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58화 (58/173)

〈 58화 〉 오프라인 모임 ­ 2

* * *

“그럼 흑룡의 둥지 최심부까지 진입해본 겁니까?”

“네. 결국 거기에서 흑룡에게 들켜 즉사당하긴 했지만요.”

“아무리 그래도 놀랍군요. 사대룡의 둥지는 그들의 강력한 수하 몬스터가 지키고 있어서 안쪽에 도달하기도 전에 토벌대 중 절반이 전멸한다는 곳인데, 거기까지 홀로 도달하다니요.”

“거의 얍삽이나 다름없는 방법이었는데요 뭘.”

내가 들려주고 있는 건 과거 사대룡 중 하나인 흑룡의 둥지에 레반으로 진입했을 때의 경험이었다.

흑룡 공략법을 연구하고 싶었던 나는 그곳의 몬스터들을 상대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그들이 흑룡에 의해 하나로 통솔되는 집단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몬스터들은 둥지를 배회하며 침입자를 공격하지만, 그것은 경비라기 보단 영역 순찰 쪽에 가까웠다.

둥지 내부의 영역을 수하 몬스터들이 차지하고 앉은 것이다. 그러다 영역을 침범하는 자가 나타나면 그것이 인간이든 같은 둥지의 몬스터이든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

흑룡의 둥지에서 자신의 영역을 주장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지만, 이 드래곤은 의외로 관대한 건지 이놈들을 제멋대로 굴어도 놔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몬스터들도 흑룡의 대한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진 둥지 최심부만큼은 침범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흑룡이 머리 위를 날아갈 때면 경외심을 표하듯 바닥에 납작 엎드리는 모습까지 보이곤 했다.

그런 내 목격담을 전해들은 배진환 씨는 놀랍다는 듯 작은 탄성을 흘렸다.

“굉장하군요. 여정에서 돌아와 둥지 안을 날아가는 흑룡과 그것을 보며 일제히 고개를 조아리는 몬스터들이라니. 상상만으로도 굉장한 광경이 펼쳐지는 것 같습니다. SoR은 이런 요소가 정말 매력적인 게임이었는데, 이렇게 사라지지 정말 아쉽네요.”

추모회의 성격이 강한 모임답게 배진환 씨는 아쉬움을 들어내었다.

연성화는 아무 말 없이 마스크 밑으로 꽂은 빨대로 커피를 마시고 있었지만, 이야기 자체엔 흥미가 있는지 이쪽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그녀도 게임 유저로서 흑룡의 둥지 이야기에 흥미가 있는 모양이다.

흑룡의 둥지의 탐험했던 당사자인 레반이 괜스레 우쭐거리고 있었다.

레테라는 자신이 광룡의 둥지에 갔던 일도 어서 이들에게 이야기해달라는 듯 간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모임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현실에서 캐릭터를 얻은 플레이어를 찾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들과의 대화는 꽤나 재미있는 것이었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공감할 거리도 많고, 이야기할 거리도 많아서 그런 걸까.

이 맛에 사람들이 모임을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플레이어 문제 때문이 아니더라도 가끔 이렇게 모임을 갖는 것도 괜찮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젠장.’

옛날에도 이렇게 즐겁게 이야기 하던 녀석이 있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속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레아 때도 그렇고, 최근은 정말 그 녀석이 자주 떠오른다.

그 녀석도 이 게임에 참가했을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그 사건을 겪은 뒤, 레반과 레테라로 SoR 세상을 돌아다녔지만 결국 그 녀석의 캐릭터는 단 한 차례도 보지 못했다. 아마 게임을 접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녀석도 찾아내야 하는 걸까.

레아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그럴 필요가 있겠지만 별로 좋은 꼴을 볼 거 같진 않다.

애초에 게임에서 만난 게 전부인 녀석을 어떻게 찾아내라고.

이어지는 주변의 수다 속에서 잠시 떠오른 골칫덩어리에 주의를 빼앗기고 있을 때였다.

“흑룡과 만나면 뭐해. 결국 졌잖아. 졸라 약하네.”

지루하다는 듯 테이블에 얼굴을 문대고 있던 김정수가 말하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초딩이 하는 말이었지만…… 아니, 오히려 초딩이었기에 더욱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말이었다.

잠시 방황하고 있던 주의를 단숨에 그곳에 집중하도록 만들 정도로.

자고로 게이머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뭔가?

얼굴 못 생겼다는 소리는 참아도 게임 못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빡이 도는 건 만국공통이 아니던가?

게이머는 아니지만, 탐험의 당사자였던 레반도 신경 거슬리는 건 매한가지였다.

표정이 가려져 보이지는 않지만, 어린아이만 아니었어도 당장에 일을 저질렀을 분위기다.

“꼬맹…… 아니, 정수야? 너 사대룡과 싸워본 적 있니?”

