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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67화 (67/173)

〈 67화 〉 사냥꾼 ­ 2

* * *

오동나무로 된 지붕 위에 그 인영은 서 있었다.

산을 타고 오는 불어오는 바람에 그가 몸에 두른 망토가 펄럭인다.

보기엔 날고 해진 듯한 검은 망토.

좌우로 찢어져 있는 천 자락은 마치 까마귀의 날개를 연상시켰다.

넓은 챙을 가졌지만 앞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의 특이한 형태를 눌러 쓴 남자.

코와 입을 가린 천. 그 위로 보이는 눈동자는 요현 일행의 마을 진입을 지켜보던 그 눈동자와 일치했다.

“…….”

지붕 아래로 펼쳐진 산세를 말없이 내려다보던 그는 왼팔을 들었다.

왼손에 쥐어진 건 자신의 키와 맞먹을 만큼 커다란 활.

기이한 기운이 감도는 묵빛 활은 이 세상 것이 아닌 생물의 뼈로 만든 것이었다.

그것을 앞으로 향한 남자는 빈 오른손을 자신의 허리춤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레반과 레테라가 가진 것과 같은 종류의 가죽 주머니. 인벤토리와는 다른 아이템 숏컷이라 부르는 주머니였다.

거기에서 손을 빼자 그의 무기가 함께 딸려나왔다.

화살이라기 보단 철봉, 혹은 발리스타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질량 보존의 법칙을 완전히 무시하는 화살의 출현은 마치 옛날 만화 속 사차원 주머니를 보는 것 같았다.

끼기기긱……!!!

그것을 활시위에 걸고 당기자 괴물이 신음을 흘리는 듯한 기괴한 소리가 울렸다.

남자의 옷이 팽팽해질 만큼 부풀어 오른 팔근육.

인간이 상상하기도 힘든 괴력으로 화살을 당기고 있었지만, 남자의 눈은 밤중의 호수처럼 고요하기만 하다.

오직 시선이 향하는 곳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하던 남자는 이윽고 자신의 손으로 억누르던 화살을 해방시켰다.

파아아앙!!!

공기를 원형으로 뚫어내며 화살은 쏘아졌다. 살의를 품은 선이 하늘 위에 그어진다.

공기와의 마찰이 극에 달하며 금속 화살이 붉게 달아올랐다.

목표는 하나.

주인의 쉼터를 어지럽히는 침입자들이다.

***

콰아아아아앙!!!!

고막을 찢어버릴 것 같은 폭음에 반사적으로 귀를 막았다.

또 다시 화살이 날아왔다. 레반이 처음으로 화살이 떨어진 장소를 넘어간 직후의 일이다.

이번엔 위협도 경고도 아닌 정말로 작정한 공격이었나 보다. 레반이 재빠르게 피해낸 자리에 날아와 박힌 화살은 처음 것보다 위력적으로 땅을 울려댔다.

나는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 내 옆에는 레테라가 호위하듯 서 있었다.

레반과 레테라 둘이 가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상대가 나처럼 캐릭터가 둘 이상일 경우를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다행히 여긴 아슬아슬하게 사정 범위 밖인지, 아니면 접근하는 자들만 노리기로 작정한 건지 화살은 여기까지 닿지 않았다.

지금 상황은 체스와 비슷했다.

킹을 지키면서 적측의 말을 쓰러뜨려 길을 여는 것이다.

그 공격의 역할을 맡아 오동나무 집으로 향하는 레반은 오랜만에 풀 무장을 하고 있었다.

양손에 내가 건네준 도끼형 무기와 방패를 쥐고, 자주 애용하던 판금 갑옷을 걸친 채 자신만만하게 발을 내디딘 그였지만, 과정이 영 순탄치 않아 보인다.

강철 같은 신체에 갑옷까지 감싼 레반이라도 저 공격에 제대로 적중당하면 위험하다.

“작정하고 쏘기 시작했네요.”

