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의문스러운 메시지 1
* * *
오프라인 모임의 결과는 최악이었다.
위험한 플레이어에게 내 존재가 노출된 것으로 모자라 여기에 관계없는 사람 한 명까지 죽고 말았다.
지금 우리의 힘으론 율을 어떻게 해서 이 게임을 강제로 끝내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 하다못해 거리낌 없이 사람을 죽이는 플레이어만큼은 찾아서 막아야 한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바로 컴퓨터를 켰다.
오프라인 모임을 열기 위해 내가 올린 게시글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참가희망을 보인 건 다섯 명. 난 그들에게 답글로 시간과 장소를 알렸어. 비밀댓글이었으니까 타인이 볼 경우는 없지. 그리고 그 중 모임에 나온 배진환 씨는 누군가에 대리였고.’
대리를 부탁하는데 직접 게시글로 가 글을 남기라고 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너무 수상해보이니까.
배진환 씨를 죽인 범인은 모임이 벌어지는 장소를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다섯 아이디 중 범인의 것이 있을 가능성은 높다. 내 비밀 답글로 장소를 확인한 뒤 대리를 부탁하며 배진환 씨에게 장소를 알려준 것이다.
그 아이디명 목록은 이러했다.
‘간다간다뿅간다’, ‘플라즈마’, ‘갑돌이’, ‘나그네12278’, ‘나그네19402’
뒤에 있는 두 아이디는 아이디명을 따로 설정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생기는 디폴트 네임이다. 나그네라는 글자 뒤에 몇 번째로 가입한 회원인지 숫자가 나타났다.
‘이 중에 그 암살자의 주인이 있단 말이지…….’
‘간다간다뿅간다’ 아이디의 주인은 이미 알고 있다. 김정수라고 하는 초딩이다.
직접 만나본 바로는 일단 플레이어는 아닐 거라고 판단되었다. 초등학생이 플레이 타임 500시간을 맞추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설사 내 예상을 깨고 이 녀석이 플레이어라고 하더라도 이 녀석이 범인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건방진 녀석이긴 하지만 누군가를 죽이면서까지 자기 위치를 고수할 녀석이었다면 모임에 나오지도 않았고, 아이디명도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날 함께 나온 연성화라는 여학생의 경우는 애매했다.
원래 말이 적은 건지, 아니면 뭔가 감추고 있는 건지 그날 대화에서는 자꾸 말을 아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도 플레이어일까? 아니면 배진환 씨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
‘연성화의 아이디는 어느 거지?’
일단 여성이 쓸 듯한 아이디명은 없었다.
직접 만나본 그녀의 인상으로는 굳이 아이디명을 짜기보단 디폴트 네임 그대로 쓸 거 같긴 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만났을 때 아이디 먼저 물어볼 걸 그랬다.
‘모임에 나오지 않은 두 명의 아이디는 어느 거야?’
한 명은 대리를 썼으니 실질적으로 나오지 않은 건 세 명이었다. 그 셋 중 하나가 범인이다. 그런데 그들의 아이디를 특정할 수 없다.
아이디의 주인을 특정 짓기 위해 목록에 적힌 아이디를 하나하나 검색해보았다.
그들이 올린 게시글을 찾아보았지만 특별히 나오는 건 없었다. 회원가입을 한 날짜는 지난주에서 한 달 전 사이로, 대부분 최근이다.
다만, 아이디 ‘나그네12278’만은 2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회원가입만 해놓고 활동을 게시판 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미치겠네……. 솔직히 말하면 전부 수상한데 파헤칠만한 단서가 하나도 없잖아.”
게시판 관리자에게 연락해서 이들의 회원 정보를 달라고 하면 줄까? 신고나 안 당하면 다행일 거 같다만.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나는 의자에 몸을 묻히고 컴퓨터 모니터 앞에 거칠게 발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띠링.
“……응?”
기계적인 알림음 소리.
휴대폰은 아니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소리였다.
책상 위에 올린 발을 옆으로 치우고 모니터를 확인했다.
모니터 한쪽 구석에서 알림창이 하나 떠올라 있었다. 이쪽 게시판 이용은 처음이다 보니 이렇게 소리 내며 알림을 전할 줄은 몰랐다.
「쪽지가 도착했습니다.」
“쪽지?”
서둘러 다리를 내리고 앉은 자세를 바로 했다.
쪽지라니, 이 타이밍에? 누가?
알림창을 누른 나는 쪽지 목록으로 이동했다. 회원가입을 한 지 얼마 안 되다 보니 받은 쪽지 목록에 있는 건 단 하나뿐이었다.
거기에 적힌 보낸 이의 이름을 보는 순간 나는 마우스를 멈췄다.
