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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85화 (85/173)

〈 85화 〉 탈출하라! ­ 4

* * *

“조금 늦는 거 같은데…….”

휴대폰을 꺼내서 시간을 확인한다.

이벤트 시작 시간이 오전 10시 정각. 그때 첫 번째 웨이브가 일어났다.

두 번째 웨이브는 11시 정각.

암글라드 덕분에 빠르게 몬스터를 정리할 수 있었고, 현재시간은 11시 3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레테라가 지하로 내려간 지 대략 20분이 흘렀다.

그냥 몬스터 시체만 뒤지는 것치곤 오래 걸린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몬스터가 있는 걸까?

우리도 구멍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사태를 상정해보며 구멍 근처를 서성이던 때였다.

“올라옵니다.”

근처에 서 있던 레반이 말하였다.

그의 말대로 바닥이 무너지면서 튀어나온 철근을 붙잡는 하얀 손이 보였다.

도대체 나보다 가늘어 보이는 손가락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철근 하나만을 의지한 채 붕 하고 몸을 날린 레테라가 지상으로 올라왔다.

“다녀왔어요!”

올라온 레테라의 표정은 밝아 보인다. 그것으로 보건대 성과는 있었나 보다.

몬스터에게서 묻은 건지 여기저기 피를 묻힌 그녀의 한 손엔 웬 끈 같은 것이 쥐어져 있었다.

끈은 이상할 정도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고, 표면이 매끄러워 그냥 쥐었다간 놓칠 것 같았다.

때문에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레테라는 끝을 올가미 형태로 묶어 쥐고 있었다.

구멍에서 빠져나온 레테라는 아직 구멍 아래로 팽팽히 이어져 있는 끈을 레반에게 건넸다.

무심코 그것을 받아든 레반이 물었다.

“뭐냐?”

“오라버니께 보여 드려야 할 거.”

그 말만 남기고 레테라는 휙 등을 돌리며 곧바로 나에게 향했다.

제대로 된 설명 없이 무작정 떠넘기고 가버리는 레테라의 행동에 레반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일단 나에게 보여야 한다는 물건을 확인하기 위해 끈을 잡아당겼다.

의외로 무게가 있다는 걸 느낀 레반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레테라는 나를 향해 총총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하나로 묶은 은발이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끼가 많은 여우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내 앞에 선 그녀는 밝게 웃으며 두 손으로 종이를 펼쳤다.

“보세요, 오라버니! 탈출 티켓을 찾았어요!”

레테라의 밝은 모습을 보며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이제야 좀 마음이 놓였다.

암글라드를 이용한 작전이 헛수고로 끝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로서 우리는 두 번째 티켓을 손에 넣은 셈이다.

“잘했어!”

티켓을 찾은 기쁨에 나 또한 덩달아 텐션이 올라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다 덜컥 내 행동을 자각하고 멈칫했다.

레테라의 머리가 딱 좋은 위치에 있기에 무심코 한 행동인데,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는 건 처음이다 보니 어색함을 느꼈다.

혹시 싫어하지 않을까라는 불안감도 들었다.

하지만 레테라는 이게 더 좋은지 상기된 얼굴로 비비적대며 내 손에 머리를 맡겨왔다.

원래 여우의 이미지를 가진 그녀였지만, 이러고 있으니 진짜로 개과 동물이 재롱을 부려오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그냥 이대로 좀 더 쓰다듬어줄까 생각했을 때 문뜩 옆으로 시선이 갔다.

“~~♪”

하티가 이쪽은 신경 쓰지 말고 즐기라는 듯 먼 산을 바라보며 딴청을 부렸다.

그런 배려가 오히려 더 신경 쓰였기에 나는 빨리 화제를 돌릴 만한 걸 찾았다.

그러다 그물을 끌어당기는 어부처럼 끈을 당기고 있는 레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레반이 끈을 당길 때마다 그곳에서부터 마르지 않은 피가 뚝뚝 떨어지며 바닥을 적셔 갔다.

“그런데 저 끈은 뭐야? 이상하게 계속 피가 떨어지는데?”

“아, 적당히 묶을 만한 게 없어서 주변에 있던 몬스터의 내장을 썼어요. 꽤 튼튼하던데요.”

“……뭐?”

끈인 줄 알았던 물체가 몬스터의 내장이라는 반전은 넘어가더라도, 뭘 묶는데 썼다는 거지?

