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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65화 (65/173)

〈 65화 〉 의문스러운 메시지 ­ 3

* * *

아무래도 우리는 이번 여정을 너무 만만히 보고 있던 모양이다.

시골이라고 해서 내가 나고 자란 시골보다 약간 더 후진 곳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찾아가보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앞으로도 산. 뒤로도 산. 양옆이 전부 산 밖에 보이지 않는 첩첩산중.

우리나라의 약 70%의 땅이 산이라는 걸 이 정도로 절실히 체감되는 장소는 또 없었다.

심지어 버스를 갈아타며 몇 시간을 이동했음에도 아직도 홍련마을엔 도달하지도 못했다.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4시간이라니, 실화냐?”

빛바랜 나머지 글자를 구분하기 힘든 버스 시간표를 겨우 읽은 내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처음엔 고속버스를 타고, 시외버스, 마을버스 순으로 환승을 이어가며 산속 깊숙이 나아갔다.

그렇게 도달한 어딘지도 모를 산속 사거리.

여기서 기다리면 홍련마을행 버스가 온다고 버스기사가 말했기에 내렸다.

그런데 4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단 말은 안 했잖수, 아저씨.

따지고 싶어도 빛바랜 글자를 구분하는 사이 버스는 저 멀리 떠나버렸기에 따질 수도 없었다.

결국 어떡하랴. 지나가는 차도 없는데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자동차 하나 지나다닐지 않네.”

텅빈 도로 한가운데에서 한숨을 쉰 나는 다시 정류장을 돌아왔다.

정류장이라기 보단 던전 입구로 생각될 정도로 방치된 기간이 오래되어 보이는 장소였다.

담쟁이덩굴이 직사각형 공간 곳곳을 침입해 들어왔고, 나무 의자는 거의 풀밭이며, 천장에는 구멍이 나 비가 줄줄 샐 것처럼 보인다.

이곳이 정류장을 알려주는 유일한 표식인 낡은 표지판은 이미 반쯤 녹에 뒤덮여 있었다.

도대체가 얼마나 사람이 찾지 않는 오지인지 그곳에 가는 길만 보더라도 알 수 있을 거 같다.

정말 이 길 너머에 있을 터인 홍련 마을에 우리가 찾는 플레이어가 있을까?

마을에 다가갈수록 의구심만 커져갔다.

“오라버니.”

“응?”

레테라의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나와 함께 정류장을 둘러보고 있던 레반과 레테라 두 사람은 어느새 정류장에 관심을 끊고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산세를 따라 살짝 경사진 언덕. 레테라의 손가락은 그쪽을 가리켰다.

“저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데요?”

“소리?”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귀를 기울여봤자 들리는 건 한적한 산속을 맴도는 바람과 벌레 소리, 그리고 그 벌레를 좋다구나 쪼아 먹기 위해 날아다니는 새 소리가 전부였다.

하지만 레반과 레테라는 그것들과 다른 이질적인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가만히 집중하고 있던 레반이 레테라의 말에 덧붙였다.

“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예 이쪽으로 다가온다고?

짐작 가는 건 없지만 가까워지고 있는 게 맞다면 머지않아 내 귀에도 들려오겠지.

그렇게 몇 분가량 기다렸을까. 생각보다 오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 답답해질 무렵 내게도 희미한 소리가 포착되었다.

탈탈탈탈……!

“이 소리는?”

쓸데없이 요란한 그 소리였다. 빈 깡통에 돌멩이를 집어넣고 마구 흔드는 것 같달까.

레반과 레테라는 이런 요란한 소리를 처음 듣는 모양이지만, 고향이 시골인 나에겐 기억나는 게 한 가지 있었다.

“경운기 소리?”

내 생각대로 언덕 위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경운기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을 몰고 있는 건 밀짚모자를 쓴 인자한 표정의 할아버지였다. 그는 정류장 앞에 서 있는 우리를 발견하곤 반갑게 웃어보였다.

***

탈탈탈탈!!

“이야~ 나와 길에서 떡 마주치니 운이 좋구먼. 하늘이 도우신 걸 보니 평소에 좋은 일을 많이 했나벼.”

산으로 난 길을 따라 경운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올라간다.

운 좋게도 홍련마을 출신이라는 할아버지와 만난 우리는 경운기에 얻어 탈 수 있었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생필품을 사러 멀리 있는 시내까지 다녀온다고 하는데 마침 오늘이 그날이라서 정류소 앞을 지나가게 된 거라고 한다.

시끄러운 경운기 소리 너머로 겨우 그의 목소리를 알아들으며 짐칸에 타고 있던 내가 말했다.

“저희야 말로 태워줘서 고마워요!”

“뭐라고!?”

