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튜토리얼의 끝 2
* * *
“……여기 직장 혹시 남는 자리 있나요?”
오서연 씨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참지 못하고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출근만 해도 돈을 받을 수 있는 직장이라니.
뭐냐, 이거? 악마의 유혹이냐?
율이 수상한 건 사실이지만 끌리지 않는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아니, 솔직히 위험 부담이 있어도 돈만 준다면 감당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내 욕망이 서린 눈빛에 살짝 주눅 든 건지 그녀는 조심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일단 기본적으로 비서 이외의 직원은 고용하지 않아요.”
“그렇군요…….”
실망한 나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가뜩이나 요즘 돈이 필요한 일이 많아서 잠시 흥분했었다.
사장실이라 하기도 부끄러울 만큼 삭막하기 짝이 없는 넓은 공간.
나와 레반, 레테라는 오서연 씨와 함께 쪼그리고 둘러앉아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소곤소곤 오가는 대화가 작당 모의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율이라는 남자는 나와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도저히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이라는 걸 재확인할 수 있었다.
오로지 사장으로서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비서를 고용한다니. 이 세상 어떤 돈 많은 부자가 그런 쓸데없는 데에 돈을 쏟아 붓는단 말인가?
율이 어떻게 만난 지 5분도 안 된 오서연 씨의 계좌를 알고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아무튼, 얘기를 계속하죠. 오서연 씨는 그때부터 여기에서 일하게 된 거군요.”
“네……. 돈에 혹에서 받아들이긴 했는데, 막상 일하게 되니까 영 불안했어요. 일하지 않아도 급여를 준다니, 다른 데서 들으면 완전히 사기꾼의 상술이거나 다단계인 거잖아요?”
“그건 그렇죠.”
한 순간 혹했던 자신을 반성한다.
인간은 남을 등쳐먹는데 특화된 생물이니 언제나 저러한 사기를 주의해야 했다.
“그래서 처음 며칠간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어요. 무슨 일이 생기면 경찰에 신고하려고 휴대폰을 꼭 쥐고 있었고, 혹시 둘만 있다고 성추행 하거나 하지 않을까 상황을 녹음할 수 있는 녹음기도 챙겼죠. 그것만으로 불안해서 부모님께 혹시 제가 하루라도 돌아오지 않으면 당장 신고하라고 언질까지 했어요.”
“그 정도로 불안했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게…….”
“언제 알아냈는지도 모를 제 계좌에 떡하니 큰돈을 찔러 넣은 사람이에요! 그만두려고 해도 막상 돌려주려니 무섭기도 하고, 또…….”
오서연 씨는 바로 말을 잇지 못하고 우물쭈물 댔다.
그녀의 표정에서 서린 작은 찜찜함이라는 감정을 발견한 나는 대강 사정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이미 썼군요?”
“그렇게 큰돈을 받은 건 처음이라……. 너무 흥분한 나머지 부모님께 용돈까지 드리고 말았어요.”
오서연 씨는 부끄러운 듯 뺨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 소시민이 어디 큰돈에 익숙하겠는가. 통장에 0자가 많이 찍혀 있다고 해서 쉽게 체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돈을 뽑아보면서 실감하고, 돈이 궁했을 땐 하지 못했던 일을 해보고, 그러다 이거 위험하지 않을까라는 사실을 느꼈을 땐 늦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불안한 마음을 안고 출근하긴 했는데…….”
“했는데……?”
그 다음 말을 재촉하듯 내가 따라서 말한다.
오서연 씨는 긴장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진짜로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어요.”
“…….”
뭐, 그렇겠지.
완전히 파악한 건 아니지만 녀석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시도해본 나는 쉽게 납득할 수 있었다.
그놈이 이상하긴 해도 남을 속여서 범죄에 이용하는 녀석은 아니었다.
