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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55화 (55/173)

〈 55화 〉 조우 ­ 2

* * *

선공을 레반이었다.

순식간에 달려든 그가 주먹을 내질렀고, 그것을 레아가 두 팔을 교차하며 막았다.

콰가아아아아아앙!!!!

사람이 사람을 때렸다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소리가 울렸다.

폭음과 함께 공중으로 밀려난 레아가 도로를 받치고 있는 교각 하나에 몸이 처박힌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레반이 몸을 날려 다시 한 번 주먹을 내질렀다.

콰가가가각!!!!

콘크리트와 그 안에 철근이 무식할 정도로 강력한 힘에 갈려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뜯겨나간 잔해와 함께 떨어지는 레아의 몸을 레반이 집요하게 쫓는다. 사냥감의 목을 물어뜯기로 작정한 사자 같았다.

순수한 근력캐인 그가 두 번의 걸친 일격은 레아도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교차했던 두 팔이 충격에 떨어졌고, 그녀의 몸통에 허점을 드러내었다.

한 순간 드러난 허점이지만 레반이 그것을 놓칠 리가 없었다.

바닥을 향해 떨어지는 레아의 위로 몸을 날린 레반이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덥썩!!

그러나 그 주먹은 닿기도 전, 그것을 잡아챈 레아의 손에 의해 엉뚱한 방향으로 꺾인다.

레아는 레반의 주먹을 쳐내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억지로 끌어당겨 헛손질을 하게 만들었다.

그것으로 모자라 신체를 뒤틀며 레반의 팔을 타고 오른 그녀는 딱 때리기 좋게 내밀어진 레반의 머리를 다리로 후려쳤다.

퍼어어어억!!!!!

그녀의 다리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레반의 고개가 돌아갔다.

공중에서 중심을 잃고만 그는 그대로 레아보다 먼저 지상으로 추락해 흙바닥을 사납게 굴렀다.

그런 레반의 위로 레아가 떨어진다.

공수가 이 시점에서 바뀌었다.

콰가가가가가아앙!!!!

지면이 깊게 내려앉을 정도로 강력한 연격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지면이라 피할 곳이 없는 레반은 두 팔을 들어 막았지만 그녀의 손과 발은 그의 가드 사이를 절묘하게 파고들어 집요하게 그의 몸을 때렸다.

“크으윽!!”

이대로는 안 된다고 판단한 레반이 가드를 풀고 주먹을 내질렀다.

몸에 유효타를 허용하면서 내지른 주먹이 소나기 같은 연격을 뚫고 레아의 턱에 닿는다.

터업!!

그러나 그것이 유효타로 이어지진 못했다.

순식간에 회수한 레아의 두 손이 겹쳐지며 턱으로 올라오는 레반의 주먹을 가로 막은 것이다.

그뿐일까. 몸을 일부러 허공에 붕 뜨게 만들어 레반에게서 전해지는 충격마저 줄였다.

가벼운 종이처럼 허공을 날아간 레아는 땅 위로 사뿐히 착지했고, 그 사이에 파헤쳐진 지면에서 빠져나왔다.

콰아아앙!!

내려앉았던 지면을 바로 바로 메꾸는 거처럼 레반이 등 뒤로 밟은 흙을 비산시키며 돌진해 들어왔다.

바닥에 착지한 레아가 다시 자세를 갖추기 전에 큰 일격을 먹이려고 주먹을 내지르는 레반이었지만, 레아는 이미 대응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로 날아오는 주먹을 붙잡고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가도록 비틀어 당긴다.

이것은 레테라와 같은 기교가 아니었다. 주먹에서 느껴지는 레아의 손아귀에 악력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레테라에 버금가는 기량에, 레반과 맞먹을 정도의 근력의 조화가 한순간이지만 레반의 움직임을 완전히 장악한 것이었다.

결국 자신의 돌진과 함께 내지른 주먹이 레아의 얼굴 옆을 스치기만 하는 걸 레반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이번엔 레아가 몸을 날렸다.

레반의 주먹이 완전히 빗겨나간 와중에 내지른 그녀의 주먹은 마치 레반의 팔을 거슬러 오르듯 날아가 그의 몸통에 정확히 꽂혔다.

퍼어어어어억!!!

쿨럭!!

돌진하던 스피드 그대로 카운터를 얻어맞은 레반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두 발로 고랑을 만들며 겨우 멈춰 섰지만 몸에 남은 충격 때문에 바로 움직이지는 못했다.

그것이 빠르게 흘러가던 전투를 잠시 소강상태로 만들었다.

단 몇 호흡 사이에서 벌어진 접전에서 유효타를 먹은 건 레반 뿐이었다.

레아가 입은 데미지라고 해봤자 레반의 주먹을 막았던 두 팔에 둔탁한 통증이 전부였다.

“퉷!”

레반은 입 안에 고인 핏물을 거칠게 뱉어내며 레아를 노려보았다.