그로테스크함 때문인지 불길한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느끼며 레테라에게서 레반으로 다시 시선을 움직였다.

레테라에게 지하에서 무엇을 발견한 건지는 레반이 끈 아래에 묶인 걸 완전히 구멍 밖으로 꺼내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두 명의 남녀였다.

줄에 묶여 있는 건 서로 등을 맞댄 채 포박당해 있는 두 남녀라는 걸 안 나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들은 각자 머리에 큰 혹을 매단 채 의식을 잃고 있었다.

작은 키에 관리를 잘 안 한 듯 부스스한 머리카락. 평소 운동은 안 했는지 남자는 살집이 많아 보였다.

여성은 마치 서브컬쳐계에서 튀어나온 듯한 여기사의 모습이었다. 복장으로 보나 외모로 보나 여성 쪽이 게임 캐릭터인 듯싶었다.

입고 있는 건 금속형 갑옷. 실용성 보다는 화려한 외관에 치중한 듯 노출도는 높았다.

짧고 단아한 금발에 고운 얼굴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추정된다고 하는 이유는 지금 그 고운 얼굴의 한쪽이 지금은 빨갛게 부풀어 오르고 쌍코피마저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에 묵직한 일격이라도 허용한 모습이었다.

그 원인제공자라고 생각되는 인물을 돌아보았다.

“밑에서 티켓을 찾고 있을 때 갑자기 습격해오지 뭐예요. 생각보다 별 거 없어서 가볍게 제압했어요.”

레테라는 싸웠을 때를 재연하듯 가볍게 쥔 주먹을 내질렀다.

그것만으로 공기가 놀란 듯 펑하고 터져갔으며, 주먹이 내질러진 모습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저 주먹을 정확히 여기사의 얼굴에 꽂은 건가.

캐릭터이기에 쌍코피로 끝난 건지 평범한 사람 사람이었으면 충격이 머리를 관통하고 뒷머리가 터져나갔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일격에 쓰러졌을 거라 생각되진 않는데, 레벨이 낮은 걸까?

아무튼 레테라는 공격해온 여기사를 잡고 난 뒤, 그 근처에 숨어 있던 플레이어까지 제압하고 데려왔다고 한다.

그녀는 레반의 손에 의해 대롱대롱 매달린 두 남녀를 엄지로 가리키며 물었다.

“죽일까요?”

레테라가 습격해온 자들을 바로 처리하지 않은 건 그들에게 인정을 베풀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순전히 내 허락을 먼저 받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그간의 교육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실감했다.

여전히 죽이고 싶어 속으로 벼르는 모양이지만, 그걸 참고 먼저 내 허락을 구해오는 게 어디인가.

처음 나와 만날 시기였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숨통을 끊고도 남았다.

그런 레테라의 성장을 대견하게 느끼며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죽이지 마. ……아직.”

“아직이라는 건 나중에 죽일 수 있다는 건가요?”

“일단 먼저 너를 습격해온 녀석들이니까. 저 놈들의 대답 여하에 따라 캐릭터 쪽은 죽여야 할 수도 있어.”

나는 하티 쪽을 힐끔 거렸다.

그녀는 내 의견을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캐릭터가 죽으면 원래의 세계, 글레이그 대륙으로 돌아간다는 하티의 말이 진실인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이들이 어떤 인물들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자기 멋대로 캐릭터의 힘을 휘두를 만한 악인이라고 판단되면 얄짤 없지만, 박일봉 씨와 같은 경우처럼 오해에서 비롯된 습격이었을 경우도 고려해봐야 했다.

‘그냥 기절해있는 사이에 정리하는 게 더 빠르고 편할지도…….’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다음 몬스터 웨이브와 남은 탈출 티켓, 처리해야 할 것이 많다 보니 무심코 쉬운 길로 가고 싶어졌다.

그런 걸 가장 경계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힘 좀 생겼다고 인간성마저 내다 버리면 내가 적대하고자 하는 플레이어들과 다를 게 뭔가.

“레반. 그 녀석들 좀 깨워줘.”

결국 대화라는 수단을 선택한 내게 레반에게 그들을 깨울 것을 부탁했다.

몬스터 내장으로 만든 끈에 꽁꽁 묶여 있는 두 사람을 내려다보던 레반은 그들을 흔들어 깨우지 않고 대신 내 쪽을 돌아보았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형님.”

