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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39화 (39/173)

〈 39화 〉 콘크리트의 던전 ­ 2

* * *

무재시(無?市) 무저구(無??) 무화로(無??) 676번 길 4

무(無) 한자가 세 번 반복되는 기괴한 주소답게 그 건물은 사람이 거의 지나지 않는 한적한 골목 안에 세워져 있었다.

쓸데없이 높고 낡은 건물들 사이에 모습을 숨긴 듯한 세련된 유리건물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부조화가 일어나는 듯 했다.

병원에서 기이한 체험을 하고 온 우리들은 곧바로 이곳에 향했다. 여기에 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방치해서 좋을 것 없다는 걸 느낀 것이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바로 들어가진 않았다.

병원에서 겪은 일 때문에 우리의 경계심은 극에 달해 있던 것이다.

건물 안에 들어가기 전, 사전 조사의 의미로 건너편에 카페에 들렸다. 건물을 찾을 단서가 되었던 펜릴 로고를 단 스카이피아 카페 카페였다.

그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건 놀랍게도 노인 한 명이었다.

커피를 사면서 건너편 건물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지만, 나이 때문에 귀가 먹었는지 무슨 말을 하든 “뭬라꼬~?”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런 주제에 주문은 눈치껏 잘 받았다.

노인답지 않게 화려한 손놀림으로 휘핑크림까지 얹은 커피가 나오자 조심스럽게 맛을 보았다.

독은 없었고, 커피는 의외로 맛있었다.

레반, 레테라 두 사람과 커피를 마시며 길 건너편 건물을 바라본다.

병원에서 우정석의 부하가 내뱉었던 말과 같이, 건물은 기이한 존재감을 뿜어내며 이쪽을 부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희끼리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라버니는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기각.”

병원에서 본 환자들의 상태를 보고 내 안위를 걱정하게 된 레반과 레테라가 제의했지만, 나는 깔끔히 거절했다.

저기에 뭐가 있을 줄 알고 둘만 보낸단 말인가.

“그냥 무엇이 있는지 정찰만 하고 올 겁니다.”

“굳이 오라버니까지 위험을 감수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 말에 나는 주머니 속에서 사진을 꺼내보였다.

건너편 건물을 찍은 사진. 그 뒤편에는 휘갈겨 쓴 듯한 글씨로 초대장이라 적혀 있었다.

“‘초대장이 없는 자는 들어올 수 없다’고 했어. 그저 초대장을 가지고 있으면 되는 건지, 아니면 초대장을 얻은 그 본인이 가야하는지 알 수 없지. 그렇다면 일단 나도 같이 가는 편이 나아. 괜한 위험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르고, 만약 잘못된다고 해도 너희들이 날 지켜주면 되잖아?”

“그렇게 말하신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그렇다면 저희도 만전의 준비를 하고 갈 수밖에 없겠네요.”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은 묵직한 배낭을 집어 들었다.

거기에 있는 건 줄곧 벗어두고 있던 두 사람의 갑옷이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무기와 함께 가져온 것이다.

잠시 뒤,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온 몸을 무장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감회가 드는 한편 아쉬움도 느꼈다.

‘인벤토리만 쓸 수 있었어도 좀 더 강력한 장비를 챙겨줬을 텐데…….’

사실 두 사람의 장비는 가볍게 모험하기 위해 맞춰둔 것이다.

성능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비장의 카드처럼 인벤토리 한 곳에 꼭꼭 숨겨놓은 전설급 무기들을 떠올리면 무척이나 아쉬웠다.

특히 레테라는 여전히 장비의 내구도가 위태로웠다.

그동안 임시방편으로나마 고쳐놓긴 했지만, 변변치 않은 이쪽 세계의 도구들만으로 고치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내가 걱정하는 시선을 눈치 챈 레테라는 안심시키듯 싱긋 웃으며 옆에 있던 레반을 가리켰다.

“걱정 마세요, 오라버니. 무식하게 달려드는 것밖에 모르는 이놈과 다르게 저는 회피 위주의 전투도 가뿐하니까요.”

그런 레테라의 말에 발끈한 레반이 반박했다.

“누가 무식하게 달려드는 것밖에 모른다는 거냐? 나도 회피 정도는 한다고. 그냥 자잘한 공격 정돈 몸으로 때우며 공격하는 게 이득일 뿐이야. 뭐, 바람 불면 꺾일 듯한 네 몸뚱어리로는 따라하고 싶어도 못하겠지만.”

“그게 무식한 거잖아.”

“뭐 임마?”

“뭐 임마.”

