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지그문트 3
* * *
혹시 그런 말이 나오지 않을까 예상은 했다. 그렇기에 바로 즉답할 수 있던 것이다.
가득 쌓인 진통제. 스스로를 시한부로 언급했던 박일봉의 이야기.
그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려 한다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암인가요?”
단호한 내 거절에 놀라던 박일봉은 이어지는 내 질문에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네. 대장암 말기. 이미 온몸으로 암이 전이 된 상태죠.”
그는 순순히 인정했다. 숨길 마음도 없어 보였다.
“율이라는 남자가 게임을 한두 달밖에 즐기지 못할 거라고 했을 때 소름이 돋더군요. 마치 제가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 남은 수명을 그는 분명하게 내다본 것 같았습니다. 전 그때부터 제가 죽은 이후를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박일봉은 또 다시 지그문트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자주 저러던데, 버릇 같은 걸까?
“재산은 다 정리했고, 제 죽음에 아쉬워할 만한 친구마저 없어서 미련 없이 이 산골짜기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제 눈감아도 크게 문제 될 건 없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최근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 녀석의 존재죠.”
“…….”
지그문트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복잡한 표정을 얼굴에 드러내고 있었다.
박일봉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드리고 그 준비를 하는 모양이지만, 그는 아직 받아드리지 못했다는 듯이.
“아시다시피 이 녀석은 이쪽 세계의 존재가 아닙니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적(?)을 둘 곳도, 마땅히 안주할 곳도 없지요. 그냥 우직하게 저에게 달라붙어 보필하려는 게 전부이지만, 그것조차 서툴러서 사고나 치는 멍청이입니다. 이대로 이놈을 두고 가려니 안심해서 눈을 감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사고뭉치 손주를 대하듯 지그문트의 머리를 여러 번 두들기던 박일봉은 나를 돌아보았다.
“그렇기에 요현 씨에게라면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 얘기를 꺼낸 건데, 왜 거절하시는 겁니까? 혹시 아직 이놈이 공격했던 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겁니까?”
“그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제가 당신의 캐릭터를 맡을 수 없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손가락을 세 개 펼치던 나는 그 중 하나만을 세워 옆에 있는 레반과 레테라를 차례로 가리켰다.
“첫째, 우선 이놈들이 불만이라는 것.”
“당연하죠.”
“결사반대입니다.”
박일봉과 만났던 율은 게임 캐릭터가 주인 이외를 전부 적으로 생각한다고 하였다.
맞는 말이다. 내가 느낀 이들의 사고방식은 딱 그거였다.
설령 호의적인 대상을 만난다고 해서 그 사고는 바뀌지 않는다.
그건 어디까지나 ‘지금’ 적이 아닐 뿐이니까. 마음 속 어딘가에서 그 대상이 적으로 돌변했을 경우를 항상 상정하고 있다.
그런 두 사람이 지그문트의 합류를 인정할 리 없었다.
물론 내가 강하게 나간다면 받아들이기야 하겠지만 분명 불만이 있을 것이다.
그들을 단순한 게임 캐릭터가 아닌 인격체로 대하고 싶은 내 입장에선 그들의 마음을 무시하고 이쪽의 의견만 밀어붙일 수는 없었다.
그렇게 첫 번째 이유를 설명한 나는 바로 두 번째 손가락을 들었다.
“두 번째는 그 녀석도 우리와 합류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을 거라는 것.”
끄덕.
당연하다는 듯 지그문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반과 레테라가 이런 판국에 그라고 해서 다르겠는가. 잠재된 적으로 생각하고 경계하고 있는 건 저쪽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이들이 한 지붕 아래에서 참 오순도순 잘 살겠다고 생각하니 위궤양이 걸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세 번째 이유. 이게 가장 중요한 건데…….”
세 번째 손가락을 펼치던 나는 정확히 박일봉과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박일봉 씨, 당신은 안 죽습니다.”
“네?”
위로나 응원의 말 따위가 아니었다.
명확한 확신이 서려 있는 내 목소리에 박일봉은 물론 그 옆에 지그문트 또한 당황스러움을 드러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낫겠다.
나는 바로 눈을 감고 내 안에 인벤토리를 빠르게 뒤졌다.
“인벤토리 오픈. 아이템 지정, ‘여신의 눈물’. 소환!”
명령어를 내뱉자 내 손 안에 오색 빛이 감도는 작은 유리병이 나타났다.
그런 내 행동의 의도를 눈치 챈 레반과 레테라가 기겁했다.
“혀, 형님!?”
“오라버니, 진심이세요!?”
레반과 레테라뿐만이 아니다.
지그문트도 설마 여기서 여신의 눈물이 튀어나올 줄 몰랐는지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랬다.
“여신의 눈물……. 가지고 있었나?”
“원래 가지고 있던 거야. 아무래도 다수의 캐릭터가 현실로 나오면 인벤토리도 합쳐지는 건지, 캐릭터마다 따로따로 얻어두었던 게 모두 모여 있더라고. 이거 말고 두 개 더 있으니 사양 말고 써도 돼.”