레반과 레테라를 손쉽게 제압하는 능력만 보더라도 활용도가 무궁무진한데 뭐가 아쉬워서 별 볼 일 없는 취준생을 속인단 말인가.
그놈 성격이라면 정말 사장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비서를 고용했을 것이다.
“처음엔 삭막한 방 풍경에 진정되지 않았는데 1주일, 2주일 지나니까 어느 정도 익숙해지더라고요. 3개월이 지났을 즈음에 완전히 긴장이 풀어졌어요. 그때조차 저를 대하는 태도엔 전혀 변함이 없고 수상한 낌새도 없었다니까요?”
“그럼 같이 있는 동안 그 녀석은 뭘 하고 있었는데요?”
“게임을 모니터링 한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돼요. 겨우 태블릿 PC 하나만 가지고 온라인 게임 전체를 모니터링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게임 업계에서 일하는 건 처음인 저라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언제나 저쪽 사장 의자에 앉은 채 태블릿 PC를 들여다보며 깔깔대고 웃거나, 크게 아쉬워하거나, 누군가를 응원하는 짓을 계속 했다고요. 거기에서 저는 확신 했죠.”
처음 그 광경을 목격했을 때의 느낀 공포감이 떠오른 건지 그녀는 텅 빈 커피잔을 움켜쥐며 말했다.
“‘아! 저 사람, 단단히 미쳤구나!’라고요!”
확실히 그녀의 눈엔 그렇게 보여도 이상할 건 없었다.
하지만 진실은 어떨까?
게임 회사를 혼자 인수하고, 운영하며, 게임 개발까지 혼자 진행한 괴물이다. 이미 상식이 통용되는 영역을 아득히 넘었다.
그런 놈이 혼자 게임을 모니터링 한다는데 그리 크게 놀랄 구석도 없었다.
오히려 놀라운 건 그런 기괴한 장면을 지켜보고서 3년간 계속 회사에 다닌 오서연 씨의 행동이었다.
“계속 보니까 익숙해지더라고요. 다른 직장을 찾아봐도 여기보다 좋은 곳도 없었고.”
“…….”
심플한 해답.
미친놈과 함께 있는 거지만,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미친놈과 있으면서 월급은 대기업 사원 부럽지 않을 만큼 받는다면 누가 이 직장을 떠나려 할까?
정신 나간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인데 말이다.
지금이라도 직원 자리 하나 더 늘릴 수 없냐고 말해볼까 고민하는 나였다.
“일에 익숙해지고 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지루함이 찾아왔어요. 책을 읽어도 실내에서 운동을 해도 일시적일 뿐이지, 매일 똑같이 삭막한 풍경의 일터로 출근하고 일정 시간 그곳에 있는 걸 반복하는 것도 정신적으로 지쳐가는 일이었죠. 그러다 태블릿 PC를 들여다보며 정말 즐겁게 웃는 그 사람의 모습이 신경 쓰였어요. 그래서 어느 날은 한 번 물어보았죠. 저도 그 게임을 할 수 있겠냐고.”
SoR에 흥미가 생겼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플레이도 했었다고 했지.
“그 사람은 바로 즉시 컴퓨터를 새로 설치해주었어요. 말이 꺼낸 지 1분 만에 컴퓨터가 책상 위에 완전히 갖춰지는 광경이 정상은 아니었지만……. 슬슬 그 양반의 비정상적인 면모엔 익숙해지던 시점이라서 크게 놀라진 않았어요.”
과연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는 건가.
대단하구나, 인간.
“게임은 어려웠지만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그것을 하고 있는 동안엔 직장에 있는 게 전혀 지루하지 않았죠. 다만…….”
즐거운 시간이 영원한 게 아니듯 뭐든지 끝은 오기 마련이다.
그녀의 이야기에 결말은 나도 이미 예상이 갔다.
SoR의 서비스 종료. 나도 겪은 일 아니던가.
오서연은 이걸 말해야 하나 망설이듯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저희 사장님, 인간이 아닌 건 아시죠?”
