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 오프라인 모임 1
* * *
초딩.
보통은 초등학생을 뜻하는 은어로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온라인상으로 넘어가면 그 의미는 달라진다.
그야말로 민폐 집단.
안 그래도 어른이 덜 된 녀석들이 온라인에서 여포질을 하는 요즘 세상인데, 자기 통제를 못하는 어린애들은 오죽 하겠는가.
뜻도 모르는 이상한 단어를 일상적으로 내뱉는다거나, 비매너 행위를 일삼는다거나, 다른 사람들의 눈살 찌푸리게 하는 행동을 하고도 거리낌이 없다.
현실이었다면 부모가 제어라도 할 테지만 온라인상에선 그런 것도 없다. 보고 있으면 정말 성악설이 옳았던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순수 악 그 자체인 녀석들이다.
나도 초딩과 관련해선 좋은 경험이 없다.
SoR은 15세 미만 이용 금지 게임이지만, 필요하면 부모님들의 주민번호까지 도용하는 녀석들에게 그딴 건 없었다.
사냥터에서 거의 다 잡은 몬스터의 막타를 빼앗아가지 않나, 그거 가지고 항의하면 ‘즐’이라던가 ‘앙 기모띠’라는 개소리를 하며 로그아웃 하지 않나, 필드 보스 사냥 중에 옆에서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라고 훈수질 하질 않나. ……내가 너보다 100번은 더 잡았어, 새꺄!
“왜 그러세요, 오라버니?”
“아니……. 그냥 엿 같은 기억이 떠오른 것뿐이야.”
심각해진 내 표정을 본 레테라가 물어왔고, 나는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어린애가 싫어졌을 때부터 이미 어른이 된 것이라고 누가 말하던데, 그렇게 보자면 나도 이미 어엿한 어른이 모양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눈앞에 꼬맹이를 바라보았다.
개구쟁이 같은 표정과 햇볕에 그을린 피부로 봐선 밖으로 나가서 뛰어노는 쪽을 더 좋아하는 듯한 녀석이다.
SoR 같이 쓸데없이 어둡고 하드한 게임을 좋아할 것처럼 보이진 않는데, 정말로 이놈이 모임 참가자일까?
나는 허리를 숙여 녀석과 눈높이를 맞춘 뒤 물었다.
“너 모임 참가자 맞아? 15세 미만은 SoR를 이용 못할 텐데?”
“우리 아빠가 하게 해줬어.”
이 녀석의 아빠는 무슨 생각인 거냐. 다 큰 어른도 종종 멘탈 갈려나가서 키보드와 마우스를 부숴먹는 게임을 하게 만들다니.
이것도 어떤 의미에선 아동학대가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녀석의 말이 이어진다.
“나 몰라? 올린 글 가장 밑 댓글에서 나가겠다고 말했는데?”
그러고 보니 유난히 촐싹대던 참가 희망자가 있던 게 기억난다.
그 아이디도 외워두었다.
아이디명 ‘간다간다뿅간다’.
뭔 이해 못할 이상한 감성인가 했더니 초딩 감성이었던 건가.
“넌 이름이 뭐야?”
“남의 이름을 물을 땐 먼저 자기 이름을 밝히는 게 예의잖아? 그것도 몰라?”
“…….”
이 망할 애새끼가 만화에서 본 건 있어가지고.
문뜩 한 대 쥐어박고 싶어졌지만, 그건 어른스러운 대응이 아니라 생각해서 참았다.
어른이란 참 힘들다.
“그래, 미안하다. 난 신요현이라고 해.”
“난 김정수.”
“그래, 정수야. 한 가지 더 물어봐도 돼? 이 모임엔 왜 참가하기로 한 거야? 특별히 어디 놀러가는 건 아니고, 그냥 SoR 끝난 김에 추억 회상과 한탄이나 하자는 모임인데.”
초딩 꼬마가 좋아할 만한 이벤트는 아니었다. 솔직히 어른이라고 해서 좋아할지는 모르겠다.
