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탈출하라! 1
* * *
도대체 하수도 위 지상에서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레반, 레테라, 하티 세 사람은 입을 모아서 일단 이 자리를 피하자고 말했기에 일단 몸을 움직였다.
아직 건네준 정보의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하티마저 도피를 선택한 거면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
나는 그들을 따라 하수도를 달리며 물었다.
“누가 설명 좀 해줘!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데!”
하수도 전체가 떨려올 만큼의 진동과 천장에서 떨어지는 먼지가 그치지 않는다.
공사용 굴착기로 지상을 사정없이 두드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소리는 우리가 달려가는 내내 머리 위에서 일어났다.
소리가 우리를 따라오는 게 아니다.
소리가 울리는 범위가 너무 광범위한 것이다.
“몬스터입니다!”
“몬스터……?”
“처음에 보았던 그 몬스터의 비! 그게 다시 쏟아지고 있어요!”
“뭐가 어째!?”
레반과 레테라의 말에 내가 기겁했다.
절벽 위에서 보았던, 도시 위로 몬스터들이 떨어져 내리는 광경이 다시 한 번 머릿속을 스쳤다.
이 정도 규모의 진동이 몬스터들이 지상에 떨어져 내린 충격의 여파라면 충분히 납득이 갔다.
그런데 왜 또!?
한 번 떨어졌으면 됐지 왜 또 떨어지고 X랄인 건데!
‘설마…… 진짜 웨이브는 이쪽?’
나는 지상의 몬스터들이 한 되 뭉쳐 우리에게로 밀어닥치는 게 몬스터 웨이브로 보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진짜 웨이브가 하늘에서 몬스터들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겨우 제1파를 견뎌냈을 뿐이다.
그리고 횟수가 더 해질수록 몬스터가 더 강해지는 웨이브 특성상, 지금 떨어져 내리는 몬스터들은 우리가 처음 싸웠던 몬스터들보다 더……!
콰아아아아아앙!!!!!
생각이 끝맺기도 전에 우리가 달려 나가던 통로의 앞쪽이 강렬한 충격과 함께 주저앉았다.
세 캐릭터가 나를 중심으로 전투태세를 갖추었고, 나는 그들 너머에서 안개와 같은 짙은 흙먼지에 감싸인 거대한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있던 하수도 통로는 지상과 가장 가까운 층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지상과의 벽이 결코 얇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게 뚫릴 정도라면, 떨어진 그림자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소리겠지.
마치 비에 젖은 상자처럼 구멍이 난 지상으로부터 옅은 빛이 들어온다.
그것이 비추는 건 2차선 도로 정도의 폭을 가진 하수도 통로를 가득 메울 정도로 거대한 몸체였다.
“크르르르르르…….”
그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바위산 같았다.
재질을 알 수 없는 광물이 갑옷처럼 몸을 감싼 사족보행형 괴물.
얼핏 보면 거북이 같지만, 등에 돋아난 바위는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뾰족했다.
소를 닮은 듯이 넓은 얼굴과 두 개의 거대한 뿔을 가진 머리 역시 바위로 뒤덮여 있다.
투구 같은 바위틈에서 빛나는 녹색 안광을 발견한 순간 나는 온 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온몸의 세포가 저놈을 거부하는 느낌이다.
나는 덜덜 떨려오는 입술을 움직이며 녀석의 이름을 내뱉었다.
“‘암글라드’……!!”
그건 헬데트와 마찬가지로 SoR 오리지널 몬스터였다.
그런데 여기서 이게 튀어나온다고?
이 녀석 레이드 몬스터잖아!
최소 다섯 파티 이상은 모여야 싸움이 제대로 성립되는 녀석이라고!
암글라드를 알아본 다른 세 사람의 얼굴에도 긴장의 빛이 흘렀다.
그리고 지상에서 하수도로 내려앉은 암글라드는 낙하의 충격을 털어내듯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다 이쪽을 발견한 듯 고개를 돌렸다.
“크르르르르르르르……!!!!!”
……기분 탓인 걸까.
이 녀석, 헬데트 때처럼 정확히 나를 주시하며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 같은데?
착각이었길 바랬지만, 착각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 암글라드가 입을 벌리며 괴성을 질렀다.
“크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포효가 울려 퍼진다.
닿는 것만으로도 고막이 찢어지고 내장이 뒤틀려 내용물을 쏟아낼 것만 같았다.
그 소리보다 더 힘든 건 정면에서 확 덮쳐오는 열기였다.
회색빛이 감돌던 암글라드의 몸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며 살갗이 익을 거 같은 열기를 뿜어낸다.