“태워줘서 고맙다고요!!”

“아아! 신경 쓰지 말어! 좋은 일을 해야 다 자기에 돌아오는 거 아니겠는감!?”

경운기 소리 때문에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었다.

이대로 이야기를 계속하면 목이 나가는 걸 걱정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우리 마을엔 뭐 하러 가는 거여!?”

하지만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마을을 찾는 손님이 반가운 모양이다. 그는 경운기보다 큰 소리를 내는 것에 익숙한지 들뜬 모습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경운기를 얻어 타는 입장으로서 저렇게 즐거워하는 대화를 끊는 것도 못할 짓이다.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해보자며 나는 입을 열었다.

“사람을 찾고 있어요! 인터넷으로 만난 사람에게 초대받았거든요! 홍련마을에 있으니 찾아오라면서!”

일단 거짓말은 안 했다.

저쪽에게 초대 받은 것도, 홍련마을의 주소를 보낸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그 사람이 호의적일지 아닐지가 불확실할 뿐이다.

“뭐여!? 우리 마을 뉘집 손자가 아니었어!? 난 영락없이 그건 줄 알았는데!”

“아쉽지만 아니에요! 그래서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마을 주민 중에서 인터넷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이 있나요?”

그 마을에서 인터넷을 자주 쓰는 사람이라면, 그 자가 나에게 쪽지를 보낸 갑돌이라는 유저일 가능성이 높았다.

할아버지의 입을 통해 단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 다 늙은 사람뿐이라 자식들이 준 휴대폰도 겨우 사용하는데!”

역시 꽝인 건가.

연륜이 느껴지는 쪽지의 글을 보고 혹시 마을에 사는 노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할아버지가 말대로라면 그런 만한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그러다 문뜩 할아버지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최근 마을에 웬 젊은 녀석이 보이기 시작했지! 혹시 그놈 아녀!?”

“네?”

뜻밖의 정보를 얻었다.

홍련마을에 최근 젊은 사람이 나타났다고?

“그거 자세히 알려주시겠어요!?”

“자세히는 몰러! 그냥 지난달 말부터인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만 알지! 처음엔 윗집 사는 김덕순 할멈의 손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더라고! 많이 과묵해서 처음엔 마을사람들이 경계했지만, 예의를 잘 지키는 녀석이라서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많아졌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지난달 말부터라고?

게임 캐릭터가 현실에 나타난 시기와 일치한다.

같이 짐칸에 타고 있는 레반과 레테라를 돌아보았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들도 내 생각과 같은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에 가서 가장 먼저 찾아야 할 대상이 정해진 것 같다.

그렇게 대화가 오가는 사이 산길을 오르던 경운기는 어느덧 오르막길 끝자락까지 올랐다.

“아무튼 자네들은 우리 마을엔 처음인 거지!? 그렇다면 그 광경은 모르겠구만!”

“네!? 무슨 광경이요!?”

“일단 한 번 봐봐! 내가 자네들이 운이 좋다고 한 이유가 이거거든! 날이면 날마다 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오늘처럼 맑은 날씨, 딱 이 시간대가 절호조야!”

“???”

할아버지가 저런 말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어 나는 그저 고개를 갸웃거려야만 했다.

그 사이 우리를 태운 경운기는 도로 옆으로 난 절벽의 그늘을 벗어나 저녁놀 지기 시작한 하늘의 빛 아래로 우리를 안내했다.

“……!”

“오!”

“와!”

나는 물론, 웬만한 일이 아니면 놀라지도 않던 레반과 레테라마저 감탄을 내뱉었다.

찬란한 붉은 빛의 세상이 그곳에 있었다.

산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풍경. 산길을 따라 내려간 도로 끝에는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고, 그 강을 중심으로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것만 보자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산골마을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늘에서 내리쫴는 붉은 빛이 평범할 터인 풍경을 색다르게 바꿔놓고 있었다. 마치 인상파 화가가 그려놓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산 사이로 모습을 감추려 하는 태양이 선물을 주고 가는 것처럼 유난히 붉게 빛난다.

그 빛에 감싸여진 마을의 집들은 온화한 분위기를 띠었으며, 마을을 관통하는 강줄기는 보석처럼 고혹적으로 반짝였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이 절경을 더 편히 감상할 수 있도록 잠시 멈춰서며 경운기를 꺼놓았다.

그는 어떠냐는 듯 운전석에서 몸을 기대며 물었다.

“잘 알려진 관광 명소도 괜찮지만, 이렇게 아무도 모르는 숨겨진 명소도 꽤 로망이 있지 않나?”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내가 그에게 말했다.

“저녁노을이 엄청 예쁘게 반짝이는군요?”