지그문트를 보면서 말했지만 레반과 레테라가 들으라고 말한 것이다.
여분이 더 있으니 너무 아쉬워 말자고 그들에 눈을 찡긋거리며 신호를 보냈다.
박일봉과 지그문트 앞으로 내밀어진 병을 아깝다는 듯이 바라보는 두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내 판단을 믿기로 한 건지 별 말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 얻기 어려운 걸 세 개씩이나……. 그것도 이렇게 선뜩…….”
지그문트는 바닥에 놓인 병을 집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의 그것을 비춰보았다.
햇빛은 유리병 속에서 찰랑거리는 액체와 찬란한 오색 빛으로 변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환상적인 광경과 병에 감도는 신비로운 기운은 절대로 가짜가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여신의 눈물이 진짜라는 걸 확신한 지그문트는 순수한 감탄의 시선을 내게 던졌다.
“그대, 고인물이였군.”
“맞아! 우리 형님은 고인물이시다!”
“알아서 기라고!”
왜 지그문트는 감탄하면서 고인물이라고 말하는 거고, 왜 이 두 녀석은 거기에 대해 우쭐거리는 거냐?
고인물이 좋은 뜻은 아니건만, 이들에겐 굉장한 무언가로 통하기라도 하는 건가?
“뭐야? 이 병이 뭔데?”
실제 플레이 타임은 길지 않았던 박일봉은 여신의 눈물에 대해 모르는지 지그문트를 팔꿈치로 찌르며 물어보았다.
지그문트는 갑자기 피곤한 듯한 한숨을 쉬었다.
“……아시지 않습니까?”
“몰라! 이런 병은 처음 본다고.”
“자기 인벤토리에 있던 것도 기억 못하는 겁니까?”
“……으음?”
대화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 내가 당황스런 신음을 흘렸다.
인벤토리에 여신의 눈물이 있었다고? 그렇다면 왜 진작에 쓰지 않은 거지?
모든 상태이상과 질병을 치료하고, 포션처럼 고통이라는 리스크가 없는 여신의 눈물이라면 분명 박일봉의 몸을 치료하고도 남을 텐데?
그런 내 의문을 이해한 지그문트는 서둘러 해명해주었다.
“확실히 우리는 여신의 눈물을 가지고 있었다. 내 전 주인……. 그 분과 운 좋게도 하늘의 여왕의 시련을 통과해 겨우 얻어낸 하나였지. ……그걸 내가 써 버리고 말았다. 이쪽이 아닌 저쪽 세계에서.”
“아…….”
대강 사정이 이해가 갔다.
누가 설마 그것을 쓰게 될 줄 알고 아이템을 아껴두겠는가. 필요하다 싶으면 쓰는 거지.
지그문트도 그런 식으로 현실로 나오기 전, 박일봉을 치료할 수 있던 여신의 눈물을 써버리고 만 것이리라.
“뭐, 그럴 수 있지. 아이템이란 결국 쓰라고 있는 거잖아. 강한 적과 싸우다 보면…….”
“……하수도 쥐였다.”
“……뭐라고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대한 충격으로 존대가 튀어나왔다.
다시 한 번 묻는 내 말에 지그문트는 본인이 말하기도 쪽팔린 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냥 하수도 쥐랑 싸우다 쓴 거다.”
……………….
오두막 안을 정적이 감돈다.
그 정적이 의미하는 건 ‘어이없음’이었다.
어떠한 위기 상황에서도 역전의 발판이 될 수 있는 게 바로 여신의 눈물이다.
보통은 강력한 적과 싸울 때를 대비해 최대한 아껴두는 편인데 그것을 겨우 하수도 쥐와 싸우는 데 사용했다고?
한동안 이어지던 정적을 깨고 레반이 손을 들며 질문했다.
“혹시 하수도의 모든 쥐들을 지배하는 보스 몬스터였나?”
“……아니다.”
이번엔 레테라가 손을 들며 물었다.
“그럼 즉사급 맹독을 가진 희귀 몬스터였어?”
“……아니다.”
더 이상 머리를 지탱할 의지도 없는지 이마가 바닥에 맞닿기 직전인 지그문트가 말했다.
“쥐들을 지배하는 보스 몬스터도, 본 적도 없는 맹독으로 공격하는 희귀 몬스터도 아닌 그냥 하수도의 쥐였다. 위생이 안 좋은 하수도 몬스터는 상태이상 ‘질병’을 불러일으키지. 나도 그 상태이상에 걸렸다. 하지만 심각한 건 아니었다. 신전에 가서 치료받거나, 며칠 쉬면 회복되는 정도였지. 그런데 나의 주인이 뭣도 모르고 질병 치료 효과가 있는 아이템을 찾다가…….”
“……여신의 눈물을 사용해버렸다?”
우리의 시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지그문트에게서 박일봉에게 돌아갔다.
