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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48화 (48/173)

〈 48화 〉 앞으로의 행방 ­ 1

* * *

화가 난다.

잔뜩 화가 낸 채로 우리는 다시 여관으로 돌아왔다. 주변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텔레포트 마법으로 강제적으로 쫓겨난 뒤, 분노에 차 다시 위드 소프트웨어를 찾았지만 결국 율을 만나지는 못했다.

떡하니 닫혀진 건물에 웬 종이가 붙여 있었기 때문이다.

「초대장이 없는 자. 출입불가.」

또 초대장 타령이다.

처음에 있던 초대장은 율과 만난 뒤 그가 가져가 버렸다. 다시 출입하기 위해선 새로운 초대장이 필요하다는 거겠지.

초대장을 가지고 있지 않은 레반과 레테라는 간이 던전으로 강제 전송되어 그곳을 헤매야 했다.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려서 던전을 없애긴 했지만, 이번에도 그런 식의 방범 시스템이 없을 거란 보장은 없었다.

그리고 이번엔 나도 영락없이 거기에 휘말리겠지.

뭐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레반과 레테라가 극히 반대하기도 했고.

결국 초대장을 먼저 얻어야 한다는 소린데…….

­초대장은 대체 어디서 얻는데!

답답한 마음에 건물을 올려다보며 소리 질렀다.

그러자 거기에 대한 대답이라는 듯 건물 위쪽에서부터 웬 쪽지 하나가 나풀거리며 떨어져 내렸다.

그것의 내용은 이러했다.

「다음 이벤트에서 공개 예정」

다음 이벤트 좋아하시네, 이 망할 자식.

네놈이 언제부터 성실하게 이벤트를 열었다고.

결국 시간이 늦어 밤이 되었기에 우리는 씩씩 거리며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아니, 빈손은 아니던가?

보상으로 받아온 목함이 있었다. 숙소에 돌아온 우리들은 율에게 건네받은 목함을 한 번 열어보았다.

언제가 보았던 바닥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 안을 떠다니는 어떠한 물체가 보였다.

조심스럽게 그 물체를 붙잡고 꺼내보았다.

거기에서 나온 건 거대한 생물의 발톱처럼 보이는 한 쌍의 곡검, 그리고 거대하긴 하지만 날이 많이 닳아 둔기에 가까워 보이는 대검이었다.

이게 부서진 두 사람의 무기를 대신할 새로운 무기인가? 겉보기엔 그리 대단해보이지 않았다.

애당초 이런 무기는 SoR에서 본 기억이 없었다.

게임이었다면 바로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을 테지만 여긴 현실이라 그럴 수 없는…….

‘……아니지.’

이미 배웠지 않은가? 현실에서 게임 시스템을 사용하는 법을.

사용한 건 인벤토리에 무기를 교체한 것뿐이지만, 다른 것도 할 수 있을 것이다.

SoR의 무기들은 이곳 기준으론 지나치게 무겁기 때문에 레반과 레테라가 각각 들고 있게 한 뒤 거기에 손을 댔다.

‘내가 가진 이미지가 가장 강하게 표현될 수 있는 아무 말이면 된다고 했지?’

평소엔 익숙해져서 별 거 아닌 마음으로 조작했던 과정을 세세히 밟아간다.

그리고 그걸 마법의 주문처럼 읊조렸다.

“아이템 지정.”

후웅…!

손을 대고 있는 대검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는 게 보였다.

거기서 나는 추가로 말을 이었다.

“대상 확인.”

상상했던 것처럼 홀로그램 같은 무언가가 허공에 나타나는 건 아니었다.

이것도 인벤토리와 같았다.

이것에 대한 정보가 게임 인터페이스의 형태로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게 느껴졌다.

전쟁망령의 대검 등급: 전설 분류: 대검 공격력: 379 내구도: 100/100 필요 스탯: 근력40 「그 검사는 슬픔에 잠겨 전장을 떠돌아다녔다. 적군 아군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베어대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망령이었다.」

“오오!”

이제야 좀 게임 판타지 비슷한 게 나왔다.

뭔가 알쏭달쏭한 아이템 설명이 붙어있는 게 딱 SoR의 감성이 맞았다.

이런 아이템마다 언급되는 말들을 해석하고 추적하면, 생각지도 못한 퀘스트나 히든 보스를 발견하기도 한다.

잠시 감상에 빠질 뻔했지만, 다시 마음 다잡고 내 안에 떠오른 무기의 정보를 읽어보았다.

“……어?”

“왜 그러십니까, 형님?”

내가 멍한 목소리를 내뱉자 레반이 물었다.

나는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말한 뒤, 서둘러 레테라가 들고 있는 아이템을 확인했다.

“아이템 지정! 대상 확인!”

이번에도 아까처럼 그녀가 쥔 곡도에 대한 정보가 머릿속에서 펼쳐진다.

