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앞으로의 행방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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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치 않게 내 이성 취향이 까발려지게 되어서 여관을 떠나기로 결심한 날 당일. 짐을 꾸린 우리들은 주인 할머니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여관을 나서려고 하였다.
그러다 정문 앞에 있던 낯익은 인물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회사원 복장에 머리를 올려 묶고, 얼굴에 세련된 안경까지 쓴 차가운 이미지의 여성……처럼 보이지만 어색하게 쭈뼛거리는 몸짓이 사실은 낯가림이 많은 성격인 게 느껴진다.
“아, 안녕하세요…….”
“오서연 씨?”
바로 율의 비서(?) 오서연 씨였다.
그녀의 얼굴을 봤을 땐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건지 신기했지만, 생각해보니 전혀 신기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율부터가 우리의 거처를 알고 텔레포트 마법으로 보냈었지 않았는가. 그에게서 주소를 들었다면 이곳까지 찾아오는 건 간단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로 찾아온 건지 궁금증이 미쳤다.
“어어……. 일단 자리 옮길까요?”
여관 앞을 가로막고 선체 떠들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우리는 근처 편의점으로 이동했다.
편의점에서 적당한 마실 거리를 사고 노상 테이블 위에 둘러앉았다.
나는 앉자마자 바로 용건을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이렇게 직접 찾아오고.”
“사장님이 전언을 좀 전해달라고 하셔서…….”
“전언?”
할 말이 있으면 전화나 문자를 보내거나 할 것이지 왜 오서연 씨를 직접 보냈지? 이쪽 주소까지 아는 녀석이 내 전화번호를 모를 거라 생각되진 않는데 말이다.
전화로는 전할 수 없는 중요한 이야기라도 되는 걸까. 아니면 벌써 예의 이벤트?
그녀의 말을 경청하기 위해 몸을 숙이자 오서연 씨는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라고 미리 운을 때며 말을 이었다.
“내가 준 선물은 마음에 드냐고…….”
“X나게 마음에 든다고 전해주십시오.”
좋은 아이템이라더니 막상 준 건 강화도 안 하고, 할 수도 없는 애물단지를 말하는 것이리라.
이 망할 새끼. 그걸로 놀리려고 일부러 비서까지 보낸 거냐?
썩어 들어가는 내 표정과 말투로 지금 하는 말이 반어법이라는 걸 안 오서연은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하는 일은 없다지만, 일단 봉급을 받는 입장으로 사장의 막장 행보에 미안함을 느끼는 모양이다.
“오서연 씨는 왜 아직도 그런 녀석의 밑에서 일하는 거예요? 삼 년씩이나 일했다면 돈도 꽤 많이 모았을 거 같은데.”
“저도 사장님이 인간이 아니는 걸 알고, 뭔가 위험한 짓을 꾸미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땐 그만두자고 생각했었어요.”
생각했었다? 왜 과거형이지?
“혹시 뭔가 협박이라도 받는 건가요?”
“아뇨…….”
오서연 씨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을 이었다.
“오히려 전혀 저를 붙잡아두려 하지 않아서 망설여져요.”
“네?”
“사장님은 언제든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둬도 된다고 해요. 비서는 또 구한다고. 아무런 제재도 압박도 없으니 오히려 그만두는 게 어려워요.”
오서연 씨는 편의점에서 산 음료수 캔을 우그러질 만큼 꽉 쥐며 마음속에 쌓인 고민들을 털어놨다.
“막상 그만두려고 하니까 별의별 걱정이 떠오르는 거예요. 이렇게 편안 직장을 어디서 또 얻겠어요? 지금 벌어둔 돈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기엔 충분할까? 그만 둔 이후엔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혹시 내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걷어차려는 게 아닐까? 뭔가 이상한 사람이긴 하지만 막상 나에게 피해를 준적도 없기도 하고, 큰일 날 것이라 보장된 것도 아닌데 그냥 이대로 있는 게 더 현명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들이 계속……!”
“…….”
오서연 씨. 훌륭한 자본주의 사회의 일원이시군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이랑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래야 인생의 난이도도 낮아지고, 보다 쉽게 새로운 것을 시도할 여유가 되며, 사람도 부릴 수 있는 것이다.
율, 이 녀석은 어쩌면 돈의 힘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돈의 마력이 붙잡혀 버린 자신을 자각한 듯 음울하게 중얼거리던 오서연 씨가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 한 명 쯤은 사장님을 지켜봐야 할 거 같아요.”
그건 조금 전의 음울한 모습이 아닌, 각오를 다진 듯한 모습이었다.
