해?”
성월 대학교 정문 앞에 와 있다는 불곰파의 보스 우정석의 연락을 받고 우리는 즉시 그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가는 동안 스쳐지나가는 학생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어딘가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표정.
그 이유를 정문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정문 앞 도로변에 까만 리무진이 세워져 있고, 그 앞에 검은 양복을 입은 덩치들이 각 잡힌 도열해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외모만 보고 판단해선 안 된다지만, 흉터가 있는 얼굴이라던가 무서운 인상을 가진 그들을 보며 딱히 좋은 직업을 떠올리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난 불길함을 느끼고 걸음을 멈춰 섰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벌써 나를 발견한 불곰파 조직원들이 깍듯이 허리를 90˚로 숙이며 우렁차게 인사해 왔던 것이다.
오셨습니까, 형님!!!!!
쩌렁쩌렁 울리는 그 소리에 주변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무서워 보이는 덩치들이 정확히 나를 향해 허리를 숙이고 있었으니 시선이 쏠리지 않을 수가 있을까.
마치 내 위치가 높아진 것 같은 느낌이 마음에 든 건지 옆에 있던 레반과 레테라가 으쓱거렸고, 주변을 지나는 학생들은 그 모습을 보며 수근거렸다.
“뭐, 뭐야? 우리 학교에 조폭 두목이 다니고 있었나?”
“겉보기엔 엄청 평범해 보이는데?”
“허억! 전에 내 옆자리에 앉았던 녀석이잖아?! 나 혹시 뭐 실수하진 않았겠지?”
눈에 띄는 걸 싫어하는 나로선 이렇게 집중되는 시선이 괴롭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시선에 몸이 짓눌리는 것을 느끼며 나는 전부터 생각해왔던 걸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휴학하자.”
***
강제적으로 학교에 유명인사가 되었는데 다닐 수가 있겠는가. 당장이라도 교수들의 눈빛부터가 움츠리듯 바뀌어버렸는데.
그 즉시 휴학 신청서를 내고 온 나는 불곰파가 끌고 온 리무진에 올라탔다.
리무진에서 기다리고 있던 우정석에게 다신 이딴 식으로 사람들의 관심 불어 모으지 말라며 단단히 엄포를 놓은 후에야 본격적인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었다.
“……등장 밑이 어둡다더니.”
우정석이 내민 사진과 지도를 확인한 나는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무재시(無?市) 무저구(無??) 무화로(無??) 676번 길 4
없을 무(無)가 세 번 연속으로 반복되는 이상한 주소. 하지만 분명 지도상에는 존재했다.
무재시는 성월시와 바로 이웃한 도시였다. 그동안 다녔던 신월시보다 더 가까운 곳에 사진 속 장소가 있던 것이다.
불곰파가 찍어온 사진과 내가 가지고 있는 사진을 비교해보았다.
특별한 간판도 없이 유리 외벽으로 뒤덮인 건물은 층수도, 모양도 완전히 일치했다.
드디어 한 발 나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받은 지도와 사진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수고를 해준 불곰파를 대표하는 우정석에게 고개를 숙였다.
“도와줘서 감사합니다.”
“고, 고개를 드십시오! 그렇게 예의를 차리실 필요 없습니다!”
우정석이 이렇게 사양하는 이유는 황망함을 느껴서라기 보단, 내 인사를 받고 있는 우정석이 마음에 안 드는지 레반과 레테라가 눈매를 좁혔기 때문이리라.
힘이 곧 권력이라더니, 게임 말곤 잘하는 것도 없던 아싸 대학생이 단 두 명의 존재만으로 한 조직의 보스를 압도하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할 따름이다.
“사례를 드리고 싶지만, 지갑 사정이 변변치 않아서 드릴만한 게 없네요.”
“사례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그냥 가끔 식사라도 함께 하시며 좋은 관계를 유지해주신다면…….”
말을 하면서도 우정석은 레반과 레테라를 힐끔거렸다.
알만하다. 법 보단 주먹이 가까운 세계에 사는 이로서 그들의 힘이 탐나는 것이다.
직접적인 조력은 없더라도 강력한 힘은 그저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 든든하니까.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괜한 생각을 하시는 거 같아 말씀드리는 건데, 저희랑 이제 더 이상 상관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겁니다.”