“응?”

레반은 두 손가락으로 감겨 있던 남자의 눈꺼풀을 벌렸다.

그의 눈은 대부분 흰자위였고, 검은자위는 위로 넘어가 사라지기 직전이었다.

다른 말로 단단히 까무러친 상태다.

자칫하면 진짜로 골로 가겠다고 판단될 정도로.

“이놈, 어딜 잘못 맞았는지 이미 숨넘어가기 직전입니다.”

“…….”

나는 레테라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혀를 살짝 내밀며 머리를 매만졌다.

“힘 조절을 잘못 했나 봐요.”

“…………힐러!!!”

“지금 가요!”

자신이 나설 차례라는 걸 눈치 챈 하티가 빠르게 달려왔다.

***

“허억?!”

하티가 치료를 마치고 바닥에 누워 있던 남자가 눈을 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바로 파악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얼굴로 허둥거리다가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이런 쪽에 편견이 있는 건 아니지만, 타인을 잘 만나고 다닐 것처럼 보이지 않는 외형답게 눈을 뜨자마자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을 향해 깊은 두려움과 경계심을 드러내었다.

어쩌면 이러한 환경이기에 당연한 경계심일 수도 있었다.

눈앞엔 나를 비롯해 캐릭터처럼 보이는 인물이 세 명.

그에 비해 자신은 캐릭터가 한 명뿐. 심지어 그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남자는 두리번거리며 자신의 캐릭터를 찾았다.

그러다 자신의 뒤편에 묶인 채 쓰러져 있는 여기사 캐릭터를 발견했다.

유일하게 자신을 지켜줄 아군이 의식을 잃고 있는 걸 보자 남자는 더욱 겁에 질려 몸을 떨었다.

“너, 너희들 뭐야!?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이 돼지 새끼가 기껏 말을 내뱉길 기다려줬더니 개소리를 내뱉네. 무슨 짓이긴? 먼저 공격해 온 게 누군데?”

손쉽게 쓰러뜨렸다곤 하지만 한 번 습격당한 게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닌지 레테라가 낫을 들이밀었다.

날 부분을 살에 닿은 게 아니었지만, 사령이 사용하던 불길한 검은 금속이 피부에 닿은 것만으로도 등줄기를 관통하는 한기를 느끼기엔 충분했다.

“으아아아악!!”

그 한기에 놀란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연기 따위가 아니라 진짜 두려움을 느끼는 건지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눈에는 물기마저 맺힌 남자의 모습을 보며 나는 레테라를 제지 했다.

“그만해. 회복한 지 얼마 안 됐는데 그러다 숨넘어가 가겠다.”

“네.”

레테라는 바로 낫을 떼어내었다.

나는 숨을 헐떡이고 있는 남자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눈을 마주하며 물었다.

“이름이 뭐야?”

“뭐, 뭐?”

남자가 더듬거리며 되물었고, 그에 대한 대답은 내가 아니라 옆에서 나왔다.

쿠웅!!

묵직한 나무 몽둥이를 바닥에 내려찍었다.

그 진동으로 남자의 몸을 크게 들썩이게 한 레반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형님께서 이름이 뭐냐고 묻고 계시다.”

“우, 우도혁!”

겁에 질린 남자가 답한다.

어째 깡패가 일반인을 핍박하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먼저 시비를 걸어온 건 저쪽이지만.

“그래, 우도혁. 왜 내 캐릭터를 공격했지?”

나는 손가락으로 레테라를 가리키며 물었고, 그녀는 당장이라도 낫을 휘두를 듯 손잡이를 고쳐잡았다.

대답 여하에 따라선 당장 캐릭터의 숨통을 끊고, 우도혁이라는 플레이어로부터 무력을 박탈하기 위한 준비였다.

“으, 으……!”

“빨리 말해.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멋대로 판단하고 행동할 거야. 그쪽에도 그건 안 좋지 않을까?”

어울리지 않는 일이지만 협박성이 다분한 말투로 말해본다.

겁에 질려있는 이 남자에겐 차라리 이쪽이 더 효과가 있을지 몰랐다.

그리고 그런 예상이 적중한 듯 드디어 남자의 입이 열렸다.

“미, 미안해! 하지만 티켓이 갖고 싶었어! 탈출 티켓은 우연히 얻은 한 장이 전부였다고! 몬스터들은 끊임없이 몰려드는 이런 곳 따윈 빨리 나가고 싶었단 말이야!”