“그렇지. 사실 저녁노을이 생기는 이유가 공기 중에 먼지가 많아서라고 하잖여? 마을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공장지대가 있는데, 거기에서 나온 먼지 때문에 노을이 유난히 진한 빛을 띠는 게지. 보기엔 예쁜데 그쪽에서 가끔 날아오는 매연에 비하면 그리 좋은 건 아니여.”

“……뭔가 진실을 알고 나니 로망이 확 떨어지는데요.”

“원래 로망이 다 그런 게지. 공장 매연이야 아주 가끔, 일부만 닿는 거라서 그리 큰 걱정은 안 해도 돼. 그것보단 매년 오는 황사가 더 지독하거든.”

쓸쓸한 현실을 알려주던 할아버지가 더욱 씁쓸한 현실을 얘기해주었다.

“그리고 겉보기와 달리 마을 내부도 그렇게 멋지진 않어. 가구는 100여 가구뿐이고, 그것도 셋 중 하나는 빈집이여. 젊은이들은 다 도시로 떠나버렸고, 남은 사람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기 싫은 늙은이, 아니면 잠시 떠났다가 마지막은 고향에서 눈감고 싶어서 돌아온 늙은이들뿐. 그래서 누군가는 이곳을 황혼의 마을이라고 부른다고 하네.”

“황혼의 마을…….”

레반과 레테라 사이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흘린 말인지 몰라도 두 사람 다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수많은 모험이 잠들어 있지만, 전체를 보면 서서히 죽어가는 싸늘한 세계. 따스한 붉은 빛에 물든 마을에서 자신의 세계와 같은 쓸쓸함을 엿본 것일까.

말로 표현하지 않지만 그들의 복잡한 감정이 분위기를 통해서 느껴졌다.

할아버지는 외지인 저 정도로 진한 여운을 느끼며 마을을 바라볼 줄 몰랐다는 의외의 표정을 지었다.

“뭐어, 내가 뭐라고 말했든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어. 분위기 침울하거나 동정 받는 건 마을 사람들도 안 좋아하거든. 그런 건 장례식 때 한 번이면 충분하니까. 지금은 그저 살아있다는 걸 즐겨야지. 별 거 없는 마을이지만 좋은 추억이나 만들다 가.”

그렇게 말한 할아버지는 해도 저물고 슬슬 출발하겠다고 말하며 경운기에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기계가 오래된 탓이지 잘 걸리지 않는 시동에 그가 씨름하고 있을 때였다.

“형님.”

“응?”

레반이 내게 말을 걸자 그를 돌아보았다.

고개를 돌리니 그뿐만 아니라 레테라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의 눈빛이 뭐랄까……, 무척 활기찼다.

마치 소풍 나온 어린아이처럼.

“이런 느낌,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가슴이 두근거려요, 오라버니!”

“으응?”

그들이 그러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자 두 사람은 말을 덧붙였다.

“저희가 저쪽 세계에 있을 때도 이랬지 않습니까? 가본 적 없는 곳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떠나는 것.”

“저쪽에서 느껴본 감각을 여기에서도 느낄 줄은 몰랐어요.”

“아…….”

그들이 말하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모험이었다.

새로운 체험이야 말로 게임의 기본 전제가 아니던가.

흉악한 몬스터를 헤쳐 나오며 도달한 건 아니지만, 우리는 집을 떠나 낯선 장소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을 마주했다.

“……그러게.”

나는 다시 마을의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해가 지며 저녁노을도 많이 약해져 있었지만, 여전히 마을의 풍경은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그들과 만나기 이전에는 맛본 적 없는 경험이다.

“확실히 나쁘지 않아.”

다시 시동이 걸리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경운기 위해서 우리는 한동안 마을의 풍경을 감상했다.

저 마을에서 무엇이 우리를 맞이할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거기에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눈앞에 광경만을 가슴 속에 새겨두고 싶었다.

***

요현이 일행이 다가가는 홍련마을.

그 마을의 중심에는 오래된 고목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여름 때는 고목의 그늘 아래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지만, 산속은 계절의 변화를 빠르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불어오는 쌀쌀한 바람을 피해 나이 많은 노인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오직 하나. 그 고목에 가지 위에 선 인물 하나만 제외하고.

“…….”

고령화가 진행되는 마을에서 눈에 띄게 젊은 외모를 가진 그 남자는 저 멀리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경운기를 정확히 포착하고 있었다.

그 경운기 짐칸에 타고 있는 세 명의 남녀를 잠시 노려보던 남자는 그대로 나무 위에서 몸을 날렸다.

그러나 고목 밑에서 그의 발자국 소리가 울리는 일은 없었다.

몸을 날린 남자는 그대로 그곳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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