그것이 의외라는 듯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돈이란 있으면 쓰고 싶은 법이고, 힘이란 있으면 검처럼 휘둘러보고 싶은 법이에요. 사장님은 그런 인간의 심리를 잘 알고 있어요. 그걸 알면서 게임 속의 있던 검을 현실로 불러냈다고 그는 말했어요. 그것이 일으킬 혼란을 구경하고 싶다는 듯이.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웃으면서 말이에요.”
“…….”
오서연 씨가 말하는 율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이 세상에 악마가 있다면 그건 사람을 칼로 찌르는 미친놈일까, 그 미친놈의 손에 웃으며 칼을 쥐어준 녀석일까.
“그렇기에 지켜봐야 해요. 그 사람이 뭔가 수상한 짓을 꾸미는 낌새가 보이면 누군가에게 알릴만한 사람이 필요해요.”
“그걸 본인이 하겠다고요?”
“이미 알아버린 사실인 걸요. 누군가가 대신 알아서 해주겠지 하며 모른 척할 수도 없으니까요.”
웃는 낯으로 미친놈에게 칼을 쥐어주는 남자와 함께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지내왔던 시간이 오싹할 테고, 나였다면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감시역을 자청한 것이다.
마치 다른 플레이어들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들을 찾기로 마음먹은 나와 동질감 같은 게 느껴졌다.
레반과 레테라도 율을 감시하겠다는 오서연 씨의 발언이 의외였는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 집중되자 문뜩 부끄러워진 그녀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사, 사실 그냥 돈이 탐나는 게 주된 이유에요! 위협을 받는다면 바로 발을 빼버릴 만큼 겁만은 여자니까 그렇게 바라보시지 않으셔도 되요!”
오서연 씨는 자신의 대해선 잘 모르는 모양이다.
그렇게 욕심 많고, 겁도 많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겠다며 이득도 없는 일에 나선 것이기에 더 대단한 것이다.
나는 가방에서 공책과 펜을 꺼냈다.
공책의 일부를 찢고, 거기에 내 전화번호를 적은 뒤 그녀에게 전해주었다.
“제 전화번호에요. 무슨 일이 있거나 알려야 할 일이 있으면 바로 여기로 연락해주세요.”
“아, 네!”
오서연 씨는 내 전화번호를 두 손으로 받아들였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동료가 생긴 기분에 나는 마음이 놓였다.
바로 전화번호를 입력하기 위해 휴대폰을 담아둔 가방을 뒤적이던 오서연 씨가 곧 “헉!”하며 놀란 목소리를 내었다.
“? 왜 그러세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하하…….”
오서연 씨는 어색하게 웃으며 가방에 슬쩍 삐져나온 종이를 안쪽으로 구겨 넣으려고 했다.
그녀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긴 레테라가 번개처럼 손을 뻗어 가방에서 종이를 쏙 빼왔다. 그리고 한 번 펼쳐보았다.
“응? 뭔가요, 이건?”
레테라는 종이의 내용물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을 본 오서연 씨는 가방에서 종이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며 깜짝 놀랬다.
“앗!? 어느 틈에!?”
“당신, 방금 이걸 일부러 숨기려고 했죠? 어째서인가요?”
레테라는 눈매를 날카롭게 좁히며 물었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짓을 했다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듯이.
그 눈빛에 위축되어버린 오서연 씨가 몸을 떨며 입을 열었다.
“사, 사실 제가 온 이유가 그거예요. 그 종이를 사장님이 전해달라고 했거든요. ‘선물이 영 불만족스러운 거 같으니 특별 서비스다’라면서…….”
“특별 서비스?”
나는 레테라에게서 종이를 건네받았다.
율에 관련된 건 뭐든지 불안하고, 오서연 씨의 반응도 어딘가 이상하지만, 그렇다고 확인을 안 할 수 없었기에 접힌 종이를 펼쳐보았다.
“……!!?!”
그리고 그것을 본 난 놀라 뒤로 넘어갈 뻔했다.
재빠르게 손을 뻗어 의자가 뒤로 넘어가려는 걸 막은 레반과 레테라가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형님?”
“왜 그러시는 거예요?”
이미 종이를 들여다 본 레테라는 내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고, 레반은 등 뒤로 돌아와 내가 들여다보고 있는 종이를 확인했다.
그러나 그도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반도, 레테라도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이쪽 세계의 금전 관련 감각이 서툴기 때문이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내려 오서연 씨를 바라본 내가 물었다.
“이거…… 진짭니까?”