“…….”

역시 목적은 티켓이었나.

확실히 그것 말고는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이곳에서 굳이 캐릭터를 공격할만한 이유는 보이지 않는다.

레테라가 낫을 쥔 채 나에게 시선을 던진다.

죽일까요?라고 묻는 것 같았다.

내 대답은 고개를 가로젓는 것이었다.

이 녀석들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이 이벤트 룰이 허용되는 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악한 것에 불과하다.

이것만 가지고 이 자를 악인이라 규정하기엔 근거가 부족하다.

내 대답에 레테라는 아쉬운 듯 무기를 거뒀다.

그때였다.

의식을 잃고 있던 여기사가 눈을 뜬 건.

“……!!”

뚜둑!!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다.

구속하고 있던 끈을 힘으로 끊어내고 몸을 날린 그녀가 바로 우도혁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소설 속에서 주군을 지키는 여기사의 모습 그 자체여서 무심코 박수가 나올 뻔했다.

“시, 실비아!”

우도혁은 거의 매달리다시피 하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실비아라 불린 여기사는 주인인 우도혁을 확보하고 바로 검을 뽑으려고 했지만, 허리춤에 달린 검집에는 정작 검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레테라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무기를 쥐어준 채로 놔두겠냐는 듯 레테라는 실비아에게서 빼앗은 검을 흔들고 있었다.

분한 듯 작게 혀를 찬 그녀는 주변 캐릭터들을 둘러보고 상황이 심히 좋지 않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그녀는 낮게 읊조리듯 물었다.

“……원하는 게 뭐지?”

“원하는 건 그쪽에게 있겠지. 그래서 공격해온 거 아니였냐? 형님의 자비로 산 녀석이 말본새 하곤…….”

그런 실비아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드는 듯 레반이 투덜거렸다.

그런 그의 어깨를 두드리는 것으로 다독인 내가 말했다.

“지금은 그냥 답해주는 거면 족해. 혹시 지금까지 캐릭터의 힘을 이용해서 타인을 상처 준 적이 있나?”

우도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는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 없어!”

“게임 아이템이나 캐릭터를 이용해서 남이 피해를 입든 말든 상관없이 자기 좋을 때로 날뛰고 싶은 마음이 있나?”

“없어! 난 그냥 실비아랑 조용히 살고 싶을 뿐이야! 이 이벤트도 호기심에 참가했던 거뿐이고!”

“……어떻게 생각해?”

레반과 레테라를 향한 물음이었다.

“말이야 뭔들 못할까요.”

“지금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 되는대로 내뱉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두 사람의 의견은 부정적이었다.

우도혁은 더욱 겁먹은 듯 실비아의 등 뒤로 숨었고, 실비아는 무기가 없더라도 어떻게든 그만큼은 지키고 싶은지 새끼를 지키는 암사자와 같은 사나운 기운을 뿜어댔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나는 이번엔 하티를 돌아보았다.

“너는 어때?”

“어? 제 의견을 내도 되는 건가요?”

“일단은 같은 파티원이잖아.”

우리들끼리 의논할 줄 알았던 건지 그녀는 잠시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진지하게 대답을 고민했다.

“으음……. 일단 첫만남이 안 좋았다고 섣부른 판단은 안 될 거 같아요. 사람 속이란 게 보자마자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

하티의 말까지 듣고 나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드디어 결심을 내렸다.

“다음에도 공격해왔다간 그냥 안 넘어간다.”

결론은 그냥 놔주는 거였다.

하티의 말대로 아직 상대를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적었다.

일단 확신이 안 서는 이들을 파악하는 것보다 탈출 티켓을 찾는 게 더 급하다.

‘다음 웨이브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다음 웨이브 몬스터는 지금 보다 한 층 더 강력할 것이다.

그만큼 티켓을 얻을 확률은 올라가지만 역시 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레반과 레테라는 한 번 그들을 째려봤지만 이내 내 결정에 따라 몸을 돌렸다. 하티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 뒤를 따랐다.

그 모습을 본 우도혁은 의외였는지 멍한 표정을 짓다가 황급히 앞으로 나섰다.

“자, 잠깐만!”

“뭐야?”

“우, 우리도 데려가 줘!”

“……뭐, 임마?”

황당한 소리를 들은 내가 발을 멈췄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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