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탈출하라! 2
* * *
암글라드가 어이없게 물러나긴 했지만, 원래대로라면 쉽게 이길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다.
솔플 레이드라는 미친 짓을 벌인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대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저런 녀석을 상대했다간 결과는 처참할 게 뻔했다.
놈이 하수도를 기어 나오기 전에 자리를 피해야 한다.
“쿠에에에엑!!! ……켁!?!”
하수도 밖으로 나오자마자 달려드는 보랏빛 멧돼지 괴물의 머리를 나무 몽둥이로 후려쳐 날려버린 레반이 길을 열었다.
세상은 아수랑장이었다.
기존에 몬스터들 다 사라지지 않은 와중에 더 많은 몬스터가 하늘에 떨어졌으니 혼란은 가중되었다.
창문을 깨부수며 튀어나온 거대한 지네가 벽을 타고 오른다.
새까만 불로 몸을 휘감은 사냥개 한 마리가 옥상에서 떨어지며 그 지네를 물어뜯었다. 헬하운드라는 몬스터였다.
두 몬스터가 뒤엉키며 떨어진 그곳에는 트롤 두 마리가 미노타우로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등 뒤에서 어깨를 붙잡고 물어뜯는 트롤을 겨우 붙잡아 내팽겨친 미노타우로스가 소를 닮은 발굽으로 트롤의 머리를 터트리려고 하였다.
그 순간 머리 위에 떨어진 지네의 몸에 깔려 방해를 받았고, 살아남은 트롤 두 마리는 지네 괴물 위에 헬하운드를 표적으로 삼았다.
혼란스러운 난전.
처음 몬스터들이 무리 지어 우리를 공격해올 때와는 다르다.
낙하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그때와 달리 지금은 낙하 직후.
난데없는 충격에 몬스터들은 이성을 잃고 날뛰며 사방을 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마치 좁은 항아리 안으로 갖은 독충들을 밀어 넣어 서로 싸우게 하는 듯한 양상이다.
“어떻게 할까요, 오라버니?”
두 쌍의 날개를 가진 박쥐 몬스터를 베어내던 레테라가 물었다.
레반도, 만난 지 얼마 안 된 하티도 내게 시선을 건넸다.
전투 자체는 그들이 전문가였지만, 이 세상을 하나의 게임으로 봤을 때 가장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게 나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확실히 나도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선 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다.
율이 이곳을 게임 이벤트로 만든 이상, 타개하는 것에도 게이머로서의 시선이 필요하다.
그들이 주변에 몬스터들을 쫓아내는 동안 나는 생각에 잠겼다.
‘정석적인 공략법이라면 우리가 쓰러뜨릴 수 있는 수준의 강적을 찾아 해치우고 티켓을 얻는 거겠지만…….’
문제는 강한 몬스터를 쓰러뜨렸을 때 아이템 드랍이 확정이 아니라 확률이라는 점이다.
강적을 쓰러뜨리고도 힘만 낭비하고 티켓은 얻지 못하게 될 가능성은 존재했다.
정확한 확률을 알 수 없는 이상 최악의 흐름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고 봐야겠지.
내가 말하기도 뭐하지만, 나도 그리 운이 좋은 편이라고는 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이곳에 오래 있어선 안 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처음 떨어진 몬스터들은 헬데트를 제외하면 그럭저럭 상대할 만했다.
두 번째로 떨어진 몬스터들은 암글라드를 비롯해 강함의 수준이 전적으로 높아졌다.
아직까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지만, 웨이브가 겨우 두 번으로 끝날 리 없다.
‘첫 번째 웨이브에서 두 번째 웨이브까지 시간은 대략 한 시간 전후였지?’
웨이브 간격이 일정하다고 한다면 한 시간이 지났을 때 더욱 강한 몬스터가 하늘에서 떨어질 것이다.
몬스터가 어디까지 강해질지 모르겠지만, SoR 후반부 레벨대라면 한 놈 한 놈이 강력할 것이 분명했다.
‘리스크를 짊어진 채 가야 하나, 리스크를 덜어낼 방법을 찾아야 하나……. 우리 쪽 손해를 최소한으로 하면서 티켓을 빠르게 모을 방법이 없을까…….’
나는 뒤를 돌아 도로 한가운데에 뻥 뚫린 커다란 구멍을 바라보았다.
암글라드가 떨어지면서 생긴 구멍이다. 지름은 대략 10m를 넘어 보인다.
우리는 저곳을 통해서 하수도를 빠져나왔다.
엄청난 충격에 구멍 주변의 일대가 움푹 가라앉아 유사(?)와 같은 모양을 만들었다.
