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게임 플레이 2
* * *
위기의 순간, 손아귀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감각이 느껴졌다.
이걸 어찌 모를 수 있을까. 강적과의 처절한 싸움이면 언제나 함께 했던 그녀의 애병(?兵)을.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기보다 먼저 레테라는 양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정면에서는 레테라를 노리는 살의들이 쏟아진다. 괴물에게서 쏘아진 팔들은 이미 그녀의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다.
평소와 같은 한손검이었다면 전부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레테라의 손에 있는 건 한손검이 아니다.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쌍검.
그것을 휘두른다.
허공에 선을 하나, 둘, 셋…….
숫자가 더해질수록 속도는 빨라졌고 새겨지는 참격의 수는 많아진다.
자신을 압도하던 숫자라는 폭력을, 마찬가지로 연격의 숫자로 대응한다.
레테라가 휘두르는 참격의 수는 어느새 괴물의 손을 압도하고 있었다.
콰가가가가가가각!!!!!!!!
단 한 순간에 정신없이 쏟아지는 연격이 괴물의 팔을 모조리 도륙 내어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내질렀던 팔이 모조리 잘려나가고, 절단면에 서린 얼음에 침식당해가자 놀란 괴물이 물러났다.
“후우…….”
괴물이 물러나자 눈보라처럼 휘몰아치던 연격도 끝났다.
마치 한 번의 춤사위를 마친 무용수처럼 양팔을 교차하고 쌍검의 끝을 위로 뻗고 있는 자세에서 한숨을 내쉬는 레테라.
격렬한 운동으로 달아오른 열기가 뜨거운 입김으로 뿜어지며 차가운 눈발 속으로 사라진다.
교차했던 팔을 아래로 내리며 검을 가볍게 휘두르자 주변에 휘날리던 서리가루가 일제히 물러났다.
그때가 돼서야 레테라는 손 안에 바뀌어있는 무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환설의 쌍마검.
요현과 함께 설산에서 몇날 며칠을 떠돌아다니며 얼음 거인들을 때려잡고, 설산 깊은 곳에서 얻어낸 극한한철과 정령수를 최고의 대장장이에게 맡겨서 겨우 완성된 무기.
그것을 손으로 쥐었을 때의 그 짜릿한 기쁨은 요현의 것이기도 했고, 레테라의 것이기도 했다.
그때와 같은 감각이 손 안에서 퍼져 나왔다.
옛추억과 함께 요현이 드디어 인벤토리를 사용했다는 기쁨에 레테라는 잠시 그를 올려보았다.
“!!!!!”
그러나 괴물은 그녀가 오랫동안 감상에 젖어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레테라가 베었던 팔은 어느새 사라져 있고, 새롭게 나타난 팔과 함께 다시 그녀를 공격한다.
콰아아앙!!!
수십 개의 팔이 레테라가 있던 자리를 뭉개버렸지만 그녀의 몸엔 어느 것 하나 닿지 못했다.
괴물의 공격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공중제비를 돌 듯 몸을 날린 레테라를 검에서 뿜어져 나온 눈 결정이 잔영처럼 뒤따라간다.
그녀가 쥔 환설의 쌍마검은 강력한 냉기가 담겨 있는 마법 무기다.
공중을 휘돌면서 휘두른 참격에 또 다시 괴물의 팔이 잘려났고, 거기에서 생긴 얼음이 팔의 절단면을 바닥에 고정시켰다.
그렇게 고정되어버린 괴물의 팔을 사뿐히 밟은 레테라가 단숨에 괴물을 향해 달려 나가 연격을 날렸다.
괴물의 몸에 수많은 자상이 생겨났고, 거기에서부터 생겨난 얼음이 거대한 몸체 절반을 뒤덮어 간다.
“저 녀석, 오랜만에 제대로 된 무기를 쥐더니 신나서 날아다니네.”
둘이서 싸워도 밀릴 수밖에 없었던 괴물을 이젠 혼자서 능히 상대하고 있는 레테라를 보며 레반은 어이없는지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의 말 한 구석에는 부러움이라는 감정도 있었다. 가장 자신에게 맞는 무기와 함께 신나게 날뛰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마냥 부러워만 할 필요가 어디 있냐는 것처럼 그에게 요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비해, 레반! 다음은 너야!”
“형님?”
레반이 돌아보자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요현의 모습이 보였다.
“캐릭터 지정, ‘레반’. 무기 지정, ‘용병왕의 대검’.”
요현이 무언가를 중얼거리자 레반은 자신이 쥔 대검이 희미하게 빛나는 걸 발견했다.
“웨폰 체인지, ‘붉은 자의 특대검’!”
희미한 빛이 어느 순간 대검을 뒤덮는가 싶더니 완전히 다른 무기로 바꿔버렸다.
