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탈출하라! 3
* * *
“이놈이 마지막인가.”
“생각보다 빨리 정리됐군.”
아직 힘이 남아도는지 몸을 이리저리 풀고 있던 레반과 레테라가 이쪽을 향해 둔중한 걸음을 옮기던 몬스터를 마중 나간다.
3m를 넘는 거대한 키.
사람을 닮은 듯한 얼굴은 얼굴에 낀 살덩이에 잔뜩 일그러져 있었고, 머리카락이 있어야 할 위치에는 털 대신 커다란 혹들이 울룩불룩하게 자라나 있었다.
걸을 때마다 출렁거리는 비대한 살덩이.
한 손에는 고목을 뽑아낸 듯이 구부정한 나무 몽둥이.
오우거라는 몬스터가 가지는 특성이었다.
“그이이익…!!!”
성대에서조차 잔뜩 지방이 낀 듯한 답답한 울음소리를 내며 오우거가 적의를 드러냈다.
침을 줄줄 흘려대는 입에선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고, 그 이빨은 어서 눈앞에 고기를 먹고 싶다는 듯 딱딱 거렸다.
과연 필드 보스로 악명 높은 몬스터다운 식탐이었다. 저놈이 나타나는 곳은 그나마 유지되던 생태계도 완전히 파괴된다고 한다.
그런 살벌한 오우거의 시선을 마주하며 레반이 손가락으로 녀석을 가리켰다.
“저놈은 너무 크니 던지기보단 굴려야겠어. 팔다리가 방해되니 그것부터 처리하자고. 내가 왼쪽 팔다리 관절을 박살 내지.”
“그럼 난 오른쪽 팔다리 힘줄을 끊어놓을게.”
살가죽이 너무 두꺼워서 창칼도 제대로 박히지 않는다는 오우거지만 레반과 레테라에겐 해당사항이 없었다.
저 덩치를 어떻게 상대할지 벌써 머릿속으로 계획을 그리며 성큼 다리를 내밀었다.
그 내민 발끝에 체중을 싣고 오우거를 향해 쏘아져 나가려던 때였다.
그런 레반과 레테라 사이를 지나치며 날아간 빛나는 구체 하나가 오우거의 머리에 닿았다.
“디바인 더 바인!”
하티의 외치자 구체에서 하얀 식물이 순식간에 자라나 오우거의 머리를 휘감았다.
그것에 놀란 오우거가 반사적으로 눈을 감자 식물 줄기가 그대로 눈을 가리며 압박했다.
“그이이익!!”
눈을 뜰 수 없게 된 오우거가 마구 날뛰며 줄기를 떼어내려 하였다.
침착하게 줄기를 뜯어낸다면 금방 풀리겠지만 잔뜩 흥분한 나머지 오우거의 두꺼운 손은 얇은 줄기를 잡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별로 도움이 필요 없는 타임에 끼어든 하티의 신성마법 때문에 두 사람은 전투 돌입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러다 하티와 함께 급하게 달려오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인벤토리 안에서 어느 아이템을 꺼내며 말했다.
“숨어야 해! 녀석이 참지 못하고 움직였어!”
레반과 레테라의 기색이 변했다.
내가 말한 녀석이 누구인지 바로 눈치 챈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몬스터 처리 장소로 이용하고 있던 구멍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쿠오오오오오오!!!
그건 마치 제트기의 엔진 분사소리와 흡사했다.
먼 곳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순식간에 귀가 아파올 정도로 커지더니, 이내 구멍에서 붉게 빛나는 무언가가 솟구치며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 모습은 마치 붉은 혜성이 지상에서 하늘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하늘로 솟구쳤던 혜성은 점차 속도를 늦추더니, 붉은 불길 속에서 거대한 형체를 토해냈다.
온몸이 용암처럼 달아오른 그것은 포물선을 그리며 지상으로 떨어졌다.
포물선 방향에 건물이 한 채 서 있어 부딪칠 듯 했지만 그것은 부딪치려는 벽을 박차는 것으로 단번에 방향을 꺾어 지상으로 착지했다.
체구만 따지면 3.5m에 달하는 거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민첩함이었다.
쿠우우우웅!!!!
육중한 몸체가 땅으로 떨어졌다.
이번엔 하수도 위가 아닌 위치에 떨어진 건지, 아니면 네 다리로 충격을 분산한 건지 이전처럼 땅 밑으로 꺼지는 일은 없었다.
“크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암글라드.
지하수로 밑으로 처박혔던 녀석이 지상으로 나오며 포효했다.
