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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89화 (89/173)

〈 89화 〉 혼돈을 만들어라 ­ 4

* * *

처음 떨어진 것은 7m가 넘는 무시무시한 거구의 몬스터였다.

창백함을 넘어 짙은 청색인 피부를 가진 외눈박이의 괴물. 사이클롭스였다.

“쿠워어어억!!!”

여느 몬스터가 그러했듯, 사이클롭스도 낙하의 충격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저 본능에만 몸을 맡긴 채 가장 가까이에 있던 움직이는 물체를 공격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암글라드와의 충돌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헬데트였다.

암글라드와 직접적으로 부딪친 헬데트는 두말할 것도 없이 즉사였고, 살아남은 헬데트도 어딘가가 부러지거나 뭉개지는 등 정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직도 절반이 넘어가는 헬데트들이 살아 움직였다.

그들은 아직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몸으로 사이클롭스의 공격에 반응했다.

“키키기키긱!!!” “가카카카가가!!!” “커커커커거!!”

콰아아아앙!!!

땅을 헤집을 정도의 우악스러운 사이클롭스의 일격은 헬데트 무리에게 닿지 못했다. 그들은 개미 떼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며 공격을 피했다.

그렇게 흩어졌던 헬데트들이 그 특유의 기동력을 이용해 단숨에 사방에서 사이클롭스를 향해 쏟아졌다.

물에 빠진 동물을 향해 피라냐 떼가 달려드는 듯한 광경이었다.

헬데트 무리는 사이클롭스 온 몸에 달라붙어 녀석을 갉아먹었다.

7m라는 작지 않은 체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이클롭스의 몸은 순식간에 갈색 털뭉치로 뒤덮였다.

“쿠워어어어어억!!!!”

사이클롭스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렀다.

헬데트를 떼어내기 위해 양손을 움직여 가슴과 목쪽에 달라붙은 놈들을 한 움쿰 붙잡고 떼어내었다.

뚜두둑!! 찌익!!

불길한 소리를 내며 헬데트가 떨어진 자리엔 이미 살과 근육이 뜯어 먹혀 하얀 뼈를 드러내고 있었고, 목 쪽엔 위험한 혈관까지 닿아 대량의 피를 뿜어대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사이클롭스는 마지막 발악이라는 듯 헬데트들을 움켜쥔 양손을 바닥에 내리찍었다.

손아귀에 있던 십여 마리의 헬데트가 곤죽이 되며 사방으로 살점이 터져나갔다.

그러나 그 대가는 참혹했다.

뼈까지 갉아 먹고 파고들어 간 헬데트들이 사이클롭스의 심장을 터트리고 뇌를 파먹었다.

결국 사이클롭스는 쇼크를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절명하고 말았다.

힘없이 무너지는 거구.

분명 7m가 넘었던 녀석의 몸은 대부분 헬데트에게 먹혀, 그 육체가 땅 위에 눕혀졌을 땐 5m가량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키키키킥!!!” “카가카카칵!!!!”

헬데트는 승리를 기뻐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사이클롭스를 쓰러뜨리자마자 또 다른 몬스터들이 하늘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쿠우우우웅!!!

헬데트 몇 마리를 깔아뭉개며 떨어진 건 사이클롭스에 비견되는 덩치를 가진 바위 골렘이었다.

마법의 힘으로 움직이는 골렘은 생물이라기보단 무생물에 가까운 몬스터다.

뜯어먹을 살도 없으며, 몸이 부서져도 아무 문제 없이 움직인다.

그런 천적 같은 바위 골렘을 향해 헬데트들은 전혀 위축됨 없이 달려들었다.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자신들의 신경을 거슬리는 놈은 모조리 죽여 마땅할 사냥감이었다.

골렘을 향해 달려드는 헬데트의 위로 수많은 몬스터의 그림자 쏟아졌다.

“크르르르륵!!!”

