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의문스러운 메시지 2
* * *
“이게 내가 받은 메시지야.”
레반과 레테라를 방으로 데려온 나는 그들에게 모니터를 보여주었다.
거기에 있는 건 갑돌이라는 아이디의 유저가 보낸 쪽지였다.
쪽지는 내 커뮤니티 아이디, ‘레오 님께’라는 글자로 시작하고 있었다.
「레오 님께.
모임에 나가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당신은 혹시 저와 같습니까?
당신께서 올린 사진. 그 속에서 저와 같은 것을 보셨습니까?
만약 아니라면, 제가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다면 그냥 무시해주십시오. 지나가는 사람의 헛소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제 말의 의미를 아셨다면, 저는 당신과 만나보고 싶습니다.
혹여 당신도 그러하시다면, 부디 제가 있는 곳으로 와주시지 않겠습니까?
멀리 나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서, 오신다면 조속히 찾아와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제 주소를 함께 적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단어 하나하나에서 정중함과 묘한 연륜이 느껴지는 쪽지였다.
이 갑돌이라는 아이디는 이전에도 이런 느낌이었기에 인상에 남았다. 게시글에 남겨진 댓글 중에서 유난히 정중한 말투를 사용했었으니까.
그땐 인터넷 이용자의 흔한 컨셉질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 정성의 쪽지를 보아하니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런 갑돌이가 쪽지에 함께 적어서 보낸 주소는 이러했다.
「강원 용지군 원내면 원양리 홍련마을 오동나무 집」
강원도 지리는 잘 모르지만 주소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시골이라는 게 느껴졌다. 가끔 TV에서 보던 평균 연령이 60대 이상인 그 시골 같은 느낌이다.
주소를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태백산맥 한 구석에 잘 보이지도 않게 짱 박혀 있는 지역이었다.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가능한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오지였다.
쪽지를 받은 나는 황급히 답장을 보내 갑돌이라는 유저에 대해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예 인터넷을 나가버린 건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내가 보낸 쪽지엔 읽음 표시가 뜨지 않았다.
“……함정 아닙니까?”
쪽지를 읽어본 레반이 그렇게 물었다.
“이유는?”
“타이밍이 너무 절묘합니다. 우리의 존재가 적 플레이어에게 들킨 직후에 날아온 만나고 싶다는 쪽지라니, 수상한 냄새가 풀풀 나지 않습니까?”
내가 처음 쪽지를 보고 느꼈던 것과 같은 생각이었다.
그 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인 내가 레테라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레테라의 생각은 어때?”
“수상한 건 저도 마찬가지지만, 한 가지 묘하네요.”
“묘하다고?”
“쪽지는 저희에게 조속히 찾아와달라고 말하고 있어요. 마치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듯한 다급한 뉘앙스지 않나요? 이걸 보낸 자는 도움을 청하는 걸까요? 물론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려는 게 목적일 수도 있지만요.”
레테라는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을 집어냈다. 역시 눈썰미 하나는 우리 중 그녀가 가장 나았다.
그녀의 말에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다고 느낀 내가 입을 열었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함정은 아니라고 생각해. 적어도 이건 우리가 찾는 적 플레이어가 보낸 건 아닐 거야.”
“어쩌서인가요?”
“주소를 봐. 시골 중 시골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산골짜기 작은 마을이야. 사람도 적고, 보는 시선이 적으면서, 사방이 산이니까 싸울 공간은 넘쳐나지. 우리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전력을 내기 딱 좋은 환경이라고.”
나는 인터넷 지도에서 홍련 마을이 있는 지점을 툭툭 두드렸다.
조금 멀리 공장 지대가 있는 것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는 산중이었다.
“남의 목숨 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모임에 대리까지 보낼 정도로 조심성이 많은 놈이 굳이 이런 장소에 함정을 준비할까? 수틀리면 우리가 거세게 날뛰기 좋은 이런 환경에? 차라리 우리가 일반인에게 가능한 해를 끼치려 하지 않다는 걸 파악하고,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우리를 공격해도 이상하지 않는데 말이야.”
“흐음…….”
“확실히 그러네요.”
두 사람은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직접 가보기로 결정한 겁니까?”
“그래. 그리고 레테라의 말대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태라면 가서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겠지. ……그 사람이 제대로 된 인간이라고 판단했을 때의 얘기겠지만.”