“너 이 자식, 탱커냐?”

탱커.

직업과는 다른 게임 내의 역할군이다.

파티 플레이를 할 때 적에게 데미지를 주는 역할을 맡는 게 딜러.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과 파티원들을 지키는 역할을 맡는 게 탱커다.

방어 중에도, 공격 중에도 레아에게선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공격을 위해 자잘한 부상을 감수하려는 레반과 달리 그녀의 동작에는 안정성이 돋보였다.

그런 안정성은 탱커의 특징이다.

“기사……, 혹은 성기사와 같은 직업이겠군.”

“…….”

레아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직접 부딪쳐 본 레반은 그녀가 탱커에 적합한 직업을 가지고 있을 거라 확신했다.

“젠장. 뭔 놈의 탱커가 이렇게 공격적이야? 탱커는 방어 위주인 게 기본 아니었냐고?”

“바보 같은 질문이네. 너도 그 작자의 캐릭터인 이상 알 거 아냐?”

“……하긴. 형님의 성향이 그렇긴 하지.”

요현의 게임 플레이 성향은 그들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오로지 공격형 플레이.

HP가 간당간당할 때면 도망치거나 어떻게든 회복하려는 게 아니라, 고통의 원인이 되는 적부터 찢어 죽이는 게 그의 플레이 방식이었다.

한 번 빡돌면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가는 그의 성격은 게임에서도 잘 녹아든 모양이다.

레아가 공격형 탱커인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다.

레반이 레아를 상대하기 버겁다고 느끼는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너, 레벨 몇이냐?”

SoR에선 레벨 120이 만렙 취급을 받는다. 그 이후부턴 레벨을 올리기가 살인적으로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요현 또한 레반과 레테라의 레벨 120의 벽을 깨부수고 싶어 하였다.

하지만 그는 레벨 120의 벽을 넘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지, 단 한 번도 그것을 넘어 본 적이 없다고는 말한 적은 없었다.

지금 부딪쳐보고 레반은 막연했던 예감이 확신으로 변하는 걸 느꼈다.

이건 그저 고난이도 퀘스트 몇 개 클리어해서 얻는 추가 스탯 몇 개로 낼 수 있는 차이가 아니었다.

레반과 레아는 강함은 전혀 다른 영역에 있었다.

“알아서 생각해보지 그래?”

레반의 질문에 레아는 비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네까짓 게 감히 자신을 잴 수 있겠냐는 비웃음이었다.

그 말에 레반은 또 다시 눈썹을 꿈틀거리며 불쾌함을 드러냈지만 아까처럼 공격해 오진 않았다.

대신 긴 한숨과 함께 답답함을 토해낼 뿐이었다.

“이거야 원……. 네가 왜 우리를 대용품이라고 무시하며 스스로에게 자신 있어 했는지 알 거 같군. 네 강함을 보고 있으면 형님이 얼마나 너에게 애정을 쏟았는지 느껴진다. ……질투심마저 일어날 지경이야.”

터벅터벅 걸음을 옮긴 레반은 조금 전에 벗어두었던 모자와 선글라스를 집어 들었다.

그의 행동에 의아함을 표한 건 레아였다.

“뭐야? 겨우 이 정도 싸우고 꼬리 말려는 거냐? 난 아직 몸도 안 풀렸어.”

“그냥 가련다. 너무 화가 나서 이대로 계속 싸우면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못 멈출 거 같거든.”

“둘 중 하나? 너 혼자 죽을 때까지 못 멈춘다는 거겠지.”

“……누가 탱커 아니랄까봐 어그로 끄는 실력이 장난 아니네.”

그냥 돌아 서서 저년 얼굴에 한 방 날리고 올까라고 고민하는 레반이었지만, 역시 관두었다.

정말로 이 이상 싸우면 스스로를 주체 못할 거 같았다.

처음엔 적당히 패고 끝낼 생각이었지만, 상상 이상이었던 레아의 강함은 레반이 단단히 작정하고 덤벼야 할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결과를 가장 원하지 않는 건 바로 요현일 것이다.

“난 형님이 위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건 절벽가슴 녀석도 마찬가지고.”

레반은 선글라스와 모자로 다시 얼굴을 덮고 레아에게서 등을 돌리며 걸어갔다.

“네가 어째서 형님을 어떤 자와 화해시키려고 이렇게까지 반항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너 또한 우리와 같을 거라고 믿는다.”

“……헛소리 말고 꺼져.”

“다음엔 형님과 함께 올지 몰라. 그땐 조금 정돈 반가운 척 좀 해달라고.”

손을 흔들며 떠나가는 레반.

레아는 그런 그를 쫓지 않았다. 그냥 부서진 기둥 잔해 위에 드러누울 뿐이었다.

김이 새버렸다.