한편, 암글라드 또한 충돌에 충격에서 벗어나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헬데트와 부딪친 충격보단 자신의 스피드가 통제를 벗어나서 나뒹군 충격이 더 컸다.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던 암글라드는 자신과 가까워지는 수많은 기척을 감지했다.

그중 하나는 바로 그의 머리 위에서 떨어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글러트니 플랜트라고 불리는 식물형 몬스터가 있다.

마치 파리지옥이라는 식충식물을 연상케 하는 생김새지만, 그 크기는 파리가 아닌 소를 잡아먹을 정도로 거대하다.

본래는 땅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있어야 할 녀석이 다른 몬스터들과 마찬가지로 하늘에서 떨어졌다.

뿌리가 땅에서 뽑힌다고 죽는 녀석은 아니지만, 대신 극도로 영양분을 갈구하며 보이는 모든 생물체를 잡아먹게 된다.

그런 글러트니 플랜트가 떨어지는 위치에 있던 암글라드를 공격한 건 당연한 이치였다.

다만 본래는 식물이기 때문인지 상대와 자신의 역량 차를 구분하지 못했다.

드드드드……!!

거대한 체구를 이용해 암글라드를 덮친 글러트니 플랜트.

녀석의 흉측한 입은 암글라드가 내민 앞발, 그 바위 같은 외피를 뚫지 못하고 매달려 있었다.

암글라드는 자신의 앞발에 들러붙은 식물 덩어리를 그대로 땅에 내리꽂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걸쭉한 녹색 체액이 뿜어지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뿌리가 아닌 줄기 부분이 땅에 강제로 틀어 막힌 글러트니 플랜트는 몇 번 움찔거리더니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글러트니 플랜트를 반쯤 녹즙으로 만들어버린 암글라드가 몸을 털며 몸에 묻은 체액을 털어내었다.

그러면서 사방으로 눈을 돌리며 현 상황을 파악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많은 몬스터.

그 남자가 말한, 웃기는 단기 알바인가 뭔가에 채용된 녀석들일 터다.

그 몬스터들이 뒤엉키고 살을 물어뜯는 광란의 현장에 기묘한 기시감마저 느낄 정도다.

이딴 놈들이 어떻게 되든 관심 없다.

그보다는 조금 전에 사라진 인간을 찾는 게 먼저다.

그 인간만 보면 짜증이 치밀어서 참을 수가 없다.

결국 두 번째로 마주친 순간에도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더는 원인 따윈 상관없다.

그 인간을 죽인다면 그 남자에게 이용당해 불쾌해진 마음도 어느 정도 후련해질 것이다.

놈들은 어디 있지?

눈앞에서 사라져버렸지만 멀리 있지 않을 거란 확신이 암글라드에게는 있었다.

“크륵…?”

그러다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헬데트들이 다른 몬스터들과 뒤엉켜 싸우고 있는 곳이었다.

그중 머리가 세 개 달린 개, 켈베로스라고 불리는 몬스터가 세 개의 입으로 헬데트 한 마리를 붙잡고 사방으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 사이에 달려든 다른 헬데트들에게 물어 뜯겨 절명하긴 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 켈베로스에게 당한 헬데트의 육체가 사라졌다.

그리고 거기에 남은 것 이상한 종잇조각 한 장이었다.

그 종이가 무엇인지 암글라드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종이가 무언가에 의해 지워지듯 사라진 걸 보는 순간 뭔가를 감지했다.

종이가 사라지고, 몬스터의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 웅덩이에서 일어나는 파문. 그 옆으로 찍히는 빨간 발자국. 그 형태는 몬스터가 아닌 인간의 것이었다.

뭔가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몬스터들의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을 조금 전에 사라진 인간들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 본 암글라드가 그 자리를 덮치려던 순간이었다.

우르르릉!! 콰과과아아앙!!!

벼락이 떨어졌다.

세상이 새하얗게 변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강렬한 벼락이었다.