지반도 약해져서 잘못 발을 디디면 그 즉시 무너져 암글라드가 떨어진 구멍 속으로 추락하게 된다.
올라오기 전에는 하늘에서 떨어지던 몬스터 몇 마리가 저곳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몇 번 보았다.
우리도 올라오는 도중 무너진 지반 때문에 저 아래로 떨어질 뻔했었다.
“…….”
가만히 구멍을 바라보던 나는 눈을 빛냈다.
이거, 꽤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겠는데?
***
신월시는 전국에서도 유독 지하수로가 크고 깊은 곳으로 통한다.
6.25 전쟁 때 만들어놓은 대피소를 개량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수로를 개발하기 전부터 이미 수수께끼의 공동이 존재해 그것을 그대로 이용했다는 말도 있다.
진실은 만든 사람만이 알 것이다.
아무튼 신월시의 지하는 던전을 연상케 할 정도로 넓고 깊었다.
신월시의 모습을 따온 가짜 도시라도 지하의 모습은 같았다.
어디까지나 모습만 따 왔기 때문에 평소엔 물이 차 있을 공간마저 텅 비며 어둡고 공허한 공간을 드러냈다.
암글라드가 떨어진 건 그곳 가장 밑바닥이었다.
겹겹이 쌓인 층도, 두꺼운 콘크리트 지반도 암글라드의 무지막지한 무게를 감당하기엔 무리였다.
그렇게 자그마치 10가량의 높이를 뚫고 떨어진 암글라드였지만 그의 몸엔 전혀 데미지가 없었다.
애초에 구름 위에서 지상으로 낙하했음에도 멀쩡했는데 이 정도로 부상을 입을 리 없었다.
지하수 없이 메마른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암글라드가 몸을 털었다.
먼지처럼 달라붙어 있던 성인 주먹만 한 콘크리트 조각이 흔들림에 의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크르르르!!”
몸을 깨끗이 털어낸 암글라드는 노기가 섞인 울음소리를 흘렸다.
데미지가 없다고 한들 하늘에서부터 지하 깊숙이까지 내동댕이쳐진 것에 대한 불쾌함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왜 이 꼴을 겪어야 했는지 알 수 없었기에 짜증이 더욱 치솟았다.
“키에에엑!! 키엑!!”
“우워어어!! 워!!”
그런 차에 근처에서 들려오는 소음 소리는 상당히 거슬리는 것이었다.
녹색 안광이 어둠 속에서 빛나며 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했다.
두 마리의 몬스터가 암글라드를 경계, 혹은 위협하듯 소리를 꽥꽥 질러대고 있었다.
인간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지만 창백한 피부에 길쭉한 팔다리, 흉측한 이빨을 드러낸 몬스터는 트롤.
도마뱀처럼 생겼지만, 비늘이 매끄럽지 않고 진흙이 달라붙어 굳은 것처럼 우둘투둘한 몬스터는 만드라셀이라 불리는 몬스터였다.
콰아아아아앙!!!!
암글라드는 그들에게 앞발을 내려찍었다.
그 움직임은 단순히 모기를 잡으려는 듯 빠르고 간결했다.
그것만으로 소음은 사라졌다.
질긴 생명력으로 유명한 트롤 특성도, 어떤 거친 환경에서도 가뿐히 적응할 정도로 튼튼한 몸을 가진 만드라셀의 특성도 그 순수할 정도로 파괴적인 물리력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단 일격도 버티지 못하고 그들은 곤죽이 되어 바닥에 들러붙은 채 숨이 끊겼다.
시끄럽게 구는 두 몬스터를 처리했지만 암글라드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딴 약해빠진 놈들과 어울리는 자기 자신이 한심해질 지경이었다.
그 가증스러운 남자의 말에 현혹되는 게 아니었다.
기간제 단기 알바나 한 번 해볼래?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던 남자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때 단칼에 거절했어야 했다. 설마 이따위로 자신을 부릴 줄이야.
덕분에 허접한 인간들 적당히 상대해주는 것으로 모자라 하늘에서 땅으로 내동댕이치는 굴욕까지 겪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암글라드는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떨어진 직후에 본 그 인간은 뭔가.
그나마 강해 보이는 인간들과 어울리지 않게 바람만 불면 날아가 죽을 듯한 인간 하나가 섞여 있었다.
그런데 암글라드는 자신을 향해 적의를 드러내는 다른 세 명보다 그 인간 하나가 거슬리게 느껴졌다.
짜증이 치솟는다고 할까.
왜 그런지는 자신도 알지 못했다.
다시 한 번 만난다면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대가로 그 인간이 죽든 말든 알 바 아니었지만.