오랜만에 몸 좀 풀면 언짢은 기분도 개운해질 줄 알았는데, 레반은 신경에 거슬리는 말만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또 다시 홀로 남게 된 레아는 아득히 높은 교각을 바라보며 입을 중얼거렸다.

“망할 놈들. 너희들 따위가 뭘 안 다고…….”

그녀는 레반도, 레테라도 싫었다.

뒤늦게 생긴 동생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부모의 관심을 독차지 하는 것 같아서 더 그런 걸지도 모른다.

가장 힘들었을 때의 그의 모습을 알지도 못한다.

그걸 알고 있는 건 레아뿐이었다.

레반이 했던 말을 떠올려 보라. 지금도 요현은 과거의 일이 언급될 때마다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 녀석이 괴로워한다고? 난 그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기가 싫은 거라고.”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때의 일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껏 레아를 방치한 것일 테지.

레아를 플레이 할 때마다 함께 했던 친구의 존재가 떠올라 괴로워할 테고, 그 감정은 레아에게까지 전해질 테니까.

레아는 그게 싫었다.

그 마음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요현이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

그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반항이든 되도 않는 생떼든 뭐든 다 부릴 것이다.

***

“응?”

“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레반은 미경을 데리고 저녁 장거리를 사 돌아오는 레테라와 우연히 마주쳤다.

선글라스와 모자로 감췄지만 상처를 입은 얼굴에 몸에 묻어 있는 흙먼지를 본 레테라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치 챌 수 있었다.

“만났나 보네?”

“만났지.”

“어땠어?”

“강하던데. 질투가 날 정도로.”

“……쯧.”

레테라는 혀를 찼다.

질투가 날 정도다. 그 말엔 많은 의미를 함축되어 있었다.

강하다는 의미도 있을 테고, 그 정도로 요현이 그녀에게 많은 정성을 쏟았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확실히 공사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레아의 강함은 심상치 않았다.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보다, 그쪽이 더 요현의 정성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확실히 꼴은 엉망이네.”

“그렇지. 공사장에서 싸웠을 때의 네 꼴처럼.”

“뒈지고 싶어?”

“뒈지게 해보던가.”

일상적인 회화를 이어가는 줄 알았던 두 사람의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허공에 둥둥 뜬 채 그들을 따라다니던 미경이 기겁하며 물러날 정도로 그들의 기세는 살벌했다.

이렇게 노골적인 살기라니, 그녀도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친한 사람들끼리는 서로 욕도 하고 그런다지만, 아무리 봐도 이 둘은 그런 부류로 보이지 않았다.

­저, 저기 두 사람은 그…… 동료가 아니었나요?

귀곡성을 제외하곤 아예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요현과 달리 레반과 레테라는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미경을 돌아보았다. 무슨 새삼스러운 소리를 하냐는 듯이.

“동료 맞아.”

“같은 목적을 공유 함께 하고 있다면 동료라고 부르는 게 맞지.”

­같은 목적이요?

“형님의 적이 되는 녀석을 모조리 작살낸다는 목적.”

“옆에 있는 놈을 미끼로 던지는 한이 있더라도 오라버니를 지켜낸다는 목적.”

­…….

태연한 얼굴로 살벌한 소리를 내뱉는 두 사람을 보며 미경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요현 그 사람은 귀신보다 더 한 것에 씌여 있는 게 아닐까?

***

“미쳐버리겠네.”

SoR 커뮤니티를 뒤져가면서 플레이어 의심 인물을 추려내는데 몇 시간을 쏟았다.

시간을 오래 거슬러 올라갈수록 대부분의 게시글들은 삭제되어서 남아 있는 게 거의 없었다.

4년 전 게시물부터 숫자가 급격히 줄더니 5년 전 이후부터는 대여섯 개 씩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현재까지 추려낸 용의자의 수는 300명을 넘었다.

이걸 전부 일일이 조사하는 건 아무리 봐도 미친 짓이었다. 다른 수단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흥신소에라도 맡겨야 하나……?”

흥신소가 이런 일까지 맡을지는 잘 모르겠다.

오직 커뮤니티 아이디만으로 추적해서 300명 이상의 사람들의 소재를 알아내야 한다니, 내가 흥신소 직원이었다면 쌍욕을 박았을 것이다.

불곰파는…… 서로 연관되지 않기로 했는데 이제 와서 일시키기도 그랬다. 애당초 그럴 생각으로 연락수단도 안 만들어 놨다.

결국 내 힘으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한 방법으론 무리다.

“평범한 방법으로 되지 않는다면 평범하지 않는 방법을 써야한다는 얘기인데…….”

떠오르는 방법이 하나 있긴 했다.

위험을 감수해야할지 모르는 일이라 레반과 레테라는 별로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진 않지만, 지금으로선 이것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어 보인다.

“좋아. 한 번 해보자.”

결심을 마친 난 다시 한 번 커뮤니티 사이트에 들어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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