쪽지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보던 나는 그대로 의자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어차피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단서는 이것 밖에 없어. 계속 집에서 고민하는 것보단 직접 가서 진위를 가리는 게 낫겠지.”
“만약 함정이라면요?”
“함정이라면…….”
잠시 고민하던 난 씨익 웃으며 레반과 레테라를 돌아보았다.
“그럴 땐 너희들만 믿는다.”
내가 제갈공명도 아니고, 미리 함정을 파악해서 거기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믿을만한 건 그 함정을 타파할 정도의 강한 무력 뿐.
사실상 두 사람이 힘으로 때우는 것 말곤 없는 무식한 대처법이었지만, 그들은 오히려 내가 믿고 의지해주는 게 기쁜 듯 활기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네, 형님! 그곳에 뭐가 있든 전부 박살내겠습니다!”
“전부 죽이고 깨끗하게 만들 테니 마음 푹 놓고 계세요!”
“마음이 안 놓인다고, 썩을 놈들아.”
의욕 과잉으로 흉포해질 기미가 보이는 녀석들을 잔소리와 함께 진정시켰다.
어쨌든 이것으로 다음 목표가 결정되었다.
며칠간 갈아입을 옷과 속옷을 챙기고, 만일을 대비한 보존식까지 챙긴 우리는 다음날 새벽에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강원도 산골 깊숙한 곳까지 가야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모될 게 뻔하니 일찍 출발할수록 좋았다.
“아참. 새벽에 출발하기 전에 먼저 들릴 곳이 있어.”
““……?””
내일 여정을 위한 짐을 챙기는 그들에게 내가 말해두었다.
가기 전에 만나야 할 녀석이 있다.
***
다음 날 새벽.
아직 해가 뜨지도 않아 하늘은 보랏빛을 띠었고, 강변에는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아직 세상이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홍련마을을 향해 출발하기 전, 우리는 집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강변을 찾았다.
강 위를 가로지르는 도로 아래. 강 건너편에는 원인 모를 사고로 인해 무너진 교각이 있었고, 지금은 한참 보수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멀리 떠나기 위해 가득 짐을 채운 배낭을 지고, 곳곳에 천막으로 보수 작업을 가려놓은 강 건너편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그때 나를 따라오던 레반과 레테라가 투덜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별로 그 여자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 않습니까?”
“맞아요. 어디 가서 비 맞든 쓰레기 주워 먹든 전혀 관심 없는데요.”
두 사람의 표정이 떨떠름하다. 아무래도 그 녀석은 이들에게 미움털이 제대로 박혔나보다.
너무 그러지 말라며 쓴웃음을 지은 나는 문뜩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 어머니는 말이야. 외할아버지와 사이가 엄청 나쁘셨어.”
““……?””
천천히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그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거기에 귀를 기울였다.
“옛날부터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는데, 외할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신 뒤부턴 아예 얼굴도 마주치지 않았지. 그런데 가끔 어머니는 외할아버지가 집을 비우셨을 때 그 집을 찾아가곤 했어. 근데 집안일 한 적 없는 영감님이 혼자 사는 집이 어떻겠어? 아주 그냥 개판이었지. 어머니는 외할아버지가 없을 때 가끔 그런 집안을 청소해주고 돌아오는 거야. 난 이해를 할 수 없었어. 외할아버지랑 사이도 나쁘면서 청소는 왜 해주는 거냐고 물었지만 어머니는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지.”
저벅저벅 하고, 단조롭게 자갈을 밟는 소리가 안개 속에서 울렸다.
“그러던 어느 날 외할아버지도 돌아가셨어. 급성 심근경색이었지. 혼자 사니까 주변에 119에 신고해줄 사람도 없었어. 결국 외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렀지만, 어머니는 가끔 아무도 없게 된 빈집을 청소하러 가. 더 이상 어질러질 일도 없는데도 그곳에 쌓인 먼지만이라도 치우고 돌아오시지. 언제는 그런 청소를 도와드린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거리더라고. 본인은 먼지가 눈에 들어간 거라고 말했지만 도무지 믿을 수 없었지. 무슨 먼지가 집을 방문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눈에 들어 가냐고.”
지금 생각해도 뻔한 거짓말이라는 듯 나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 공간에서 울리는 건 내 웃음소리뿐이었지만.
