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게임 마스터로서의 존재 2
* * *
한쪽 무릎이 꿇린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 그것만으로도 지금 요현이 자신의 몸에 맹독처럼 퍼지는 탈력감을 이겨내기 위해 발악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털썩.
요현의 몸은 결국 앞을 향해 쓰러진다. 소리조차 남기지 못한 채.
모습은 몸을 지탱하던 실을 끊어져버린 인형 같았다.
그의 심장에 박힌 단검 하나가 그의 실을 모조리 끊어내 버린 것이다.
“자, 그럼…….”
쓰러진 요현에게서 관심이 식은듯 율은 고개를 돌렸다.
서류 하나를 처리했으니 다른 서류에 눈을 돌리는 사무원 같은 건조함만 그의 눈빛에 자리했다.
그렇게 뒤를 돌아본 율은…….
……자신을 덮쳐오는 흉악한 악귀의 형상 두 개를 마주하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회색의 공간을 빠져나온 레반과 레테라의 일격이 날아와 박힌다.
레반의 주먹은 머리에, 레테라의 다리는 목에 틀어박혔지만 율은 그 자리에서 단 1mm의 미동조차 없었다.
“벌써 바벨 그래비티를 빠져나왔어? 얌마. 그거 중력 100배 거든? 중력 100배면 손오공도 처음엔 쩔쩔매던 무게라고.”
율은 놀람 반, 감탄 반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 특유의 가벼움이 섞인 말은 조롱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조차 레반과 레테라의 귀에 닿지 않았다.
요현의 심장에 칼이 박히는 걸 본 순간, 그들의 이성은 더 이상 한 조각도 남아 있지 않았지.
콰가가가가가아아아아앙!!!!!
그들의 일격이 쉴 새 없이 떨어진다.
평소에도 짐승에 가까운 느낌을 주는 그들이었지만,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쏟아내는 살기 넘치는 폭력의 향연은 그들의 모습을 더욱 짐승과 다름없게 만들었다.
그 여파만으로 땅은 지진이 일어난 듯 흔들리고 벽에 균열은 식물의 뿌리가 뻗듯이 뻗어갔다.
그러나 두 개의 폭력 사이에서 갈려나가면서 율의 모습은 옷깃 하나조차 흐트러지지 않았다.
휘몰아치는 태풍처럼 모든 걸 부숴버릴 듯한 그 공간에서 그가 서 있는 자리만이 태풍의 눈이었다.
“어떤 상황이건 폭력은 좋지 않다고. 대화로 풀자니까?”
스스로도 비웃음이 나올 만큼 모순적인 말을 내뱉은 그가 양손을 들었다.
웅크린 중지를 엄지가 지그시 누른 모양새. 딱밤이었다.
지난 번 일격에 레반과 레테라는 날려버린 그것이다.
그들이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든 이마에 손가락을 튕기는 그 간단한 동작을 피할 순 없었다.
이번 역시 그렇게 되었다.
빠악!!!!
쏟아지는 폭력을 무시한 채 그들의 이마로 다가간 율의 손가락이 가볍게 튕겼다.
절대 멈추지 않을 거 같았던 공격이 거짓말처럼 끊기고 그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눈으로 쫓기 힘든 속도로 날아간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골목길을 좁게 한정하고 있던 양옆에 건물 벽이 큰 소리와 함께 허물어졌다.
결국 그때와 전혀 달라진 게 없는 양상이었다. 제 3자의 시점으로 본다면 그런 감상을 내뱉으리라.
그러나 정작 율의 감상은 달랐다.
“어쭈구리?”
그는 제법이라는 듯 두 눈을 빛내며 무너진 잔해 속에서 몸을 일으키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이번에도 두 사람은 딱밤을 피하지 못했다. 아예 피할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튕기려고 하기 직전, 오히려 율의 손가락에 머리를 들이박은 것이다.
물론 손가락 실린 위력은 무시무시했지만, 제대로 딱밤을 맞았을 때의 비하면 피해는 현저히 적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에 비하면 성장은 했구나, 멍멍이들아.”
콰아아앙!!
율의 칭찬은 듣지도 않고 두 사람은 다시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아까와는 움직임이 어딘가 달랐다.
그들의 의도를 눈치 챈 율은 왼쪽발과 오른팔만을 움직였다.
퍼어어어억!!!
율의 등 뒤를 노리며 덮쳐들었던 레반의 얼굴에 손등이 박힌다.
낮은 자세로 율을 지나쳐가려던 레테라의 옆구리에 발이 틀어박히며 또 다시 몸이 날아갔다.
명백히 율 하나만을 죽이려고 하던 조금 전과 달리, 방금 둘의 행동은 역할이 나눠져 있었다.