레테라가 위를 올려다보며 말하자 나도 따라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푸른 하늘에 붉은색 별이 수없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종말의 전조도 아니고 갑작스런 붉은 별 같은 게 나타날 리 없었다.

그것은 사냥꾼이 쏜 화살.

도대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지 금속 표면이 붉게 달아오른 화살이었다.

콰가가가가가가아아아아앙!!!!!!!!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위력적인 화살이 소나기처럼 퍼붓기 시작했다. 레반에게 건네준 방패가 무의미해질 정도의 양이다.

레반은 멈춰 서지 않고 계속 달아나며 그 화살들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대로는 끝이 없어 보인다.

레반도 그것을 느꼈는지 갑자기 방향을 꺾었다.

그가 향하는 것은 집채만 할 정도로 큰 바위 언덕.

그 바위의 그늘 밑에 그가 몸을 날렸다.

콰가가가가각!!!!

쏟아지는 화살비는 레반 위에 바위 언덕에도 날아와 꽂혔다. 그러나 아무리 위력적인 화살이라도 꿰뚫기엔 바위가 너무 크고 두꺼웠다.

잠시 숨을 돌린 레반이 이쪽은 문제없다는 듯 엄지를 척 하고 들어 보였다.

이쪽이 보기엔 영 위태로운 모습이었지만, 적당히 엄지를 마주 들어 주었다.

“원거리 전투형 적과 싸울 땐 이게 문제네. 근거리 전투형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접근하는 것 말곤 싸울 방법이 없어.”

“저쪽 세계에서 원거리 공격을 하는 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렇게 작정하고 먼거리에서 자리를 잡고 맹공하지는 않았죠.”

“역시 스크롤을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이쪽도 원거리 공격을 하면서 견제하면 접근하기 한결 쉬워질 것 같은데.”

스크롤이란 마법을 담아두며, 필요할 땐 찢는 것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아이템이다.

마법사가 아닌 사람도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아주 유용한 아이템이지만, 단 1회성에 불과하고, 얻기는 더럽게 힘들며, 비싸기까지 해서 가능한 쓰지 않고 아껴두는 물건이다.

그래도 지금 같은 상황에선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레테라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밀었다.

“적이 너무 멀어요. 마법의 사정거리로는 닿지 않으니 스크롤만 낭비하는 꼴이에요.”

“결국 평소 방식대로 이 악물고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건데…….”

겨우 50m 가량 올라간 지금 상태라면 해가 져도 도달 못하지 않을까.

그런 우려와 함께 다시 레반의 상태를 살폈다.

레반은 쉬지도 않고 바위를 때리는 화살 소리를 들으며 언제 그곳을 빠져나갈까 타이밍을 재고 있는 모양이다. 아니면 이대로 적이 화살을 낭비하도록 유도하는 걸 수도 있고.

‘화살 소지량의 제한이 없는 SoR의 특성상 수천 발이 쏘아도 바닥날 것 같진 않은데 말이지…….’

콰앙!! 콰앙!! 콰앙!! 콰앙!!

화살은 여전히 바위 위로 떨어졌다. 이미 바위 위쪽은 고슴도치가 되어서 더 이상 박힐 구석도 안 보이는데 말이다.

하지만 아까처럼 소나기처럼 퍼부어지는 게 아니라 일정한 간격으로 화살이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레반더러 빨리 나오라고 종용하는 걸까.

“……응?”

그 화살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나는 표정을 굳혔다.

끊기지 않고 일정 간격으로 이어지는 소음에서 불길한 생각이 미친 것이다.

설마 그게 가능할까? 의문이 들었다.

가능하고말고. 내 안의 경험이 그 의문을 해소했다.

인간을 초월한 녀석들이 뭔들 못하겠는가.

TV에서 보여주는 양궁 시합을 구경하다 ‘와! 굉장하다!’라고 감탄하던 그 장면을 무려 3km 거리에서 재현할 수 말고!

“레반!! 당장 그 바위에서 나와!!”

“형님?”