그것을 직격으로 맞은 암글라드가 주춤거렸다.

아무리 그의 몸이 견고하다고 한들, 내장까지 파고드는 뇌전의 충격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벼락이 끊고 세상이 다시 원래 색으로 돌아왔을 땐 바닥에 피 발자국은 이미 끊겨 있었다.

보이지 않는 인간이 암글라드의 기척을 눈치 채고 재빠르게 흔적을 지운 뒤 달아난 것이다.

표적을 놓치자 암글라드는 머리 위를 올려다 보았다.

“퀴오오오오!”

푸른빛을 품은 거대한 새가 한 마리 날아가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푸른빛을 내는 건 깃털이 아니라 시퍼런 뇌전이었다.

썬더버드.

SoR의 무대인 글레이그 대륙의 상공을 떠돌아다니며, 심심하면 아무 곳이나 뇌전을 퍼붓고 보는 조류계의 깡패로 불리는 몬스터였다.

이번에도 그런 종류의 벼락이었을까. 혹은 갑자기 바뀐 환경에 대한 경계심이었을 수도 있다.

심심풀이든, 위협용이든 썬더버드가 벼락을 떨어뜨렸고, 하필 그 지점에 있던 게 암글라드였다.

“…….”

살기가 담긴 녹색 안광이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모르고 유유히 날아가는 썬더버드에게 향했다.

***

콰아아아아아아앙!!!!!

상공에서 터지는 화려한 폭발을 바라보았다.

부스터를 뿜어대며 하늘로 날아오른 암글라드와 거기에 놀라 강력한 뇌전을 일으킨 썬더버드가 격돌하며 일어난 폭발이었다.

썬더버드는 단말마의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암글라드의 일격에 터져 나갔다.

그러나 초근접거리에서 터져 나오는 뇌전을 모조리 뒤집어 쓴 암글라드도 멀쩡하진 못했는지 자세를 잡지도 못한 채 지상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무너진 폐허 잔해 그늘에 숨은 채 바라보았다.

레반과 하티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들은 지금 하늘에서 떨어지는 몬스터들을 요격하거나 어디론가 유인하며 따돌리는 중이었다.

망원경 등급: 노말 분류: 도구

먼 곳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도구. 잡화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싸구려다.

「멸망해가는 세계라고 한들, 문명이 있는 이상 그에 맞는 도구도 있는 법이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꺼낸 망원경으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다.

썬더 버드가 격추된 이후로 몬스터와 계속 해서 떨어지며 암글라드와 마찰을 빚었다.

트윈 헤드 오우거, 드레이크, 만티코어까지. 쟁쟁한 몬스터의 연속이다.

헬데트들은 이제 몇 놈이나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 숫자에 치명적인 타격이 갔을 것이다.

내가 숨은 곳과 암글라드의 격전지는 대략 3, 4km.

익숙하지 않은 거리를 계속 바라보고 있으려니 눈이 피곤해졌다.

망원경에 시선을 떼고 눈가를 주무르고 있을 때, 아무것도 없는 지대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저벅.

그 인기척에 나는 반사적으로 스크롤을 쥐었다.

적일 경우를 경계하며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레테라?”

“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레테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기루가 생기듯 흐릿한 잔영이 생겼고, 그것은 곧 레테라의 모습이 되었다.

“문제없이 가져왔어요.”

그녀는 전리품을 자랑하듯 양손으로 종이를 펼쳐보였다.

목표였던 헬데트가 죽음으로서 떨어뜨린 탈출 티켓이었다.

“구해온 건 다행이긴 한데, 굳이 지금 갈 필요가 있었어?”

몬스터들 사이를 몰래 빠져나와 티켓을 가져오기 위해 앞으로 몇 장 남지 않은 ‘은신’ 스크롤까지 사용했다.

나는 몬스터들의 소동이 진정된 뒤에 티켓을 찾기를 원했지만, 웬일인지 레테라는 지금 다녀오고 싶다며 강하게 요청했다.