암글라드의 등에 있는 가시형태의 바위 끝에는 조그마한 구멍이 있었다.
녀석은 그곳으로부터 상상도 할 수 없는 열기를 뿜어내며 신체를 가속하는 것이 가능했다.
암글라드는 신체 본연의 능력도 무섭지만, 저 부스터는 특히 그를 더 무섭게 만드는 요소다.
몇 년 전쯤인가, 암글라드가 지상전 전문인 줄 알고 원거리 저격만으로 암글라드를 사냥해보겠다고 한 유저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스트리밍 방송까지 키며 암글라드 사냥을 중개했는데, 그 방법이라는 게 깎아지르듯 높이 솟아 있는 절벽, 암글라드의 서식지에 아슬아슬하게 닿는 그 지점에서 암글라드는 공격하는 것이었다.
절벽은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안쪽으로 깊게 파여 있었다. 높이만 해도 50m를 넘었기에 사실상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건 불가능했다.
그럼 사냥의 결과는?
아주 끝내줬다는 게 방송을 본 대부분의 시청자들의 감상이었다.
첫 일격으로 어그로가 끌린 암글라드가 붉은 불길을 뿜어내며 혜성처럼 달려오고, 그 기세 그대로 높은 절벽을 한 번에 도약하며 유저를 일격에 끝장낸 것이다.
거의 예술적으로 보이기까지 한 암글라드의 유저 사냥 영상은 지금도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 박제되어 SoR의 길이 남을 명장면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참고로 쪽팔림을 이기지 못한 유저가 그날로 게임을 접은 건 덤이다.
그날부터 ‘한방컷 유저’, ‘붉은 혜성의 제물’, ‘암글라드 전용 샌드백’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과 함께 놀림감이 됐는데 그럴 만했다.
“크르르르르르륵……!!!”
실제로 체감한 암글라드에 도약력에 놀라고 있을 때, 녀석이 낮게 울음을 흘리며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게 보였다.
나는 레반, 레테라, 하티와 몸을 맞댄 채 숨을 죽였다.
우리가 있는 위치는 암글라드가 내려선 곳에서 동쪽으로 약 1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어디에 숨은 것도 아니지만 암글라드는 바로 근처에 있는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암글라드가 갑자기 눈먼 장님이 된 듯 우리를 찾지 못하는 건, 녀석이 도약해올 기미를 느끼자마자 바로 사용했던 아이템 덕분이었다.
환영의 안개벽 스크롤 등급: 특이 분류: 스크롤 마법 ‘환영의 안개벽’이 담겨 있는 스크롤. 스크롤을 완전히 찢는 것으로 사용할 수 있다. 마나가 없거나, 마법 관련 직업이 아니더라도 스크롤에 담긴 마법을 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직접 마법을 사용하는 것에 비해 성능이 떨어지니 과신은 금물이다. 「스크롤이란 마법과 같은 초자연적인 기술을 종이에 담아두어 필요할 때 사용하는 기술이다. 실용 마법의 정수라고 알려진 이 기술은 본래 한 괴짜 마법사의 장난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환영의 안개벽은 주변 풍경을 그대로 비추는 안개벽을 만들어 사용자와 그 주변의 모습을 감추는 마법이다.
범위형 은신 스킬이라고 할까.
진짜 은신처럼 기척까지 최대한 억누르는 게 아니라 그저 모습만 감추는 것이기에 작은 움직임도 함부로 해선 안 되었다.
다른 세 사람은 숨을 죽이는 것에 익숙한 모양이지만 나는 아니었다.
긴장감이 커지니 몸이 산소를 갈구하고, 그것 때문에 내뱉는 호흡은 아무리 억제하려 해도 평소보다 크게 느껴졌다.
숨을 죽이고 있는 시간이 이렇게 괴로울 줄이야.
암글라드를 현실에서 만나는 건 처음이지만 제발 저놈이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기를 빈다.
“크륵?”
암글라드의 눈이 돌아간다.
녀석이 향한 건 막 얼굴에 날라 붙은 식물 줄기를 뜯어낸 오우거가 있는 곳이었다.
“그이이익? 기이이익!!!”
오우거는 조금 전까지 있던 인간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대신 자기보다 덩치 큰 암글라드가 나타나자 놀란 듯 바라보았다.
허나 그것도 잠시. 오우거는 다시 침을 뚝뚝 흘리며 암글라드에게로 성큼 걸어갔다.
그 당당한 걸음에 오히려 내가 놀랐다.