“아니. 하지만 싸우면 내가 이길 걸?”

“왜?”

“내 캐릭터는 엄청 세니까!”

자신감 넘치는 말에 우리들은 쓴웃음을 흘렸다.

그 자신감이 명백한 무지에서 나온 것이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최종 레이드 컨텐츠라고 불리며 SoR가 서비스 종료되는 그날까지 단 한 사람도 잡지 못했던 게 바로 사대룡이다.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대형 길드와 파티원들이 도전했다가 쓰디쓴 패배를 맛봐야 했는가.

그런 녀석들을 이길 수 있는 캐릭터가 나타난다면 오버 파워로 인한 밸런스 붕괴로 개발자에게 항의해야 될 판이다.

그 물론 그 개발자이자 운영자인 율이라면 그저 재미있겠다는 이유로 그 캐릭터를 사냥하기 위한 레이드가 벌어지도록 내버려둘 것 같지만.

“그래서? 그 강한 네 캐릭터의 직업이 뭔데?”

“비밀!”

이 애새끼가?

“내 캐릭터의 직업은 나만 알고 있을 거야! 하지만 아무튼 엄청 강해!”

과연 어린애는 논리적으로 대하기 힘들다.

저런 상태라면 무슨 말로 사대룡을 이길 수 없다고 설명한들 ‘응, 내가 더 강해’로 일관할 게 뻔했다.

‘……잠깐.’

거기에서 나는 초딩과 입 아프게 입씨름 하는 것보단 이 상황 자체를 이용하기로 했다.

이왕 캐릭터와 직업 얘기가 나오지 않았는가.

다른 두 사람의 캐릭터에 대해 자연스럽게 물어볼 기회였다.

정보란 많을수록 좋은 법. 누가 플레이어인지 모르는 이상 캐릭터에 대해서라도 파악해두는 게 좋았다.

“다른 사람들은 캐릭터로 어떤 걸 키웠나요?”

그 물음에 배진환 씨가 별로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저는 ‘마법사’ 캐릭터를 키웠습니다. 적이 다가오기 전에 큰 마법 한 방으로 쓸어버리는 재미가 쏠쏠 했죠.”

배진환 씨가 답하고, 다음은 연성화가 빨대에서 입을 떼며 말하였다.

“‘성직자’요.”

여전히 시크함이 느껴질 정도로 짧은 대답이다. 좀 더 캐릭터에 대해 언급해주면 좋겠다만.

어떻게든 대화의 물꼬를 틀기 위해 나는 평소에 하지 않던 활발한 리액션을 보이며 그녀의 말에 반응했다.

“아~ 성직자! 파티 플레이 때 없어선 안 되는 캐릭터죠. 파티원들을 회복시키고 버프를 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데요? 남을 도와주는 걸 좋아하시나 봐요?”

“파티 플레이를 싫어해서 솔플이 가능한 성직자를 키웠어요.”

“…………아, 그렇군요.”

갑자기 할 말이 사라졌다.

솔플을 할 거면 왜 직업을 성직자로 한 거야? 다른 좋은 직업도 많았을 텐데?

연성화는 말해줄 생각이 없는지 다시 마스크 밑으로 빨대를 찔러 넣으며 커피를 쪼르륵 빨아마셨다.

아무튼 정리하면 배진환 씨가 ‘마법사’, 연성화가 ‘성직자’, 김정수는 ‘불명’인가.

일단 김정수 이 꼬맹이 쪽은 거론할 가치는 없을 거 같고, 연성화가 공격적으로 키운 성직자도 일단 본래는 전투 직업이 아니다보니 일반적인 전투 직업 보단 위험도는 떨어졌다.

역시 현실에 나올 경우 가장 위험도가 높은 건 마법사 캐릭터겠지.

원거리에서 쏟아지는 강력한 마법들은 근접 전투 캐릭터들에겐 큰 위협이다.

지금 카페에 앉아 있는 이 상황에서 원거리 저격을 하는 것도 가능했다.

배진환 씨가 플레이어가 아니길, 설사 플레이어더라도 나쁜 마음을 품은 사람이 아니길 간절히 빌어본다.

“요현 씨는 무슨 캐릭터를 키우나요?”

“응?”

뜻밖에도 가볍게 말문이 트인 배진환 씨가 아닌 성연화 쪽에서 질문이 들어왔다.

설마 저쪽에서 먼저 질문해 올 줄은 몰랐다.

의외라는 그녀 쪽을 돌아보자 성연화는 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냥 궁금해서요.”

“아, 네…….”

그녀가 무슨 의도인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저쪽도 대답해줬으니 나도 대답해야겠지.

“전 전사 캐릭터와 도적 캐릭터를 동시에 키우고 있어요.”