“괘, 괜한 생각이라뇨…….”
우정석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고 내 양쪽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두 사람, 엄청난 사고뭉치입니다. 우정석 씨가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요.”
진심을 담아 말하는 이야기에 레반과 레테라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딴청을 부렸고, 우정석은 꿀꺽 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저희와 연관될 때마다 험한 꼴 많이 보셨죠? 저희가 계속 연관되면 그런 일이 끊임없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노, 농담이시죠?”
“농담 같으신가요?”
그때 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동안 그들이 친 사고를 하나하나 떠올리며 잔뜩 피곤한 한숨을 내쉬었을 뿐인데, 내 마음이 확실하게 전해진 것처럼 우정석은 얼굴이 새파래진 채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아시고, 이제 더 이상 만날 일 없는 걸로 알겠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고 생각하고 차를 세워달라고 말하려던 때였다.
우정석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하, 한 가지만 더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뭔가 더 얘기할 게 남았던가?
그런 의문과 함께 그를 쳐다보자, 우정석은 조금 전 가방에 담은 건물의 사진과 지도를 가리키며 물었다.
“당신들이 찾으시는 그 건물. 그건 대체 뭐입니까?”
“저희들에게 상관 안 하시는 게 좋다고 말했는데요.”
아직도 미련이 남아 물고 늘어지려는 걸까.
그런 생각에 눈살을 찌푸리며 우정석을 바라보았다. 레반과 레테라가 ‘팰까요?’라고 묻는 듯 반짝이는 눈으로 나에게 향한다.
우정석은 자신의 말이 부족했다는 걸 자각하고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 그럴 속셈이 아닙니다! 사실은 저희에게도 사정이 생겨서……. 그 건물을 조사하던 저희 부하 중 몇몇이 호기심에 그 안으로 들어갔었거든요.”
“……뭐라고요?”
***
리무진의 방향을 돌려 향한 곳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장소였다.
일주일 전 입원했다가 퇴원했던 그 병원이었다. 그 건물에 들어갔다던 우정석의 부하들이 이곳에 입원해있다고 한다.
들어가자마자 전에 봤던 그 중년 의사가 정신 못 차리고 내 몸을 탐구하려 달려들었다. 덕분에 레반과 레테라가 그를 죽을 때까지 폭행하는 대형참사가 일어날 뻔했다.
어찌저찌 그들을 말리고난 뒤, 우정석이 앞장서며 우리를 안내했다.
“이쪽입니다.”
우정석의 부하들이 입원한 병실은 5층 복도 끝 3인실이었다. 건물의 들어갔다던 세 명은 거기에 있었다.
우정석은 긴 복도를 걸어가면서 사건의 경위를 이야기해주었다.
“처음에 이 녀석들은 그저 사진만 찍고서 돌아올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고 나니 한 여성이 카드키로 출입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그 건물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었단 말인가요?”
“네. 멀리서나마 본 녀석의 말대로라면 회사원 차림에 제법 미인이었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찾기 있던 건물에 출입하는 여회사원이라고?
누구일까? 잠시 의혹이 일었지만 지금은 일단 우정석의 말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런데 한 멍청이가 번호만 따고 오겠다면서 여성을 따라 열린 문으로 따라 들어간 게 문제였습니다. 다른 두 명은 말리려 따라 들어갔고, 운적석에 앉아 있던 한 명만 남아 있었죠. 그런데 건물에 들어간 이놈들이 10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더랍니다. 여자 꼬시러 갔더니 애라도 만들고 오냐며 한 소리 해주려고 그들에게 전화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지요. 그러다 마지막에 연락이 닿은 한 명이 있었는데, 그는 전화를 받자마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 살려줘!!!
“그 소리에 기겁한 녀석은 연장용으로 챙겨두었던 쇠망치를 손에 들고 건물 출입문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유리를 깨부수고 들어가려고 휘둘렀죠. 그런데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
나는 아무 말 없이 우정석의 말에 집중했다.
나 이외의 다른 일엔 별 관심을 주지 않는 레반과 레테라 또한 우정석의 이야기에서 뭔가 흥미로운 느낌을 받았는지 조용히 경청하고 있었다.
