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콘크리트의 던전 3
* * *
레반과 레테라는 현재 자신들에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요현은 갑작스레 사라졌고, 자신들도 어딘지 모를 공간으로 이동한 뒤, 서로의 소리를 따라가다 마주쳤다고 생각한 순간, 상대방이 상하가 뒤집힌 채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마치 서로에게 중력이 반대로 작용되는 듯한 기묘한 광경이었다.
조명의 위치를 봐선 레테라가 있는 곳이 천장, 레반이 있는 곳이 바닥이었다.
“……뭔 상황이야 대체?”
“환각이라도 보는 건가?”
가장 그럴 듯한 추론은 그것이었다.
SoR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다.
독버섯으로 가득한 던전에 흩날리는 포자가루가 환각 작용을 해서 존재하지 않는 벽을 피해가야 하거나, 있지도 않은 적과 싸워서 기력을 낭비하게 되곤 했었다.
이럴 경우, 환각을 타파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짧은 시간 판단을 마친 레반과 레테레가 서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천장과 바닥에서 뛰어오른 두 사람 그 중간 지점에서 만난다.
레반은 주먹을, 레테라는 다리를 상대에게 힘껏 내지른다.
퍼어어어어어억!!!
주먹과 다리가 교차되고, 그것들은 서로에 얼굴에 정확히 꽂혔다.
충격에 밀려난 두 사람은 그대로 뛰어올랐던 자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아앙!!!
“크윽…….”
“……환각은 아니네.”
균열을 남기며 바닥에 처박혔던 레반과 레테라는 머리를 뒤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이 모든 게 환각이었다면 아까처럼 머리에 큰 충격을 주었을 때 원래대로 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상황은 변한 게 없다.
여전히 레테라는 천장에, 레반은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들은 일단 이 문제를 해결하는 걸 보류했다. 이 일의 원인을 찾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다.
“일단 오라버니는 이 층에 없는 거 같아.”
“어차피 위아래로 나눠진 김에 영역을 나누자. 너는 위쪽에서 형님을 찾아라. 나는 아래쪽에서 찾을 테니.”
본래 던전에서 개인행동은 현명한 짓이 아니다.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 혼자보단 다수가 함께 대응했을 경우 생존율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건 스스로의 안위가 아니었다.
무슨 위험이 있던 간에, 요현을 찾아내기 위해선 흩어져서 찾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 마음만 일치했다면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
그들은 무기를 발 아래로 휘둘러 콘크리트를 때려 부쉈다.
그것으로 레테라는 위층으로, 레반은 아래층으로 향했다.
이변은 한 층을 옮겨간 직후 일어났다.
“……?!!”
레테라는 분명 천장을 뚫고 위층으로 몸을 날렸다.
그런데 기다리는 건 발판이 되어줄 또 다른 천장이 아닌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 그들이 있던 건물의 높이보다 더 깊숙하게 이어져 있었다. 순간 자신이 있던 위치가 천장이 아닌 바닥 쪽이 아니었나 의심이 될 정도였다.
정체 모를 인력이 레테라를 끌어당긴다.
이 방향 끝에 땅에 있다면 이 인력은 중력이 맞겠지만, 하늘을 향하고 있다면 정체모를 힘 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레테라는 가장 가까이에 있던 벽에 한손검을 박았다.
콰각!!
“읏?!”
한손검을 이용해 몸에 브레이크를 걸던 레테라는 순간적으로 벽이 확장되듯 다가와 레테라의 몸을 들이받으려 했다.
레테라는 재빠르게 반응해 두 다리를 끌어올려 다가오는 벽을 향해 날렸다.
콰아앙!!!
날카로운 각력과 함께 금이 간 벽에서 파편이 튕겼다.
두 다리와 벽이 부딪치며 생긴 반발력을 타고 그녀가 몸을 날린다. 그러나 벽은 잠깐 주춤 거렸을 뿐, 다시 그녀를 쫓아 빠르게 다가왔다.
‘……아냐.’
뭔가를 눈치 챈 레테라는 이번엔 벽을 걷어차지 않고 가만히 다가오는 벽에 두 다리를 대었다.
쿵!
다가오던 벽은 레테라의 발바닥에 닿은 채로 움직임을 멈췄다.
아니, 사실 벽이 다가오던 것도 아니었다.
“중력이 바뀌었어?”
레테라는 다가오던 벽에 고정된 게 아니라 그 위로 떨어지고 있던 것이다.
언제부터 중력의 방향이 바뀌었는지 눈치 채지도 못했다.
딱딱한 벽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는 레테라는 눈이 어둠에 익숙해짐에 따라 그곳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라고 했던가? 그것이 지나가는 공간 같은데.”