암글라드는 고개를 들어 자신이 떨어진 구멍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공간이지만, 수직으로 떨어진 덕분인지 그나마 옅은 빛이 새어 들어오는 구멍을 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구멍은 자신의 몸집 보다 배는 높아 보이는 위치에 자리했다.
닿고자 한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문제는 암글라드가 올라가려 할 때의 충격을 저 얇기 짝이 없는 지대가 버텨주느냐다.
다른 길을 찾는다면 시간을 오래 내다 버릴 것 같고, 암글라드는 고민에 빠졌다.
툭!
“꾸엑!”
그때 무언가가 암글라드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암글라드에 비하면 너무 작고 가벼워서 괴상한 비명소리가 없었으면 머리 위로 떨어진 줄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충격을 흡수하지 않고 모조리 되돌리는 암글라드의 단단한 외각에 떨어져 내린 그림자가 한 번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그대로 암글라드의 발치를 향해 떨어졌다.
암글라드는 뭔가 하며 시선을 돌렸다.
트롤이었다.
조금 전에 죽인 트롤과는 다른 녀석이다.
몬스터 소나기가 끝나면서 더 이상 내려오지 않을 줄 알았던 몬스터가 또 떨어졌다.
이 트롤이 멍청해서 발을 헛디딘 건지 구멍으로 떨어진 건가?
“우워어어억!! 워어어어엉!!!”
덕분에 조용하던 공간에 다시 소음이 울려 퍼졌다.
곤죽이 된 자기 동족의 피냄새를 맡은 탓일까.
떨어진 트롤은 분노에 휩싸인 듯 마구 괴성을 지르며 날뛰었다.
그 트롤의 불행은 막 구멍에 떨어진 직후라서 어둠 속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트롤은 그저 근처에 움직이는 기척을 느끼고 마구 잡이로 흉측한 팔을 휘두르며 공격했다.
그래봤자 녀석이 달라붙은 암글라드의 앞발에선 흠집 하나 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대신 암글라드의 인내심에 스크래치 정도는 낼 수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그대로 휘저은 암글라드의 앞발에 치인 트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날아갔다.
두꺼운 차단벽 수어 개를 부순 뒤 겨우 날아가는 걸 멈춘 트롤은 더 이상 본래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았다.
충격에 떨어져 나간 팔다리를 비롯한 온몸의 뼈가 박살나고 뒤틀려서, 거기에 있는 건 그저 창백한 살덩어리뿐이었다.
별 시답잖은 게 까불고 있다며 암글라드가 휘둘렀던 앞발을 털었다.
그런데 그 트롤이 끝이 아니었다.
쿵!
“깨갱!”
이번엔 웬 불타는 똥개 한 마리가 떨어졌다.
헬하운드였다.
그래봤자 암글라드에겐 똥개였지만, 그래도 이놈은 조금 전 트롤보단 똑똑했다.
떨어지자마자 보이는 거대한 존재가 자신이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는 걸 바로 알아보고 헬하운드는 꽁지가 빠지게 달아났다.
트롤에 이어서 또 뭔가 하며 암글라드가 도망갈 길을 찾아 지하수로의 공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헬하운드를 바라볼 때였다.
쿠웅!
또 떨어졌다.
이번엔 지네 몬스터였다.
사람 한둘 정도는 가볍게 잡아먹게 생긴 지네였지만, 암글라드에 비하면 한 없이 왜소했다.
그런 지네가 암글라드의 얼굴 위에 떨어져 달라붙었다.
수백 개의 다리를 꼼지락대며 얼굴을 기어서 올라가는 지네 괴물. 자신이 생물의 위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인식 못하는 듯 하였다.
그런 녀석을 보며 암글라드는 묵묵히 앞발을 들었다.
암석과 같은 긴 발톱을 손처럼 움직이며 얼굴을 기어가는 지네를 붙잡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리고 바닥이 깊게 파일 정도로 힘껏 지네의 몸을 내려찍었다. 둘 말할 것도 없이 즉사였다.
“크롸아아아아아아아아앙!!!!!!”
뭔 놈의 잡놈들이 이리도 떨어져?! 라고 외치듯 분노 어린 음성을 지르던 암글라드가 구멍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녹색 눈에 비친 것은 구멍을 통해 우수수 떨어지는 몬스터들의 모습이었다.
***
“우워어어어어억!!!”
동족의 추락에 분노한 트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것에 맞서듯 낫을 쥐고 자세를 잡았던 레테라의 신형이 어느 순간 트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레테라가 사라지자 그곳에 있는 건 개미지옥처럼 먹잇감을 기다리듯 열리는 커다란 구멍이었다.
