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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79화 (79/173)

〈 79화 〉 정보 거래 ­ 1

* * *

“키기기긱……!!!” “카카카각……!!!”

헬데트 수십 마리가 울어 젖히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두꺼운 벽을 한 번 통과해서 그 소리는 희미하였지만, 여전히 소름 끼치는 울음이었다.

그 소리는 나는 땅바닥에 주저앉으며 듣고 있었다.

그리고 피곤한 듯 고개를 숙였다.

지쳤다.

게임에서도 그랬지만, 현실에서 수십 마리의 헬데트에게 쫓기는 건 게임보다 더 끔찍한 일이었다.

그때 우리는 일제히 달려드는 헬데트를 피해 달아났다.

아무리 레반과 레테라의 체력에 여유가 있다고 해도 나라는 핸디캡을 진 채 헬데트 무리와 싸울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벽을 부수고 그 너머의 골목길로 달아났다.

헬데트 무리는 그런 우리의 뒤를 쫓았다.

무시무시한 각력으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헬데트 무리를 보며 이대로는 따라잡힌다고 느꼈다.

그렇기에 하티에게 물었다.

­범위 공격용 신성 마법이요? 물론 쓸 수 있긴 하지만 저 많은 헬데트를 한 번에 보내버리는 건 무리에요! 앞선 전투로 마나 소모가 많아서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고요!

그 한 번이면 충분하다고 내가 말했다.

나는 레반과 레테라를 시켜 방향을 꺾었다.

어느 5층 건물의 외벽을 부수고 그 내부로 뛰어 들어간다.

당연히 헬데트 무리가 그 뒤를 따라 들어왔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건물을 가로지른 우리는 반대편 벽을 부수고 그곳을 빠져나갔다.

­지금이야!

내 외침에 하티는 준비하고 있던 신성 마법을 사용했다.

‘퍼져나가는 신성(??)’이라는 이름의 눈부신 빛무리가 파도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순수한 신성력의 부딪침인 이것은 넓은 범위를 공격할 수 있지만 위력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게임에서도 견제용으로 사용하는 게 전부다.

잘은 몰라도 고레벨인 듯한 하티가 사용한 그것도 같았다.

앞서 달려오던 헬데트 여러 마리가 충격을 받고 물러나지만, 살이 약간 뭉개져 피가 흐를 뿐 즉사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키키키카카칵!!!!

오히려 더 성질을 돋운 듯 괴성을 질러대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진짜 노리는 건 헬데트가 아니었으니까.

노리는 건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과 외벽 전부였다.

콰콰콰콰콰가아아아아앙!!!!

중간을 쏙 빼버린 젠가처럼 건물 자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 번 바닥으로 내려앉은 충격이 한 번 전체로 퍼져나간 뒤, 그대로 연쇄작용처럼 끝없이 주저앉았다.

우리는 미리 뚫어놓은 구멍으로 몸을 빼낼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를 쫓아 건물 안으로 들어온 헬데트 무리들은 위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를 모두 감당해야만 했다.

이것으로 헬데트들이 죽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확실하게 시간을 벌었다.

그 즉시 우리는 헬데트가 추적할만한 핏자국과 냄새를 아이템으로 지우고 하수도 뚜껑을 열어 그 밑에 숨었다.

가짜로 만들어낸 도시답게 하수도 또한 오수(?) 하나 없이 텅 빈 공간이었다. 악취가 나지 않는다는 점은 다행이었다.

위쪽에선 무너진 건물에서 빠져나온 헬데트들이 우리를 찾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왔지만, 이내 흔적을 찾지 못하고 이동하였다.

다른 캐릭터들을 통해서 헬데트의 기척이 멀어졌다는 확언을 듣고 난 뒤에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좀 쉬자.”

하수도 치고는 과하게 깨끗한 통로 벽에 등을 기대며 내가 말했다.

긴장 상태가 너무 팽팽히 유지되다 보니 온몸이 부서질 것처럼 피곤했다.