나야 현실 플레이어를 찾는 목적이 있으니 열었긴 했지만, 도무지 이런 아이가 참가 하는 이유가 예상이 가지 않았다.
“형이 올렸던 사진 있잖아.”
“응?”
“그거 메시지지? 형도 그거 발견한 거 맞지?”
“……뭘?”
일단 시치미를 떼긴 했지만 나는 속으로 긴장했다.
설마 이 아이가 플레이어라고?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꼬맹이가 조건을 만족하기엔 500시간이라는 벽은 그리 낮은 게 아니다.
애초에 이 아이는 혼자 왔지 않은가.
아무리 세상모르는 아이라고 해도 플레이어라면 분명 캐릭터를 데리고 다닐 것이다. 플레이어일 가능성은 낮았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다음 순간 이어진 정수의 말에 그 생각은 부정당했다.
“기가스 라이트닝!”
“……?!”
“SoR의 전격 마법! 그 흔적이 사진 속 벽에 남아 있었잖아!”
정수의 입에서 정확히 율이 남겨 놓은 흔적이 언급되었다. 플레이어만 알아보도록 마련된 그 흔적을.
정말 이 아이가 플레이어라고?
내가 긴장하고, 이야기를 듣고 있던 레반과 레테라는 혹시 주변에 있을지 모르는 캐릭터를 찾아 두리번거렸을 때였다.
“이거 사실 그 사진 속 비밀을 파헤치자는 모임인 거 맞지? 그래서 그 사진을 올린 거지?”
“……뭐?”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게임이 시작되면서 그 사진 속 비밀은 다 까발려진지가 언제인데, 무슨 비밀을 파헤친다는 것일까.
뭔가 감을 잡은 나는 정수에게 물었다.
“넌 그 사진을 어떻게 생각하는데?”
“뻔하지! 사악한 흑마법사 제라스가 나타나서 우리가 게임을 못하게 하는 거야! 그 녀석 기가스 라이트닝을 주로 쓰잖아!”
흑마법사 제라스.
SoR에 등장하는 보스로, 정수의 말대로 필드 가득히 퍼지는 기가스 라이트닝 마법으로 유저들을 압박하는 적이다.
확실히 기가스 라이트닝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는 그 녀석도 있지만, 대부분의 유저들은 캐릭터가 쓰는 기가스 레이트닝을 더 많이 떠오를 것이다.
어쩌다 한 번 만나는 보스의 스킬보단 필드에서 마법을 쓰는 다른 사람의 캐릭터를 더 자주 보게 되니까.
특히 자신의 캐릭터가 현실로 나온 것을 본 플레이어라면 다른 캐릭터의 출현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나 또한 그렇지 않았던가.
그것과는 다른 정수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확신했다.
‘이 녀석, 그냥 상상력이 뛰어난 거뿐이야.’
어린아이기 때문에 오히려 고정관념이 덜한 걸까.
남들은 그냥 넘겨버릴 벽에 남은 흔적을 보고 바로 기가스 라이트닝임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캐릭터가 나왔다는 생각에 도달하지 못하고 대신 보스 몬스터의 이름이 튀어나오는 걸 보니 캐릭터와 만난 건 아니었다.
레반과 레테라를 돌아보았다.
근처에 캐릭터인 듯한 자는 없다는 듯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하아…….”
결국 허탕이었나…….
나는 한숨을 쉬며 아직도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정수를 바라보았다.
‘어때? 내 말 맞지?’라고 눈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거기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진짜로 그냥 노가리나 까는 모임이야.”
“뭐어어어?”
정수는 말꼬리를 늘리며 노골적인 실망한 표정을 드러냈다. 그렇게 기대하고 온 거냐.
이 녀석의 집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이 모임을 기대하고 꽤 멀리서 달려온 것 같았다.
시무룩해진 채 고개를 떨구는 모습이 불쌍하여 내가 말했다.
“뭐, 그래도 여기까진 왔으니까 뭐라도 사줄게. 핫초코면 되겠어?”
“……응.”
