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54화 (54/173)

〈 54화 〉 조우 ­ 1

* * *

유령이라는 새 식구가 생긴 5일이 지났다. 그런데 이 유령의 포지션이 좀 이상했다.

일단 새로 생긴 일과는 간단하다.

레반과 레테라, 두 사람 중 한 명이 나와 함께 집 안을 마저 정리하거나 다른 플레이어들의 단서를 찾거나 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이 유령 미경을 데리고 가까운 절이나 교회를 찾는 것이었다.

목적은 당연히 이미경의 성불을 위해서다.

레반과 레테라의 의해 집에 대한 미련을 버렸지만 그녀는 여전히 성불하지 못하고 있었다.

절의 불경, 교회의 찬송가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결국 효과는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방문하는 장소를 바꿔보기로 했고, 그때부터 레반과 레테라는 날마다 교대로 미경을 데리고 외출하게 되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외출하고, 목적지를 방문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의 반복.

뭔가 낯설지 않은 느낌이다.

“……이거 그냥 애완동물 산책 시키는 거 아니야?”

­……흑.

이젠 귀에 익을 때로 익은 흐느낌이 허공에서 울렸다.

이미경도 자신이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는지 참담한 모양이다.

뭐, 아무튼.

새로운 집에서의 생활이 점차 몸에 익고 나서, 나는 현실의 플레이어를 찾아내는데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뭘 하고 계시나요, 오라버니?”

오늘도 어김없이 미경의 성불 위한 여정(짧게 말해면 산책)을 마치고 온 레테라가 내게 다가오며 물었다.

레테라는 새로 뽑은 컴퓨터 앞에서 노트에 뭔가를 끄적이며 열중하는 내 모습을 보고 뭔가 도와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마음만 받기로 하며 대신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해주었다.

“SoR 관련 커뮤니티를 돌아다니고 있었어.”

“커뮤니티?”

“인터넷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공통된 관심사로 대화하기 위해 모이는 장소야. 게시글이나 댓글로 다양한 소통이 일어나고 있지. 뭐, 게임 커뮤니티라고 전부 게임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쓸데없는 개인사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때우는 경우도 많지만.”

나는 마우스 휠을 움직이며 한 하면을 채우고 있는 많은 양의 게시글들을 보여주었다.

SoR가 마이너 했다고 한들 7년간이라 서비스 되었던 게임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쌓여온 방대한 양의 게시글들은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올 지경이었다.

“이걸로 다른 플레이어들을 찾을 수 있는 건가요?”

“율은 이 게임의 참가 조건은 두 가지라고 말했어. 한 캐릭터 당 플레이 타임 500시간 이상. 그리고 캐릭터와의 정신 동조를 경험할 것. 우선 첫 번째 조건인 플레이 타임 500시간은 달성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나는 한 게시글을 클릭했다.

어떤 유저가 플레이 타임이 1000시간을 넘었다면서 자랑하는 글이었다.

그 밑으로 ‘게임 폐인 새끼ㅋ’, ‘취직은 언제 할 거니, 아들아?’. ‘이 정돈 누구나 할 수 있는 거 아님?’ 등등의 악플이 달리긴 했지만.

일단 이 사람은 달성 조건을 채우진 못했다.

플레이 타임 1000시간이라는 것도 계정 당 허용된 세 명의 캐릭터 플레이 타임을 합친 것이다.

캐릭터들은 각각 400대, 300대, 300대의 플레이 타임이 적혀 있었다. 전부 500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SoR는 파고들만한 요소가 많아서 오래 즐길 수는 있지만, 대신 너무 어려운 난이도 때문에 유저들을 피곤하게 만들거든. 웬만한 게임광이 아닌 이상 하루에 오래 플레이 하지 못해. 혹은 겨우 얻은 전설 급 아이템이나 레벨 업 직전의 경험치를 날려먹은 충격으로 500시간을 달성하기 전에 접는 사람도 여럿 있어.”