레반이 율의 움직임을 봉하려는 듯한 움직임, 레테라가 그런 율의 옆을 빠져나가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일격 하나로 그들을 날려버리며 그들의 시도를 박살내버린 율은 바닥에 쓰러진 요현에게 시선을 향했다.
앞으로 고꾸라진 그의 등에서 미약한 기복이 일어나는 게 보였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모습을 봤구나? 맞아. 확실히 이 녀석은 죽지 않았어. 당장 포션을 쓴다면 살릴 수 있을지 모르지. 그런데 그것을 내가 언제 허락했지?”
툭.
율의 발이 쓰러진 요현의 등 위에 올려졌다.
실력 있는 축구 선수가 공 위에 발을 얹어 그 공의 주도권을 과시하듯이. 원한다면 빼앗아 가 보라는 듯이.
각각 얼굴과 옆구리를 손으로 누르고 있는 레반과 레테라가 율을 노려보았다.
다시 눈으로 쫓기 힘든 속도로 달려드는 그들의 모습을 율은 즐겁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뛰어나구나? 캐릭터의 충성심은 플레이어가 거기에 쏟았던 애정에 비례하지.”
위, 아래, 양옆, 정면과 뒤.
이미 중력의 방향을 따지는 것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정신없이 움직이는 그들의 공격이 모든 방향에서 쏟아졌다.
목적은 단 하나. 요현의 구출이었다.
“물론 전부 그런 건 아니야. 어디에서나 예외는 있지. 방치된 기간이 길면 잔뜩 토라진 나머지 반항적으로 변하기 쉽거든. 너희 집나간 첫째처럼 말이야.”
율은 태평하게 말을 이어가면서 몸을 움직였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레반과 레타라의 공격을 막아내고, 흘리고, 붙잡아 반대쪽으로 던지고, 심지어는 둘의 공격을 일부러 맞부딪치도록 유도했다.
아무리 공격을 해도 데미지가 들어가기커녕 빈틈조차 드러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신체엔 점차 데미지가 쌓이는데 비해 율은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마치 놀고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이것은 놀이였다.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두 사람을 명백히 인간이 아닌 존재가 하나가 가지고 놀고 있었다.
요현이 율을 때릴 때마다 느꼈던, 오히려 자신의 정신이 깎여나가는 기분을 지금 레반과 레테라도 체감하고 있었다.
이길 수 없는 건 자신들이 게임 캐릭터고 그가 게임 마스터이기 때문이 아니다.
율의 존재는 근본부터가 뒤틀려 있다는 어렴풋한 예감을 두 사람은 느꼈다.
쓰러뜨리고 자시고를 떠나 이건 아예 싸운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듯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주저앉을까 보냐!!”
절망에 몸을 감싸는 와중에도 더욱 투지를 불태운다.
율의 반격에 튕겨져 나간 레반이 악을 지르며 자세를 잡고 두 팔을 바닥으로 내리쳤다.
콰아아아아앙!!!
“오호?”
머리 좀 썼다며 율이 감탄했다.
레반의 바닥을 내리치자 갑자기 율이 디디고 서 있던 바닥이 위로 치솟은 것이다.
그들은 율에게 반격 당해 날아가면서도 그냥 쓰러지지 않았다.
바닥을 거대한 타원의 형태에 가깝게 부수며 지반 자체를 시소처럼 흔들리게 만들었다. 그 흔들리는 지반의 한쪽 내리치자 반대쪽에 서 있던 율이 공중에 붕 뜨는 건 당연했다.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들어 올려진 지반을 걷어찬 레테라가 그것을 산산이 깨부수며 공중에 있는 율에게로 날렸다.
날아오는 파편에 맞은 율의 몸이 더욱 공중으로 치솟았고, 그것은 그가 요현에게서 멀어졌음을 의미했다.
아무리 율이라도 저 위치에서 바닥에 내려올 때까지는 몇 초 이상을 소모할 것이다.
그 사이에 요현을 구해야 한다.
레테라는 포션병을 꺼내들고 요현에게로 몸을 날렸다.
포션을 일일이 입으로 흘러 보내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자신이 포션을 마셔 입안에 머금은 뒤 요현의 입으로 옮기려 하는 레테라였지만.
“늦었어.”
“……?!!”
분명 공중에 있었을 터인 율은 마치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는 듯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남녀의 키스 장면을 짓궂게 구경하며 방해하는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빠아악!!
어느새 날아온 지도 모르는 딱밤이 레테라의 이마를 후려쳤다.
그 충격으로 입에 머금고 있던 포션액이 뿜어지며 요현의 얼굴로 떨어졌긴 했지만 어느 것 하나 그의 입안으로 흘러들어가지 못했다.
결국 포션 전달에 실패한 것이다.
우당탕탕!!
분한 표정을 짓지도 못한 채 딱밤에 맞고 날아간 레테라는 레반과 부딪치며 몸을 굴렀다.
