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사냥꾼 1
* * *
해가 지자 홍련 마을은 신비로운 풍경에서 벗어나 제 모습을 찾았다.
그저 한가로운 산골 마을.
걱정했던 시골 텃세나 외지인에 대한 경계는 없었다.
알고 보니 거주민들이 마을을 떠나 살다가 노년을 보내기 위해 돌아온 케이스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나이가 들고 나면 알 수 없는 향수가 든다나.
그 때문인지 외지인을 별 무리 없이 받아들였고, 사투리도 심하지 않아 대화하기 편했다.
아쉬운 점이라면 묵을 만한 여관이 없다는 것 정도.
경운기를 태워주셨던 할아버지는 빈 집이 많으니 아무데나 하루쯤은 묵어도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 빈 집이 생긴 이유가 원주인이 고령에 의한 이승과 작별이라는 소리를 듣고 사양했다.
귀신과 한 집에서 산 경험이 있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사용하기 껄끄러웠다.
그래도 다행히 묵을 곳이 없을 경우의 대비는 해왔다.
바로 캠핑이었다.
가지고 온 캠핑 세트로 강 근처에 텐트를 세웠다.
불을 지펴서 가지고 온 즉석밥과 레토르트 식품을 덥혔다. 밖에서 먹어서 그런 건지 평소보다 맛있었다.
‘이러니까 어렸을 때 갔던 수련회가 떠오르네.’
그땐 왜 내 돈 주고 그 고생을 해야 했는지 몰랐지만 말이다.
물론 지금도 모른다. 조교 코스프레나 하며 학생들에게 되도 않는 군대 체험이나 시키던 그 망할 것들만 떠오르면 지금도 이가 갈린다.
괜한 기억이 떠올라서 밥을 떠먹던 숟가락을 잘근잘근 씹어대었다.
그러다 나와 함께 불 주위에 둘러 앉아 부지런히 밥을 입 안으로 옮기고 있는 레반과 레테라에게 시선이 갔다.
지속적인 식사는 필요 없다고 말하는 그들이지만, 나와 함께 하는 식사는 이벤트의 한 종류처럼 즐기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나는 입 안의 음식물을 꿀꺽 삼킨 뒤 그들에게 물었다.
“아직도 뭐가 느껴진다거나 하는 거 없어?”
우리가 마을에 들어왔을 땐 이미 해가 저물었기에 본격적인 수색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충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 뒤 강변에 자리를 잡았지만 특별히 발견한 것은 없었다.
저녁을 먹는 지금 이렇다 할 변화는 없는지 두 사람은 내게 고개를 저었다.
“흐음…….”
나는 잠시 그릇을 내려놓고 수첩을 꺼냈다.
갑돌이라는 커뮤니티 유저가 보내온 주소는 정확한 집주소가 아니라 ‘오동나무 집’이라고 적혀 있을 뿐이었다.
단순히 오동나무 집을 찾으라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 이곳엔 오동나무로 된 집이 없었다.
이곳에 있는 건 일반 가옥에 판자를 지붕으로 얹은 형태의 집이 전부였다.
경운기 할아버지께도 물어봤지만 이 마을엔 오동나무도 지은 집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만나자던 녀석이 수수께끼를 내는 것도 아닐 테고, 대체 뭐야?’
답답한 마음이었지만 아직 본격적인 수색은 시작하지도 않았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에게 물어보기로 하며 다시 수첩을 집어넣었다.
그대로 다시 그릇을 들고 식사를 계속하려 했을 때였다.
시야의 한 구석에서 검은 무언가가 지나가는 걸 느꼈다.
“응?”
동물은 시야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것에 주의가 쉽게 끌리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도 크게 보면 동물이기에 습성이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식사의 열중 하는 레반과 레테라의 뒤편. 시원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 강물 너머. 그곳에 자리한 풀숲에서 조금 위.
달이 보였다.
보름달에서 약간 좁혀진 달.
그러나 도시처럼 밝지 않은 장소라서 그런지 보름달이 아니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밝았다.
그런 달빛의 밑을 조금 전에 보았다고 생각되는 검은 물체가 날아간다. 마치 긴 날개를 펄럭이는 듯한 그 모습은 마치…….
“……까마귀?”
“네?”