“쇠망치를 휘둘렀는데 유리엔 미세한 흠집조차 나지 않았더랍니다.”
그 말을 하는 우정석 본인도 어이가 없는지 황당하다는 감정을 얼굴에 내비쳤다.
“제가 개소리 지껄이지 말라고 닦달하니 그 녀석은 진짜라면서 자신의 손을 보여주었지요. 있는 힘껏 쇠망치를 휘둘렀는지 녀석의 손가죽은 피가 흐를 만큼 너덜너덜해져 있었습니다. 기가 차는 일이지요. 방탄유리조차 충격을 받으면 금이 가는데, 손아귀가 찢어질 때까지 망치로 내려쳐도 깨지지 않는 유리라니!”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깨지지 않는 유리의 존재.
이것이 SoR와 관련 있다고 하는 건 지나친 생각일까?
나는 슬쩍 레반과 레테라를 돌아보며 속삭였다.
“어떻게 생각해?”
“미믹 때처럼 저쪽 세계에 무언가가 이쪽으로 넘어왔다면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간단한 마법 술식만 있어도 일반인은 결코 흠집조차 낼 수 없는 유리벽을 만들 수 있어요.”
역시 그 건물도 SoR와 관련되어 있는 건가.
나는 다시 우정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 뒤에 어떻게 됐죠?”
“녀석이 도저히 깨지지 않는 유리벽에 절망하고 있을 때, 갑자기 출입문이 열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갔던 세 명이 걸어 나왔죠.”
“그 세 명이 스스로요? 다친 데는 없고요?”
“단순한 타박상을 제외하면 큰 상처는 없었습니다. ……육체 쪽에는 말이죠.”
“육체 쪽?”
“직접 한 번 보시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드디어 그 세 사람이 있다던 병실에 도착했다.
이상한 분위기가 감도는 병실이었다.
세 침대에는 모두 커튼이 처져 있었고, 그 안에서 웅얼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우정석은 입구에 가장 가까운 침대로 걸어가더니 커튼을 걷었다.
그러자 들어나는 건 자신의 몸을 보호하듯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남자였다.
두 눈이 잔뜩 퀭한 그 남자는 자신의 손톱을 쉴 새 없이 물어뜯으면서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없어, 없어, 없어……. 출구가 없어, 계단이 없어, 천장이 없어, 벽이 없어, 바닥이 없어, 나갈 수 없어. 나갈 수 없다고……! 나가고 싶어, 그런데 출구가 없어, 계단이 없어, 천장이…….”
“……이 사람 왜 이래요?”
“건물에서 나온 뒤부터 계속 이 상태입니다. 의사 말로는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 같다더군요.”
혹시 보험금 때문에 미친 척 연기하는 건가 했지만, 그 눈을 보니 그런 생각은 지워버렸다.
푹 꺼지다 못해 구멍이 뚫릴 것만 같은 저 눈은 정말로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눈이었다.
그 건물 안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거지?
그런 의혹에 시달리고 있을 때, 우정석은 두 번째 침대로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그놈은 양호한 편입니다. 이놈의 경우는 가만히 있지를 않아요.”
그렇게 말하며 우정석이 커튼을 걷었다.
두 번째 침대에 있던 남자는 첫 번째 남자와 달리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벽, 침대, 이불 할 것 없이 빨간 립스틱으로 무언가를 마구잡이로 그리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눈, 눈이 몇 개였지? 일흔 아홉 개, 그래! 일흔 아홉 개였어. 동공에는 이빨이 있고, 거기에서 손을 뻗어 나와. 그게 날 잡으려고 쫓아왔어. 천장을 기면서,”
두 번째 남자가 그리는 것은 무엇이라고 표현하기도 힘든 괴상망측한 괴물이었다. 이렇게 생긴 괴물은 SoR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남자는 자신이 본 것을 그림으로 남기는 게 중요한 임무라도 되는 듯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낙서를 이어갔다.
“그림 그리는 걸 멈추려고 하면 지랄 발광을 떨어서 일단 저대로 놔두고 있습니다. 립스틱은 간호사가 가진 걸 빼앗았더군요.”
“허…….”
나중에 저 그림을 다 지워야할 의료종사자들의 노고가 안타까울 지경이다.