대략 5m 떨어진 이 거리에서도 이런 열기라니, 가까이에서 열기를 쐬면 어떻게 될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싸움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레반, 레테라, 하티 세 사람이 암글라드에게 달려들기 위해 온 몸에 힘을 모았다.
그런 그들의 행동이 가소롭다는 듯 암글라드는 사족보행이던 몸의 상체를 들어 올렸다.
일시적으로 두 다리로 몸을 지탱하고 선 암글라드가 한쪽 앞발을 주먹처럼 휘두를 듯 뒤로 당겼다.
그 주먹에 열기가 모이면서 용암과 같은 빛을 뿜어내었다.
전열에 레반과 레테라가 먼저 달려들고, 암글라드가 열기를 품은 그 앞발을 휘두르는 순간이었다.
…………바닥이 푹 꺼졌다.
콰과과과아아아아아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공격을 날리기 적진이었던 암글라드가 바닥이 내려앉으며 그 밑으로 떨어졌다.
막 맞붙이려던 레반과 레테라는 무안한 자세로 무기를 멈춰 세웠다.
어이없는 표정을 숨기지 못한 나도 거대한 구덩이를 바라보았다.
암글라드는 아직도 바닥을 부수며 추락하고 있는지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 점차 멀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내가 혼잣말 하듯 말했다.
“……게임 설정상으로, 암글라드가 몸에 두른 광석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물질이라고 하던가?”
레반, 레테라, 하티 세 사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내 말을 긍정했다.
전조는 있었다.
이미 암글라드가 떨어졌던 시점부터 놈이 서 있던 바닥은 금이 갈 대로 간 상태였으니까. 하수도 바닥조차 녀석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을 일찍이 눈치 채지 못한 건 암글라드의 존재감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지대가 불안정했기에 망정이지, 넓고 지대가 튼튼한 장소에서 만났으면 저놈처럼 무서운 녀석은 또 없었다.
“끼에에에에엑!!”
“우워어어어어어!!!”
도매뱀처럼 보이는 몬스터 하나랑 트롤처럼 보이는 몬스터 하나가 천장에 난 구멍을 통해 암글라드가 떨어져 내린 구덩이 아래로 우리를 지나치며 떨어져 갔다.
아직 몬스터의 비는 계속 내리는 모양이다.
떨어지는 몬스터들을 바라본 내가 세 사람을 향해 말했다.
“지금은 여기서 나가는 것에만 집중하자. 또 머리 위에서 무거운 무언가가 떨어지는 건 사양이야.”
***
“시원하게 쏟아지네.”
마치 풍년을 예고하듯 내리는 봄비를 즐거워하는 농부처럼 율은 태연하게 팝콘을 씹으며 몬스터들이 떨어져 내리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
그리고 그의 옆에선 오서연이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그 광경을 함께 지켜보았다.
그들의 눈앞에 있는 건 60인치 TV.
화면에 비춰지는 건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진 도시 위로 떨어지는 수많은 괴물의 그림자.
그건 결코 영화의 한 장면 따위가 아니었다.
결국 이벤트는 시작되어버렸고, 하다못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자신도 알게 해 달라면서 오서연이 율에게 항의했다.
그러자 율은 어디에서 가져온 것인지도 모를 TV를 설치했다. 불과 40초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그렇게 해서 오서연도 이벤트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율이 리모컨을 누를 때마다 화면이 바뀌며, 몬스터들과 싸우는 캐릭터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전체적으로 순조롭게 몬스터들을 쓰러뜨리며 플레이어들은 나아가고 있었다.
위태로워 보이는 사람들이 몇몇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제법 게임에서 구른 덕을 본 듯 잘 헤쳐 나갔다.
그러던 중에 상황이 갑자기 돌변한다.
한 번 몬스터가 떨어져 내렸던 도시 위로 또 다른 몬스터가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저, 저게 뭐예요!?”
참다못한 그녀가 율에게 따졌다.
율은 아무렇지도 않게 팝콘이나 씹으며 TV를 바라보았다.
“뭐긴. 두 번째 몬스터 웨이브지. 디펜스 게임 안 해봤어?”
“이게 무슨 디펜스 게임이에요!”
“디펜스 게임 맞잖아? 밀려드는 몬스터에게서 스스로의 목숨을 지키지 못하면 끝장나는 게임. 심플하지?”
율은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면서 말하였다.
다양한 장소에 선 다양한 인물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몬스터들에 놀라면서도 어떻게든 대응하고 있었다.
“이건 자주 없는 경험치 벌이의 기회지만, 동시에 리스크가 크지. 닥쳐오는 몬스터 무리는 점차 강해지거든.”
한 플레이어와 캐릭터 콤비를 바라본다.