정수는 시무룩한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데리고 카페 안으로 들어가려는 그때 누군가가 다가왔다.
“저기……. 실례합니다. SoR 게임 모임 맞나요?”
“응?”
두 명의 남녀가 다가왔다.
한 명은 폴로셔츠를 입었고, 청년을 넘어 중년을 바라보는 듯한 외모의 남성.
다른 한 명은 막 학교를 끝내고 온 듯한 교복에 얼굴에는 마스크를 낀 여성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 길에 사고가 있어 버스가 늦어져서 말이죠.”
“…….”
남성은 사정을 설명하며 늦은 것을 사과했고, 우연히 같은 버스에 타고 있었다던 여성도 살짝 고개 숙였다.
이로서 참가 희망자 다섯 명 중 세 명이 약속 장소에 나타난 것이다.
두 명이 빠지긴 했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아무래도 모임을 연 목적만은 성사된 거 같으니까.
““…….””
레반과 레테라는 선글라스와 마스크으로 얼굴과 표정을 감추고 있다. 그러나 나는 침묵을 유지하는 그들이 지금 경계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새로 두 남녀가 나타났을 때부터였다.
무언가를 감지한 것처럼.
그들의 반응을 느낀 나도 덩달아 표정이 굳어갔다.
‘온 건가!’
***
사람이 얼마나 올지 알 수 없어 카페 안에 자리는 잡아놓지 않았다. 다행히도 우리들 여섯 사람이 앉을 자리는 충분히 있었다.
벽에 붙어 있는 의자에는 레반, 나, 레테라 순으로 앉았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의자에는 정수, 교복 입은 여성, 폴로셔츠를 입은 남성 순으로 앉았다. 나이대가 다양하다보니 누가 보면 가족인 줄 알 거 같다.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정말 좋아했던 게임이 느닷없이 끝나니 어디 가서 아무에게나 토로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홧김에 오프라인 모임을 개최한 건데 이렇게 많이 모여주실 줄은 몰랐어요.”
일단 개최한 장본인으로서 뭐라도 말해야 할 거 같아서 말을 꺼내 보았다.
이런 정형화된 대화를 하는 건 익숙지 않아서 말이 자꾸 빨라지려 하는 걸 겨우 억눌렀다.
그러자 폴로셔츠의 남자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저도 그랬습니다. SoR가 워낙 독특하긴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끝내버릴 줄은 아무도 예상 못했을 거예요. 갑자기 게임 하던 시간이 남아돌게 되니 한가하기도 하고, 저와 같은 심정인 사람들이 모일 거 같아서 한 번 와 봤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아직 서로에 대해 잘 모르니까 자기소개라도 할까요? 커뮤니티 아이디는 그냥 모임 열려고 대충 지은 거라서 본명으로 말할 게요. 제 이름은 신요현. 성월 대학교 재학 중이였다가 지금은 휴학했어요.”
원랜 여기선 가명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금방 떠날 거라고 생각했던 정수가 의외로 모임에 그대로 참여하게 돼서 할 수 없이 그에게 소개했던 이름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만약 가명을 댔다가 자신이 들은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정수에게 지적당하면 되려 의심만 살 수 있었다.
내 소개가 끝나자 이번엔 레테라, 레반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미리 외웠던 대로 그들은 자신의 가명과 직업을 소개했다.
“이태나예요. 꽃 가게에서 일하고 있어요.”
“이만입니다. 회사원이지요. 직장 상사가 개새끼입니…….”
퍼억!!
외운 대로 말하는 것에 집중하느라 쓸데없는 요소까지 말하려하는 레반의 옆구리를 테이플 밑에서 후려쳤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레반은 입을 다물었고, 폴로셔츠의 남자는 당황한 듯 눈을 깜빡였다.
“직상 상사가…… 뭐라고요?”
“아! 신경 쓰지 마세요. 이 녀석은 제 지인인데, 사람만 만나면 긴장해서 가끔 되도 않는 헛소리를 조금 합니다. 보세요. 얼굴 보이는 것도 부끄러워서 이렇게 실내에서도 선글라스와 모자를 끼고 있지 않습니다.”
