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게임 플레이 3
* * *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지?
레반과 레테라의 공통된 의문이었다.
처음엔 경계심이었다. 고생해서 괴물을 쓰러뜨리자 웃는 낯으로 다가오는 그 남자에게 짜증이 난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 율이라는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사대룡급의 위험한 존재감의 정체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렇기에 지척으로 다가온 율에게 레반과 레테라는 검을 휘둘렸다.
불꽃과 얼음을 휘감고, 검면이 아닌 검날을 그에로 향한 명백한 살의가 섞인 공격이었다.
율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게 그 공격을 받았다.
받기만 했을까, 저체중을 의심할 정도로 너무나도 가볍게 공중을 날아 벽을 부수고 넘어갔다.
그 모습에 가장 어이가 없던 건 레반과 레테라였다.
더욱 어이가 없던 일은 그 직후였다.
분명히 날려버렸던 율의 목소리가 뒤편에서 들림과 동시에 두 사람의 얼굴이 바닥에 처박힌 것이었다.
튀어나가는 돌조각과 시야의 절반 이상을 가리고 있는 금이 간 바닥을 본 두 사람은 그제야 자신들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어느 틈에 움직인 거지?’
‘공격에 전혀 반응하지 못했어!’
경악도 잠시, 그들의 몸은 쌓여있는 경험치 만큼 빠르게 반격했다.
땅에 얼굴을 처박힌 자세로는 무기를 제대로 휘두를 수 없다.
그렇기에 레반은 팔꿈치로 율의 명치를, 레테라는 검의 손잡이를 위로 향하며 율의 미간을 노렸다.
후욱!
그러나 두 사람의 반격은 공기만 공허하게 때릴 뿐이었다. 그들의 머리를 짓누르던 손의 압박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재빨리 몸을 일으킨 그들이 서둘러 율의 모습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사실 고개를 돌릴 필요도 없었다.
레반과 레테라 바로 정면에 율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기다려주듯 츄리닝 바지에 아무렇게나 손을 찔러 넣고 서 있던 율은 그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씨익 웃었다.
그러고는 손을 꺼내 그들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와라, 멍멍이들아. 가볍게 딱밤 한 대 놔주고 끝내줄 테니까.”
도발인가. 여유인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율에게 저 정도의 여유를 부릴 만한 힘이 충분히 있다는 걸 방금 전 경험으로 알았다.
그렇기에 레반과 레테라는 확실하게 끝장나기 위해 힘을 모았다.
화르륵!
마찰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붉은 검의 바위 같던 검신이 용암이 흘러가듯 변해가기 시작한다.
손잡이를 꽉 쥔 레반의 열기만으로 불타오르는 것처럼.
후오오!
검끝에서 손목까지 휘돌던 눈결정이 팔과 어깨를 타고 올라 레테라의 머리 주변에서 부드러운 천처럼 나풀거렸다. 마치 선녀의 날개옷 같았다.
그 모습은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피부가 찢어질 듯한 한기와 어울리니 너무나 오싹하였다.
레반과 레테라가 작정했다는 눈치 챈 요현이 그들을 멈추기 위해 입을 열었다.
“……!! ……? ……!?”
그런데 입만 뻐끔거릴 뿐, 거기에선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마법이라도 부린 듯 갑자기 자신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놀란 요현이 율을 돌아보았다.
“쉿.”
율은 입가에 손을 올리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한참 놀고 있는데 눈치 없이 방해하지 말라는 것처럼.
무슨 수를 쓴 건지, 요현을 조용하게 만든 율은 다시 정면을 돌아보았다.
콰아아앙!!!
각력만으로 엄청난 흔적을 바닥에 남기며 레반과 레테라가 달려들었다.
두 짐승이 순식간에 율의 앞으로 당도하고 그들의 송곳니가 율에게로 틀어박힌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뜨겁고 차가운 기운이 율을 중심으로 부딪치자 강렬한 충격파가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조금 전 괴물이었더라도 숨어 있던 본체까지 갈려나가지 않을까 싶을 만큼 무지막지한 위력이었다.
오현이 서 있는 5층 난간까지 균열이 일어날 정도면 할 다 한 거다.
그런데, 정작 그런 강력한 공격을 날린 레반과 레테라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끄어어어~. 당해버렸다~.”
되도 않는 연기를 하며 율이 숨넘어가는 동작을 취했다. 조카와 놀아주는 삼촌과 같은 영혼 없는 리액션이었다.
공격을 피한 것일까? 아니면 공격을 도중에 막아낸 것일까.
둘 다 아니었다.
그랬다면 당해버렸다는 리액션이 튀어나올 리 없었으니까.
율의 몸에는 레반과 레테라의 무기가 정확히 파고들어 가 있었다.
레반의 특대검이 율의 어깨를 부수고 심장을 지나 오른쪽 옆구리로 빠져나가기 직전 상태에서 멈춰 있다.
레테라의 쌍검은 율의 목을 가르고, 그의 한쪽 눈을 파고들어 머리를 관통해 튀어나온 상태다.
분명 손맛은 있었다.