마령조(???)의 원한발톱 등급: 전설 분류: 곡검

공격력: 198 내구도: 200/200 필요 스탯: 근력10 기량30 「마령조는 본디 세계수 꼭대기에 살던 신수였다. 그러나 어느 날 신족들이 마령조를 공격했고, 그녀는 원한만을 가슴에 품은 채 그곳을 떠났다.」

“…….”

“오라버니?”

내가 할 말을 잃자 레테라가 걱정스레 내 이름을 불렀다.

율이 사기를 치고 좋지 않은 아이템을 줬다는 결말은 아니었다.

확실히 이건 쩌는 아이템이다. 어쩌면 부서진 두 전설급 아이템을 능가할 정도로.

분명 쩌는 아이템이다만…….

“율, 이 개새끼. 미강화 아이템을 줬어…….”

장비 아이템의 성능을 제대로 끌어내기 위해선 강화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최대 강화를 한 하위 등급의 장비보다 성능이 떨어진다.

아이템 강화는 어떻게 하느냐? 우선 대장간에 가야한다.

현실의 대장간이 아니다. 오직 SoR에 있는 대장간에서만 강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무기는 애물단지인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율의 악질적인 선물에 혀를 내둘렀다.

***

“하암…….”

스트레스 확 쌓이는 하루를 보낸 다음날.

나는 크게 하품을 하며 눈을 떴다. 밤에 잠을 설쳐서 두 눈이 충혈 되어 있다는 걸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없었다.

어제는 정말이지 끔찍했다.

위드 소프트웨어 건물에서 별의별 충격은 다 받고 마지막엔 율의 선물에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것이다.

목함 안에는 부서진 무기에 대한 보상과 별개로, 던전을 클리어한 보상도 있었지만 그것만 가지고 분이 풀리지 않았다.

덕분에 이불을 몇 번이나 걷어차며 잠은 설쳐야 했다.

“언젠가 그 새끼한테 한 방 먹여주고 말겠어.”

빠득빠득 이를 갈며 나는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주변에서 자고 있던 레반과 레테라가 보이지 않았다.

“아참. 아침 일찍 뒷산에서 수련 좀 하고 오겠다고 했지?”

쿠우웅……!! 쿠우우웅……!!

멀리서 들리던 이 소리가 공사장 소리인 줄 알았건만, 두 사람이 내는 소리인 모양이다.

분한 감정을 느끼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내가 율의 마음대로 이리저리 휘둘리는 자신의 처지가 분했다면, 그들은 율에게 쪽도 못 쓰고 당해버린 것에 큰 분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그들이 뒷산에서 수련하고 오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도 별 말 없이 허락한 거다.

그들에게도 감정의 분출이라는 게 필요했다.

쿠우우웅……!!!

“너무 열 띄게 수련하다 뒷산을 다 뒤집어 놓지만 마라라.”

그렇게 이 자리에 없는 그들에게 부탁한 후, 나는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

화가 난다.

정말이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난다.

콰아아아아앙!!!!

그 분노의 감정을 모조리 때려 박은 주먹끼리 맞부딪친다.

요현의 바람대로 레반과 레테라는 뒷산이 뒤집어질 정도의 수련을 벌이는 건 아니었다.

그들이 때리는 목표는 사물이 아니라 오로지 서로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건, 서로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고, 자신의 몸이 부서지든 말든 눈앞에 대상만 눈앞에 대상만 노리는 정신 나간 난타전이었다.

퍼어어어억!!!

큼지막한 주먹이 레테라의 얼굴에 틀어박힌다. 레테라의 고개가 꺾이며 찢어진 이마에서 뿜어진 피는 그녀의 아름다운 은발을 더럽혔다.

체격에서 큰 차이가 있는 두 사람이다. 난타전을 벌인다면 그녀가 불리해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레테라나 레반이나 신체에 입은 데미지는 거의 비등했다.

퍼어어어억!!!

레반의 주먹에 밀려 뒤로 꺾이는 듯 했던 상체가 어느 순간 방향을 틀며 레반에게로 쏘아진다.

그 순간 레테라가 날린 주먹은 레반처럼 투박하진 않더라도 신체 깊숙이 충격이 꽂히는 살벌한 주먹이었다.

“쿨럭!!”

내장이 찢어지는 충격에 레반은 피를 한 움큼이나 토해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주먹을 멈추는 건 아니었다.

레반은 피를 흘려가면서도 계속 공격을 이어나갔고, 살가죽이 찢어지고 뼈가 삐꺽거리는 레테라 또한 마찬가지였다.

레반의 근력은 확실하게 레테라의 외부를 부숴나갔고, 레테라의 기량은 확실하게 레반의 내부를 부숴나겠다.