바뀌는 순간 손 안에 전해지는 엄청난 무게에 레반은 잠시 휘청거렸다. 대검도 지푸라기처럼 가볍게 휘두르던 그로서는 상당히 드문 일었다.
“오오!”
그러다 모습을 드러낸 자신의 애병을 보며 레반은 반갑다는 듯 소리를 높였다.
붉은 자의 특대검.
줄여서 붉은 검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쓰이는 이 검은 레테라의 것과 달리 제작 무기가 아니었다.
드라리온의 화산이라는 고난이도 던전. 그곳 용암 바닥에 서식하는 붉은 자라는 이름을 보스 몬스터가 있다.
이것은 그 보스 몬스터의 드랍 무기였다.
무기 드랍은 순전히 운이기에 1주일 간격으로 부활하는 보스만 쓰러뜨리는 걸로는 얻기는 더럽게 힘들었다.
더군다나 붉은 검의 성능은 중량 무기 중에서도 1티어 급이었다. 분명 팔기만 한다면 용돈을 쏠쏠하게 벌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진성 게이머인 무기를 팔아 돈을 버는 것보다 그것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더욱 강화하는 것을 택했다.
그런 요현의 마음 때문인지, 아니면 원체 근력캐인 레반과 상성이 좋았던 건지, 레반은 이 무기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용암이 검의 형태로 식어버린 듯한 형태. 그래서 그것은 검이라기 보단 그냥 거대한 돌덩어리처럼 보였다.
쿵! 그그극……!
그 특대검의 끝을 바닥에 대고 긁어보았다.
마치 불이 타오르는 것처럼 불똥이 튀기고, 마찰이 일어난 부분의 검신이 붉게 물들어갔다.
오랜만의 확인한 붉은 검의 상태를 본 레반 씨익 웃었다. 오랜만에 만난 애병의 상태는 아주 좋아 보인다.
그런 레반의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레테라와 싸우던 괴물이 상반신 대부분을 뒤덮은 얼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뒤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레반은 붉은 검의 검신을 바닥에 댄 채 자세를 잡았다.
넘어지는 괴물의 몸체가 자신을 덮쳐누르기 직전까지 힘을 응축하듯 몸을 수그리고 있던 레반은 어느 순간 한 번에 폭발시키며 검을 휘둘렀다.
검이 바닥과 마찰되며 크게 휘둘러진다.
마찰열이 올라 본래의 타오르는 듯한 용암의 형태를 갖춘 검의 모습은 붉은 검이라는 이름에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일도양단(一??).
단 한 번의 휘두름에 붉은색 불꽃이 뿜어지며 괴물의 몸을 양단한다. 얼음마저 불꽃에 닿아 녹으며 뿌연 수증기를 일으켰다.
쿵! 쿠웅!
위아래가 절단당한 괴물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번엔 확실히 데미지가 있던 건지 괴물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이내 거품이 터져나가듯 사라져갔다.
레반은 자신의 몸집보다 큰 특대검을 어깨에 걸치며, 잘려나간 괴물의 몸체 위에서 내려온 레테라를 바라보았다.
“어떠냐, 이 통쾌한 한 방이? 기량캐는 죽어도 못 따라오는 근력캐만의 매력이지.”
“한 방 날리는 동안 빈틈 대여섯 개는 만들어내던 놈이 무슨. 상대가 나였다면 네가 공격하기도 전에 벌써 급소를 찔렀어. 둔해 빠지건 근력캐의 전통이냐?”
“뭐, 이 새꺄?”
“뭐, 이 새꺄.”
또다시 근력캐와 기량캐의 자존심을 내걸고 서로를 노려보는 레반과 레테라.
괴물을 처치한 직후 바로 이차전을 시작할 분위기였다.
정말 괴물을 처치했다면 말이다.
콰아아아앙!!!
두 사람의 측면에서 날아온 손을 그들은 재빠르게 피해냈다.
피하자마자 두 사람은 동시에 옆을 바라보았다.
분명 조금 전 양단된 괴물의 한쪽은 거품이 되듯 사라졌었다.
그런데 남은 한쪽은 여전히 살아서 움직인다.
움직이기만 할까? 살덩이가 또 다시 거품처럼 끓어오르더니 본래의 몸집을 되찾아 레반과 헤테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놈 왜 안 죽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어이없이 중얼거리는 레반과 레테라에게 녀석의 공격이 떨어진다.
그것들을 피하거나 베며 두 사람은 괴물을 향해 마주 공격했다.
“죽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벨 수밖에.”
콰각!!!
***
“……저 괴물, 진짜 뭔데?”
나는 두 쪽으로 절단되었음에도 다시 멀쩡하게 움직이는 기괴한 괴물을 보며 할 말이 없어졌다.
아무리 재생력이 강한 몬스터도 저 정도 데미지를 입으면 당분간 움직이지 못하던데, 저 괴물은 달랐다.
