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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74화 (74/173)

〈 74화 〉 첫 이벤트 ­ 3

* * *

신월시. 여기에 또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연성화를 만나려면 한 번은 와야 했지만, 어디까지나 고려 대상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 전에 범인을 찾게 된다면 굳이 올 필요는 없었다.

예전에 어쩔 수 없이 레반과 레테라에게 학살을 허락해야 했던 곳이기도 하고, 별로 연관되기 싫은 불곰파가 활동하는 영역이기도 해서 가능한 오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율이 뭔 일을 벌인다고 하니 오지 않을 수가 있나.

결국 그가 말한 10월 16일 금요일. 나, 레반, 레테라 셋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아침 일찍 신월시로 출발했다.

신월시는 서쪽으로 서해를 끼고 있고, 생기지는 얼마 되지 않은 신도시다.

면적은 340㎢라고 하는데 이는 거의 경기도 화성시의 절반 정도 되는 넓이였다. 도심지는 서쪽에 밀집해 있고, 동쪽으로 갈수록 한적한 농촌이 나타난다.

이 정도 넓이면 모든 플레이어가 모인다고 해도 마주칠 확률은 낮지 않을까.

참가 조건이 신월시의 영역 내에 있을 것이라고 했으니 설사 플레이어가 동쪽 농촌 지역에 있더라도 이벤트는 할 수 있었다.

율 이 자식은 이 넓은 지역 전체를 아우르며 대체 뭘 할 생각일까.

오서연 씨가 뭘 그렇게 두려워하며 신월시로 오지 말라고 했던 건지 신경 쓰였다.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8시 25분.

아침 일찍 출발했기에 율이 말했던 오전 10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돌았다.

나는 그전에 전에 생각해두었던 일 중 하나를 먼저 처리하기로 했다.

“저기, 실례합니다.”

“네?”

레테라는 지나가는 여학생을 부르며 멈춰 세웠다.

교복에 신월 여자 고등학교의 로고가 새겨진 학생이었다.

그 여학생은 처음엔 뭔가 하며 멈춰 섰다가, 모자와 선글라스를 깊게 눌러쓴 레테라의 모습이 수상했던 건지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선글라스와 모자, 그리고 몸에서 드러나는 세련됨에 눈길을 빼앗긴 것인지 경계하던 모습은 멍한 표정으로 바뀌어갔다.

그런 여학생에게 레테라가 물었다.

“이름표 색을 보아하니 신월 여고 3학년인 거 같은데, 혹시 연성화라는 이름의 학생을 아시나요?”

여학생과 대화하는 레테라의 모습을 나와 레반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았다.

내 옆에 서 있던 레반이 문뜩 궁금한 듯 물었다.

“형님. 모임에 나왔던 그 여자애를 만나려는 의도는 알겠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겁니까?”

“여고 근처 등굣길에 덩치 큰 남성 두 명이 여학생을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본다면 그 자체로 수상하게 여겨질 이유는 충분하니까. 여학생이 경계해서 제대로 말해주지 않을 가능성도 있고, 여기는 레테라에게 맡기고 거리를 두는 게 나아.”

그렇게 한동안 지켜보고 있으려니, 등굣길을 지나는 여학생 총 세 명에게 같은 질문을 날린 레테라가 돌아왔다.

“물어본 세 사람에게서 다 답을 들을 수 있었어요. 연성화라는 여학생은 학교에서도 꽤 유명한 모양이던데요?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지 않고, 학교도 제 기분에 따라 등교하니 결석 횟수도 많다고 해요. 선생님들도 골치를 썩는 모양이지만 성적은 좋아서 별 다른 말은 안 한다네요.”

그 말을 들은 난 머리를 긁적였다.

어째 모임에서 보였던 그 무뚝뚝함을 학교에서도 유지하는 게 훤히 보이는 듯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그런 행동은 그리 좋을 게 못 된다.

나도 중학교 때 직접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대놓고 눈에 띄고 거리까지 뒀다간 이상한 놈들의 표적이 되기 쉬운데…….”