「보낸 이: 갑돌이」
갑돌이.
범인으로 의심되는 목록에 있던 그 아이디였다.
용의자 중 한 명이 갑자기 쪽지로 연락해왔는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누구지? 혹시 연성화?’
오늘 모임이 즐거웠다는 식의 연락이라면 얼마든지 올 수 있었다.
다만 갑돌이라는 이름과 연성화가 잘 매칭이 되지 않았고, 그녀 성격에 이런 쪽지를 보냈을 거 같지도 않다는 점이 문제다.
그렇다면 아직 파악되지 않은 세 사람 중 하나일 거라는 소리인데…….
“설마 범인이 도발이라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암살자의 보고를 들었다면 범인도 내가 플레이어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만약 사람 죽여 놓고 자신을 한 번 찾아보라는 식의 조롱이라면 상당히 빡칠 것 같다.
어디 뭐라고 써놨는지 보자며 나는 마우스로 쪽지를 클릭했다.
“……응?”
예상과는 전혀 다른 쪽지 내용에 나는 당혹스런 음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
유령인 미경은 현재 생활에 완전히 적응해가는 중이었다.
옛날엔 자신의 집터에 살아가는 자들만 보면 눈이 뒤집혔지만, 요즘 그런 성질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애당초 눈이 뒤집혔다간 사라지는 건 자신이었기에 교정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요현 일행의 거주를 인정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다 보니 집 또한 사람 사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거의 강아지 산책 급이었지만 그들이 자신을 데리고 외치는 것도 어느새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거의 지박령으로써 주거인들을 쫓아냈을 때와 비교하면 몰라볼 정도의 변화였다.
이럴 거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집에 집착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권리를 인정했다면 훨씬 편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최근은 솔직히 말해 살맛난다고 할 수 있었다. 유령이 그녀가 그런 말을 한다면 참으로 아이러니 하겠지만 말이다.
그랬던 미경은 오늘따라 다시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마치 요현 일행과 처음으로 한 집에서 동거했을 시기처럼 말이다.
지, 지금 뭐 하세요……?
기괴하다는 말은 사람보단 유령인 그녀에게 더 어울릴 것이다.
그런 그녀가 감히 기괴하다는 생각을 눈앞의 두 사람에게 품었다.
오늘 외출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건지 모른다.
요현은 방으로 올라가 무언가에 열중하기 시작했고, 두 사람은 거실에서 기묘한 짓거리를 벌이고 있었다.
우선 레반이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다. 그리고 한쪽 손을 머리 위로 들며 오직 검지 하나만을 곧게 세우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을 것이다.
그 손가락 위에 레테라가 있지만 않았어도 말이다.
상하가 뒤집힌 레테라는 마치 레반과 거울을 두고 마주한 것 같았다.
그녀도 손가락을 뻗어 영화 ET의 한 장면처럼 레반의 손가락과 끝을 맞댔고, 그것으로 온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솔직히 뭐하냐는 소리가 튀어나올 만했다.
서커스 하는 것도 아니고 대체 저 자세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손가락 하나로 레테라의 무게를 떠받치며 신선이 수행하듯 눈을 감고 있던 레반이 슬그머니 눈을 뜨고 말했다.
“우린 오늘 강해질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아, 네…….
밖에서 무슨 일을 겪고 온 게 맞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런 마음과 지금 저 자세엔 무슨 연관관계가 있단 말인가?
레반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런데 어떻게 강해져야 할지 모르겠다.”
……네?
이 사람 바본가?
입 밖으로 내면 목숨이 위험해질 말을 미경이 속으로만 품을 때였다.
레반에 손가락 위에서 손가락 하나로 물구나무 유지하는 묘기를 보이던 레테라가 말했다.
“우리가 강해지는 방법은 별 거 아니었어. 그냥 강해질 때까지 적을 쓰러뜨리는 게 전부였지. 그런데 당장은 쓰러뜨릴 적이 없어. 그렇다고 평소처럼 치고받는 것으로 전투감각을 수련하기엔 집이 초토화될 게 뻔하고, 수련을 위해 오라버니의 곁을 비울 수도 없어.”
“그래서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간편한 수련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 이 자세에 도달하게 된 거다. 나는 절벽가슴에 체중을 지탱하며 근력을 키우고, 절벽가슴은 내 손가락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기량을 키운다는 게 이 수련의 요지였다만…….”
레반이 크게 한숨을 쉬었고, 레테라 또한 같은 마음인지 자세를 풀며 바닥으로 내려왔다.
“쥐뿔만큼도 소용이 없더군.”