아니, 애초에 어떻게 움직이는지 원리조차 모르겠다.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교체해주는 것으로 아까와 달리 레반과 레테라가 싸움을 주도하고 있긴 하지만, 괴물의 움직임은 도저히 멈추지 않았다.
해답을 구하듯 옆에 있는 율을 바라보았다.
그는 팝콘이나 씹으며 아래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구경 중이었다. ……저 팝콘 어디서 가져왔어?
“넌 아직도 머리가 딱딱하구나.”
내 시선에도 신경 쓰지 않고 태연히 팝콘을 먹고 있던 율이 말하였다.
“게임이라고 했잖아. 게임처럼 생각하라고. 넌 보스 공략법을 모르겠다고 개발자에게 찾아가서 직접 물어보는 녀석이냐?”
“공략법이 있다고? 저 괴물에게?”
“적어도 난 절대 이길 수 없는 보스는 만들지 않지.”
그 보스에 대해 알아내고 쓰러뜨리는 건 게임 플레이 하는 자의 몫이라는 건가.
확실히 내가 직접 캐릭터를 조작하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이 상황은 게임 플레이와 비슷했다.
나는 다시 한 번 괴물을 바라보았다.
끔찍한 비주얼 때문에 자세히 보기 괴로웠지만 관찰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뭔가 특징이 있을 것이다.
우선 저 괴물은 물리 내성을 가진 몬스터는 아니다.
물리 내성을 가진 몬스터는 공격을 해도 하나 같이 몸이 슬라임처럼 휘어질 뿐이지 상처가 남지는 않으니까.
살덩어리로 이루어진 몸은 부속물이 물 위에 떠있는 배처럼 유동한다.
살덩이에 달려있는 눈도, 입도, 팔도 일정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계속 이동할 뿐이다. 왜 저런 움직임을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상처 입은 하나 팔에 시선 갔다.
절단면에 얼음이 남아 있는 걸 보면 레테라가 벤 것이겠지.
이제 저 팔도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서 새로운 팔이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정작 사라지는 순간을 본 적이 없다는 걸 알고 그 팔 하나만을 자세히 주시했다.
“응?”
기묘한 것을 목격했다.
상처를 입은 팔이 몸 위를 흐르다 레반과 레테라의 시선이 닿지 않은 곳까지 이동한다. 워낙 몸집이 크다 보니 보이지 않는 영역이 상당히 많았다.
그런 영역에서 잘려나간 팔이 다른 팔과 만난다. 그건 잘리지 않고 멀쩡한 팔이었다.
뿌리만 남았지만 완전히 똑같았을 터인 두 팔이 서로 맞닿는다. 하나로 합쳐지는 싶더니 이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
뭔가 잘못 봤나 하며 눈을 비벼보았다.
분명 두 개의 팔이 겹쳐졌는데 왜 합쳐진 게 아니라 둘 다 사라진단 말인가?
다른 팔의 움직임을 보았다. 이번엔 둘 다 상처 입지 않고 멀쩡한 팔이다. 그것 역시 겹쳐지며 둘 다 사라져버렸다.
팔만이 아니다. 살덩이 여기저기에서 흐르고 있는 눈도, 코도, 입도 전부 자신과 같은 신체 부위를 만나면 둘 다 사라져버린다.
그러고서는 다른 어딘가에서 새로 나타난다. 처음엔 하나가 살덩이 안에서 솟구치는 듯 했더니 둘로 나뉘어져 버린다.
나는 머리를 붙잡았다.
뭔가 알 거 같았다.
‘이해……. 이해란 말이지? 저 괴물을 이해하는 것…….’
율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멋대로 상대를 틀 안에 가두지 말라고 했다. 그것은 이해는 것을 포기한 행위라고.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평소였다면 저게 무슨 의미인지, 저 괴물이 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 괴물의 모습, 그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니 뭔가 연상되는 게 있었다.
이 괴물…… 설마……!?
“레반! 레테라!”
““……?””
괴물의 공격을 쳐내면서 두 사람은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내가 알아낸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난간에서 몸을 내밀며 크게 외쳤다.
“‘경계선’이야! 경계선을 찾아!”
“네?”
“경계선?”
영문 모를 내말에 그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내보였다.
나는 지금도 사라지고 새로 나타나나는 괴물의 신체 부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괴물, 몸의 부속물들이 그냥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것 같지만 어느 선을 기점으로 부속물이 사라지고 나타나고를 반복하고 있어! 거기가 바로 경계선이라고!”
‘정답’이라며 율이 즐겁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수수께끼를 만들어낸 출제자가 그것을 서서히 풀어내는 사람을 보며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그쪽에 잠시 신경을 접어두고 계속해서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그 녀석의 정체는 ‘만화경’이야! 너희가 베는 부위는 전부 거울에 비친 가짜고!”
만화경.