내가 중얼거린 말에 레반과 레테라가 내 시선을 따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미 내가 본 물체는 자취를 감춘 뒤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기척으로도 별 다른 걸 느끼지 못했는지 두 사람은 나를 보았다.
“까마귀가 있었습니까?”
“아……. 까마귀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조금 다른 것 같아.”
“다른 새겠죠. 까마귀는 주행성 동물이잖아요?”
확실히 레테라의 말대로다. 이 밤에 까마귀가 돌아다닐 리가 없었다. 올빼미나 다른 새를 착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 가슴이 술렁거리는 이유는 왜일까?
이상하게 신경 쓰여서 나는 한동안 밥을 먹으면서도 달빛이 비치는 숲을 주시해야 했다.
***
날이 밝자마자 우리는 수색을 시작했다.
“오동나무 집? 잘 모르겠는데. 이 동네에 그런 집은 없어.”
“최근 온 젊은이? 그러고 보니 요즘 잘 안 보이네. 어디 사냐고? 저 아래 돌덕 영감네 집 옆 아니었나? 어? 가봤더니 아니었어? 내가 아까도 같은 말을 했다고?”
“머므멈머므.”
“이 할머니가 뭐라는 거냐고? 오늘 아침에 틀니를 잃어버려서 좀 찾아 달래.”
“닌 뉘집 손자여? 손자가 아니라고? 그럼 손녀여? 요즘 아가씨들은 참 사내답구먼.”
“……미치겠네, 진짜.”
눈이 거의 먼 나머지 나를 아가씨라고 착각하는 노인을 떨쳐낸 내가 중얼거렸다.
누가 황혼의 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몰라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이 오늘 내일 하는 노인 분들이다니 보니 대화하는 게 쉽지 않았다.
누구는 치매 끼가 와서 같은 말을 또 반복하고, 누구는 귀가 먹어서 아예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벌써 30명째 사람에게 말을 걸고 있는데 오동나무 집을 찾아내기는커녕 최근에 나타났다던 젊은이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정보를 얻지 못했다.
보통은 외부인이 나타나면 좀 더 경계하면서 알아내려고 하지 않나? 물론 너무 지나친 것보단 낫겠지만, 이 마을 이래도 괜찮은 거야?
조금 전에도 틀니 찾아달라고 달라붙는 할머니 때문에 시간을 꽤나 소모해야 했다.
메인 퀘스트를 진행해야 하는데 자잘한 서브 퀘스트가 튀어나와서 진행을 방해하는 기분이었다.
정신적 피로가 쌓이는 걸 느끼며 다음 마을 주민을 찾아 이동했다.
그러다 한 노인이 마을에서 가장 큰 고목의 그늘 아래에 앉아 부채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다가갔다.
“오동나무 집? 확실히 여기엔 없지. 그건 마을 밖에 있거든.”
“네?”
드디어 오동나무 집에 대해 아는 사람을 찾았다. 그런데 그가 말한 장소는 뜻밖이었다.
그 노인은 부채를 접고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 중 가장 높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산 하나를 가리켰다.
“저 산 옆의 골짜기 사이를 따라 올라가다보면 왼편에 오동나무 집이 하나 있어. 예전에 누가 살아서 자주 마을로 내려오곤 했었는데 요새는 통 보이지 않네.”
“저렇게 먼 곳에 사람이 산다고요?”
“사람이 어디에 살고자 하는지는 본인의 자유 아니겠어? 그 뭐시기, 티브이 같은 데에서 보면 나오잖아. 마을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 난 그런 부류구나라고 생각하며 넘어갔지.”
그런 자연인이 보통 인터넷으로 쪽지도 보내던가? 애초에 인터넷도 닿을 거 같지 않은데.
위성 인터넷이라는 방법도 있긴 한데 그건 엄청난 비용이 든다고 들었다.
여러모로 미심쩍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오동나무 집이 있다는데 확인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홍련마을 오동나무 집이라고 했던 게 홍련마을에 있다는 소리가 아니라, 찾아오려면 마을을 거처야 한다는 소리였어?”
이러면 홍련마을에 있는 게 아니잖아. 아무리 봐도 지구와 명왕성만큼 동떨어져 있는데.