암글라드를 사냥할 생각인가? 아무리 오우거의 지능이 떨어진다고 해도 자기보다 덩치가 큰 놈은 본능적으로 피할 법도 한데?
하지만 오우거는 덩치 큰 적에 대한 경계보단 못 보던 생물의 맛이 궁금증이 더 강한 듯했다.
암글라드는 자신의 앞으로 당당히 다가오는 이놈은 뭔가 하며 멀뚱히 바라보았다.
콰아앙!!
오우거가 쥐고 있던 고목을 암글라드의 머리를 향해 후려쳤다.
적의도 뭣도 없다.
그냥 어서 이 녀석을 해체해 뜯어 맛볼 생각만이 저 우둘투둘한 머릿속에 가득해 보인다.
“…….”
암글라드는 고목에 맞고 잠시 돌아갔던 고개를 되돌려 오우거를 마주 보았다.
녀석의 표정은 읽을 수가 없지만, 어째 녀석의 녹색 안광이 어이없다는 생각을 품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고 보니 게임에서 보면 오우거와 암글라드의 생활 영역은 겹쳐진 적이 없다.
그 이유를 나는 지금 알 수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어퍼컷.
아래에서 위로 솟구친 암글라드의 앞발이 오우거를 꿰뚫었다.
웬만해선 창검도 통하지 않는 오우거의 두꺼운 살집이 물풍선처럼 터져나가며 녀석의 몸이 붕 떠오른다.
이게 오우거와 암글라드의 활동 영역이 겹쳐지지 않은 이유였다.
상대와 자신의 차이도 파악 못하는 멍청한 오우거들이 암글라드에게 싸움을 걸다가 전멸 당한 것이다.
그렇게 천천히 숫자를 세도 될 만큼 긴 체공 시간 끝에 치솟았던 오우거의 몸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철푸덕!!!
“……!!”
이미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던 오우거의 몸에 땅에 부딪히다 더욱 처참히 뭉개지며 그 편육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중 녀석의 커다란 눈동자가 날아오자, 그것에 놀란 내가 소리를 낼 뻔했다.
양쪽에서 레반과 레테라의 손이 내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에 그런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설령 그대로 소리가 흘렸어도 암글라드에겐 들키진 않았을 것이다.
환영의 안개벽만으로는 부족할 거라 생각한 하티가 소리를 없애는 신성 마법 ‘사일런트’를 막 사용한 후였기 때문이다.
“크르르르…….”
암글라드는 일격에 골로 가버린 오우거를 한 번 노려본 후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떤 놈인지 자꾸 자신의 위로 몬스터들을 떨어뜨리던 가증스러운 놈은 이미 자리를 떴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죽인 것만 가지곤 성이 덜 풀렸는지, 암글라드는 오우거의 시체를 밟아 뭉개며 그 위를 지나갔다.
그리고 그대로 도시 안쪽을 향해 나아간다.
녀석의 모습이 사라지고 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되자 우리는 안도하며 은신을 풀었다.
“휴우……. 큰일 날 뻔했네.”
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암글라드에게 들켰다면 꽤나 곤란해졌을 것이다. 녀석의 속도 앞에선 웬만한 방법으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니까.
한편 레반과 레테라는 어딘가 아쉬운 기색으로 암글라드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아쉽군. 얼마나 강한지 한 번 경험해보고 싶었는데.”
“암글라드는 명성만 들었지 실제로 싸워본 적은 없으니까. 나도 한 번 싸워보고 싶었어.”
“……늬들 진심이냐?”
일부만이지만 암글라드의 위용을 직접 눈앞에서 목격한 나는 오금이 저릴 지경인데 이 두 사람은 오히려 호승심이 생긴 모양이다.
역시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걸까.
강자와 싸워 이기는 게 즐거움인 그들로선 오랜만에 몸이 달아오르나 보다.
내가 질린 듯한 반응을 보이자 두 사람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아! 걱정 마십시오, 형님. 저희 목숨은 형님의 것. 함부로 낭비한다거나 하진 않습니다.”
“그래요, 오라버니. 물론 오라버니가 말씀만 하신다면 당장 달려가서 저 괴물의 수급을 따올 각오가 되어있지만요.”
“절대 그런 말 안 할 거니까 꿈도 꾸지 마.”
그들에게 딱 선을 그은 후, 나는 암글라드가 나왔던 구멍을 바라보았다.
암글라드에게 처리를 떠넘기며 구멍 밑으로 떨어뜨린 몬스터의 숫자가 꽤 되었다.