오서연 씨는 체념한 것처럼 고개를 떨구며 말하였다.
“저도 놀라서 조금 알아봤는데…… 진짜더라고요.”
“율, 그 녀석. 뭔가 다른 말은 없던가요?”
“으음……. 그러고 보니 마지막에 말을 덧붙이긴 했어요.”
“뭐라고요?”
“‘후회는 안 할 거다’라고요.”
“…….”
나는 다시 한 번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부동산 광고지였다.
도심에서 떨어진 한산한 주택가에 놓인 단독주택.
건물도 나쁘지 않고, 평도 넓고 심지어 복층이다.
5인, 6인 가족도 전혀 문제없이 살 수 있는 집이 임대로 나와 있었다.
월세 10만원, 보증금 50만원이라는 정신 나간 가격으로 말이다.
“요즘 정신 나간 듯 보이는 새끼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지…….”
“집을 사는 겁니까? 얼마에 팔길래 그러십니까?”
“너희들 기준으로 말하면 드래그넛 열매를 10개를 팔아서 사는 정도.”
“미친 겁니까?”
“미친 건가요?”
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들이 보기에도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쌌다.
나는 광고지에 실린 집에서 눈을 때지 못했다.
새 거주지가 필요한 상황에서 절묘하게 나타났지 않는가. 너무 절묘해서 오히려 수상할 지경이다.
율이 후회는 안 할 거라고 했다는 점을 보면 사기는 아닌 건가?
그놈이라면 사기 당하는 내 모습을 보며 깔깔 웃고도 남았지만, 일단 그 자체는 거짓말을 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신뢰해도 되는 정보인 건가?
레반과 레테라는 어느새 내 얼굴 옆으로 고개를 내밀며 함께 광고지를 들여 보고 있었다. 그들도 이 집에 흥미가 생긴 모양이다.
“꽤 넓군요. 저희끼리 써도 방이 남아돌겠습니다.”
“주변 주택과도 많이 떨어져 있어 소음 걱정도 없겠고요.”
집 없이 떠돌아다니던 그들도, 아니 오히려 집이 없었기에 그들도 집을 갖는 걸 꿈꿔 왔던 걸까. 광고지 속 집을 향하는 그들의 눈빛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그러던 것도 잠시. 두 사람은 눈매를 좁히며 건너편에 오서연 씨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형님께 전달되어야 하는 이 정보를 저 여자는 숨기고 있었다는 얘기인데?”
“욕심이 너무 과한 거 아닌가?”
그들의 목소리에는 적대감마저 묻어났다.
솔직히 나도 조금은 충격이었다.
돈을 열심히 모으려는 것뿐이지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런 희소식을 중간에 채가려고 했단 말인가?
우리 세 사람의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을 받은 그녀는 거의 울상이 된 채 필사적으로 항변했다.
“아니에요! 단지 이걸 정말로 전해줘야 하나 망설인 것뿐이라고요!”
“그러니까 남 주기가 아까웠다는 거 아냐?”
“정말 실망스럽네.”
“그, 그게 아니라니까요! 제 의도가 의심된다면 거기 광고지에 적힌 주소를 인터넷에 검색해보세요! 그럼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거예요!”
레반과 레테라의 압박 받는 그녀의 모습을 불쌍하게 느끼면서 나는 그녀의 말대로 인터넷에 들어가 보았다.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검색창에 광고지 속 주소를 적은 뒤 검색 버튼을 눌렀다.
“………………….”
침묵.
침묵밖에 없는 내 반응을 레반과 레테라는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고, 오서연은 제발 알아달라는 듯 간절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서연 씨?”
“네…….”
내가 한참을 침묵한 끝에 겨우 입을 열자 그녀는 겨우 오해가 풀렸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나는 안도할 수 없었다.
나는 휴대폰에 떠오른, 불길할 정도로 새까만 사이트에 올라온 집 사진을 보여주며 그녀에게 물었다.
“왜 이 집이 대한민국 7대 심령 스팟에 포함되어 있는 겁니까?”
내가 들어간 것은 불가사의한 사건과 관련 소식들을 전문으로 다루는 사이트였다.
주소를 검색했더니 이 사이트가 가장 위에 떠 있던 것이다.
안색을 굳힌 채 말하는 내 말에 오서연 씨도 자세히 조사해보지는 않은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서 제가 망설였던 거예요.”
“……율, 그 새끼가 뭐라고 했죠? 후회는 안 한다?”
“네…….”
“그거 말했을 때 그놈 웃고 있었습니까?”
“……”
오서연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선을 피했다.
……아니, 이 개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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