그런데 그렇다고 따로 분류하자니 위치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 첩첩산중에 점 하나 딱 찍은 지도를 보낸다고 해서 쉽게 찾을 수 있겠는가.
어찌되었건 일단 홍련마을로 와야 했던 건 맞는 거 같다. 생각지도 못한 하이킹을 하게 되긴 했지만.
우리는 바로 노인이 말한 산골짜기로 향했다.
산은 해가 빨리 저물기 때문에 빠릿하게 움직여야 했다.
“레테라! 뭔가 보여?”
나는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간 레테라를 향해 물었다.
나야 아무것도 보이진 않지만 평범한 인간보다 시력이 좋은 그녀라면 뭔가 발견할지 몰랐다.
손바닥을 눈 위에 대며 멀리까지 내다보고 있던 그녀는 이내 가지 위에서 몸을 날렸다.
타악!
나무 위에서 뛰어내려 가볍게 착지한 레테라가 나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나무에 가려져 있긴 하지만 저 위에 오두막의 윤곽이 있는 건 발견했어요. 대략 3.1km 걸으면 도달하겠네요.”
“……참 끝내주게 머네.”
성인 남성은 평균적으로 1시간에 2km를 걷는다고 한다.
대략적으로 계산하면 저곳까지 도달하는 데에 한 시간 반. 심지어 산을 오르는 것이니 시간은 배로 걸릴 것이 분명했다.
마을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멀게 느껴지는 오동나무 집과의 거리에 내가 암담함을 드러내자, 그 모습을 본 레반이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제 다리라면 5분 만에 주파할 수 있습니다! 제가 형님을 안고 뛰겠습니다!”
“관둬.”
“오라버니, 그럼 제가…….”
“누가 안느냐가 문제가 아니야.”
3km의 산길을 5분 만에 주파하는 사람에게 안겨서 가는 위험성은 차치하더라도, 양쪽 다 비주얼적 거부감이 들었다.
여기 든든한 탈 것이 있다는 듯 두 팔을 벌려 어필하는 두 사람을 전력을 다해 무시하며, 길조차 제대로 나 있지 않은 산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일단 주변 경계를 소홀히 해서 좋을 건 없잖아. 빠르게 올라가는 것보단 조심해서 가는 게 더…….”
그 이상 내 말이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덥썩!!
누군가 갑자기 뒷덜미를 붙잡고 순식간에 잡아 당겼기 때문이다.
강렬한 힘에 목이 조이며 몸이 뒤로 붕 날았다. 그 우악스러운 느낌은 분명 레반의 손길이었다.
레반이 내 뒷덜미를 잡아당겨 뒤로 던지고, 그것을 레테라가 몸으로 받아내었다.
그들의 느닷없는 짓거리에 내가 분노하기보다 먼저 사태는 일어났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흙이 사람의 키 높이만큼 솟구쳐서 비산한다. 정확히 내가 걸어가던 방향에서 말이다.
그걸 본 나는 처음에 지뢰를 떠올렸다.
영화에서나 보던, 흙이 솟구치며 사람의 몸 따위는 가볍게 날려버릴 것 같은 진동과 충격이 눈앞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것은 지뢰 같은 함정이 아니었다.
사람의 팔뚝만한 두께의 철봉 같은 무언가가 날아와 지상에 박힌 것이었다.
“화살……?”
길쭉하다는 것 빼곤 화살이라고 할 만한 특징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처음 본 순간 화살을 떠올렸다.
철봉 표면에 새겨진 희미한 문양과 끝부분이 Y자처럼 갈라진 시위걸이가 정확히 SoR에 있던 어떤 화살을 떠올리게 하였기 때문이다.
주먹을 쥐고 경계하던 레반은 추가적으로 날아오지 않는 화살에 조심스레 자세를 풀고 바닥에 박힌 철봉 같은 화살을 뽑았다.
“아무래도 저희가 맞게 온 거 같습니다.”
레반 역시 그 화살을 알아본 모양이다.
우리는 잠시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상기하며 엄폐물로 삼을 만한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거기서 레반이 가져온 화살을 확인했다.
“대상 지정. 아이템 확인.”
내 손에 닿은 그것을 대상으로 지정한 뒤, 게임에서처럼 아이템 확인 과정을 입으로 읊조렸다.