직접 괴물들과 싸운 녀석들 앞에서 이러자니 엄살처럼 보인다만, 내가 일반인이라는 걸 감안해주길 바란다.

게다다 난 진짜로 죽을 뻔했다.

아까 그 헬데트들, 어찌된 영문인지 유독 나에게 큰 적의를 드러내며 쫓아왔기 때문이다.

자신의 동족을 죽인 레반과 레테라보단 내 쪽을 더 싫어하는 것처럼.

이유가 뭐지? 나와 그들의 차이점이라면 태생 정도일 것이다.

혹시 헬데트들은 내가 플레이어라는 걸 구분하는 것일까.

그것만으로는 조금 전의 적의는 설명하기 힘들지만, 연관이 없다고 보기도 힘들었다.

“형님.”

한숨 돌리면서 헬데트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때 레반이 무언가를 내밀었다.

“조금 전 잡은 헬데트의 시체가 사라지면서 떨군 겁니다. 바로 도망쳐야 했기에 건네 드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뭐?”

쓰러뜨린 몬스터가 사라졌다. 그건 그 몬스터가 아이템을 떨군다는 이야기였다.

아이템을 떨구지 않는 몬스터의 시체는 그대로 남아 있다.

왜 이런 차이를 두는지 모르겠지만, SoR 때부터 이어져 오던 규칙이다.

우리가 쓰러뜨렸던 몬스터 대군중에서 시체가 사라지는 경우는 없었다.

그렇기에 이 이벤트가 헬데트 아이템 획득 없는 순전히 경험치 목적의 이벤트인 줄 알았다.

그런 줄 알았는데 드랍 아이템이라고?

바로 그것을 레반에게서 건네받았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직사각형 종이. 재질은 뻣뻣하다.

알 수 없는 문양 같은 게 종이에 새겨져 있어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3분의 1 정도 되는 위치에 종이를 가로지르는 점선을 보니 용도로 떠오르는 게 있었다.

‘티켓?’

경기장이나 공연장에 입장하기 위해 사용되는 종이.

점선을 따라 새겨진 구멍은 그 티켓을 뜯기 쉽게 하기 위해 새기는 용도였다.

헬데트를 쓰러뜨리면 얻는 아이템이라 해봐야 토끼 가죽이나 불길한 이빨이라고 하는 재료 아이템뿐일 텐데, 티켓이라니…….

이것도 아이템인 이상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내가 명령어를 내뱉었다.

“대상 지정, 아이템 확인.”

탈출 티켓 등급: ­ 분류: 티켓

이벤트에서 탈출하기 위한 티켓.

종이를 뜯는 것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사용한 사람을 현실 세계로 돌려보낸다. 한 번 사용한 티켓은 다신 사용할 수 없으며, 한 번 이벤트에서 벗어나도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다.

티켓은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것으로 확률적으로 얻을 수 있다. 그 몬스터가 강하면 강할수록 드랍 확률은 증가한다.

「즐겁게 놀았냐? 적당한 곳에서 만족하고 돌아오는 것도 요령이라고.」

‘탈출 티켓!’

마지막은 어째 율의 느낌이 나는 아이템 설명을 읽으며 나는 눈을 빛냈다.

이벤트를 그만두는 조건이 보이지 않아서 난감해하고 있었는데, 이게 그 조건이었던가.

탈출 티켓. 이것을 사용하면 이벤트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 사실에 팽팽하게 당겨졌던 신체의 긴장이 조금은 풀린 기분이다.

똑같이 몬스터가 가득한 세상이라도, 나갈 방법을 모른다는 것과 언제든 나갈 수 있다는 건 마음의 부담감부터가 다른 법이니까.

이제 이 위험한 곳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안심하는 찰나, 한 문구에 시선이 갔다.

「사용한 사람을 현실 세계로 돌려보낸다」

뜯은 사람을 현실로 돌려보낸다고? 함께 들어왔던 사람들이 아니라 뜯은 사람만?