조금 전 괴물처럼 가짜 몸을 때린 게 아니다. 확실하게 그의 뼈를 끊고 중요 내장들을 헤집은 감각이 분명하게 손아귀에 전해졌다.
그런데 이 반응은 뭐지? 모든 걸 한낱 장난으로 취급해버리는 듯한 이 반응은?
“자아. 그럼 딱밤 맞을 시간이다.”
““……!?””
몸에 검이 틀어박힌 것에 전혀 개의치 않으며 율이 손을 뻗어왔다. 엄지에 꾸욱 눌리고 있는 중지가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듯 힘이 실린다.
레반과 레테라는 고개를 틀어 그것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피할 수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빠르기로 율의 손이 다가온 게 아니었다.
무슨 술수를 부린 건지, 두 사람이 어디로 고개를 움직이든 율의 손과의 거리가 전혀 벌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상하다.
이 건물에 들어온 뒤부터 모든 게 이상했건만, 눈앞에 있는 남자는 불규칙과 불확실성을 뭉쳐놓은 화신 같았다.
“젠장!”
“얌전히 맞을 줄 것 같아?!”
저 정체 모를 자가 날리는 딱밤이라니, 맞아서 좋을 거 같지가 않다.
율의 몸에서 무기들을 뽑아낸다. 그러면서 율의 몸에선 피가 튀기기커녕 상처의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그들은 그대로 공격의 방향을 바꿔 다가오는 율의 양손에 검을 휘둘렀다.
데미지를 입히진 못하더라도 상쇄라면 가능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
빠아아악!!!!
그러나 그 불확실성의 화신 같은 남자답게 딱밤의 위력 또한 예측을 불허했다. 율이 튕긴 손가락에 부서진 금속 파편이 사방으로 튕긴다.
레반과 레테라가 가진 무기 중 가장 최고라고 일컬어도 될 무기들이었다.
그 무기들이 쿠키처럼 허무하게 부서지는 모습이 두 사람의 시야에 비춰졌다.
거기에 놀랄 틈도 없이 강력할 풍압이 레반과 레테라의 머리를 후려친다.
쿠콰아아앙!!!
……이딴 게 딱밤이라고?
오크가 성서 외우는 소리를 태연하게 지껄이고 있다며 바닥을 거칠게 구르는 그들은 생각했다.
머리에 퍼지는 둔탁한 통증을 견디면서 그들은 바로 몸을 일으키고 자세를 잡았다.
무기는 방금 전에 부서져나갔다. 그들이 가진 최고의 무기가.
지금 있는 건 맨손뿐이다. 그러나 둘은 싸움을 포기하지 않은 듯 주먹을 쥐었다.
승산 따윈 보이지 않는다. 허나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찾을 때까지 싸우겠다는 듯 그들은 투지를 불태웠다.
그 모습을 보며 율은 솔직하게 감탄했다.
“캐릭터의 성질은 보통 주인을 닮게 되어 있지. 그 투쟁심은 저 녀석한테 비롯된 건가? 아주 좋아. 그래야 재미있지.”
아주 마음에 든다는 듯 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표정이 어느 순간 돌변한다.
“……근데 물러날 때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만용밖에 되지 않는다고, 멍멍이들아.”
““……!!””
레반과 레테라는 동시에 몸을 움츠렸다.
숨겨왔던 힘을 드러낸 것도 아니고, 강렬한 살기가 피어오른 것도 아니다.
그저 공허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단지 그것만으로 두 사람이 느끼는 압박감이 극에 달했다.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아득히 초월한 무언가의 시선을 받는 것 같은 공포감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난 너희들이랑 놀려고 부른 거지 죽자고 싸우려 부른 게 아니야. 하지만 그렇게까지 끝장을 보는 걸 원한다고 한다면…….”
율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런 간단한 동작 하나가 왜 이렇게 섬뜩하게 느껴지는 걸까.
뭔가 온다고 두 사람이 직감한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언제나 이랬다. 도저히 이길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강적과 싸워서 이겨내는 게 그들의 삶인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눈앞에 괴물은 제거해야 한다. 그들의 주인인 요현에게 위험이 될 수 있는 한 반드시.
그들은 무엇이 튀어나오든 대비할 각오를 마쳤다.
그 직후, 확실히 뭔가 오긴 왔다.
율이 아니라 그의 머리 위쪽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내 전설급 아이템은 왜 부수는데, 미친 새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퍼어어어어억!!!!!
5층에서 뛰어내린 요현이 율의 정수리를 짓밟으며 깔아뭉갰다.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위험한 짓이었지만, 이미 박살나 버린 무기들 때문에 눈깔이 돌아버린 요현에게 그런 사실은 안중에도 없었다.
***
“너 바보냐? 내가 안 피했기에 망정이지, 잘못 떨어졌으면 크게 다쳤을 거라고.”
“닥쳐! 닥치고 내 아이템이나 물어내! 그건 왜 부수고 지랄이야! 레반과 레테라를 제압만 할 거면 굳이 부술 필요는 없었잖아!!”
“에에, 뭘 모르네. 원래 이럴 땐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주면서 그들의 상징과도 같은 무언가를 부숴놓아야 확실하게 절망을 줄 수 있는 거라고. 그런 악역이 하나 정돈 있어야 독자들도 이놈을 어떻게 이길까 두근두근 하며 다음 편을 사지 않겠어?”
