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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52화 (52/173)

〈 52화 〉 새 집 ­ 2

* * *

어느 게임이건 유령은 단골 몬스터 중 하나다.

사람이 유령과 같은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에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그러한 공포는 적으로 등장시키기에 딱 알맞다.

SoR에도 유령 몬스터는 존재한다. 하지만 평범한 방법으론 이들과 싸울 수 없다.

유령은 완전한 물리 무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슬라임처럼 약간이나마 물리 데미지가 들어가는 ‘물리 내성’ 몬스터와 달리 ‘물리 무효’ 몬스터에겐 보통 공격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때문에 유령 몬스터와 싸울 수 있는 건 마법사나 성직자 같은 직업들뿐이었다.

그럼 물리 공격밖에 할 수 없는 직업군은 어찌하는가?

성직자에게 버프를 받거나, 인챈트와 같은 기술로 마법 무기를 다룰 수밖에 없었다.

그럼 둘 다 없는 경우는?

완전한 물리 공격 캐릭터가 유령과 싸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SoR 출시 초기, 한 유저가 이와 같은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솔플을 선호하기 때문에 성직자와 파티를 맺지 않았고, 인챈트 무기를 살만한 돈도 없었다.

그러나 그 유저는 유령이 가득한 던전을 돌파하고 싶었다. 던전의 보스가 자신이 키우는 전사 캐릭터에게 아주 쓸 만한 아이템을 주기 때문이었다.

이쪽은 저쪽을 공격할 수 없는데 반해, 저쪽은 이쪽을 일방적으로 공격해오는 유령 던전을 전사 캐릭터만으로 돌파하는 건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떻게든 물리 공격만으로 유령과 싸울 수 없을까 그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다른 유저들은 그런 유저의 행동이 바보 같다며 비웃었다.

그러나 그 유저는 그러한 비웃음들을 단 번에 일축해버렸다.

­공략법이란 게 왜 생기는데! 누군가 끊임없이 도전해서 해답을 찾아냈기에 공략법이 생긴 거지!

그 유저는 SoR의 끝없는 가능성을 믿었다.

수많은 유저들이 달려들어도 다 풀어내지 못한 비밀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는데, 전사 캐릭터만으로 유령 몬스터와 싸울 방법이 절대 없을 거라 생각되지 않았다.

그런 의지와 끈기가 빛을 본 것일까.

그는 드디어 공략법을 찾아냈다.

방법은 지극히 간단했다. 캐릭터를 유령에 가까운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만드라셀의 독액 등급: 희귀 분류: 독 독도마뱀 만드라셀에게서 추출한 독액. 재료로서 사용하거나 무기에 발라 휘두를 수 있다. 중독 속도는 느리지만, 한 번 중독되면 일시적으로 HP와 MP가 절반이 된다. 「일설에 따르면 고대 원주민은 이것으로 신체를 죽은 자와 가깝게 만들어 사후 세계를 체험했다고 한다.」

캐릭터의 HP와 MP를 절반으로 만든다는 맹독.

효과 자체는 PVP에서 유용해보이지만, 사실은 쓰는 사람이 전혀 없을 정도로 허접한 아이템이다.

아이템 설명에도 언급되듯 중독 시키는 속도가 너무 느렸기 때문이다.

그냥 뿌려도 효과가 없고, 무기에 발라 휘두르면 적에게 독수치가 쌓이지만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꾸준히 휘둘러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럴 바엔 그냥 다른 독을 쓰거나 강력한 무기를 써서 쓰러뜨리는 게 훨씬 나았다.

그런 이유로 완전히 사장되어버린 듯한 독이었지만, 그 유저는 독의 아이템 설명에 집중했다.

신체를 죽은 자와 가깝게 만드는 독.

그것을 눈여겨 본 유저가 자신의 캐릭터에게 독을 마시게 한 것이다. 상대를 중독 시키기는 어려웠지만 스스로를 중독 시키는 것은 쉬웠다.

그렇게 HP와 MP가 절반이나 깎여 나간 끝에, 유저의 캐릭터는 유령 캐릭터에게 데미지를 주는 데에 성공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의문이 들 수 있다.