자신의 특기를 모두 쏟아 부어 서로를 죽이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미친 광경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핏발 선 눈으로 울부짖는 두 사람은 그냥 이성 잃은 짐승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이 부딪칠 때마다 땅이 푹푹 꺼지고, 산은 흔들리며, 동물들은 굴을 파고 들어가 벌벌 몸을 떨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결국 싸움이 끝났건 두 사람이 이마를 맞부딪쳤을 때였다.

레반의 공격에 뼈가 풀어지고 근육이 뭉개져버린 레테라의 팔은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레테라의 공격에 내장이 엉망진창으로 파열된 레반의 팔은 부들부들 떨리기만 할 뿐 더 이상 힘이 전해지지 않았다.

그렇기 이마를 휘두르는 것으로 끝없는 난타전의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뇌를 뒤흔드는 충격과 함께 뒤로 넘어간 두 사람은 땅에 쓰러져 거친 숨을 골랐다.

분명 처음엔 풀숲이었던 그 장소도 싸움의 여파로 인해 어느새 황무지로 변해 있었다.

“허억! 허억! ……그때 형님 표정 봤냐?”

“하아! 하아! ……봤어.”

문뜩 숨을 고르던 레반이 물었고 레테라가 호응한다.

그들이 말하는 건 어젯밤 아이템을 확인하고 통수를 맞았던 때가 아니었다.

그보다 이전, 위드 소프트웨어 건물에서 율과 대화를 했을 때다.

“형님, 참고 있었어……!!”

레반은 피투성이에 내장 조각까지 섞여 있는 이를 악물었다.

율이 자신이 준비한 게임을 설명할 때, 요현은 분노했다.

당연하다.

말이 좋아 게임이지, 율의 말은 요현을 비롯한 일반인들을 억지로 무대 위로 끌어다놓고 저들끼리 광대노릇을 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광대 취급은 요현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다.

언제 폭발해도 이상할 것 없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이성을 유지하고 율과 대화를 시도했다.

“그런 불합리한 걸 가장 싫어하는 분이신데! 당장이라도 날뛰어 뒤엎고 싶어 했는데! 그러지 않고 꾹 참았어! 그대로 싸우면 승산이 전혀 없었으니까! 우리가 약했기 때문이라고!!!”

“…….”

레테라는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말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녀도 레반과 같은 심정이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살모사파 사건 때, 요현은 그들이 당당해질 바란다면서 눈에 칼날이 파고들어오는 고통도 참고 그들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그런데 그가 압도적인 힘 앞에서 오히려 자신을 억눌러야 했을 때, 그들은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화가 났고, 그 분노는 서로의 몸이 엉망으로 망가질 때까지 치고받아도 해소 되지 않았다.

“난 결심했다.”

한참 하늘을 바라보며 울분을 토해내던 레반이 비틀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형님이 더 이상 그 누구 앞에서도 비굴해지는 일이 없도록 강해지겠다고.”

내장이 망가지고 피가 부족해 안색이 파리해진 얼굴이었건만, 레반의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투기 넘치게 불타고 있었다.

“‘권력은 그 사람 개인의 힘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 사람을 따르는가에서 나오는 법이다’……. 그 망할 녀석은 그렇게 말했다고 했던가?”

오서연의 이야기를 통해 들었던 율의 말을 떠올리며 이번엔 레테라가 몸을 일으켰다.

“나쁘지 않네. 오라버니가 이 세상 최고의 권력을 가지는 것도.”

가능하고 자시고를 따질 문제가 아니었다.

반드시 되게 만들 것이다. 바로 그들이.

***

오늘 아침은 빌린 후라이펜을 써서 만든 달걀프라이와 편의점에서 사온 햇반에 김이었다.

검소하지만 제법 정경 있는 상차림이 아닌가.

이제 두 사람만 오면 되는데 언제 오는 거지? 일어나서 1시간만 수련하다 온다고 했으니 슬슬 올 때가 됐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달걀프라이를 담은 접시를 옮기고 있을 때였다.

벌컥 문이 열리며 레반과 레테라가 나타났다.

“다녀왔습니다, 형님!”

“저희 왔어요, 오라버니!”

“오, 이제야 왔구ㄴ…….”

나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손에 들고 있던 접시가 미끄러져 달걀프라이 바닥에 뒹구는 와중에도 그쪽에는 전혀 시선을 줄 수 없었다.

할로윈이 아직이건만, 좀비 분장한 것처럼 곳곳이 멍들고, 부러지고, 피투성이의 두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일반인이 저 두 사람을 저 꼴로 만들 수 있을 리 없다. 적어도 그들과 대등한 전투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율이 말한 또 다른 플레이어들과 캐릭터의 존재를 떠올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거 어떤 새끼가 이랬어!!?”

습격 받은 것이라 오해한 나는 그 자리에서 눈이 뒤집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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