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새 집 3
* * *
엄청 서글프게 흐느끼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처음엔 웬 미친 여자가 울고 있나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집은 이웃집의 소리가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 세워져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겠지. 술 취한 미친 여자가 집 밖에서 울고 있거나, 귀신이 흐느끼는 소리이거나.
하지만 귀신이 이렇게 생생한 소리를 낼 리 없다고 생각해서 미친 여자 쪽에 비중을 주며 문 밖으로 나섰다.
“……늬들 뭐하냐?”
방 밖으로 나오자 내가 본 건 이상한 광경이었다.
주먹을 막 뻗으려던 자세에서 멈춰 있는 레반.
허공에 두 손을 애매하게 구부리고 있는 레테라.
쌀보리 게임이었나? 초등학교 때 자주 했던 그 게임이 떠오르는 자세였다.
그런데 그걸 왜 오밤중 2층 복도 한구석에서 하고 있느냐가 문제다. 귀신 기다리다가 심심했나?
“아무래도 귀신은 안 나타난 모양이구나.”
하암~.
귀신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자 하품이 새어나왔다. 자다 일어난 통에 몸이 잔뜩 찌뿌둥했다.
흐느끼는 소리도 어느새 사라져 있는데 가서 더 잘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레반과 레테라가 이상하다는 시선을 던져왔다. 마치 당연히 언급되어야 할 게 나오지 않았다는 듯.
“네? 바로 여기에 있는…….”
“오라버니. 설마 안 보이시는…….”
“뭐?”
두 사람이 뒷말을 웅얼거리는 통에 잘 들리지 않았다.
하품을 멈추고 그들을 돌아보니 서로 빠르게 시선을 주고받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형님. 그냥 쥐가 나와서 말입니다.”
“신경 쓰지 않으시고 자셔도 될 거 같아요.”
“쥐? 흐음…….”
뭐, 사람 없이 방치된 기간이 긴 거 같은데 야생동물 한두 마리 쯤 숨어들어오는 것도 이상할 거 없나?
나중에 전문 업자 불러서 제대로 방역해야겠다.
“그런데 오라버니. 귀신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귀신? 글쎄……. 일단 한 번 대화를 시도해봐야 하지 않을까?”
“만약 대화할 것도 없이 저쪽에서 먼저 다 죽여 버리겠다고 날뛴다면요?”
“그럴 땐 안타까운 일지만 없앨 수밖에 없지. 그대로 놔뒀다가 우리는 물론 다른 사람에게 무슨 피해를 줄지 모르잖아. 뭐, 일단 너희들이 마신 만드라셀의 독액이 통할 때의 얘기겠지만.”
그 말에 레반과 레테라가 잘 알아들었다는 듯 묘한 미소를 지었을 때였다.
흐흐흑!!
“응?”
또 어디선가 여자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보았다. 레반과 레테라의 자세가 바뀌어 있었다.
레레타는 무언가의 목에 팔을 둘러 조르는 듯한 자세. 레반은 그 무언가의 입 부근을 손으로 틀어막는 듯한 자세였다.
판도마임, 혹은 팬터마임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소리 없이 몸동작으로만 다양한 사물과의 작용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연극의 일종이다.
두 사람의 판도마임은 완벽했다.
마치 둘이서 정말로 누군가를 꼼짝 못하게 붙잡고 있는 거 같지 않은가.
거기에서 내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레반, 레테라.”
“네, 넵, 형님.”
“마, 말씀하세요.”
내 목소리가 한껏 가라앉는 걸 느낀 두 사람이 움찔거리며 답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나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너희들을 믿는다.”
생각과 달리 호의적인 반응에 두 사람은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호의 속에 숨은 날서림을 눈치 채지 못했을 때의 이야기다.
“아무리 너희들이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갸륵하다고 한들, 그렇다고 내게 거짓말을 하거나, 말도 없이 아무 일을 막 저지르는 녀석들은 아니라고 믿고 있어. 그렇지?”
““…….””
어둠 속에서도 보일 만큼 두 사람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렸다.
“그러니까 솔직하게 대답해 주길 바란다. 귀신, 거기에 있어 없어?”
***
“여기에 있는 거야?”
“네, 오라버니.”
그들을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집을 산지 얼마 안 돼서 변변찮은 가구조차 없이 이불과 옷가지들만 달랑 놓여 있는 방.
어딘가 율의 삭막한 사장실을 연상시키지만 적어도 그곳보다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그런 곳에 나와 레반, 레테라 세 사람이 둘러앉는다.
그런데 둘러앉은 거 치곤 사람이 한 명 들어가기 충분한 공간이 남았다.
그곳은 바로 귀신이 앉아 있는 자리였다.
내 눈에는 보지진 않지만 레반과 레테라의 눈에는 똑똑히 보인다고 한다. 그들이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이기 때문일까.