우정석은 세 번째 침대로 걸어갔다.
이번엔 어떤 기괴한 광경이 펼쳐질까 긴장하고 있을 때, 눈앞에 들어난 광경은 완전히 예상을 벗어나 있었다.
세 번째 남자는 그냥 누워 있었다.
공포에 떠는 것도 아니고, 미친 듯이 무언가에 몰두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런 표정도 없이 천장만 지긋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이라기 보단 사람과 놀랍도록 흡사하게 제작한 인형처럼 보여서 묘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그건 우정석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도 눈살을 찌푸리며 세 번째 남자를 바라보았다.
“여자 꼬시려고 가장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간 그 머저리입니다. 일단 멀쩡히 살아 있고, 식물인간과 다르게 정상적인 신체 반응이 나타나는데도, 눈만 뜬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끔 입으로 뭔가를 중얼거리긴 하는데 잘 들리지 않아 저도 미치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워 있던 세 번째 남자의 입술이 달싹이며 무언가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소리가 작지만 조금만 가까우면 잘 들릴 것 같아서 조금만 다가가 보았다.
덥썩!
그때였다.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멍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남자의 손이 내 손목을 붙잡은 건.
“허억?!”
“형님!?”
“오라버니!!”
갑작스런 그 반응에 우정석이 놀라고, 레반과 레테라가 나를 지키기 위해 달려들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손을 들어 그들을 막았다.
“잠깐! 기다려 봐!”
세 번째 남자의 시선은 정확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리던 남자의 목소리가 이번엔 확실히 닿을 만큼 커져 있었다.
“초……. 초…….”
남자는 무언가를 말하려 하고 있다.
나도, 레반도, 레테라도, 우정석도 모두 숨을 죽인 채 서툴게나마 이어지는 남자의 말에 귀를 기우렸다.
“초, 「초대장이 없는 자는」…… 「들어올 수 없다」…….”
‘초대장?’
순간 내 머리를 스치는 건, 지금도 주머니 속에 간직하고 있는 초대장이라 적힌 건물 사진이었다.
그걸 왜 이 남자가 말하는 거지? 설마 그것 없이 들어갔기 때문에 이들이 공격 받은 건가?
다양한 의문이 휘몰아 칠 때, 남자의 입이 계속해서 움직인다.
아직 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빠, 「빨리 와라」……. 시, 「심심해 죽겠으니까」…….”
히죽.
그 말과 함께 남자는 웃었다.
마치 함께 놀자고 말하는 악동과 비슷한 미소였다.
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내 손목을 놓아주고 쓰러졌다. 악동 같은 표정도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
불편한 침묵 속에서 우리들은 한순간에 일어난 이 기이한 광경을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방금 그 말의 의미는 뭐지? 빨리 오라고?
“허억!?”
그러던 중 방금 전 그 남자가 숨을 몰아쉬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직 뭔가 더 남았나 싶었을 때, 남자는 당황스러운 감정을 그대로 얼굴에 들어내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활력을 전혀 찾아볼 수 없던 조금 전의 모습이 거짓말 같을 정도였다.
“어, 형님? 여기는 어디입니까?”
몸을 일으킨 남자는 방금 전까지 자신이 어떠한 상태였는지도 모르는 듯 우정석에게 말을 걸었다.
“뭐, 뭐지?”
“우리가 무슨…….”
제정신을 차린 건 그만이 아니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벌벌 떨고 있던 남자도, 붉은 립스틱으로 쉴 새 없이 그림을 그려가던 남자도, 자신이 방금 전까지 뭘 하고 있던 건지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정신을 차렸다.
그 모습에 가장 당황하는 건 우정석이었다.
“시, 신요현 씨!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는 나라면 뭔가 아는 게 있지 않을까 싶어 물었다.
그것에 대해 나는 방금 전에 붙잡혔던 손목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우정석 씨. 역시 당신들은 더 이상 우리와 상관 안 하는 게 좋겠습니다.”
“네!?”
“우리가 그 건물에 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저도 전혀 예상 못하겠거든요.”
손목을 붙잡은 건 눈앞의 남자였지만, 나는 먼 곳에 있는 무언가가 나를 끌어당기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무언가 우리를 부르고 있다.
사진 속 그 건물에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