이 두 가지는 최근에 나도 경험했었지. 다시 생각해도 멘탈이 흔들릴 것 같은 일이다.

“아무튼 하루 게임 플레이 타임을 3, 4시간으로 잡는다고, 쳐도 500시간을 달성하기 위해선 125일에서 167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플레이해야 돼. 하지만 세상엔 시간 남아도는 백수만 있는 게 아니거든. 학교를 다니거나 직장을 다녀야 하는 사람도 있으니 시간은 더 걸리겠지.”

“하지만 오라버니는 저희를 꽤 오래 플레이하지 않았나요?”

“…….”

확실히 그렇긴 했다.

플레이 타임 자체는 눈여겨보진 않았지만, 레아, 레반, 레테라, 이 셋 각각의 플레이 타임만 해도 1000시간은 넘었다.

특히 레아를 플레이했던 때는 고3 시기였다.

아무리 게임에 빠져 있었다지만, 한참 수능 준비를 해야 될 시기에 정신 나간 시간 배분으로 플레이 타임 1000시간을 넘긴 나도 참 징한 녀석이다.

“오라버니?”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지금은 그땐 그랬지 하며 한가하게 추억에 잠길 때가 아니었다.

나는 설명을 이어갔다.

“일단 커뮤티니를 돌아다니면서 플레이 타임을 인증한 사람들의 아이디를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나는 이번엔 눈에 띄는 다른 게시글을 클릭했다.

‘게임하다 이상한 경험을 했어요’라는 제목의 게시글이었다.

내용을 살펴보니 강력한 보스 몬스터를 100번을 넘게 트라이 한 끝에 겨우 쓰러뜨리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다고 한다.

보스의 HP는 사라지기 직전이었지만, 죽지 직전인 건 자신의 캐릭터도 마찬가지였다. HP가 거의 남지 않았고, 회복 아이템도 전부 소진한 상태에서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여기까지 와서 진다면 정말 마음의 충격이 클 터였다.

그땐 게임을 접을 생각까지 하며 그 유저는 간절한 마음으로 싸움에 모든 신경을 쏟았다.

그때였다. 이상한 경험을 한 건.

절대로 지고 싶지 않다는 일념을 품었을 때, 그의 눈에 보인 건 모니터가 아니라 캐릭터의 눈에 비친 세상이었다.

캐릭터가 아닌 자신에게 직접 거대한 검을 휘두르는 보스 몬스터.

가상이 아닌 현실과 같은 광경은 엄청난 위압감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서 혼란이 온 그는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결국 보스의 일격은 그 유저…… 아니, 그의 캐릭터를 분쇄했고, 거기서 그는 정신을 차렸다.

한순간 경험했던 경험이 너무 기묘하기도 하고, 또 다시 이 보스를 트라이하고 싶지 않았기에 거기서 그 유저는 게임을 접는다고 말했다.

그렇게 자기 계정의 캐릭터란을 보여주며 글을 끝맺었는데, 거기에 적힌 플레이 타임은 40시간을 조금 넘는 정도였다.

“이 정신 동조에 대해선 잘 모르겠어. 게임에 대한 집중이 극에 달했을 때 나타나는 거 같긴 한데, 그런 것치곤 플레이 타임이 800시간을 넘겼다고 하는 하드한 고인물도 이런 경험은 해본 적 없다고 말했거든. 사례가 너무 적다보니 어느 커뮤니티에 가든 그냥 괴담 취급이야.”

나는 골치가 아파오는 머리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이 괴담 취급이 의외로 성가신단 말이야. 그냥 장난치듯이 자신도 이런 경험 해봤다면서 꾸며내는 사람도 여럿 있어. 몇 명은 스스로 뻥이였다고 밝혔지만, 몇 명은 끝까지 진짜라고 주장하지. 그 말의 신뢰성은 차치하더라도 말이야.”