혹시 몰라서 레아의 존재는 숨기고 말했다. 굳이 이들이 알 필요도 없을 테지만.

그 말에 배진환 씨가 놀란 듯 말했다.

“오오! 근력캐와 기량캐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직업이군요. 운용 방식이 달라 둘 다 키우기 힘드실 텐데. 보아하니 근접 전투를 상당히 즐기시는 모양이군요?”

“하하……. 그렇죠, 뭐.”

이런 쪽 칭찬엔 익숙하지 않은 내가 쑥스러움을 내쫓기 위해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둘 중 누가 더 강합니까?”

느닷없이 폭탄발언이 떨어졌다.

순수한 호기심이 담긴 얼굴로 물은 배진환 씨는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폭탄을 떨어뜨렸는지 모를 것이다.

당장 내 양 옆에 앉은 근력캐와 기량캐의 대표주자들이 경직되지 않았는가.

그것을 알아차린 건 그들과 붙어 있는 나뿐이었다.

“어……. 그게…….”

내가 어떻게든 이 사태를 벗어날 말을 찾으려 두뇌를 풀회전 시키고 있을 때였다.

옆에서 갑자기 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레반의 웃음소리였다.

“하하하! 그거야 당연히 전사 캐릭터가 아니겠습니까? 한 방 한 방 강력한 일격으로 적들을 때려눕히고, 보스의 체력바조차 쭉쭉 달게 만드는 쾌감! 휘적휘적 움직이며 모기 무는 듯한 자잘한 공격밖에 못하는 도적 따윈 절대 못 따라오죠!”

“오! 이만 씨도 전사 캐릭터를 키우십니까?”

식은땀을 흘리는 내 상태는 아는지 모르는지, 이 사태의 원인제공자는 그저 레반이 키우는 캐릭터를 알게 되었다고 좋아하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엔 레테라 쪽에서 밝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니요. 역시 도적 캐릭터죠. 적들 사이를 누비며 펼쳐지는 현란한 칼질. 뼛속까지 파고드는 일격의 연속으로 보스의 체력이 갈려나갈 때의 쾌감은 잘 모르시나 봐요? 무식하게 달려들다 때리는 것 밖에 모르는 전사라 그런 건가?”

“어, 음……. 이, 이태나 씨는 도적 캐릭터를 키우시는 겁니까?”

그제야 배진환 씨는 분위기가 요상하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레반과 레테라의 사이에 살벌한 기운이 번지려고 할 때, 그것을 끊어버리듯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전!! 둘 다 좋습니다!!”

“요, 요현 씨?”

뜬금없는 외침에 배진환 씨를 비롯한 연성화와 김정수까지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그들을 향해 어서 이 논제를 끝내기 위해 아무 말이 가져다가 붙이며 쏟아내었다.

“먼 옛날 황희 정승의 물음에 대답했던 농부도 한날 짐승도 비교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데, 어찌 제가 아끼는 두 녀석들을 비교하겠습니까! 둘의 차이가 있음을 인정할지언정, 그것을 비교하며 누가 더 낫다는 말은 하진 않을 겁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그 두 녀석 다 제 자식 같은 녀석들입니다! 그리고 남과 비교하며 자식을 키우는 건 가장 자식을 망치는 잘못된 방법이란 말입니다!!”

“형님…….”

“오라버니…….”

나도 이젠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다만 마음만은 확실히 전해진 것인지, 당장이라도 싸울 듯 했던 레반과 레테라가 다툼을 멈추고 감동을 먹은 듯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아, 알았습니다! 더 이상 묻진 않을 테니 진정하세요! 사람들이 다 보고 있지 않습니까?”

“……아.”

배진환 씨의 말을 들으며 나는 자신의 처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너무 다급한 나머지 음량 조절에 실수했다.

카페에 시선이 이쪽으로 몰리는 게 느껴졌다. 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도.

“뭔가 이상한 사람이 있는데?”

“어? 지난번에 길가에서 여자의 가슴보단 엉덩이가 더 낫다고 외치던 그 사람 아니야?”

“확실히 좀 닮은 거 같긴 하네.”

“야, 야. 눈 마주치지 마. 보아하니 정신 이상한 놈 같아.”

“…….”

미친놈 바라보는 듯한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도저히 얼굴을 보일 수가 없어 두 손으로 얼굴 덮은 나를 보고 배진환 씨가 황급히 말을 열었다.

“너,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누구나 가치관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걸 인정하는 게 중요한 거지요!”

“……꽤 감동적인 연설이었어요.”

정신적 충격을 입은 듯한 내 모습이 안 되어보였는지 과묵한 연성화까지 입을 열어 나를 위로할 정도였다.

“형아, 어디라도 아파?”

김정수 이 녀석은 아이다운 돌직구로 아픈 곳을 찔러왔지만 말이다.

아…… 집에 가고 싶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