그는 집중되는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거……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습니까?”
“…….”
나이에 맞지 않게 순진무구한 박일봉의 모습을 보며 나는 한 때 SoR에 유행하던 말을 떠올렸다.
뉴비란, 때론 고인물들이 상상조차 못할 일을 저지른다.
***
“이게 그렇게 귀중한 아이템이라면…… 역시 받을 수 없습니다. 제가 무슨 염치가 있어서 이것을 받겠습니까?”
“틀에 박힌 말로 사양하지 말고 좀 받아둬요. 사람 목숨이 걸린 일에 귀중하고 자시고가 문제겠습니까?”
여신의 눈물의 가치를 알게 되고, 그것을 받기 꺼려하는 박일봉의 손에 억지로 쥐어주며, 우리는 오동나무 집을 나섰다.
슬슬 홍련마을로 하루 두 번밖에 오지 않는 버스 시간이 다 되어간다.
이것을 놓치면 하루를 더 노숙해야 했기에 서둘러 산을 내려가야만 했다.
나는 집밖으로 마중 나오며 자꾸만 여신의 눈물을 돌려주려하는 박일봉의 손길을 거절하며 말했다.
“염치라는 것도 살고 나서 찾아야죠. 그리고 그거 효과는 확실합니다. 전에 약 잘못 먹어서 황천길 걸을 뻔했는데 후유증도 없이 싹 낫던데요?”
“대체 무슨 약을 먹으셨길래…….”
레반이 어느 범죄조직 털어내고 얻어온 마약이라고 밝히기도 뭐해서 대충 얼버무렸다.
한편 박일봉은 여전히 마음의 부담이 큰 것 같기에 그를 위해 몇 마디 덧붙이기로 했다.
“정 그렇게 부담스러우면 저랑 한 가지 약속하는 거로 하죠.”
“약속이요?”
“올바른 사람으로 있어 주세요.”
나는 그와 마주하며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당신이 우려했던, 갑자기 생긴 힘으로 남이 피해를 보든 말든 제 잇속만 챙기려는 사람은 되지 말아주세요. 전 그딴 꼴 두고 보기 싫어서 플레이어들을 찾아다니는 거거든요.”
대낮에 한 사람을 죽이고 사라져버린 그 암살자를 떠올릴 때면 지금도 열이 올라올 지경이다.
그리고 그때 본 암살자와 지금 눈앞에 있는 박일봉, 지그문트를 비교해보았다.
“적어도 두 사람은 괜찮아 보이네요.”
안도하며 웃는 내 모습에 박일봉은 여러 복잡한 감정이 스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이내 허리를 숙인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의 인사를 받으며 나는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레반과 레테라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오동나무 집을 떠나려는 그때, 지그문트의 목소리가 우리가 걸음을 가로막았다.
“이봐!”
그 모습에 우리는 발을 잠시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
지그문트는 뭔가 각오를 굳힌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희에게는 큰 빚을 졌다. 다시 한 번 이름을 말해다오. 언젠가 반드시 그 빚을 갚으러 가겠다.”
뭔가 했더니 빚 갚겠다는 소리였다. 부담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했는데.
그래도 그게 그 나름대로 최대한 생각해내서 짜낸 감사의 인사라는 걸 느낀 요현이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난 신요현. 지극히 평화로운 삶과 게임을 좋아하는 청년이지.”
“레반. 형님의 오른팔이다.”
“레테라. 근육돼지의 말은 헛소리고 내가 오른팔이야.”
“뭐, 이 새끼야?”
“뭐, 이 새끼야.”
또 티격태격 다투려는 두 사람을 말리며, 집을 떠나 산을 내려갔다.
여신의 눈물 하나는 사용하게 되었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노인과 사냥꾼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우리의 아군이 되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번 원정은 대성공이었다.
***
“……재미있는 사람들이구나.”
산이 떠나가랴 소란을 피우며 하산하는 요현 일행을 보며 박일봉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지그문트는 그의 옆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를 저들에게 맡기려고 한 건, 반드시 내가 죽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
무슨 뜻이냐는 돌아보는 지그문트에게 그가 말을 이었다.
“저들이라면 왠지 너와 잘 어울릴 수 있을 거 같았거든. 하지만 거절 당해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 조금만 더 이 바보 녀석을 돌봐주도록 할까?”
그렇게 말한 박일봉은 유리병의 뚜껑을 땄다.
은은한 오색빛과 놀랍도록 청량한 향을 풍기는 여신의 눈물을 바라보며 그는 어딘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아……. 손자와 다시 만나는 걸 기대했는데, 주변에서 날 내버려 두지 않는군.”
아직은 손자와 직접 만나 사과할 때가 아닌 모양이다.
박일봉은 그대로 유리병 속의 액체를 들이켰다.
몸에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빛나지도 않고, 천사의 환영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막연하게 감돌던 죽음의 예감이 점차 사라져 가는 게 느껴졌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상쾌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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