“우리의 능력치는 이미 초인의 영역이야. 이런 식에 자잘한 수련 따윈 힘들기는커녕 평온하기만 할 뿐이지. 죽을 만큼 힘들지 않고서야 수련이라고 할 수도 없다고.”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경험치를 얻는 건데……. 이쪽 세계엔 몬스터가 없으니 원…….”
좋은 방법이 없나 고심하듯 생각에 잠겼던 두 사람은 문뜩 무언가가 번뜩인 것처럼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 끝에 있는 건 둥둥 떠다니는 미경이었다.
강렬한 불길함이 실체가 없는 그녀의 몸을 감싼다.
어……. 왜, 왜 저를 보세요?
“……유령도 몬스터로 취급되던데, 이 녀석을 죽이면 경험치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레테라가 중얼거린 소리에 레반이 동의한다는 듯 말없이 끄덕였다.
미경은 X됐음을 느꼈다.
살맛나긴 개뿔. 맹수 우리 안에서 맹수가 자기를 안 잡아먹는다고 정말 괜찮을 거라 믿은 건가? 단지 그저 배가 고프지 않았을 뿐이건만.
그리고 지금, 강함에 잔뜩 굶주린 맹수 두 마리가 미경이라는 이름의 경험치를 향해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미경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아아! 그러고 보니 오늘분 성불 산책을 다녀오지 않았네요! 걱정 마세요! 두 분은 수련 떄문에 바쁘신 거 같으니까 제가 알아서 다녀올게요!
그렇게 말한 미경은 그대로 몸을 돌려 달아나려 했다.
어느새 퇴로를 막은 레테라가 그녀 뒤에 없었다면 말이다.
그녀의 앞뒤를 포위한 두 사람에 손엔 보랏빛이 감도는 액체가 담긴 병이 쥐어져 있었다.
만드라셀의 독액.
유령을 만질 수 없는 그들을 단숨에 유령의 천적으로 만들어버리는 공포의 아이템이었다. 저것까지 꺼냈다면 진짜로 작정한 것이리라.
미경은 애처롭게 몸을 떨며 그들에게 호소했다.
저, 저 엄청 약한 유령이거든요!? 두 사람에게 도움이 못 될 게 뻔해요!
“그건 걱정마라. 우리가 알아서 판단할 테니. 그리고 이쪽 세계에 좋은 격언이 있더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레반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미경은 레테라를 돌아보았다.
서, 성불시켜서 없애주기로 약속했잖아요! 그건 다 거짓말이었어요!?
“발상을 전환해봐. 사후세계라는 건 가보지 않고선 모르는 거잖아? 어쩌면 우리가 진정한 의미로 죽여줌으로서 성불한 것처럼 저승에 갈 수 있을지 몰라.”
어흐흐흑!!
안 되겠다.
이 두 사람, 미경을 살려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느새 독액을 원샷하고 다가오는 그들에게서 달아날 수 없던 미경은 두려움에 떨며, 몸을 웅크리고 통곡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레반과 레테라의 검은 손이 뻗어오는 순간이었다.
“늬들 뭐하냐?”
구원자가 나타났다.
레반과 레테라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미경에게 뻗던 손을 회수했고, 미경은 현세에 강림한 부처님을 맞이하는 것처럼 두 팔 벌려 환호성을 질렀다.
물론 그 소리는 요현에게 닿지 않는다.
평범한 인간인 그에게 들리는 건 귀신이 감정을 담아 우는 귀곡성뿐이었다.
“아무리 심심하다고 미경이를 괴롭히지 마. 귀곡성이 계단 위까지 다 들리잖아.”
“죄송합니다, 형님.”
“장난이 좀 심했나 보네요.”
뻥치고 있다.
조금 전 그들의 행동이 장난이 아닌 진심이었다는 걸 미경은 그동안의 유령생(?)을 통째로 내걸고서라도 맹세할 수 있었다.
어찌됐건 단순한 장난이라고 생각한 요현은 두 사람에게 가볍게 주의를 주었고, 그 뒤 미경이 있을 거라 생각되는 장소를 돌아보았다.
“미경아. 며칠간만 집보기 좀 부탁해도 될까?”
……?
“뭐래?”
미경의 말을 들을 수 없는 요현이 두 사람을 향해 대답을 물었다. 그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니까.
“되긴 하는데…… 무슨 일이냐고 묻는데요?”
미경의 대답을 전해준 레테라의 말에 요현이 말했다.
“어디로 가야할 일이 생겼어. 너희도 함께 갈 거야. 가는 데만 시간이 많이 소요될 테니까 짐은 확실히 챙기고.”
요현의 말에 두 사람은 눈을 빛냈다.
플레이어와 관련된 일이라는 걸 눈치 챈 것이다.
“어디로 향하실 겁니까?”
레반의 물음에 요현은 짤막하게 답했다.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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