거울 세 장을 겹쳐 그림 하나를 연속해서 비추는 도구이자. 그림이 움직일 때마다 거울에 비친 그림 또한 다양한 형태로 바뀌면서 각종 기이한 문양들을 만들어낸다.
저 괴물이 바로 그것이었다.
거울에 끝없이 자신을 비춰 수많은 가짜를 만들어내듯 자신의 몸을 증식시킨 것에 불과할 뿐, 진짜 몸은 하나인 것이다.
그래서 만화경의 그림을 움직인 것처럼 신체부위가 겹쳐지듯 사라졌고, 다시 나타난 게 된 거다.
양단되었을 때 한쪽만 움직이고 한쪽만 사라진 이유도, 본체가 되는 게 한쪽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콰가아아아아아앙!!!!
내 말에 뭔가를 깨달은 듯 레반이 다시 불꽃을 일으키며 괴물의 몸을 절단했다.
이번에도 한쪽은 사라지고 한쪽은 남아서 움직였다.
레반은 그 움직이는 한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거기 있구나.”
콰가아아아아아앙!!!!
또 다시 괴물을 양단한다.
잘려나간 한쪽은 사라지고, 남겨진 한쪽이 평소의 4분의 1가량 되는 몸을 꿈틀거린다.
적들이 자신의 본체를 찾으려 한다는 걸 눈치 챈 것인지 괴물은 서둘러 살덩이에서 거품을 일으키며 몸집을 불리려 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레테라가 두고 보지 않았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각!!!!!!
레반의 공격으로 크기가 대폭 줄어든 괴물은 쏟아지는 레테라의 연격을 버틸 수 없었다.
한순간에 괴물의 몸 뻗어 있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모조리 파악하고, 그 지점에서 상처를 재상하지 못하도록 모조리 끊어낸다. 만화경의 거울이 되는 지점을 전부 깨부순 것이다.
허공에서 덧없이 사라져가는 살덩이들.
그 중에서 유일하게 사라지지 않고 꿈틀거리는 살덩이가 있었다.
“찾았다!”
“처음에 봤던 그 살덩이잖아!”
두 사람이 본체를 확인하고, 몸을 날린다.
“!!!!!”
괴물이 마지막 반항을 하듯 몸을 부풀렸다.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 레반과 레테라의 일격이 양쪽에서 날아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사방으로 튀는 얼음과 불꽃.
맞부딪친 두 개의 검 사이에선 더 이상 괴물은 없었다. 완전히 분쇄된 것이다.
파열음 비슷하게 들린 건 그때였다.
펑! 퍼벙! 퍼엉!
정말 뜬금없게도 축하 폭죽이 터져나갔다.
어디에 준비되어 있던 건지 모를 형형색색의 색종이가 천장에서 흩날리며 내려왔고, 그것과 함께 펼쳐진 현수막에는 ‘You Victory’라는 영어가 적혀져 있었다.
SoR에서 보스를 쓰러뜨리고 나오는 클리어 문구였다.
조금 전까지 벌어지던 살벌한 전투와 어울리지 않은 광경에 내 말문이 막혔다.
짝짝짝!
“축하해!”
율은 박수를 치며 그렇게 말했다.
어느새 5층에서 훌쩍 뛰어내린 그는 싱글벙글한 미소를 레반과 레테라를 향해 다가고 있었다.
“이야~! 처음엔 일방적인 승부 때문에 지루했는데 결국 이겼구나? 역시 싸움은 이런 맛이 있어야지. 아, 던전을 클리어 했으니 그에 맞는 보상이 있어야지? 가만히 있어봐, 지금 주머니에…….”
무언가를 찾듯 주머니를 뒤적이는 율.
그러나 그가 말했던 보상을 꺼내는 일이 없었다.
레반과 레테라의 검이 각각 율의 심장과 머리를 향해 날아와 틀어박혔기 때문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허억!? 이봐!”
내가 놀라 비명을 질렀을 땐 이미 율의 몸이 야구공마냥 뒤로 날아간 뒤였다.
벽을 하나 부순 것으로도 모자라 그 너머의 벽까지 부수는지 뭔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우릴 이 고생 시킨 장본인이 뭘 친근하게 말을 걸고 있어?”
“그나저나 저건 대체 누구야? 위험한 느낌에 비해 너무 허무하게 공격을 맞고 날아가던데.”
검을 휘두른 두 사람은 율이 날아간 벽의 구멍을 바라보며 말했다.
율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 직후.
그가 날아간 벽이 아닌 두 사람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상대가 누군지도 파악 못 하고 싸움을 거는 건 그리 현명한 짓이 아니란다, 이 목줄 풀린 멍멍이들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지도 못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내 눈에 비치는 건, 율의 손에 뒷머리를 붙잡힌 레반과 레테라가 땅에 머리를 처박히는 모습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