“싸우지 좀 마!”

이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던전 같은 곳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저들끼리 다투고 있는 두 사람을 보니 불안감이 앞섰다.

어쩌면 그냥 돌아가는 게 나을지도…….

***

서로 으르렁 대는 두 사람을 진정시키고, 새롭게 마음을 다 잡으며 건물을 향해 다가갔다.

출입문은 유리로 된 미닫이식 자동문이다. 하지만 문을 열기 위해선 카드키와 비밀번호가 필요한 모양이다.

둘 다 없는 나로선 곤란할 따름이다.

이제까지 카드키와 비밀번호에 대한 단서는 없었는데? 혹시 내가 눈치 못 챘을 뿐 어딘가에 있던 게 아닐까?

지금까지 행적을 돌이켜 보고 있을 때, 레반과 레테라가 문 앞으로 다가갔다.

콰아아아앙!!!

그들이 내지른 주먹과 발차기에 출입문이 허무하게 깨져나간다.

유리문을 깨지 못해 절망했다던 불곰파 조직원이 본다면 뒤로 넘어갈 만한 광경이었다. 그 소리도 유리 깨질 때의 찢어지는 울림이라기 보단 폭발하는 것에 가까웠다.

“확실히 단단하긴 합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오라버니.”

단단한 타격감을 느낀 두 사람이 각자 손과 발을 털어내며 나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나는 조심스레 유리조작을 밟으며 안쪽으로 들어섰다.

문이 억지로 깨져나갔는데, 경비원이 달려오기는커녕 경보음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다.

진짜로 그냥 부수고 들어오라는 거였어? 점차 우리를 이곳에 불러들인 존재의 생각을 알 수 없어진다.

“……아무도 없네.”

그렇게 들어온 건물 내부는 놀랍도록 한산했다.

아니, 황량했다는 표현이 이곳에 더 어울릴 것이다.

인기척도 없고, 내부를 꾸미는 장식조차 없이 콘크리트 벽만이 가득했다. 안내데스크가 마련되어 있지만 단 한 번도 사용된 흔적이 없이 깨끗하기만 하다.

안내데스크 쪽을 둘러보던 레테라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쓸어보았다.

그녀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람이 사용한 흔적이 없는데, 쌓인 먼지도 없어요. 관리는 잘 하고 있다는 걸까요?”

이런 황량한 건물 내부를 대체 누가 관리한다는 걸까.

아무리 큰돈을 주면서 내게 건물 청소 알바를 시킨다 해도, 이렇게 기분 나쁠 정도로 조용하며 휑한 곳의 청소를 맡는 건 싫었다.

한편 레반은 가까운 벽 쪽을 다가가 주먹으로 쿵쿵 두드렸다.

레반이 뭔가를 느낀 듯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이것도 평범한 벽이 아닙니다. 조금 전 유리처럼 알 수 없는 무언가로 강화되어 있습니다.”

그 말에 나도 벽에 다가가 가볍게 두드려보았다.

쿵! 쿵!

“……!”

확실히 전해지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벽 자체가 충격을 전혀 흡수하는 것 같지 않다고 할까.

뭣도 모르고 주먹으로 내리쳤다간 내 손만 작살날 것 같았다.

“그냥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만 싸워도 위험하다는데……. 이런 곳에서 싸우면 큰일 날지 모르겠는걸?”

“그렇습니까? 좀 튼튼할 뿐이지 부수고자하면 못 부술 것도 없습니다.”

“부수지 마…….”

실험삼아 한 번 주먹을 휘둘러보려는 레반을 제지한다. 아직은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나는 벽에서 떨어지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뭘까, 이 건물은?

확실히 낌새가 수상하기 하는데,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은 없었다.

‘이게 전부일 리 없는데…….’

왜 우리를 이곳에 불러들인 거지?

초대장의 의미는 뭐야?

왜 앞서 들어갔던 남자 셋은 그렇게 정신줄을 놓고 돌아온 거냐고?

우리가 들어 왔으니 분명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야 할 터였다.

그러나 건물은 여전히 기묘하게 자리하기만 할 뿐, 다음으로 나아가야할 장소를 제시해주지는 않았다.

참다못한 나는 총 10층중 5층까지 훤히 보이는 구조로 뚫려 있는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이봐! 바라던 대로 초대장을 들고 찾아왔잖아! 누구라도 좀 나와 봐!”

나와 봐! 나와 봐…! 나와 봐……!

아무나 불러볼 요량으로 외쳐보았지만 메아리만 공허하게 울리다 흩어지는 게 전부였다.