그리고 역시나. 이 화살에 대한 아이템 설명에 머릿속에서 펼쳐졌다.
이무기 사냥의 대화살 등급 : 희귀 분류: 화살 공격력: 90 내구도: 97/100 필요 스텟: 근력 10 「오랜 옛날 날뛰는 이무기에 맞서 싸워온 한 일족이 있었다고 한다. 그 두꺼운 가죽을 뚫기 위해 거대하면서도 단단한 화살을 필요로 했고, 이는 그 집념의 결과이리라.」
“……틀림없어. SoR의 아이템이야. 이게 어디서 날아온 거야?”
“우리가 향하던 그 오두막 쪽이었어요.”
설마 했더니 진짜 거기였냐…….
나는 머리를 박박 긁으며 현재 상황을 분석했다.
“미치겠네……. 스나이퍼 최고 저격거리가 2km라고 하는데 이놈은 3km 밖에서 저격하는 거냐. 직업은 궁수? 사냥꾼?”
“공격하기 직전까지 전혀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궁술과 은신 스킬을 동시에 배울 수 있는 사냥꾼으로 의심됩니다.”
“사냥꾼이라…….”
게릴라전 특화 직업이었다. 숨을 곳이 많은 산속이라면 절호의 싸움터였다.
레반도 같은 생각인지 내가 말하지 않았음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에게 유리한 지형으로 유도한 뒤 공격해온 겁니다. 명백히 적대적이라 봐도 무관할 것 같습니다. 이대로 치고 들어갑니까?”
“일단 물러나는 것도 방법이에요, 오라버니. 산이라는 지형이 가져다주는 메리트는 저쪽이 커요.”
양쪽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여기서 싸우는 것도 방법이고, 일단은 물러나는 것 또한 방법이다.
그런데 막상 결정하기엔 집고 넘어가야할 사항이 있었다.
“……아까 그 화살 말이야. 나를 노린 게 아니었지?”
“네?”
“화살이 떨어진 위치가 나를 관통하는 위치가 아니었어. 정확히 내가 발을 옮기려고 했던 곳. 그 앞에 떨어졌다고.”
내 말에 두 사람도 조금 전의 상황을 다시 떠올려보는 듯 했다.
확실히 화살이 날아오는 걸 감지한 그들이 재빠르게 내 몸을 빼내었지만 실제로 화살이 박힌 곳은 내가 있던 곳이 아니라 조금 앞이었다.
“그냥 빗나갔던 게 아닙니까?”
“빗나간 거라면 이어서 날렸겠지. 이미 자신의 존재를 들킨 마당에 망설일 게 뭐 있겠어? 하지만 사냥꾼은 단 한 발만 남기고 추가적인 저격은 없었어.”
나도 이 결과에 대한 원인을 추리해보려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그러다 한 가지 결론을 내놓았다.
“살해 의도라기 보단 경고 쪽에 가깝지 않아?”
“‘여기에 접근하지 말라’……. 이런 거요?”
레테라의 물음에 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거라면 화살이 나와 떨어진 장소에 날아와 박힌 것도, 그 후 추가 공격이 없던 것도 설명이 된다.
위협사격을 하면서 접근을 막았던 건, 그 오동나무 집에 뭔가 있다는 소리인가?
남들이 다가오는 걸 원치 않은 무언가.
캐릭터가 그렇게 느낄 만한 거라고 한다면 하나밖에 없다.
‘플레이어.’
갑돌이라는 이름을 쓰던 그 유저였다.
이곳에 있을 만한 플레이어는 그밖에 없다. 그가 오동나무 집에 있는 건가.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그는 나를 만나고 싶다며 쪽지를 보냈고, 그는 실제로 이곳에 있었다.
그런데 왜 그의 캐릭터로 추정되는 사냥꾼이 우리의 접근을 막는 거지? 레아처럼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케이스인가?
조급히 만나러 와달라는 그 말과 관련되어 있을지 모르겠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가자.”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앞으로의 방침을 정했다.
오동나무 집으로 향한다.
그곳에 분명 우리를 이곳까지 부른 플레이어 있을 것이다. 그를 만나고 진실을 들어야겠다.
그게 저 사냥꾼과 직접 맞부딪치는 걸 의미한다고 해도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