허공에 놓인 굵은 줄과 직사각형 형태의 물체가 지나기 좋아 보이는 네모난 통로.
분명 위아래로 뚫려 있어야할 긴 공간은 레테라의 기준으로 좌우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도대체 무슨 법칙으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문뜩 그녀는 병원에서 공포에 떨던 남자가 중얼거리던 말을 떠올렸다.
출구가 없어, 계단이 없어, 천장이 없어, 벽이 없어, 바닥이 없어, 나갈 수 없어. 나갈 수 없다고……!
그 남자가 겪었던 게 바로 이런 것일까.
그가 제정신을 차렸을 땐 이 건물에서 겪은 일을 모두 잊었다고 했다.
기억을 잃은 건 차라리 축복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혼돈이라는 법칙 밖에 없는 곳에선 멀쩡한 인간의 정신 따윈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이런 정체모를 공간에 오라버니가 혼자 방치되어 있다는 거야.’
레테라는 지체 없이 이동을 시작했다.
천장이 뒤집히든 바닥이 사라지든 상관없다. 요현을 찾는 것이 레테라에게 가장 중요했다.
한편, 레테라와 헤어지며 바닥을 부순 레반 또한 이 건물의 뒤틀림을 실시간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우당당탕!!! 쿵!!
“젠장!! 이건 또 뭐야!!”
한바탕 데굴데굴 구르던 레반은 기둥에 부딪치고 나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분명 자신을 아래를 향한 구멍으로 몸을 날렸는데, 어느새 계단 위에서 미끄러지며 데굴데굴 구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도 아래를 향해 내려가는 게 아니다. 위를 향해 구르며 올라가는 것이다.
그 어이없는 상황에서 겨우 벗어난 레반이 몸을 일으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가 들어온 곳은 넓은 홀이었다.
평범한 건물이었다면 연회와 같은 용도로 사용하지 않을 싶은 공간이었다.
물론 변변찮은 물건 없이 삭막하기만 한 건 이곳도 마찬가지였지만.
부스럭. 부스럭.
“응?”
그때 레반은 홀 한 쪽에서 작은 인기척을 느꼈다.
무대로 사용할 법한 높은 단상 위였다. 그 위에서 작은 그림자 하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레반은 그곳으로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형님……이십니까?”
레반은 확신이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요현의 기척이라기엔 어딘가 많이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생쥐는 아닐 것이다. 그것보단 확실히 큰 물체다.
그럼 뭐지?
그것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레반은 단상 위에 올랐다.
단상 위에 있던 건…… 설명할 수 없다.
레반은 이것을 어떻게 해야 정의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살덩이가 있었다.
고깃덩어리라고 표현해도 되겠지만 그건 분명 살덩어리에 가까웠다. 사람의 것과 흡사한 피부를 가졌다.
그런데 그것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하는 건, 그 살덩이가 액체처럼 유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액체와 같은 타원형이라는 점에선 슬라임이라고 하는 몬스터와 비슷했다.
하지만 슬라임은 아니다.
유동하는 표면에서 눈과 입, 코, 귀 등이 강물에 흐르듯 들어났다가 사라지거나 하는 슬라임 따위는 레반도 본 적 없었다.
휘번뜩.
살덩이 표면에 떠올랐던 눈동자가 돌연 레반을 향해 돌아간다.
마치 목표를 포착하기라도 한 것처럼.
거기서부터 살덩이의 모습이 돌변했다.
마치 거품이 끓어오르듯 살덩이가 부풀어 오르더니, 일일이 세기도 힘들 만큼의 눈알과 입, 그리고 팔과 같은 무언가 계속 튀어나왔던 것이다.
결국 천장에 머리가 닿을 만큼 살덩이가 덩치를 불렸다.
그건 이미 살덩이조차 아닌 몬스터 그 자체였다.
더욱 가관인 건 지네처럼 사방으로 뻗고 있는 수십 개의 팔이 여전히 액체처럼 그 몸 위를 유동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지네와 슬라임을 섞어놓은 것 같은 몬스터다.
레반은 그런 괴물의 모습을 보며 그는 기시감을 느꼈다.
병실에서 보았던, 립스틱으로 낙서하던 남자가 그린 괴물의 모습.
그것과 놀랍도록 흡사한 모습이 눈앞에 있었다.
“병원에 있던 그놈,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이었구나…….”
그 남자가 그린 것과 똑같이 정신 나간 비주얼의 괴물이 실제로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평범한 사람은 보기만 해도 정신이 나갈 버릴 것 같은 괴물의 외형과 뜻밖의 재능을 가진 남자의 그림이 실력에 감탄하던 레반은 대검을 쥐었다.