어쨌든 난 그 귀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목소리도 흐느낌을 제외하곤 들리지 않으니 전적으로 그들에게 의지하며 귀신을 살펴야 했다.
“귀신은 지금 뭐하고 있어?”
“엄청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오라버니를 향해서 앉아 있어요.”
“…….”
엄청 정중하게 무릎 꿇는 귀신같은 건 들어본 적 없는데.
실제로 보이지는 않지만 귀신이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있다는 게 행동에서 느껴졌다. 이 녀석들 대체 내가 자고 있던 사이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어떻게 생겼는데?”
말로만 듣던 귀신이 눈앞에 있다고 하니 생김새가 궁금했다.
레반이 귀신을 찬찬히 살펴보며 그 모습을 내게 이야기 해주었다.
“머리는 산발에 안색은 핏기 없이 창백하고, 옷은 하얀 천옷으로 입고 있습니다.”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는 귀신의 이미지였다. 지금 내 머릿속으로는 음산하면서도 현실감이 없는 여성의 모습이 그려졌다.
진짜 귀신을 만난 거구나 하고 내가 놀라고 있을 때 레반이 말을 이었다.
“전형적인 자기 관리를 안 하며 집에 틀어박힌 집순이 같은 느낌입니다.”
“육체가 있었다면 분명 냄새도 심할 거예요. 본인은 지금 ‘냄새 안 나요!’라고 외치고 있지만요.”
“뭐야. 그렇게 표현하니 갑자기 현실감 확 뛰잖아.”
나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 동안의 경험으로 고정관념이라는 게 참으로 쓸모없다는 걸 배운 나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지만 귀신이 거기에 있다니 믿을 수밖에. 나는 그곳을 향해 말하였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
잠시간의 침묵 뒤, 레테라가 나를 돌아보며 대신 말해주었다.
“이름은 이미경라고 하네요.”
대화는 문제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모양이다.
“좋습니다. 이미경 씨. 당신이 이제까지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을 쫓아낸 귀신 맞습니까?”
“그렇다고 해요.”
“왜 그런 거죠?”
“이 집은 원래 자기 집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자신이 죽자 누군가 마음대로 집을 밀어버리고 새로 지었다면서요.”
원래 자기 집이라…….
나는 여기에 오기 전에 보았던 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던 사건을 떠올렸다.
강도에게 일가족 세 명이 몰살당한 끔찍한 사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가족끼리 화목하게 살던 집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미련이 남은 거겠지.
그녀의 처지에 동정이 가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이곳에 들러붙어 있게 놔둘 수는 없다.
“이미경 씨. 당신이 12년 전 사건의 피해자 중 어머니 쪽인지 딸 쪽인지 모르겠지만 이런다고 변하는 건 없어요. 여기에 죽치고 있는다고 해도 가족과 함께 하던 일상은 돌아오지 않아요.”
가슴 아픈 일이지만 누군가는 현실을 말해야했다.
이미경 씨에게 그렇게 말하고 돌아오는 대답을 기다렸다.
곧 그녀의 말을 들은 레테라가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데요?”
“……응?”
어리둥절함이 묻어나는 대답에서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 12년 사건의 당사자 아닌가요? 강도에게 일가족이 살해당했다던…….”
“아니라는데요.”
“……실례지만 사망 당시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24살이라네요.”
24살.
중학생은 절대 아니며, 중학생 딸이 있는 주부라기엔 지나치게 젊었다.
이 사람이 정말로 그 일가족이었다면, 재혼한 게 아닌 이상 잡혀가야 하는 건 아버지 쪽이다.
나는 휴대폰을 켰다.
인터넷에 접속해 들어가는 건 이 집을 심령 스팟이라고 소개하던 사이트였다. 여기에선 과거 이 장소에서 일어났다던 사건을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허공에 보여주며 물었다.
“그럼 이건……?”
게시글의 내용을 읽은 이미경 씨는 레테라를 통해 답했다.
“이런 사건이 실제로 있었긴 했데요. 근데 이 집이 아니라 여기서 세 블록 아래에 떨어진 집이라네요. 사건 내용도 다른 게, 강도 사건이 아니라 학업에 집착한 부모가 고문에 가까운 학대를 하며 공부를 시키자, 참지 못한 중학생 딸이 부모를 찔러 죽이고 자기도 목을 매 자살한 사건이래요.”
“…….”
이런 망할 인터넷발 정보!
처음 봤을 때 관련 기사가 보이지 않아 혹시나 했지만 역시 과장된 거였다!
“자, 잠깐만요. 그럼 이 집에 집착은 왜 하신 겁니까?”
“그건…….”