데미지가 큰 듯 누구 하나 바로 일어나지 못하는 그들을 두고 율은 천천히 걸어가며 말했다.
“난 말이야, 인간을 좋아해.”
레테라가 구하지 못한 요현의 몸을 가볍게 넘으며 걸음을 옮기는 그가 계속해서 말하였다.
“더러운 인간도 좋고, 깨끗한 인간도 좋지. 나태한 인간, 성실한 인간, 이기적인 인간, 이타적인 인간도, 악마 같은 인간, 성인군자 같은 인간, 아무거나 상관없어. 인간들의 삶은 멀리서 보면 크고 작은 불꽃들이 피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모습이야. 마치 불꽃놀이 같아서 자꾸만 보고 싶거든. 그런데 불꽃은 역시 어둠 속에서 피어나야 더 제맛이잖아?”
““…….””
레반과 레테라는 아무 말 없이 몸을 일으켰다.
승산을 전혀 찾을 수 없는 이 상황에서도 그들의 두 눈에 떠오른 빛은 전혀 사그라들지 않았다.
역시 마음에 든다는 듯 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끔찍하게 쌓인 절망 속에서 결코 꺼지려 하지 않고 스스로를 불태우며 맞서는 너희들의 모습은 정말 멋지다니까. 내가 이래서 너희들을 자꾸만 괴롭히고 싶어져.”
큭큭 거리면서도 어딘가 만족한 듯 웃는 율.
그런 그의 허리를 누군가의 손이 감싼 건 그때였다.
“세상은…….”
“응?”
기우뚱 하고 뒤로 올라가는 그가 멍한 소리를 내뱉었다.
“그런 걸…….”
레반과 레테라가 경악한다.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율의 허리를 붙잡고 들어 올린 손은 그대로 그의 몸을 뒤로 넘겼다.
“변태적인 욕망이라고 하는 거다, 망할 자식아아아아아아아아!!!!!!”
쿠우웅!!!
분노가 서린 외침을 지르며, 요현은 허리를 젖히며 율의 머리를 땅바닥에 내려찍었다.
완벽한 저먼 스플랙스를 선보이며 부활한 요현의 심장 부근엔 여전히 예의 단검이 뿌리까지 깊숙이 박혀 있었다.
***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실제로 내 신체는 내 죽음을 감쪽같이 믿었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게 단검은 정말로 내 심장에 박혀 있으니까. 뼈까지 뚫고 너무 깊숙하게 박힌 나머지 빠지지도 않았다.
저항할 수 없는 공포와 그 때문에 말을 듣지 않은 신체는 내 의식마저 빼앗아갔다.
그랬던 내가 다시 멀쩡히 살아서 눈을 떴다.
계기는 내 얼굴로 쏟아진 포션액 때문이었다.
포션이 효과가 있던 게 아니라, 축축한 느낌에 놀라 깨어난 것이다.
다시 정신을 차린 난 내 몸 상태에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뛰고 있다.
지금도 구불구불한 단검에 관통 당해 있으면서도, 멀쩡하게 팔딱팔딱 뛰며 본래의 충실한 신체 활동을 이어가고 있던 것이다.
이 사실이 어떻게 어이없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말로 칼에 찔린 듯한 찌릿한 통증이 가슴 부근을 맴돌고 있는데도 피 한 방울조차 나오지 않았다.
거기서 나는 확신 했다.
인간을 놀래키거나 괴롭히는 걸 즐기는 이 게임 마스터가 뭔가 술수를 부렸다는 걸.
“그야 물론 술수야 부리긴 했지. 내가 자기의 권위가 손상되었다고 생각되면 미치고 날뛰는 폭군도 아니고, 고작 콩벌레 정도의 녀석이 발바닥에 전력으로 몸을 부딪쳐온 정도로 죽이려 하진 않아. 애초에 아까운 게임 참가자를 내가 왜 죽이겠냐고.”
“콩벌레…….”
스플랙스에 당했지만 혹조차 나지 않은 머리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하는 율.
그런 그에게 콩벌레 비유당한 나는 이젠 분노조차 끓어오르지 않았다.
분노를 쏟아내서 뭔가 바뀐다면 얼마든지 하겠지만, 이 녀석은 단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 오히려 내 기력만 바닥날 뿐이었다.
우주가 멸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놈은 변함이 없지 않을까.
“그래도 끓어오르는 머리를 진정시키지 못하는 것 같길래 장난 좀 쳐봤지. 어때? 잊지 못할 경험이었지?”
“……하아.”
놈과 말싸움 하는 것도 이젠 지쳤다.
피곤한 한숨을 쉰 나는 여전히 내 가슴에서 떡하니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단검의 손잡이를 가리켰다.
“그럼 이건 뭐냐? 진짜로 찔린 느낌이었는데.”