“그래서 작년에는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일진들 얼굴에 의자를 집어 던졌답니다.”

“……뭐지? 낯선 여학생에게서 나와 같은 냄새가 나는데?”

돌로 머리를 찍은 게 더 심할까, 의자를 얼굴에 집어 던진 게 더 심할까.

제 3자의 입장에선 오십보백보나 다름없는 궁금증이 들었다. 별로 중요한 건 아니었기에 그냥 잊어버리기로 하고 다른 걸 물어보았다.

“그래서, 오늘은 등교 했대?”

“아마 오늘도 안 올 것 같다고 여학생들이 말하던데요? 최근 집안에 일이 생겼는지 거의 나오지 않는다면서…….”

“흐음.”

나는 생각에 잠겼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연성화가 점점 수상해졌다.

그렇게 남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는 그녀가 오프라인 모임에는 나왔다. 단순한 변덕 탓이었을까, 그 모임에 목적이 있던 것일까.

후자 쪽에 무게가 실리면서 그녀가 플레이어라는 심증이 강해졌다.

한 번만 더 만나면 확실해질 것 같은데 어디에서 만나야할지 모르니, 원…….

나는 휴대폰을 열고 시간을 확인했다.

여학생들에게 시간을 쏟느라 시간은 어느덧 9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벤트 시간까지 1시간도 안 남았다.

할 수 없이 연성화에 관한 문제는 잠시 잊고 지금 닥쳐올 문제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기로 했다.

“이 일은 다음으로 미루자. 지금은 이벤트를 준비 해야겠어.”

““네!””

두 사람의 힘찬 대답을 들으며 그곳을 떴다.

신월시에 있는 지금이라면 이곳에서도 이벤트를 접할 수 있겠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이상 가능한 사람이 적은 곳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

우리가 향한 곳은 미리 눈여겨보았던 산이었다.

도시와 가까이 접하고 있는 이 산은 사람들을 위한 산책로와 작은 공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가끔 운동하는 사람들이 찾는 장소였지만, 정작 사람들이 지나는 장소는 넓은 산 중에서도 극히 일부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사람들의 손 길지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영역. 산책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조난을 걱정해 들어가지 않는 곳을 우리는 거리낌 없이 들어갔다.

그뿐일까. 아예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 작정한 듯 산짐승들만 다니는 길을 통해서 더욱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이쯤이면 되겠지.”

산림 속에서 훤히 트여있는 적당한 장소를 발견한 우리는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동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지체해 이벤트 시작까지 앞으로 10분도 남지 않았다.

나는 바로 사전 작업을 시작했다.

“캐릭터 지정, ‘레반’. 웨폰 체인지, ‘흉신악살 거대 도끼’. 아머 체인지, ‘린도스의 판금 갑옷’.”

나는 명령어를 통해 레반에게 장비를 맞춰주었다.

내 말과 동시에 레반의 몸에 빛나면서 그의 무기와 갑옷이 하나하나 나타나기 시작했다.

동쪽의 악마가 사용하다 최후에는 스스로의 목을 끊는 데 사용했다는 전설이 담긴 거대 도끼.

어느 멸망한 왕국의 명장 린도스가 최후에 남겼다고 하는 갑옷.

현재 장비할 수 있는 최고의 무구들로 몸을 무장한 레반이 도끼를 여러 번 휘둘러보고 자리에서 점프해보며 갑옷의 착용감을 살폈다.

오랜만에 쓰는 무구였지만, 바로 몸에 익숙해졌는지 레반의 움직임은 놀랍도록 가볍고 자연스러웠다.

사실 오랜만이 아니라 처음 쓰는 무기더라도 결과는 쉽게 다루는 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의 능력치는 성향만 맞는다면 어느 무기든 최대한의 힘을 끌어낼 수 있었다.

“캐릭터 지정 ‘레테라’. 웨폰 체인지, ‘사령 베르거의 낫’. 아머 체인지, ‘하늘뱀의 가죽 갑옷’.”