일단 수상한 자들의 아이디는 전부 체크하고 있긴 했다.

그러나 그 아이디만으로 그 사람의 활동 영역을 추적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한 명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야 자신이 사는 지역에 대한 언급을 찾아낼까 말까인데, 노트에 체크된 의심 인물의 숫자는 120명을 넘어간다.

이 중에 있는 걸까. 나와 같이 현실에서 캐릭터를 만난 플레이어가.

“역시 저도 도울게요.”

빼곡한 리스트를 바라보는 나의 피곤한 기색을 읽었는지 레테라는 다시 한 번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어째서죠? 제 속독 실력이라면 순식간에 글들을 읽어 내릴 수가 있어요. 찾기 한결 편할 텐데요?”

“교육상의 문제다.”

“네?”

“인터넷이라는 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악질적인 사람도 많지. 그 중엔 그저 보는 사람이 기분 나쁘라는 목적으로 움직이는 놈들도 있다고.”

괜히 인터넷이 정보의 쓰레기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이런 온라인 환경에 익숙한 나도 가끔은 눈살이 찌푸려지는 사람을 만날 정도인데, 레테라도 그런 경험을 하게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레테라는 문제없다는 듯 말했다.

“험한 말이라면 익숙해요. 아시다시피 유저들끼리 채팅으로 싸우는 건 익숙하거든요.”

“게임은 무례한 소리 했다가 바로 PK 당할 위험이 있기라도 하지, 인터넷은 얼굴도 사는 곳도 잘 알려지지 않다고 쓰레기 같은 짓거리를 저지르는 놈들도 많아. 아, 그래. 딱 우리를 만나기 전의 저 유령처럼.”

이미경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는 않지만 대략 느낌상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을 것 같기에 그렇게 말했다.

내 예상이 맞은 듯 레테라는 어느 한 방향을 바라보며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저런 답 없는 족속들의 집합인 건가요? 기술의 발전도 좋은 것만은 아니군요.”

“그러게 말이야.”

­흐윽!!!

또 다시 귀곡성이 들렸다. 이번엔 항의하는 듯한 뉘앙스였다.

아무리 그녀도 저런 놈들 취급받는 건 못 참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신경을 쓰는 인물은 우리 중에 아무도 없었다.

“그럼 하다못해 오늘 저녁밥은 제가 만들게요. 이제 요리도 많이 익숙해져서 맡겨주셔도 괜찮아요.”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확실히 이걸 다 살펴본다면 저녁 만들 시간은 없을 거 같다.

여기서는 순순히 그녀의 도움을 받기로 하자.

내 허가가 떨어지자 레테라는 미경을 데리고 내 방을 나섰다. 그러다 묘하게 조용한 집 안을 느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근육돼지는 어디 있나요?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부터 안 보이네요.”

“그 녀석이라면 심부름 보냈어.”

나는 잠시 손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을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내가 중얼거리는 것은 작은 바람이었다.

“찾았으면 좋으려만…….”

나에겐 플레이어 말고도 해결해야 될 또 다른 과제가 있었다.

***

“찾았다.”

선글라스와 모자.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레반이 외출할 때 필수적으로 착용하는 것이었다.

레반은 그것들을 잠시 벗고 내려놓았다.

이곳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장소였다.

그곳은 차를 타고 강을 건너기 위한 넓은 교각로의 밑.

머리 위로 뻗어 있는 넓은 도로를 떠받치기 위한 기둥이 잔뜩 즐비한 곳이었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아 잡초가 무성한 그곳 어느 기둥 밑에 한 인영이 앉아 있었다.

검은 스키니진과 회색 후드 자켓. 후드를 벗은 그곳에서 들어나는 건 늑대의 털을 닮은 황금빛 머리카락과 날카롭게 빛나는 은색 안광이었다.

“……뭐 하러 왔냐?”

그것은 요현의 첫 번째 캐릭터, 레아였다.