“찔린 느낌이 아니야 진짜로 찔린 게 맞아.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찔렀으면 넌 죽었어.”
그렇게 말하며 손을 한 번 내저었다.
그 순간 내 가슴에 박혔던 단검이 녀석의 손에 빨려들 듯 뽑혀나갔다.
뽑혀나갈 때의 작은 통증이 있었다는 것 빼곤 특별히 몸에 남은 이상이나 흉터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옷조차 찢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치 레반과 레테라의 공격을 받고도 상처는커녕 옷 하나 찢어지지 않던 율의 모습과 같지 않은가.
“대체 뭐야, 그거? 마법이냐?”
“아니.”
뽑아낸 단검을 휘리릭 돌리는 율이 말했다.
“‘마법’이 아니라 ‘기술’. 손장난과 비슷한 거지. 마음만 먹는다면 너도 쓸 수 있을걸?”
“뭐라고?”
뜻밖의 말에 놀라는 나에게 율은 뒷말을 첨가한다.
“뭐, 대신 높은 확률로 목숨이 날아갈 테지만.”
“…….”
뭔 만화의 필살기냐, 그거.
내가 할 말을 잃고 있을 때, 율은 휘리릭 돌리던 단검에서 흥미를 잃은 듯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그럼 진정됐으면 난 간다.”
“잠깐 기다려, 새끼야!!”
그대로 뻔뻔하게 등을 돌리고 가버리려는 율의 모습에 다시금 사라졌던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뭘 멋대로 끝내려 하고 있어!! 배진환 씨는 어디로 간 거야!!”
그렇다. 그의 죽음이 오늘 일어난 율과의 갈등의 본격적인 원인이었다.
율은 떠나려는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 인간의 시체라면 다른 장소에서 발견되면서 그 죽음이 알려질 거야. 물론 범인을 찾을 일은 없겠지만.”
“이 새끼가…….”
“무고한 사람이 죽는 게 불만이라면 나를 향해 따지는 건 시간 낭비야. 나는 게임 마스터이자 길가에 돌멩이 같은 간섭불가의 오브젝트. 돌멩이에 분노해 봤자 바보 같은 일이지. 그보다는 사람을 거리낌 없이 죽이는 쪽을 잡는 게 문제 해결법 아니겠어?”
특유의 악동 같은 미소를 지은 율이 다시 등을 돌리려고 하자 내가 가로 막았다.
“잠깐! 그럼 그 놈에 대해 말해줘!”
“그건 네가 스스로 찾아보라니까.”
“힌트 정도는 줄 수 있잖아! 내 가족들을 이 꼴로 만들어놓고 그 정도도 못해 주냐!!”
내가 손으로 가리키는 장소엔 부상을 입은 채 앉아 있는 레반과 레테라가 있었다.
나는 큰 문제없이 끝났지만, 그 악질적인 장난에 율에 대한 적개심이 상승한 듯 두 사람은 지금도 흉흉한 시선을 율에게 던지고 있었다.
극소량의 양심은 있었는지, 어디 하나 성한 곳이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의 모습에 율은 ‘너무 심하게 놀았나?’ 하고 중얼거리고 나를 돌아보았다.
“그래 좋아. 그럼 약간의 정보만 건네주지. 너도 예상했다시피 살인을 하고 튄 그 암살자의 목적은 순전히 입막음이었어. 왜냐? 죽은 인간은 플레이어를 알고 있었으니까. 자기의 존재가 알려지면 손해거든. 서바이벌 게임의 감각이야. 서바이벌 게임에선 일단 정보 차단은 필수잖아? 그래서 죽인 거라고.”
“…….”
“세상엔 너처럼 똑 부러진 꼬맹이만 있는 게 아니야. 세상 모든 걸 게임 감각으로만 바라보는 꼬맹이도 있거든. 그놈은 그런 타입이야.”
그래서 재미있는 거 아니겠냐며 율이 입꼬리를 올렸지만 나는 동의 못하겠다.
그런 인간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얼마든지 동의하겠다만, 그것을 재미있게 느끼는 율의 시선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뭐, 그쪽 꼬맹이는 아직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한 디메리트가 없다는 걸 아직 모르지. 그래서 경찰에게 들킬까봐 조심조심 움직이는 모양이지만, 디메리트 없음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제약이 없어질 거야. 그럼 뒤부터 볼만 하겠지? 그걸 원하지 않는다면 그전에 빨리 찾아내서 끝장을 보라고.”
응원해준다는 듯이 말하는 율은 손을 흔들었고, 그대로 사라졌다.
주변 풍경에 녹아든다거나,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거나, 텔레포트 마법을 쓴다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그냥 사라진 것이다.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기분 나쁜 여운만을 남긴 채.
나를 비롯한 레반, 레테라는 한동안 그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