다급한 내 목소리를 어리둥절하며 레반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뭔가 있다는 거로 판단하고 그가 몸을 움직였을 땐 이미 이 한발 늦어 있었다.

콰아아아앙!!!!

그 두꺼운 바위가 꿰뚫렸다.

그 아래에 있던 레반의 몸과 함께

“쿨럭!!”

“레반?!”

바위를 뚫고 나온 화살의 끝이 레반의 몸을 관통하고도 기세가 남아 그를 밀어내었다. 갑작스런 충격에 숨을 토해낸 그가 거기에 밀려 바닥을 굴렀다.

비탈길을 타고 굴러 내려오는 그를 향해 달려가면서 나는 구멍이 뚫린 바위를 확인했다.

역시 화살이 튀어나온 구멍 안에는 또 다른 화살이 박혀 있었다.

TV에서 양궁 시합을 볼 때면 드물게나마 벌어졌던 일이다. 이미 과녁에 꽂힌 화살 끝에 또 다른 화살이 날아와 박히는 일이 말이다.

그런데 이 사냥꾼은 우연도 아니고 의도적으로 그 일을 벌였다. 그것도 몇 번이나 연속적으로.

바위에 박힌 채 멈춰 있는 화살을 다른 화살로 수없이 두들기며 말뚝을 박아 넣듯 파고 들어간 것이다.

결국 화살은 기어코 바위를 뚫고 레반까지 꿰뚫어냈다.

“레반! 괜찮아!?”

“크으윽……!!”

단숨에 사냥꾼이 정한 경계선 밖으로 굴러 나온 건지 더 이상의 화살은 날아오지 않았다.

쓰러진 레반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피고 있을 때, 그는 억지로 복부를 관통한 화살을 뽑아내고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완전 멀쩡합니다!!”

“멀쩡하긴 개뿔!! 지금 네 배에 흘러나온 내장 조각은 피어싱이냐!!?”

“일상적인 부상입니다!! HP로 따지자면 겨우 20% 깎여 나간 정도입니다!!”

“역시 큰 데미지잖아, 새꺄!! 네 레벨에 그 정도 부상이 가당키나 해! 잔말 말고 포션 마시고 쉬고 있어!!”

흘러나온 내장 조각을 어떻게든 꾸역꾸역 집어넣고 다시 리벤지를 하러 가고 싶어 하는 레반이었지만 나는 허락하지 않고 포션부터 마시게 했다.

분한 표정을 지으며 포션을 마시는 레반이었지만 그것을 방해하는 듯한 사냥꾼의 공격은 날아오지 않았다.

접근만 하지 않는다면 회복하든 말든 아무래도 좋다는 건가.

놈의 목적이 우리의 처단이 아닌 그저 쫓아내는 거란 것에 가능성이 높아졌다.

저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플레이어의 명령인가?

의문만 깊어진다.

사냥꾼이 있는 골짜기 위쪽을 바라보았다.

나를 만나고 싶다는 갑돌이 유저의 쪽지로 인해 오게 된 거지만 나 또한 그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다.

짝!

“잠깐 모여 봐. 다시 작전 타임 좀 갖자고.”

나는 손뼉을 치며 두 사람의 주의를 모은다.

내 곁으로 모여든 그들과 함께 쭈그려 앉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정공법으로는 안 되겠어. 사냥꾼의 허를 찌르는 수밖에.”

“허를 찌른다? 가능하겠습니까? 녀석은 고지에서 주변 일대를 전부 파악하며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숨어서 접근하는 건 쉽지 않을 텐데요.”

“그렇다고 우리 두 사람이 녀석을 교란시키면서 올라가는 건 반대에요. 적이 혼자가 아닐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이상 누구 하나는 오라버니의 곁을 지켜야 해요. 저 녀석이 마음을 바꿔서 오라버니를 직접 겨냥할 수도 있고요.”