끄덕! 끄덕!
바로 그렇다는 듯 레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당황하던 폴로셔츠의 남자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며 넘어가며 자신의 소개를 시작했다.
“저는 배진환입니다. 아쉽게도 직업은 없네요. 몇 달 전에 직정에서 실수를 하는 바람에 짤렸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백수입니다. 그래서 상사더러 개새끼라고 하는 이만 씨의 말도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군요.”
쓰게 웃은 배진환 씨는 가벼운 농담으로 자칫 어색해질 수 있던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이런 모임에 경험이 많은 걸까?
배진환 씨의 소개가 끝나고 시선은 옆자리에 교복 여성에게로 넘어갔다.
고등학교 2,3학년은 되었을까. 시선을 받고 자신의 차례라는 걸 안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연성화입니다.”
“…….”
뭔가 더 나올 줄 알았더니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아직도 자신에게 머물러 있는 시선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뭔가 더 말해야 하나요?”
“아, 아뇨. 소개를 간략하게 하고 싶다면 그러셔도 돼요. 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죠.”
목소리에서 나이에 맞지 않은 시크함이 느껴져서 나는 당황하며 대답했다. 오서연 씨 같은 연기가 아니라 진짜 차가운 도시 여자가 될 것 같은 재목이다.
어차피 옷차림을 보면 학생이라는 것도 충분히 알 수 있었고, 학교 로고를 보면 그녀가 신월 여자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연성화의 소개는 거기서 끝나고 넘어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가장 처음에 도착했던 초딩이다.
“내 이름은 김정수! 성월 중앙 초등학교 3학년! 좋아하는 건 게임이랑 축구고, 싫어하는 건 엄마 잔소리랑 반찬으로 나오는 호박…….”
김정수는 어린아이 특유의 활발함을 뿜어내며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쏟아내고 있었다.
간결하게 끝낸 연성화와 달리 이쪽의 자기소개는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쯤 하면 되었다고 말하려고 할 때, 나보다 먼저 녀석의 말을 끊은 건 테이블 위에서 울리는 진동벨이었다.
부우웅!!
요란하게 울어대는 진동벨은 우리가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는 소식을 알려주고 있었다.
커피를 가져오겠다며 내가 몸을 일으켰고, 레테라가 돕겠다며 뒤를 따라서 나섰다.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얘기까지 나오기 시작한 테이블 쪽을 뒤로 하고, 나와 레테라는 카운터 쪽으로 향했다.
그곳을 향하면서 나는 레테라에게 물었다.
“네가 보기엔 어때?”
“빙고인 거 같아요. 일단 저들 중에선 캐릭터는 없어요. 대신 마지막 두 사람이 도착했을 쯤에, 어디선가 보통 인간의 것과 다른 기척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그때 그들은 긴장된 반응을 보였던 것이리라.
두 개의 쟁반 위에 나뉘어서 담긴 커피와 도넛 등을 직원에게서 건네받은 뒤, 레테라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건 분명 저희의 것과 가까운 기척이었어요. 캐릭터가 분명해요.”
“……캐릭터가 나타났다는 건, 분명 플레이어가 온 것은 확실하네.”
캐릭터는 어디 있을까.
가게 안 손님 중 하나인 척 몸을 감추고 있을까. 아니면 다른 곳에 있는 걸까.
플레이어는 누구일까.
모임에 참가한 세 사람 중에 있는 걸까. 아니면 결국 참가하지 않은 두 사람이 어딘가 뭔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걸까.
아직은 무엇 하나 속단하기엔 일렀다.
“내가 참가자들의 속을 떠볼게. 그때까진 절대 경거망동 하지 마.”
“네, 오라버니.”
고개를 끄덕이는 레테라와 함께 우리는 쟁반을 들고 원래 있던 테이블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기분이 든 것은, 긴장 때문에 일어난 내 과민반응이었을까?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직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