캐릭터의 능력치를 일부러 깎아가면서 유령 몬스터와 싸울 정도면 차라리 다른 공략법이 낮지 않은가?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였다.

그 유저가 발견한 공략법은 유령 몬스터의 천적을 마법사나 성직자가 아닌 전사 캐릭터로 바꿔버릴 정도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대발견이었다.

***

요현의 새 거주지가 된 집.

그곳에 들러붙어 있던 귀신은 지금 일어나는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여긴 자신의 집이었다. 그렇기에 마음대로 들어와 살려는 괘씸한 외부인들을 쫓아냈고, 오늘 또한 그렇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뭔가 잘못됐다.

그 외부인 남녀가 정확하게 자신을 인지한 것으로도 모자라 어깨마저 붙잡고 있지 않은가?

지금껏 이 집에 무당이라던가 퇴마사 같은 자들이 왔지만 단순한 사기꾼이었던 건지, 아니면 그들이 감당할 수 없던 건지 그 누구도 자신을 보거나 붙잡지 못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뭔가?

어떻게 자신을 만질 수 있는 거지?

다양한 의문이 휘몰아쳤지만, 그 의문은 머지않아 사라졌다.

이 상황을 이해한 게 아니다. 그저 외부인 주제에 자신을 만지고 있다는 두서없는 분노가 차올랐을 뿐이다.

­이거 놔!!

그녀는 양 어깨를 붙잡은 레반과 레테라의 손을 뿌리치려 발버둥 쳤다.

산발이 된 머리카락과 으스스한 하얀 소복이 흩날리고,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괴성은 마치 칠판을 긁는 소리처럼 거부감을 일으켰다.

그것은 단순한 외침이 아니었다.

귀곡성(???).

이세상의 것이 아닌 울음은 듣는 이로 하여금 공포에 빠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제껏 이곳에 살려고 했던 자들이 이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심장발작까지 일으키지 않았던가. 그녀는 이들도 그렇게 될 것이란 자신이 있었다.

“이건 뭐 고양이가 꽥꽥 대는 것도 아니고 웬…….”

“고양이는 귀엽기라도 하지. 뭐야, 이 너저분한 여자는? 혼자 산다고 자기 관리 안 하다간 인생 망치기 십상이야. 아참. 이미 끝났지.”

그러나 그 자신감은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누구든 죽을 만큼의 공포로 빠뜨리던 그녀의 귀곡성을 두 사람은 고양이 울음소리에 비유하며 흘러 보낸 것이다. 그녀는 그 사실이 어처구니없었다.

­크아아아아악!!! 이거 놔!!! 놓으란 말이야!!!

그녀가 손톱을 세우며 그들의 팔을 할퀴었는데도 상처는커녕 긁힌 자국조차 남지 않았다.

“야! 야! 가만히 있어! 네 처분은 형님을 깨운 뒤에 결정할 거니까!”

­저주할 테다! 네놈들 모두 저주할 테다! 너희들도, 그 형님이라는 놈도 전부 저주해 죽여 버릴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그녀는 남을 저주로 죽여본 적은 없었다. 그게 가능한 건지도 모른다.

그냥 주체할 수 없이 솟구치는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내뱉은 말일 뿐이다.

그 말이 자신에게 어떻게 돌아올지 상상조차 하지 못하며.

퍼어어어어어억!!!!!!

살벌한 주먹이 날아와 옆구리에 박힌다.

정확히 갈비뼈가 있는 위치. 산 사람이라면 뼈가 있겠지만 죽어서 영혼 밖에 없는 그녀에게 뼈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아프다.

진짜 뼈가 부러지는 것 이상의 고통이 휘몰아치며 그녀를 덮쳤다.

­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악!!!!!!

옆구리에 틀어박힌 충격에 의해 어깨를 붙잡은 손에서 강제적으로 빠져온 그녀가 복도 위를 나뒹굴며 비명을 질렀다.

그건 아까와 같은 원한서린 귀곡성이 아니었다.

순수한 고통.

뇌가 없을 터인 그녀의 머리를 익어버리게 만들 만큼 순수하고 끔찍한 고통이었다.