레테라는 바로 말을 잇지 않고 이미경 씨를 바라보았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게 아니라 죽기 전의 한이 떠오른 이미경 씨가 바로 말을 내뱉지 못한 것이었다.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공기 중에서 전해지는 처절한 한(?)이 그녀가 정말 억울하게 죽었음을 예상할 수 있게 했다.
그녀가 몸을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다.
잠시 시간이 지난 뒤, 드디어 레테라의 입에서 이미경 씨가 가진 원한의 근원이 흘러나왔다.
“……대출까지 받아가며 겨우 나만의 집을 마련했는데, 이사한지 이틀 만에 복어 회를 잘못 먹고 죽었던 게 너무나 억울해서 남들이 여기서 잘 사는 꼴은 죽어도 못 보겠다! ……라고 하네요.”
“………………….”
말을 전달하는 레테라는 이게 뭔 개소리인가라는 표정을 지었고, 나 역시 비슷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게 진짜 말이야 방구야?
내가 이딴 사정이나 들으려고 밤잠을 새워가면서 귀신이 나타나길 기다렸던 거였냐?
뒤늦게 수면 부족으로 인한 두통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레반과 레테라를 불렀다.
“레반, 레테라.”
“말씀하십시오, 형님.”
“듣고 있어요, 오라버니.”
“마지막 가는 길 편하게 보내줘라.”
내가 이미경이 있는 자리를 가리키며 말하자 두 사람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주먹을 맞부딪치고, 고개를 꺾으며 몸을 푸는 그들의 모습은 진짜 어디로 사람 하나 담그러간다는 포스가 넘쳐흘렀다.
흐흐흑!!
허공에서 당황한 감정이 섞인 흐느낌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자신의 상황이 위험하다는 걸 느낀 그녀가 또 다시 귀곡성을 흘리기 시작했나보다.
나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외쳤다.
“아니, 썅! 본전 뽑지도 못한 채 죽은 게 억울하다고 이후에 정당한 권리로 집을 산 사람들을 내쫓는다는 게 말이나 되냐! 너도 양심이라는 게 있을 거 아냐!”
으흑흑!
“뭐래!”
이번엔 필사적으로 변명하듯 들려오는 흐느낌에 그 내용을 물어보았다.
레테라는 이런 녀석 상대하기도 피곤하다는 얼굴로 말을 옮겼다.
“유령이 된 뒤부터 행동에 거리낌이 없어져서 그만……이라는군요.”
“개짓거리해도 얻어터질 일 없는 상태니까 그렇지!! 온라인상에서 방구석 여포가 왜 그렇게 설치고 다니는지 몰라!?”
으흐흐흑!
“그럼 최소한 성불시키는 쪽으로 해달라네요. 소멸시키는 것만큼은 봐달라면서.”
참 뻔뻔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에서 사후 세계에 미련이라도 남은 걸까.
그냥 이대로 쥐어 패서 소멸시키려고 했지만, 막상 없애려고 하니 조금은 불쌍한 감정이 들었다.
아직까진 병원에 실려 간 사람은 있어도 죽은 사람은 없다지 않은가?
또한 그녀의 개짓거리 때문에 우리가 이득을 보기도 했다.
“잠깐만.”
잠시 고민하던 나는 결국 두 사람을 불러 세웠다.
“역시 이대로 없애는 건 조금 아닌 거 같다.”
“살려 두시는 겁니까?”
“정말 괜찮겠어요?”
“성불은 시킬 거야.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명한 절이라도 한 번 찾아가보지 뭐.”
두 사람은 얼른 처리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그래도 내 의견을 존중해주었다.
허공에서 이번엔 감격이 서린 귀곡성이 들려왔다. 귀곡성이라는 게 이렇게 바리에이션이 다양할 줄은 처음 알았다.
흐흑!
“정말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네요.”
“감사의 인사의 인사를 하기엔 이른데……. 아직 그동안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는 안 받았잖아?”
흑?
이미경이 뭔가 잘못된 걸 느낀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너무 피곤해진 몸을 주체 못하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훈계하는 법은 알고 있지? 너희가 알아서 해.”
인간에서부터 짐승, 심지어 유령까지 가르칠 수 있는 절호의 교육방법.
바로 체벌이었다.
지금까지 사고 칠 때마다 혼이 나 보았던 그들이라면 적당한 선의 체벌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넵! 그럼 따라와라, 유령. 형님의 잠을 방해해선 안 되니까.”
“유령도 대가리 박기를 할 수 있던가?”
“안 되면 다른 체벌 방법을 생각하지.”
흑!? 흑! 으흑흑!!
무언가를 붙잡고 끌고 나가는 레반과 레테라.
귀곡성이 점차 애원하는 소리로 바뀌어갔지만 무시했다.
저 여자 하나 때문에 잔뜩 피곤해졌으니 이제 편안한 휴식을 취할 때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