‘……이거 설마?’

나는 풀어지던 표정을 다시 딱딱하게 굳혔다.

과연. 알 거 같았다.

이 이벤트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 아이템이 뭔가요?”

시시각각 변하는 내 표정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하티가 물었다.

그러다 내 상념을 방해하지 말라는 듯 노려보는 레반과 레테라의 눈빛에 고개를 수그렸다.

뭐, 생각에 잠기는 건 여기까지만 해도 되겠지.

나는 그들에게 이 티켓에 대해 말해주었다.

“탈출 티켓이야. 이것을 사용하면 이 세계에서 나갈 수 있어. 문제는 효과가 적용되는 게 한 사람당 하나뿐이야.”

“한 사람당 하나…….”

“그럼 앞으로 세 개가 더 필요하겠네요.”

레반이 복습하듯 중얼거렸고, 레테라가 빠르게 다음 목표를 파악한다.

“그럼 빨리 몬스터를 잡는다면 금방 나갈 수 있겠네요!”

하티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근데 이게 쉽지가 않아. 물욕 센서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거든.”

게임을 하다 보면 원하는 재료와 아이템은 있는 법.

그것을 얻기 위해 유저들은 재료를 모으고 몬스터를 쓰러뜨린다. 그러나 아이템 획득이 확률인 이상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운이 정말 나쁘다면 드랍률 10%인 아이템을 몬스터 100마리 잡고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원하면 원할수록 나오지 않았을 때의 체감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것을 사람들이 물욕 센서가 작용했다고 말한다.

게임 무언가가 원하는 아이템을 얻지 못하게 작용하는 게 분명하다는 음모론 같은 농담이다.

그것만 들으면 웃어넘길 수 있겠지만, 실제로 겪으면 웃음도 안 나온다.

정말 안 나오는 아이템은 더럽게 안 나온다는 나도 뼈저리게 체험했었으니까.

“우리가 이제까지 몬스터를 몇 마리나 쓰러뜨렸지?”

“일일이 새어보지 않았지만, 대략 300마리 정도 같아요.”

레테라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그 정도라고 생각해. 그런데 300마리를 잡는 동안 겨우 하나 얻은 거라고. 우리가 운이 안 좋아서 늦게 얻은 거라면 괜찮지만, 만약 이것도 그나마 운이 좋아서 빠르게 얻은 거라면? 우리 모두가 나갈 수 있는 티켓을 모을 때까지 얼마나 잡아야 할까?”

…….

상상이 가지 않는지 세 사람 사이에서 침묵이 감돌았다.

혹은 그들도 한 번 이상은 겪어봤던 나오지 않는 아이템을 얻기 위한 무한 사냥의 굴레를 떠올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표정이 심히 좋지 않다.

“굳이 3개나 더 모을 필요가 있을까…….”

“오라버니는 먼저 내보낸다 치고, 불행한 사고로 머릿수가 하나 줄어든다고 한다면…….”

“왜 절 보세요? 이봐요. 왜 절 보시는 거냐구요?”

오죽하면 이런 소리를 중얼거릴 정도였다.

이것도 플레이어의 업보 중 하나일까.

노가다가 싫은 그들이 난이도를 낮추기 위해 위험한 생각을 품는 게 훤히 보였다.

‘아무리 얻고 싶은 아이템이 있더라도 노가다는 적당히 하는 건데.’

위험한 눈길을 하티에게 향하는 두 사람을 막기 위해 내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무작정 노가다만 할 필요는 없어. 아이템 설명을 보니 강한 몬스터일수록 얻을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간다고 했거든.”

“그럼 헬데트를 노리실 겁니까?”

확실히 이 티켓은 헬데트를 쓰러뜨리고 얻었다.