고통스럽게 몸을 뒤틀며 비명을 질러대는 모습을 보며 레반은 애매하게 휘두르다 멈춘 주먹을 내렸다.

“에이 씨. 내가 팰려고 했는데.”

“이런 건 먼저 때린 사람이 임자지.”

귀신의 옆구리에 화려한 정권을 꽂아 넣었던 레테라가 말했다.

레반은 아직도 바닥에서 몸을 뒤틀고 고통스런 신음을 흘리고 있는 귀신을 노려보았다.

“저 년이 한 번만 더 형님을 어쩌겠다고 말했다간 그땐 내가 때릴 거다.”

“너 바보야? 왜 내가 그때도 참을 거라 생각하는데? 내가 때릴 거거든.”

“한 번 때렸으면 됐잖아.”

“한 번만으로 참아준 거라고.”

레반과 레테라가 서로를 노려보며 흉흉한 기세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겨우 고통 속에서 정신을 붙잡은 귀신이 슬그머니 몸을 움직였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저들이 위험하다는 건 확실하게 인지했다. 서로 다투고 있는 지금이 도망칠 찬스였다.

형체가 없는 몸으로 바닥을 투과하며 아래층으로 달아나는 그 순간이었다.

콰드득!!

이미 바닥에 파고들어가 있는 귀신이었다. 그런 귀신의 뒷목을 악력으로 바닥을 파헤친 손가락이 붙잡는다.

그건 레테라의 손이었다.

레테라는 그대로 물고기를 낚아 올리는 것처럼 귀신을 억지로 끌어올렸다. 귀신은 도저히 그 힘에 반항할 수가 없었다.

보통 인간이었으면 목이 부러졌을 것 같은 고통에 그녀는 공포에 질렸다.

이제까지 누군가에게 공포를 주었으면 주었지 자신이 이렇게 공포에 떠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다, 당신들은 누구야……!? 나, 나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고……!

귀신의 목소리는 조금 전의 악독함은 어디 간 건지 그저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 귀신을 바라보며 레테라가 입을 열었다.

“우리 세계에선 유령의 천적은 성직자도, 마법사도 아닌 전사와 같은 물리 공격 직업군들로 취급받아. 어째서인지 알아?”

­???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귀신을 향해 이번엔 레반이 입을 열었다.

“‘만드라셀의 독액’의 활용법이 재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에 중독되면 모든 HP와 MP가 절반으로 깎이는 상태 이상에 걸리게 되지. 하지만 그것으로 우리는 죽은 자에 가까워진 상태가 되어서 유령을 공격할 수 있게 된다. 그것만으로 유령 몬스터의 천적 소리를 들은 거라고. 왜일 거 같냐?”

그 해답은 레테라의 입에서 나왔다.

“유령은 ‘물리 무효’를 가진 몬스터. 모든 물리 데미지를 입을 이유가 없으니 오히려 물리 방어력 자체는 턱없이 낮거든. 가장 약한 몬스터의 물리 방어력이 10라고 한다면 유령 몬스터는 1에서 2라고 할까? 그래서 물리 공격이 통하게 되는 순간 엄청난 데미지를 입게 되는 거야. 그 사실이 알려진 뒤부턴 한동안 전사 캐릭터들의 유령 몬스터 대학살이 벌어졌다고 했지.”

“우리도 한땐 유령 몬스터만 집요하게 사냥하면서 경험치 덕 좀 봤고.”

“그땐 참 재미있었는데.”

두런두런 요현과 함께 한 추억 이야기를 꺼내는 두 사람을 귀신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것 같다.

조금 전 했던 말대로 이들은 자신의 천적이라는 것을!

­사, 살려주세요……!

그 말에 레반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이 좀 이상한데? 넌 이미 죽었잖아?”

그 말이 맞다. 그녀는 이미 죽었다.

어? 그럼 죽을 일은 없을 테니 괜찮은 건가?라는 생각이 잠시 그녀를 스칠 때였다.

“하지만 계속 패서 고통스럽게 할 수는 있겠지.”

두드득 거리면서 주먹을 쥐고 다가오는 레반의 모습이 그렇게 공포스러울 수가 없었다.