“뭐, 그렇죠.”
오서연 씨도 3년이나 같이 있었다니 눈치 챌 만하다.
그것도 자신을 숨길 생각 없이 대놓고 드러내 양반이었으니 말이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갑자기 사장실을 나가는 거예요. 신기한 일이었어요. 처음 만난 날을 제외하면 사장실을 나서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거든요. 어디 가시냐는 물음에 ‘서비실’이라는 짤막한 대답이 돌아왔어요. 전 이 건물에 서비실이 있는지조차 몰랐죠. 그의 호기심에 그를 따라가 봤어요. 그 사람은 제 행동을 저지하지 않았죠.”
“…….”
그녀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지난 25일. 서버실이 폭파된 그 날의 이야기라는 걸 알고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서버실은 꽤 컸어요. 서버컴퓨터도 상당히 컸죠. 그런데 그곳에 들어가자마자 그는 손을 치켜들었어요. 그의 손에선…… 번개가 나왔어요. 정말 지금도 믿지 못할 광경이지만 황금빛 번개가 뿜어져 나오며 제 시야를 가득 메웠다고요! 그것에 놀라기보다 먼저 그는 그 번개로 서버컴퓨터를 내리쳤어요. 눈빛이 빛과 폭음이 지나고 난 뒤엔 모든 게 부서지고 사려져 있었죠.”
역시 율은 일부러 서버실을 날려버린 건가.
하지만 왜지? 그게 무슨 이득이 있다고?
“왜 그는 돌연 서버실을 날려버린 거죠?”
“그건…….”
오서연이 입을 열었지만, 그녀의 입에서 대답을 듣는 일은 없었다.
다른 쪽에서 대답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더 이상 필요 없었기 때문이지.”
“……!?”
우리 네 사람 모두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돌아보았다.
커피를 사고 온다던 율은 사장용 의자에 앉은 채, 한 손으로 커피를 마시고 다른 한 손으로 태블릿 PC를 조작하고 있었다.
나와 오서연 씨는 물론이고 레반과 레테라 조차 언제 그가 돌아왔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오서연 씨는 사장더러 미친놈이라며 뒷담화 하고 있던 때에 들켜서 입이 굳었고, 레반과 레테라는 감각이 예민한 자신들이 그의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라 굳은 듯했다.
굳어버린 그들을 대신해 내가 대표로 입을 열었다.
“너…… 언제부터 거기 있었냐?”
“저 멍청한 비서가 돈을 팍팍 쓰는 바람에 첫날에 그만두고 싶어도 못했다고 털어놓는 시점부터.”
한참 전부터 아닌가. 그럼 그 뒤에 미친놈 소리는 확실하게 들었겠네.
오서연은 울상이 되었지만 정작 율 쪽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아니, 관심 자체가 없다고 해야 하나?
그는 자신의 흥미를 끄는 무언가에 집중하듯 계속 태블릿을 두들기고 있었다.
하지만 귀는 이쪽에 열어둔 것 같기에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조금 전에 한 말은 무슨 뜻이야? 필요 없었기 때문에 서버실을 부쉈다니?”
“말 그대로의 의미지.”
커피를 쥐던 손가락 중 검지가 뻗으며 이쪽을 향한다. 정확히는 내 옆에 있는 레반과 레테라 두 사람을 향해서였다.
“이미 그곳에서 나올 놈들은 다 나왔다. 더 이상 컴퓨터 속의 게임, 소울즈 오브 라그나로크는 필요 없어. 그래서 서버실을 부수고 그것을 찍은 사진에 힌트를 남겼지. 그것을 알아본 녀석이 찾아오게 하기 위해서 말이야. 게임 속 기술이 현실에서 발현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건 게임 속의 무언가가 현실로 나온 걸 이미 경험한 사람뿐일 테니까.”