“나도 혼자서 위험을 감수할 생각 없어. 언제 어디서나 뒤가 불안하면 제대로 싸우지 못하는 게 당연한 거잖아. 굳이 날 신경 쓰이게 해서 너희들의 전력을 깎을 수는 없지. 그래서 이렇게 해보자고…….”

나는 그들에게 귓속말로 속닥거렸고, 이건 해볼 만하겠다고 느낀 두 사람이 눈을 빛냈다.

***

“…….”

까마귀와 사냥꾼은 여전히 침묵과 함께 지붕에 서 있었다.

침입자들은 아직도 산 아래에 머물러 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이쪽의 의사를 전달했다고 생각하는데 도통 돌아가지 않는다.

누구 한 명이 죽어봐야 돌아가는 걸까.

가능한 목숨을 빼앗지 않으려 했지만, 계속 도전해온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사냥꾼은 다시 새로운 화살을 꺼냈다.

역시 이번에도 침입자들은 이곳을 향해 몸을 옮기고 있었다.

이번엔 은발 머리를 가진 여자였다.

조금 전의 남자처럼 갑옷으로 무장하진 않았다. 대신 양손에는 검정색 권갑(??)을 착용하고 있었다.

기동성을 살리기 위해서 필요한 무기만 빼고 방어구는 내버린 걸까.

얕은수다.

그런 것으로는 단발적으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피할 공간도 없이 쏟아지는 화살비는 피하지 못한다.

“후우…….”

화살 한 개를 새롭게 활시위에 걸쳐 단긴 사냥꾼은 긴 숨을 내뱉었다.

사냥꾼 전용 스킬을 사용하기 전의 준비동작이었다.

스킬 발동 ­ 「애로우 스콜」

그 순간, 시위에 걸쳐진 화살이 빛나더니 수많은 화살로 증식되며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졌다.

여유 공간이 보지 않을 만큼 활시위에 가득 담겨진 화살은 사냥꾼이 손을 놓는 순간 일제히 공기를 밀어내며 날아갔다.

쏘아내기 전 화살이 향한 방향은 전부 제각각이었지만, 쏘아져 나간 화살은 알 수 없는 힘이 작용한 건지 모두 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목표는 레테라.

조금 전 레반처럼 달아날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하늘을 가득 메우며 떨어지는 화살 소나기를 두고 레테라는 걸음을 멈췄다.

점이 모여 면이 되어 떨어지는 화살 세례를 두고 도망칠 곳은 없었다.

그렇다고 화살을 쳐낼 수도 없을 것이다. 화살 한 발에 실린 위력이 강력하여 하나를 쳐내려는 순간 다른 화살의 영역까지 몸이 밀려나 그대로 꿰뚫리고 말 것이다.

그런 위기를 눈앞에 두고 레테라가 보인 행동은 굳게 쥔 권갑에서 힘을 푸는 것이었다.

콰가가가가가가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화살세례가 떨어졌고, 땅은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세차게 흔들렸다.

폭탄이 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사방으로 솟구치는 흙먼지의 폭풍.

그것이 그친 뒤에 드러나는 건 화살 세례에 몸이 꿰뚫린 레테라의 끔찍한 모습이 아니었다.

툭툭.

레테라는 멀쩡한 모습으로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었다.

화살은 어느 것 하나 그녀를 꿰뚫지 못하고 그녀 주위에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가장 놀란 건 사냥꾼 쪽이었다.

‘화살을 흘려보냈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는 분명 목격했다.

레테라가 쏟아지는 화살과 화살의 사이의 손을 집어넣어 커튼을 열어젖히듯 좌우로 밀어내는 것을.

화살을 쳐내는 게 아니라 옆으로 흘려보낸 것이다.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는 게 기술의 근본이라지만, 사냥꾼이 쏜 화살은 원만한 기량으로 대처할 수 있는 화살이 아니었기에 더욱 놀랐다.

한편, 쏟아지는 화살을 흘려내어 몸을 보호한 레테라는 골짜기의 끝, 사냥꾼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금방 족쳐주러 갈 테니까, 딱 기다리고 있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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