안쪽으로 들어가서 찾아봐야 하나?

정말 뭐가 있을지 모르는 던전에 들어가는 기분을 느끼면서 나는 레반과 레테라를 돌아보았다.

“레반, 레테라. 안쪽으로 들어갈 테니 잘 붙어서 따라와…….”

그들을 돌아보며 나는 곧 입을 다물었다.

없다.

눈을 깜빡이며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본다.

여전히 없었다.

불과 몇 초 전까지 바로 곁에서 얘기하고 있던 두 사람.

그들의 모습이 잠시 고개를 돌린 순간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레반!? 레테라?!”

다급하게 그들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러나 아까처럼 공허하게 울리는 메아리만이 내 공포감을 더욱 자극할 뿐이었다.

사라진 척 장난을 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들은 절대 이런 장난을 칠만한 녀석들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시선을 뗐던 단 몇 초.

그 사이에 두 사람은 소리도 없이 없어져버린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짐작조차 안 간다.

두근! 두근!

젠장. 심장이 날뛰는 걸 주체할 수가 없다.

이제까지 든든하게 내 곁을 지켜주던 두 사람이었기에, 그들의 부재는 나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어쩌지? 나 혼자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건물 안을 돌아다니는 건 위험하다.

자칫 잘못하면 병원에서 본 그 남자들처럼 될지 모를 일이다.

일단 물러나서 상태를 지켜봐야 하나? 건물 밖으로 나가서 다시 한 번 그들을 찾아본다면…….

“어……?”

등 뒤를 돌아본 나는 멍청한 목소리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출입문이 없다.

분명 깨진 유리가 흩어진 채 뻥 뚫려 있어야 할 곳이 사라져 있는 것이다.

아니, 사라진 건 출입문만이 아니었다.

근처에 있던 안내데스크 또한 사라졌고, 주변의 모습도 내 기억과 어긋나는 부분이 많았다. 처음 보았던 그 풍경이 아닌 것이다.

“젠장!! 두 사람이 사라진 게 아니야!!”

그 모습을 보고 드디어 내 처지를 이해한 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건 두 사람이 말도 없이 어디론가 이동해버린 게 아니었다.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된 두 사람. 뒤바뀌어버린 풍경.

이것이 의미하는 건 하나밖에 없다.

“내가 사라진 쪽이었어!!!”

***

요현의 생각과 달리, 공간을 이동한 건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레반과 레테라도 각자 낯선 장소에서 혼자가 된 자신을 자각했다.

“형님!!!”

“오라버니!!!”

다른 녀석은 신경 쓰지도 않는다.

지옥 불구덩이에 던져 놔도 살아남을 녀석이라는 건 늘 티격태격 다퉈왔던 본인들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요현은 다르다.

자신들의 부모인 그는 아무런 힘도 없는 일반인에 불과하다.

간혹 보이는 꺾이지 않는 의지는 그들마저도 존경할 정도지만, 세상은 의지만 강하다고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특히 자신들이 있던 SoR에 가까운 냄새가 나는 이 건물 내에서는!

콰과과아아아앙!!!!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자신들을 가로막는 벽을 부수며 이동했다.

위치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사방이 미로처럼 꼬인 벽뿐이고, 그 외엔 창문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벽을 부수는 여파는 서로에게 전해졌다.

의외로 둘은 같은 층에 있었다. 거리는 멀었지만 벽을 부술 때의 소리와 진동으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제발 형님과 같이 있어라, 절벽가슴!”

레반이 간절히 중얼거리며 머리 위로 쏟아지는 조명의 밑을 달려갔다.

“제발 오라버니와 함께 있어라, 근육돼지!”

내달리는 건 레테라도 마찬가지였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빛 사이를 헤집고 달리며 그녀는 간절히 중얼거렸다.

부디 상대가 요현과 함께 있기를 바라며, 그들은 소리와 진동을 더듬고 서로를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그렇게 일직선으로 나아가던 둘이 드디어 한 곳에서 만났다.

콰아아아아아앙!!!!

마지막 벽을 들이받으며 그들은 드디어 서로의 시야 안으로 들어갔다.

“근육돼지!! ……응?”

“절벽가슴!! ……어?”

서로의 모습을 확인한 그들은 동시에 멍한 소리 냈다.

레테라는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곳에 레반이 있었다.

레반 또한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곳에 레테라가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올려다보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너 왜 거기에 있냐?”

“내가 할 소리거든?”

두 사람은 각자 머리 위에 거꾸로 서 있는 상대방을 바라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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