정확한 확률은 모르겠지만, 헬데트도 강한 축에 속하는 몬스터인 건 분명하니 확률도 높을 터였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헬데트는 위험부담이 너무 커. 하나와 싸운다면 할 만하겠지만, 싸움이 일어나면 순식간에 몰려드는 녀석들이야. 그것보다는 헬데트 보다 더 강하면서 단일 개체인 몬스터를 노리는 게 훨씬 낫겠지.”

짜악.

나는 손뼉을 치며 세 사람의 주의를 모았다.

이대로 놔뒀다간 내분이 일어날 것 같으니 여기서 확실히 정리해줘야 했다.

“잘 들어. 일단 한 배를 탄 이상 우리는 넷이서 같이 나갈 거야. 나 먼저 나가 있으라는 말은 하지도 마. 우리는 동시에 티켓을 찍고 나갈 거라고. 알겠지?”

내가 단호히 말하자 두 사람은 딴맘을 품을 수 없었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하티는 안심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문뜩 자신이 이렇게 마음 졸여야 하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불만을 표했다.

“저도 성실히 파티원으로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이런 대우는 너무하지 않나요?”

“이 녀석들은 기본적으로 나를 제외한 타인은 안 믿거든. 아마 네가 배신하거나 수상한 행동을 드러내기를 계속 벼르고 있을걸?”

레반과 레테라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두 사람은 무언으로 긍정을 표한다.

“오히려 내가 보기엔 네가 특이한데? 다른 그룹의 캐릭터들과 자연스럽게 협력하고, 거부감은 안 들어?”

“성직자는 본래 서포트가 전문이니까요. 낯선 사람을 돕는데는 익숙해요. 요현 씨는 보아하니 솔플을 즐기는 유저셨나 보군요?”

“……그걸 어떻게 알아?”

정곡을 찔린 내가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하티는 레반과 레테라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희 캐릭터들의 성격은 게임 플레이 성향에도 영향을 받아요. 파티 플레이를 잘 하지 않고 솔플을 즐기는 경우라면, 저 두 사람과 같이 남을 잘 믿지 않고 독불장군 스타일로 막 나가게 되기 쉽죠.”

“시비 거는 거냐?”

“진짜 독불장군이 뭔지 보여줄까?”

무기를 집고 일어나려는 두 사람을 내가 진정시켰다.

성격이 플레이 성향에 영향 받는다고? 설마 이 녀석들이 이딴 사고뭉치가 된 것도 내 탓이었던 거야?

마음속의 충격을 지우지 못한 채 하티를 바라보았다.

“그런 정보는 처음 들었어.”

“뭐, 저희도 우연히 알게 된 거예요. 예전에 또 다른 플레이어와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수다를 떨듯 말하던 하티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듯 입숨을 매만지던 그녀는 이내 나에게 시선을 향했다.

“이러지 말고 거래를 할까요?”

“거래? 뭘?”

“정보 거래요. 그쪽이나 이쪽이나 율이라는 남자가 꾸민 이 게임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많을 텐데, 서로 모르는 정보를 교환하지 않겠어요?”

정보 거래라?

확실히 나쁘지 않지만, 정보란 건 쥐고 있을수록 가치가 있는 법이다.

그것을 거래할 정도라면, 저쪽에도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 하겠지.

“우리가 원할 만한 정보가 있어?”

“저희가 만났던 플레이어에 대한 정보는 싫으신가요?”

“그것도 흥미가 있긴 하지만, 기왕이면 좀 더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정보면 좋겠거든.”

“흐음……. 그럼 이건 어때요?”

잠시 고민하던 하티는 확실하게 끌릴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듯 눈을 빛냈다.

하지만 우리나 저쪽이나 게임을 시작한 기간은 같다.

아마 얻은 정보에도 큰 차이는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그녀의 열리는 입을 바라보았다.

“캐릭터를 원래 세계 되돌리는 방법이 있어요.”

“……뭐?”

별로 큰 기대를 안 하던 와중에 들려온 충격적인 발언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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