트롤이 놀라 돌진을 멈추려고 했을 때에는 이미 레테라는 공중제비를 돌 듯 트롤의 머리 위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퍼억!!
멈추려고 하는 트롤의 뒤통수를 발로 걷어차 앞으로 넘어지게 만들었다.
달려가던 관성과 뒤통수에 가해진 충격을 막을 수 없던 트롤은 그대로 구멍 안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렇게 한 놈을 암글라드 곁으로 보내버린 한편, 레반도 같은 행위를 하고 있었다.
“한 놈 더 들어 간다!!”
빠아악!!
“키이이익!!!”
사마귀를 닮은 곤충형 몬스터. 다른 점이 있다면 팔과 머리를 제외한 몸통은 인간에 가까웠다.
미친 연금술사의 실험에 의해 태어난 키메라였다.
바위로 절삭 낼 듯이 날이 서린 키메라의 두 팔을 피해 몸 아래로 파고들어 간 레반이 나무 몽둥이로 녀석의 아랫배를 후려쳐 놈의 몸을 뒤집듯 날려버린다.
큰 피해를 주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저 구멍 아래로 녀석이 떨어지는 모습만 확인하면 충분하다.
“캬아아아악!!!”
순조롭게 다른 몬스터를 상대하며 구멍에 던져 넣는 그들의 위로 새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신화 속 까마귀처럼 세 개의 발을 가진 까마귀였다. 그 크기는 날개 한 장이 성인 남성만 할 정도로 컸다.
상공에서 지상에 있는 목표를 노리듯 떨어지는 까마귀.
그런 녀석의 새까만 날개에 반짝반짝 빛나는 조그마한 구체가 닿았다.
“디바인 더 바인!”
“캬악?!”
하티가 외치자 까마귀에게 닿은 빛나는 구체에서 순식간에 식물이 자라나며 녀석의 날개와 목을 구속했다.
비행을 할 수 없게 된 까마귀가 지상으로 떨어졌고, 이미 까마귀의 움직임을 읽고 있던 레반과 레테라가 동시에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퍼어어억!!!
레반의 팔꿈치, 레테라의 무릎이 양측에서 까마귀에 머리에 틀어박혔다.
뇌가 뒤흔들린 충격을 받은 까마귀는 구속하던 식물이 떨어져 나갔음에도 날아오를 생각을 못 하고 구멍 아래로 떨어졌다.
“순조롭네.”
까마귀를 처치한 뒤 바로 다음 몬스터를 구멍에 던져 넣기 위해 움직이는 레반과 레테라를 보며, 엄폐물 뒤에 숨어 있던 내가 중얼거렸다.
두 사람 보조 겸 내 호위를 위해 근처에 서 있던 하티가 입을 열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잔머리가 뛰어나다고 해야 할까요, 약았다고 해야 할까요?”
“가능하면 책략이라고 말해주지 않겠냐. 지금 이것보다 좋은 수단이 어디 있어?”
나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레반과 레테라의 경험치를 살폈다.
그들의 경험치는 적은 폭이긴 하지만 확실하게 오르고 있었다.
한 번이라도 맞붙은 몬스터가 다른 이유로 죽게 되면, 직접 죽인 것보다 못해도 경험치는 얻는다.
두 사람이 떨어뜨린 몬스터들을 암글라드가 열심히 죽여주고 있는 모양이다.
“확실히 몬스터들의 숨통을 일일이 끊으면 체력 소모가 심하니 구멍에 던져 넣어 뒤처리는 다른 녀석에 맡긴다는 취지는 좋긴 한데, 모양새가 영……. 레이드 몬스터를 이런 식으로 활용하는 건 처음 봤어요. 이걸 속된 말로 뭐라고 하죠? 짬 처리?”
“이독제독. 이이제이. 좋은 말 많잖아.”
덕분에 우리는 몰려드는 몬스터를 전보다 더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역시 죽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몬스터와 싸우는 것보단 그냥 한 곳으로 유도해 밀어 떨어뜨리는 게 더 편한 일이었으니까.
내가 생각해낸 이 작전을 레반과 레테라는 마음에 들어 했다.
하티는 모양새가 잘 안 산다며 약간 떨떠름했지만 그래도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보다 편하게 물리치니 마음은 놓이는 모양이다.
단 하나, 그런 우리의 작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지 몬스터들이 떨어지던 구멍 안에서 섬뜩한 포효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어떤 놈인지 몰라도 죽여 버리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건 제 기분 탓일까요?”
“기분 탓이겠지.”
그러나 그 섬뜩한 포효도 착실히 쌓이고 있는 경험치를 바라보는 내 기분을 바꾸진 못했다.
아, 경험치 달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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