강한 몬스터도 더러 있었으니 혹시 탈출 티켓을 드랍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제가 갔다 올게요.”
넷이서 바닥까지 내려가는 것보단 한 사람이 빠르게 다녀오는 게 더 시간이 절약되었다.
그리고 그 일에 제격인 게 레테라였다.
그녀라면 날쌘 몸놀림으로 내려가는 것도 올라오는 것도 손쉽게 이행할 수 있었다.
나는 그녀를 보내기 전에 당부의 말을 건넸다.
“조심해. 아직 숨이 붙어 있거나, 암글라드가 처리하지 않고 방치한 몬스터가 있을 수 있어.”
“걱정 마세요, 오라버니.”
내 걱정을 지워주려는 듯 레테라는 활기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말 뒤, 레테라는 지체 없이 무기인 낫을 어깨에 짊어지며 구멍을 향해 다가갔다.
마치 다이빙을 하는 것처럼 레테라는 가볍게 몸을 기울더니, 그대로 구멍 아래로 몸을 던졌다.
순식간에 중력을 탄 그녀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
수직으로 뚫린 지하수로의 각층들이 빠르게 레테라를 스쳐 지나갔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차 지상에서 닿는 빛이 옅어져갔고, 곧 어둠밖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레테라는 그 어둠 속에서도 바닥에 존재를 확실하게 감지했다.
쿠우우웅!!
영화 속 슈퍼 히어로처럼 레테라가 가볍게 땅에 무릎을 대는 것으로 모든 충격을 분산시키며 바닥에 착지했다.
분산되는 충격의 형태가 바닥에 고여 있던 피를 원형으로 흩뿌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착실히도 죽여 놨네. 이 정도면 답례로 육포 정돈 줬어도 됐겠는걸?”
레테라는 사방에 가득한 몬스터의 시체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이 중의 일부는 자신의 경험치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비록 몬스터지만 암글라드에게 고마워질 지경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레테라는 남겨진 시체들 사이에 숨겨져 있을지 모를 탈출 티켓을 찾기로 했다.
하지만 여기저기 널려 있는 시체를 하나하나 하나 뒤집어 보며 티켓을 찾는 건 꽤나 시간을 소모할 일이었다.
거기에서 레테라는 낫을 휘돌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한 손 위에서 춤추며 선풍기 날개처럼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 낫이 어느 순간 뻗어나며 시체에 걸쳐진다.
투웅!
신기하게도 걸쳐진 낫은 시체를 절삭 내지 않고 공중에 퉁겨져 날아갔다.
레테라의 신들린 기교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는 산책을 하듯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느긋한 걸음에 비해 레테라의 주변에서 휘도는 낫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빠르고 현란하게 움직였다.
걸을 때마다 방해되는 시체나 고깃덩어리를 들을 낫으로 쓸어내고, 그 위치에 뭐가 떨어져 있지 않은지 살펴보았다.
그렇게 농부가 밭을 갈 듯 지하수로 밑바닥 대부분을 뒤져보았을 때였다.
레테라의 얼굴에 근심이 나타났다.
거의 뒤져 봤는데 티켓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대로 돌아갔다가 요현의 실망하는 표정을 보게 되지 않을까라는 게 근심의 이유였다.
그런 걱정이 한동안 이어질 때였다.
투웅!
몬스터의 시체가 다시 낫에 걸쳐지며 공중으로 날아갔다.
동시에 공중으로 치솟는 얇은 종이의 존재를 레테라는 놓치지 않았다.
덥썩!
한 손으로 낫을 휘돌린 채 반대쪽 손 공중에 날아오른 종이를 낚아챘다.
피웅덩이 사이에 놓여 있었지만, 그 종이엔 신기하게도 피는커녕 먼지 한 톨조차 묻어 있지 않았다.
그것이 탈출 티켓임을 알아본 레테라가 눈을 빛냈다.
“티켓 발견!”
그러면서 한 손으로 계속 휘돌리고 있던 낫을 움직였다.
다름 아닌 자신의 등 뒤로.
카아앙!!
들려오는 건 금속성 울림.
그녀의 낫이 무언가와 부딪쳤다. 그리고 그것은 암글라드에게서 살아남은 몬스터가 아니었다.
몬스터가 이렇게 잘 단련된 검을 사용할 리 없지 않은가.
어깨 너머로 휘두른 낫으로 기습을 막은 레테라가 얼음처럼 차가운 눈을 등 뒤로 향하며 말했다.
“……그리고 수상한 놈 발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