한 대 만으로도 죽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팠는데 더 맞아야 한단 말인가?

한 손으로 귀신을 붙잡고 있던 레테라도 턱을 쓸며 자신의 생각을 중얼거렸다.

“고통이란 건 원래 위험신호라고 하니까. 고통의 정도를 지나칠 때까지 계속 패다 보면 우리 세계의 유령처럼 소멸하지 않을까?”

“그럼 형님의 골치를 썩이는 녀석이 사라지는 거네?”

“이 집도 오라버니 것으로 확정되고.”

휘번뜩.

레반과 레테라의 눈동자가 움직이며 동시에 귀신에게 향한다.

저 탐욕에 물든 눈빛! 저들은 진심이다!

진심으로 자신이 소멸할 때까지 쥐어 팰 생각이다!

­저, 저 이 집 나갈게요. 여러분들이 마음대로 쓰셔도 돼요.

집에 들러붙은 지박령이 스스로 집을 포기하겠다고 말하는 엄청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그동안 난폭하게 나설 수 있었던 이유는 상대가 자신에게 피해를 줄 수 없으면서 자신은 상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일방적인 구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구도가 무너져 내리자 조금 전의 위험한 기색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강력한 폭력 앞에서 분노조절 장애가 치료된 것이다.

“형님께 저주를 걸겠다고 말한 망할 새끼를 뭐하러 놔줘?”

“맞아. 후환이 없기 위해서라도 확실히 없애는 게 낫지.”

집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나겠다고 말하였지만 그들의 반응을 시큰둥했다.

레반이 큰 거 한 방 날리기 위해 어깨를 풀고, 레테라는 그 전에 자신이 먼저 죽이겠다는 듯 귀신의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거 진짜 죽는다.

그렇게 확신한 귀신이 서둘러 자신을 변호했다.

­저, 저 사실 저주 같은 거 걸 줄 몰라요! 그냥 해본 말이에요!!

“그냥 해본 말로 사람을 죽이겠다니, 참으로 예의 바른 유령이네. 자신이 내뱉은 말에는 책임을 져야지?”

“이제까지 정당한 권리로 이 집을 산 사람들 마음대로 내쫓았다며? 그럼 여기선 우리 마음대로 해도 되겠지?”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 레반이 주먹을 내지르기 위해 최대한 뒤로 당겼고, 귀신의 목과 머리를 분리시키기 위해 레테라가 두 손을 가져다대었다.

­아, 안 돼! 살려줘! 죄송해요! 죄송해요! 소멸되고 싶지 않아! 사라지고 싶지 않아! 누가 나 좀 살려줘!!

귀신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빌었다.

소멸에 대한 두려움. 그것은 귀신이건 인간이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런 귀신의 애원에도 레반과 레테라에겐 자비가 없었다.

애당초 그들은 자비를 구하기엔 알맞은 인물이 아니었다. 사람을 살려본 숫자보단 죽인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애원 좀 한다고 그만두겠는가?

때문에 그녀가 빌어야할 건 그들이 아니라…….

벌컥!

“어우 썅! 시끄러워 죽겠네! 어떤 미친 여자가 한밤중에 질질 짜며 울고 있어!? 잠을 못 자겠잖아!!”

귀곡성.

요현이 들은 소리는 귀곡성이다.

그러나 조금 전 레반과 레테라와 들었던 귀곡성과는 조금 다른 것이다.

조금 전의 귀곡성이 원한과 공포가 서려 있는 것이라면, 이번 귀곡성은 자신이 사라져버린다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상식을 벗어난 두려움에 익숙해져 있는 요현도 듣는 이로 하여금 묘하게 가슴을 아려오게 만드는 울림은 참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버린 것이다.

“……늬들 뭐하냐?”

슬픈 울음소리의 원인을 찾아 방 밖으로 나온 요현은 귀신을 갈기갈기 찢어발기기 직전에 멈춰 어색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레반과 레테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끔찍한 고통과 함께 자신을 소멸시키려 하는 괴물들을 멈추게 한 요현을 귀신은 마치 구원자가 강림한 듯이 바라보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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