그들은 고블린이나 슬라임 같은 약한 몬스터를 한 곳으로 몰아넣고 몰이사냥을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벌써 세 자릿수의 몬스터를 죽였건만, 티켓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아예 티켓의 존재조차 모르고 경험치 벌이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다 느닷없는 몬스터들의 난입에 당황하며 몸을 피한다.
“약한 몬스터만 잡으며 안정성을 유지하다간 티켓을 얻지 못하고 후폭풍을 감당해야만 하겠지. 강한 몬스터를 잡아서 빠르게 티켓을 모으더라도 탈출 타이밍을 잘못 잡으면 피로가 크게 쌓인 채로 강력한 몬스터에게 습격 받게 돼.”
채널을 돌려본다.
이번에 나온 플레이어와 캐릭터의 콤비는 하나가 아니었다.
두 측으로 나뉜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적대감을 드러내며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맞부딪치는 두 명의 캐릭터, 그런 그들을 뒤에서 지켜보는 두 플레이어.
그들은 각각 한 손에 탈출 티켓을 쥐고 있었다.
상대의 것을 빼앗으면 자신의 것과 함께 두 장이 되는 셈이니 이벤트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조심해야 할 건 몬스터만이 아니야. 다른 플레이어도 무슨 행동을 해올지 알 수 없지. 확률적으로 얻는 몬스터와 달리 이미 티켓을 가진 놈을 습격하면 100% 얻을 수 있을 테니 이쪽이 더 확실하려나? 뭐, 이것도 리스크는 급상승하지만. 상대 플레이어도 가만히 있을 리 없고, 그동안 몬스터들도 얌전히 있어 줄 리 없지. 저렇게 싸우다 힘과 시간을 낭비했다가 뒷감당이 힘들어.”
또 다시 채널을 돌린다.
이번엔 놀랍게도 세 무리의 플레이어가 모여 있었다.
그들은 힘을 하나로 합치듯 캐릭터들을 부려 거대한 와이번을 상대하고 있었다.
“파티를 이루더라도 리스크가 상승하는 건 마찬가지야. 그만큼 모아야 할 티켓 숫자가 많아지는 거니까. 통수 칠 유혹과 걱정 등이 휘몰아치겠지. 저놈들 싸우면서도 서로 눈치를 보는 꼴을 보아하니 나중에 100% 내분이 일어나겠어. ……오?”
참가자들의 행태가 재미있기는 하다만 뭔가 부족하다는 듯 채널만을 반복해서 돌리고 있던 율은 어느 한 지점에서 멈췄다.
신월시 내부이긴 하지만 요현 일행이 있는 도심 지역과 한참이나 동떨어진 다른 지역이었다.
그곳에서 네 명의 인간이 몬스터 시체가 널린 거리를 걷고 있었다.
두 명의 플레이어가 한 명의 캐릭터를 데리고 파티를 이룬 것이 아니었다.
플레이어는 한 명. 나머지 셋은 캐릭터였다.
드물기는 하지만, 요현처럼 세 캐릭터 전부 현실 출현 조건을 만족시킨 하드 플레이어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 플레이어도 그 중 하나였다.
율은 그들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이 녀석들은 벌써 인원수대로 티켓을 모았군.”
“네?”
그 말에 오서연은 TV화면에 비친 이들을 바라보았다.
플레이어가 누군지는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4명의 인원 중 오직 한 명만이 무기를 손에 쥐지 않았고, 다른 세 명이 그를 호위하는 듯한 위치에서 함께 걷고 있었으니까.
모자와 후드를 짙게 눌러 써 얼굴을 보이지 않는 그 플레이어를 바라보던 오서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티켓을 다 모았다고 했으면서 정작 그들은 돌아가려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경험치가 목적일까?
그것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근처에서 분명 쓰러뜨릴 만한 몬스터가 있는 걸 발견했는데도 그들은 그냥 지나쳐갔던 것이다.
“저들은 뭘 하고 있는 거죠? 경험치 벌이가 목적이라고 하기엔 몬스터를 일부러 피해 가는 게 조금 이상한데요?”
“찾고 있는 거겠지.”
“뭘요?”
주어를 생략한 말에 오서연이 물어보았다.
하지만 율은 대답 대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위치를 보면 신요현 쪽과 만나기는 어려우려나? 아쉽네. 마주쳤을 때 신요현이 눈이 돌아가는 모습을 한 번 구경하고 싶었는데 말이야.”
“……?”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오서연의 모습은 무시한 채 율은 TV 화면에 집중했다.
모자 위에 후드를 눌러 쓴 플레이어를 따르는 세 명의 캐릭터.
그들의 직업은 각각 전사, 마법사, 암살자였다.
그리고 그중 암살자의 모습은 언젠가 요현 일행이 마주쳤던 그 암살자의 모습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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