“그딴 만화 편집자 같은 이유로 게이머의 아이템을 빼앗아가지 마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나는 율의 멱살을 붙잡으며 격렬하게 따졌다. 그 흔들림에 몸을 맡긴 율의 고개가 앞뒤로 흔들린다.
레반과 레테라는 안절부절 못하며 어떻게든 나를 진정시키려 해보았다. 어째 모습이 강가에 내놓은 아기를 바라보는 어른 그 자체였다.
“혀, 형님! 일단 떨어지신 뒤 얘기하는 게 어떻습니까?!”
“마, 맞아요! 너무 흥분하신 거 같아요, 오라버니!”
“시끄러!! 금세 흥분해선 주먹 날아가는 늬들이 남에게 할 소리냐!!!”
찔끔거리며 두 사람이 물러난다. 확실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굳이 안 싸워도 되는 율을 문답무용으로 공격해서 싸웠다가 귀중한 아이템을 깨먹었으니까 말이다.
“저들이 걱정하는 건 다른 이유일걸? 아까 내 힘 봤잖아. 내가 작정하고 분노하면 먹을 수 있는 건 이 중에 아무도 없어. 그런데 넌 내가 안 무섭냐?”
멱살을 잡힌 채 대롱대롱 몸이 흔들리고 있는 율이 의외라는 듯 물어왔다.
그 말에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흥. 아까 레반과 레테라에게 몸을 꿰뚫려도 실실 웃고 넘어가던 놈이 무슨. 네가 이 정도로 폭발할 놈이었으면 당장 터지고도 남았겠지. 내가 생각 없이 날뛰는 줄 아냐? 허용선은 분명히 구분하고 날뛴다고!”
“…….”
그 말에 율의 표정이 바뀐다.
나를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 딱딱하게 굳은 얼굴. 부르르 떨리는 입술에서 이빨이 드러나고, 거기에서 그의 소리가 새어 나온다.
“풉.”
율의 입술을 비집고 나온 건 웃음이었다.
그는 멱살을 잡힌 채로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레반과 레테라를 돌아보았다.
“푸하하하하핫!! 야! 봤냐, 멍멍이들아? 이게 만용을 구분한다는 거야. 너희는 아직 주인 따라가려면 멀었구나?”
““…….””
레반과 레테라는 복잡한 시선으로 나와 율을 바라보았다.
내가 누군가에게 인정받은 건 기쁘긴 한데, 그게 하필 율이라서 짜증난다는 감정 사이에서 해매는 듯한 모습이었다.
한편 멱살을 잡은 내 손을 떼어낸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인정했다.
“뭐, 맞아. 겨우 이 정도까지 너희처럼 재미있는 녀석들을 죽이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지. 아직 그동안 준비해왔던 계획은 시작도 못 했다고.”
그 계획이란 게 뭔지 신경쓰지만, 그것보단 아이템이 먼저였다.
“알았으면 아이템이나 고쳐줘. 너도 개발자라면 알 거 아냐? 아이템이 어이없이 부서지는 게 얼마나 빡치는 일인지.”
“어리석은 놈. 개발자의 시선과 플레이어의 시선이 같을 거라고 생각해? 네놈들이 땅문서 팔아서라도 가지고 싶어 하는 초고가 아이템조차 개발자 입장에선 그냥 데이터 쪼가리야. 그래서 플레이어 등쳐먹는 과금 유도가 늘어나는 거고.”
“그딴 말로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아? 어차피 SoR은 과금 요소 따윈 하나도 없잖아. 그 무기를 만들고 얻느라 몇 달을 소모했던 내 시간과 노력을 물어내!”
“아아~! 알았어, 알았어. 그럼 내가 부순 것보다 더 좋은 아이템으로 줄게. 그럼 됐지?”
“좋은 아이템?”
귀가 솔깃했다.
부서진 두 사람의 무기는 SoR에서 전설 등급으로 분류 받는 아이템이다. 더 좋은 걸 찾아보기 힘들 만큼 좋은 무기다.
그런데 그보다 더 좋은 아이템을 주겠다고 율은 말했다.
전설 등급 보다 더 좋은 거라고? 설마 아직 다섯 개밖에 발견된 적이 없는 신화 급 아이템인가?
아직 한 번도 신화 급 아이템을 입수해본 적이 없는 나로선 눈을 빛낼 만한 일이었다.
설사 신화 급 아이템이 아니더라도 부서진 무기들보다 더 좋은 아이템이라면 손해는 아니었다.
“결정됐으면 따라와. 여긴 대화를 나누기엔 너무 어지러우니까.”
어지러워진 원인이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간이 던전을 만들고 내 캐릭터를 몬스터와 싸우게 한 본인이 말이다.
내가 뒤돌아서서 걸어가는 그를 째려보았고, 레반과 레테라는 으르렁 거렸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향해 물었다.
“어디로 가는데?”
“사장실.”
율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위드 소프트웨어를 방문한 첫 손님인데, 제대로 대접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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