이번엔 레테라의 장비를 맞추었다.

보스 몬스터 사령 베르거를 쓰러뜨리고 얻은 불길한 낫.

하늘뱀이라고 하는 몸 자체가 던전이자 보스 몬스터인 거대한 뱀의 가죽을 떼어내어 만들어낸 가죽 갑옷.

방어력이 높으면서 레테라의 장점인 기동력을 잘 살려내기 적합한 갑옷이었다. 그녀는 갑옷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손에 쥔 낫을 휘둘러보았다.

레테라의 몸집만 한 거대한 낫은 그녀의 손에 이끌려 이리저리 현란하게 춤을 추었다.

사령이 썼기에 불길함을 품었던 낫은 레테라의 손에 의해서 영혼까지 현혹될 정도로 아름다운 칼춤을 그려냈다.

그것만으로 몸을 완전히 푼 모양이다.

레테라는 낫을 어깨에 짊어지며 준비가 되었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확인할게. 포션이라던가, 다른 소비용 아이템 물량은 충분하지?”

“물론이죠!”

“무슨 일이 있어도 대응할 수 있게 전부 빠짐없이 챙겨 놨습니다.”

두 사람은 허리춤의 가죽 주머니, 아이템 숏컷을 두드리며 말했다.

준비는 대략 끝난 것 같다.

나는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9시 55분.

남은 시간은 불과 5분.

우리는 준비를 마친 채 5분 동안 그곳에서 기다렸다.

두근두근!

심장이 평소보다 크게 뛴다.

긴장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도대체 뭐가 튀어나올까.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걸 기다리는 기분이다.

상자를 열어버린 여인과 다르게 나는 그것의 내용물이 좋지 않을 거라 짐작은 간다.

그런데 빨리 열고 바라는 건 이 긴장된 시간을 빨리 끝내고 싶기 때문일까, 아님 내 안에도 위험한 호기심이 있기 때문일까.

1분 남았다.

편치 않은 마음을 드러내듯 내 발끝은 낙엽이 쌓인 흙 위를 연신 두드리고 있었다.

레반과 레테라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아마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든 내가 느끼는 긴장을 덜어주지 못한다는 걸 아는 거겠지.

남은 시간은 드디어 10초의 아래로 진입했다.

9, 8, 7…….

“레반, 레테라. 일단 등을 맞대고 서 있자.”

휴대폰 시계를 들여다보던 내가 말했다.

어느 방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바로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6, 5, 4…….

산림 한 구석에 놓인 작은 공터에서 우리 세 사람은 등을 맞댔다.

갑옷 너머이긴 하지만 두 사람과 몸을 맞대고 있으니 조금은 안심이 되는 기분이다.

3, 2, 1…….

10시 정각이 되었다.

레반과 레테라가 주변의 변화를 감지하려고 기감을 최대한으로 높였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이쪽의 사정을 모르는 산 속 벌레와 짐승의 울음소리가 간간히 들려오는 게 전부였다. 그 울음소리에서 뭔가를 감지했던 두려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 손톱만큼의 변화도 없자 레반과 레테라가 의문을 표했다.

“……?”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둘 다 긴장 풀지 마.”

그런 그들을 향해 내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율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런 사태는 예상외도 아니었다.

“사람 가지고 놀기 좋아하는 녀석이 꾸민 이벤트야. 분명 이렇게 시간차를 둬서 방심시켰다가…….”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일이 벌어졌다.

후욱……!!

주변에서 들리던 벌레와 짐승의 울음소리가 돌연 끊긴다. 동시에 주변에 색이 사라지며 밤이 된 것 같은 짙은 어둠이 깔렸다.

마치 TV를 보다 채널을 돌리기라도 한 것 같은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주변에 장소는 변함이 없다.

우리가 서 있던 산림 속 공터 그대로의 모습이다.