“거기서 어머니를 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더라. 아무리 사이가 나빠졌다고 한들, 한 때 화목했던 가족의 기억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 집은 어머니가 어렸을 때도 살았던 집이었어. 항상 외할아버지와 만나기만 하면 싸웠지만, 마음 한 켠엔 그 화목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거야. 그래서 그 집을 계속 청소하러 갔던 거고.”
결국 화해하지 못하고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그렇다고 어머니의 행동이 전혀 의미가 없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을 찾은 것이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그녀가 친 벽을 두드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기 위해.
“당장은 화해할 순 없더라도, 아직 정은 남아있다는 걸 알려줄 순 있겠지.”
그렇게 말하며 나는 걸음을 멈춰 섰다.
레반이 말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레아! 여기에 있어?”
내 첫 번째 캐릭터의 이름을 불렀지만 내 목소리만 거대한 교각 사이에서 울릴 뿐이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반응에 나는 레반과 레테라를 돌아보았다.
“정말 여기 있는 거 맞아?”
“확실하게 여기 있습니다.”
“소리를 듣고도 그냥 무시하고 있네요.”
인상을 찌푸린 채 말하는 걸 보면 정말 가까운 곳에 있는데도 내 말을 무시하고 있는 모양이다.
참 그녀답다고 생각하며 나는 다시 한 번 교각을 바라보며 외쳤다.
“우린 당분간 여기를 떠나 있을 거야! 며칠은 안 돌아올 거 같거든? 그동안 우리 집에서 쉬어도 돼! 만날 노숙하는 것도 질릴 거 아냐! 따듯한 욕조도 있고, 냉장고엔 먹을거리도 있어! 우린 신경 쓰지 말고 마음껏 쉬다 가!”
………….
역시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나는 주머니에서 접혀 있는 흰 종이를 꺼냈다.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고 그 위에 자갈을 올려놓아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고정했다.
“우리 집 위치는 알고 있지? 현관문 비밀번호를 적은 종이를 여기 두고 갈게! 참고로 집 안에 미경이라고 하는 유령이 있을 텐데, 우리 식구니까 괴롭히지는 말고!”
………….
여전한 그 침묵을 대답으로 받아들이고 나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가자.”
내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뒤를 따랐다.
만나볼 사람도 만났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출발할 차례였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나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남긴 쪽지는 여전히 안개 속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
“…….”
저벅.
습기 맺힌 자갈밭 위로 누군가의 발이 올려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레아의 것이었다.
요현이 떠나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교각 위 작은 틈에 몸을 눕히고 있던 그녀는 바닥으로 내려왔다.
“……흥. 이제 와서 신경 써주는 척 하긴.”
레아는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으며 바닥에 남겨진 쪽지를 집었다.
요현의 말대로 쪽지엔 그의 집 현관문 비밀번호가 남겨져 있었다.
「0925」
레아는 그것을 보자마자 특정 날짜를 비밀번호로 삼은 것이라는 걸 알았다.
바본가? 날짜를 비밀번호로 하는 게 얼마나 경우의 폭이 좁은데.
날짜를 비밀번호로 했다는 것만 알면 번호가 365가지로 한정된다. 무작위로 입력하는 것보다 맞출 확률이 높으니 도둑에게도 쉽게 뚫릴 터였다.
조심성 없는 번호 선정에 한심하다는 듯 비밀번호를 바라보던 레아는 표정을 굳혔다.
9월 25일.
그날이다.
요현이 더 이상 그녀를 찾지 않게 된 날.
그리고 레반과 레테라가 현실로 나와 그와 만나게 된 날.
요현은 이 번호에 무슨 메시지를 담은 것일까? 끝과 시작이 모두 담겨져 있는 날짜를 사용하면서 말이다.
우습지도 않다는 듯 레아는 종이를 양손으로 붙잡고 찢으려고 하였다.
“…….”
문뜩 눈썹을 꿈틀거린 그녀는 자신의 팔에 코를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킁킁.
그러고 보니 새 옷을 얻은 뒤로도 계속 노숙생활을 이어가긴 했다.
비를 맞기도 했고, 레테라, 레반과 싸우며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서 썼으며 땀도 흘렸다.
몸에 남은 냄새로 스쳐지나간 과거를 떠올린 그녀는 내키지 않는 듯 중얼거렸다.
“……샤워만이라도 하고 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