서버실을 부순 건 역시 우리를 부르기 위한 용도였나.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가는 건 아니었다.
왜 그렇게까지 해서 우리를 여기로 불러들었단 말인가? 볼일이 있다면 직접 찾아왔으면 될 것을.
아니, 그보다 애당초…….
“……애당초 넌 왜 레반과 레테라를, 그리고 이 자리에 없는 레아를 현실 세계로 불러낸 거지?”
그래. 이게 가장 의문이었다.
7년 동안이나 SoR을 운영하면서 모니터링으로 플레이어들의 여행을 웃고 즐기는 듯 했던 그가 왜 갑자기 내 캐릭터들을 현실에서 살아나게 했단 말인가.
그 물음에 율은 히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너희 유저들이 원한 거잖아?”
“뭐?”
“그만 새 패치나 좀 내봐라. 새 이벤트 좀 만들어 달라. 네놈들이 항상 건의해온 것들이지. 그래서 소원을 이뤄주려고.”
확실히 게임사가 게임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에 답답하여 그런 건의를 한 유저들이 있기는 했다. 나도 건의만 안 했을 뿐이지 같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 이벤트를 이제 와서 실행한다고 말한 건가? 서버 자체가 사라져버린 게임을?
“로고는 이 정도면 괜찮아?”
율은 자신이 조작하던 태블릿의 화면을 돌리며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멍하니 화면 위에 떠오른 글자를 읽어보았다.
“소울즈 오브 라그나로크…… 시즌2? 부제가 ‘이세계의 방문자’라고?”
“자그마치 출시 초부터 7년간 준비한 소울즈 오브 라그나로크의 대규모 이벤트. 그 처음이자 마지막 패치야.”
머릿속에 혼란이 왔다.
뭐야, 녀석 지금 농담하는 건가?
하지만 싱글벙글 웃는 율의 표정은 장난기가 가득할지언정 결코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진 않았다.
“오늘로 딱 열흘. 게임 캐릭터가 현실에서 살아나고, 그들과 함께 네가 이곳에 도달할 때까지 걸린 시간이야. 이걸로 튜토리얼은 종료. 별로 긴 시간은 아니지만 다른 플레이어도 캐릭터들에게 익숙해지기엔 충분한 시간이겠지.”
뒤통수를 망치에 얻어맞은 듯 서 있던 나는 그 자리에서 온몸을 관통하는 전율을 느꼈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뭐가?”
율은 시치미를 떼듯 고개를 기울였다.
답답한 내 쪽이 방금 들었던 말을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다른 플레이어라고……?”
“뭘 그리 놀라? 설마 세상에 자신만이 특별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어린애도 아니고 말이야. 너에게 일어난 일이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란 보장이 대체 세상 어디에 있는데?”
그 말에 틀린 말은 없었다.
틀림 말은 없었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
일어나선 안 된다. 이 남자는 지금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는 건가?
내 충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느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너를 포함해서 총 57명의 플레이어가 모두 자신의 캐릭터와 만났어. 기대되지 않아? 어떤 녀석들이 있을지 말이야.”
“너, 너…….”
내가 부들부들 떠는 이유는 나만이 캐릭터를 가져야 한다는 오만한 생각이 무너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캐릭터가 현실로 나온 플레이어가 57명이라고 한다. 캐릭터는 계정 당 최대 세 명씩 만들 수 있다.
물론 모든 플레이어가 나처럼 캐릭터를 세 명이나 만들고 플레이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한 명씩만 만든 플레이어만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이세계의 이방인들이 현실에 나타났다.
그렇다면 생각해보라.
레반과 레테라에 비견되는 전투력을 가졌으면서, 레아처럼 통제가 안 되는 캐릭터가 생겨날 경우 현실에 미칠 위협을.
“너 진짜 단단히 돌았구나?”
이 미친 새끼!! 저쪽 세계에 있어야 할 맹수들을 대체 몇 마리나 풀어놓은 거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