그런데 주변 생물의 소리가 사라지고, 톤이 한껏 낮아진 것만으로 완전히 다른 장소에 온 것 같았다.

뭔가를 느낀 레반과 레테라가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그 움직임을 느낀 나도 따라서 고개를 들었다.

불과 몇 초 전까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던 하늘에는 먹구름이 깔려 있었다.

햇빛마저 거의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짙은 먹구름이었다.

그 구름에서 무언가 작은 점이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점은 빠르게 커져갔다.

“뭔가…… 떨어지고 있어?”

내가 보는 게 맞냐는 듯 두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그들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떨어지는 게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나보다 시력이 좋은 그들이라면 벌써 떨어지는 물체를 파악했을 텐데도.

나는 그들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레반과 레테라는 자신이 본 게 진짜라는 걸 믿을 수 없는지 잔뜩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이, 하늘에 있던 작은 점은 곧 우리들 근처에 큰 굉음을 내며 떨어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흔들리는 지축.

땅이 깊게 파고들어 가고, 바닥에 있던 낙엽은 시선을 어지럽히듯 높게 비산했다.

무언가가 떨어지는 곳에서 내가 느낀 것 바로 생물의 기척이었다.

낮은 울음소리, 비릿한 냄새, 거대한 실루엣, 그리고 우리를 향하는 흉악한 안광까지.

난 그것을 알고 있다.

웨어울프.

늑대와 인간을 섞어놓은 형태를 가진 괴물.

SoR에서 지겹도록 만나는 몬스터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그놈이 여기에 있었다. SoR도 아닌 현실에.

“크아아앙!!!”

낙하의 충격으로 정신을 못 차리는 듯 했던 웨어울프가 이쪽을 향해 살기 어린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 직후, 웨어울프의 목에 붉은 선이 그어지며 놈의 머리와 목이 분리되었다.

죽은 것이다.

웨어울프가 적의를 드러내자마자 달려 나가 낫을 휘두른 레테라에 의해서.

돌진 한 번으로 끝장낸 건지 막 바닥 위로 착지하는 레테라의 모습을 보고 있을 때, 이번엔 레반이 검을 휘둘렀다.

콰지직!!!

도끼가 살과 뼈를 짓뭉개는 소리가 바로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나에게도 피가 몇 개 튀었다.

레반이 위를 향해 휘두른 도끼에 박혀 있는 건 새와 인간 여성의 몸을 섞은 듯한 괴물이었다.

하피.

이 역시 SoR에서 본 적 있는 녀석이었다.

하피가 날카로운 발톱을 나에게 향하며 떨어지는 걸 레반이 도끼를 휘둘러 사전에 차단한 것이었다.

“웨어울프에, 하피라고……?”

나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당장이라도 비를 쏟아낼 듯이 보이는 먹구름이었지만 물방울 따윈 단 한 점도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보이는 건 조금 전과 비슷한 검은 점.

그것은 우리의 머리 위뿐만 아니라 사방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타앗!!

“오라버니!”

“형님! 혼자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레반과 레테라가 다급하게 외치며 따라붙는 소리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아까 보아둔 절벽으로 향하는 것만이 가득했다. 그곳이라면 산에서 도시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을 터였다.

수풀을 해치고, 레반과 레테라가 바로 뒤에서 따라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그 절벽에 도착했다.

거기에서 내가 본 것은 정말로 끔찍했다.

괴물의 소나기.

SoR에서 한 번 이상은 보았던 몬스터들이 모두 하늘에서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슬라임이나 코볼트 같은 작은 몬스터가 있는가 하면, 거대 사막 깊은 곳에 서식하며 남산 타워 정도로 거대한 샌드 웜도 있었다.

그런 몬스터들이 다름 아닌 도시 위로 떨어진다.

사람들이 있는 건물이 몬스터들에 의해 깔리고 무너지는 광경을 보는 순간 내 이성이 날아갔다.

그리고 지금도 어디선가 이 모습을 보고 있을 녀석을 향해 격노를 토해냈다.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미친 새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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