호의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눈빛이었지만 레반은 개의치 않고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의외로 빨리 찾을 수 있었군. 너라면 분명 멀리 떨어지지 않고 항상 형님의 주변을 맴돌고 있을 거라 예상했어.”

“뭐 하러 왔냐고 물었을 텐데? 뒈지고 싶다는 거야?”

“너무 그렇게 까칠하게 굴지 말라고. 어차피 같은 부모를 둔 형제지간이잖아?”

“형제지간은 무슨 얼어 죽을. 너희들 따위의 형제는 필요 없어.”

“거참…….”

날 서린 그녀의 반응에 레반은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손을 내린 레반은 조금 전의 친근한 느낌은 사라지고 맹수 특유의 흉포성만이 남아있었다.

“뭐, 사실은 나도 같은 생각이야. 너나 절벽가슴이나 형제로서의 정 따윈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아. 언제라도 형님께 해가 되는 순간 단숨에 숨통을 끓을 대상으로 밖에 보지 않지. 아마 절벽가슴도 같은 생각일 걸?”

“그래서 그 녀석에게 반항하는 날 처단하러 왔냐?”

가소롭다는 듯 입꼬리를 레아가 입 꼬리를 올렸다.

그녀에게서 뿜어지는 기세는 레반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이 뿜어지는 기세가 만난 서로 날뛰며 중간에 끼인 기둥에 균열을 새겼다.

“아니.”

하지만 레반은 어느 순간 기세를 거뒀다.

“확실히 넌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난 형님의 뜻을 존중하는 것이 우선이거든.”

“……그 녀석의 뜻?”

“형님이 너와 화해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찾으러 왔지.”

그 말에 눈썹을 찌푸리던 레아는 어느 순간 짧은 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어이가 없다는 비웃음이었다.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었나보네. 말했지? 그 망할 아버지가 녀석과 화해하기 전까진 절대 안 돌아간다고.”

“그 녀석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형님은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찾을 수 없는 게 아니라 찾기가 싫은 거겠지! 내가 그 녀석을 몰라!? 그럴 마음만 먹었다면 되든 안 되든 벌써 행동하고 남았다고! 지금은 그냥 겁쟁이 마냥 찌그러져 있는 거뿐이잖아!!”

꿈틀.

레아가 토해낸 원성에 레반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무리 요현의 뜻을 존중한다고 해도 그를 향한 모욕을 참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과거에 형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네가 말한 ‘녀석’이 거론될 때마다 그는 괴로운 표정을 지었지. 무슨 사정이건 그를 향해 함부로 말하는 건 용서 못해.”

“하! 그 녀석이 과거의 얘기는 해주지 않았나보지?”

그럴 줄 알았다면서 비웃음을 날린 레아가 말했다.

“너희들의 가치는 고작 그 정도인 거야. 어차피 너희들은 나에 대한 미련이 만들어낸 대용품일 뿐이라고.”

그와 처음을 함께 했고, 그를 가장 잘 알고 있으며, 그와 가장 긴 시간을 보낸 건 자신뿐이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레반과 레테라는 그저 대용품 따위로 취급하며.

“………………후우.”

레반은 팔짱을 풀었다.

이제까지 별의 별 모욕은 들어봤다.

근육돼지라던가, 머리를 벗겨내 대머리로 만들어버리겠다던가. 대부분 레테라에게서 비롯된 말이다.

“형님은 그냥 찾기만 하고 돌아오라고 말하셨지만……. 이대로 돌아가기엔 받은 모욕이 너무나 크군.”

우드득.

주먹에서 위협적인 울림을 흘렸고, 그 소리가 전신으로 퍼지며 그의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요현은 자신의 캐릭터들이 싸우지 않고 잘 지내기 바라고 있지만, 역시 이들은 친하게 지내긴 글렀다.

“남매싸움 좀 하고 왔다고 말하지 뭐.”

노골적인 분노를 드러내기 시작한 레반이 그렇게 말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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