“네가 뭐하는 놈인지 몰라도, 형님을 찾는 걸 방해했다간 벤다.”
“!!!!!!!”
레반의 경고를 알아듣지 못한 건지, 아니면 알아들었음에도 무시하는 건지, 끔찍한 형상의 괴물이 레반을 향해 덮쳐들었다.
***
“레반~! 레테라~! 어디 있냐! 내 목소리 들리면 대답해~~!!”
건물 어딘가에 혼자 방치되고 난 뒤, 나는 큰소리로 그들을 부르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이 건물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위험 요소가 있었다. 뭣도 모르고 들어온 세 남자를 완전히 정신착란의 지경까지 몰고 갔던 무언가가.
그런 곳에서 큰소리로 내 위치를 알리는 건 위험성이 짙은 일이다. 하지만 레반이나 레테라 없이 이대로 혼자 돌아다는 게 더 위험하다고 판단했기에 어쩔 수 없이 도박에 나서야 했다.
하지만 처음 걱정이 무색하게 아무리 두 사람을 불러보아도 그 어떠한 이변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쯤 되니 시간이 지나도 내 목소리를 찾아내지 못하는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지 걱정될 정도다.
“썩을. 이상하게 이곳에 들어온 뒤부터 휴대폰도 터지지 않고……. 여긴 대체 뭐하는 곳이야?”
“뭐긴 뭐야. 게임회사지.”
“웃기지 마. 이딴 해괴망측한 게임회사가 세상에 어디 있…….”
투덜거리면서 걸어가던 나는 걸음과 함께 입을 다물었다.
……나 방금 누구랑 대화한 거지?
휙! 하고 목에 무리가 갈 만큼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웬 남자가 자연스럽게 내 옆에서 함께 걷고 있었다.
키는 나와 비슷한 정도지만 체격은 마른 남자. 길게 자란 머리카락은 아무렇게나 삐죽 솟아 있고, 옷은 간편한 검은 츄리닝 차림이다.
한쪽 손은 아무렇게나 바지 주머니에 찔러놓고, 한손에는 펜릴 로고가 박힌 커피를 마시고 있던 남자는 나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잠깐 길이 엇갈려버렸네. 잠시 요 앞 카페에 커피 사러갔었거든. 거기 노인네가 타 준 커피 마셔봤어? 커피와 설탕 섞는 비율이 진짜 절묘해. 우리 비서한테 좀 배우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 여자는 커피 타는 게 영 서툴러서 말이야. 그 노인네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지.”
“…….”
어느새 당연한 듯 수다를 떨고 있는 남자에게서 몇 발자국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언제 다가왔는지 알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바로 내 옆에 있었다.
처음 레반, 레테라와 떨어질 때처럼 돌연, 한 순간에 말이다.
“당신 누구야?”
“누구냐고? 이상한 말을 하네. 네 처음 목적이 뭐였어? 날 만나러 온 거 아니었어?”
내 처음 목적.
그것은 내 게임 캐릭터들이 현실로 나온 이유를 알기 위해서.
그래서 위드 소프트웨어의 전 회사 건물로 갔다가 미믹과 싸우고, 거기에서 얻은 단서를 토대로 여기까지 왔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아까 뭐라고 했지? 비서?’
비서란 직장 중 높은 계급의 임원의 일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 비서라는 말을 꺼냈다는 건, 나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외모와 반대로 한 회사에서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다는 소리다.
“설마 당신이……?”
“맞아.”
내가 내린 결론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커피를 마시던 남자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내가 위드 소프트웨어의 사장이야.”
“…….”
멍해지는 표정을 쉽게 감출 수가 없었다.
위드 소프트웨어 관계자를 만나기 위해 그간 그 고생을 하긴 했다. 그런데 그 끝판왕이 이렇게 느닷없이 나타날 줄은 예상 못했다.
산업용 소프트웨어 개발사였다가 망해버린 위드 소프트웨어를 인수했다던 이름 없는 사업가.
그게 바로 이 남자란 말인가?
“참고로 사장직만 하고 있는 게 아니지.”
“그럼……?”
“네가 그렇게 즐겼던 소울즈 오브 라그나로크.”
남자는 히죽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 게임의 총괄 디렉터 겸, 디자이너 겸, 프로그래머 겸, 스토리 작가 겸, 사업팀장 겸, 서버 관리자 겸, 운영책임자가 바로 나야.”
“…………………………….”
“오! 그 미친놈을 바라보는 듯한 노골적인 표정! 아주 좋은데?”
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위드 소프트웨어의 사장 겸…… 아무튼 엄청 많은 직책을 가지고 있다는 남자가 말하였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진짜로 미친놈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