“뭔가 느낌이 안 좋아서요.”

티켓을 건네준 레테라는 경계 어린 눈길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 눈엔 그리 특별할 건 보이지 않았다.

다만 도시 여기저기에서 소란이 피어나는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특히 암글라드가 있는 자리가 가장 심한데, 상당히 거리를 둔 이곳까지 녀석의 노기가 전해질 정도다.

세 번째 웨이브인 만큼 몬스터들의 수준도 처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올라갔다.

아무리 암글라드가 강력하다고 해도 피해가 없을 순 없다.

‘이대로 저들 끼리 싸우다 쓰러지면 좋을 텐데, 그러기엔 몬스터의 숫자가 너무 부족해. 결국 숨통을 끊는 건 우리가 해야 한다는 건데…….’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이 정도가 어디인가.

처음 암글라드와 헬데트에게 황금 아우라가 나타났을 때의 절박함에 비하면 상당히 상황은 호전되어 있었다.

본래 대규모 파티를 동원했던 데미지 누적을 다른 몬스터들이 대신 이행해주고 있었으니까.

남은 건 암글라드가 힘이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막타를 날리는 것.

별 문제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순조롭게 마지막 티켓까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타악.

“뭐야? 빨리 돌아왔군.”

“티켓은 어떻게 됐어요?”

그때 몬스터들을 요격하거나 유인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던 레반과 하티가 돌아왔다.

나는 그들에게 레테라가 가져온 티켓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표정이 밝아지는 게 보인다. 이제 골인 지점이 코앞인 걸 느꼈기 때문이리라.

“빨리 모두 이틈에 쉬어둬. 마지막엔 힘이 빠졌다고 한들 암글라드와 싸우지 않으면 안 돼.”

““네!””

레반과 레테라가 힘차게 답했고, 하티는 벌써 자리를 잡고 한 숨 돌리는 중이었다.

그들이 쉬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12시 15분.

네 번째 웨이브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몰라도 앞으로 45분의 시간이 남았다.

됐어.

이 정도면 충분하다.

암글라드의 힘이 떨어지고, 그 사이에 회복한 우리가 녀석을 쓰러뜨리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는 암글라드의 동태를 확인하기 위해 녀석이 있는 곳으로 다시 망원경을 향했다.

“……응?”

그리고 나는 의문을 토했다.

조금 전 우리가 일부러 만들어놓았던 암글라드와 헬데트 무리들의 격전지.

놈들의 싸움에 의해 주변 건물이 죄다 파괴된 덕분에 그곳의 모습을 훤히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암글라드가 없잖아?”

“네?”

“뭐라구요?”

내 중얼거림을 들은 다른 녀석들이 반응했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내가 보고 있는 광경은 변하지 않았다.

아직 많은 몬스터가 남아 있었다.

숫자와 호전성으로 밀어붙이던 헬데트도 숫자라는 이점이 사라지자 거의 전멸해가고 있었다.

그런데 암글라드만이 없었다.

설마 잠시 시선을 뗀 사이에 죽어서 티켓만 남기고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녀석이 이렇게 금방 죽을 리 없다는 건 내가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간 거지?

내가 사라진 놈의 모습을 찾으려 계속 망원경으로 두리번거렸을 때였다.

덥썩!

순간 내 허리를 무언가가 휘감았다.

레반의 팔이었다.

나를 들쳐 업다시피 한 레반과 레테라, 하티가 모두 한 움직임이 되어 우리가 숨어 있던 폐허의 그림자 속을 뛰쳐나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동시에 무직한 무언가가 빈 폐허 공간을 박살해내었다.

몬스터는 아니다. 이미 몬스터가 떨어져 내리는 시간은 지났다.

거대한 앞발로 우리가 숨은 장소를 헤집은 녀석의 모습을 본 내가 놀라 외쳤다.

“암글라드!?”

맙소사! 여긴 어떻게 알아낸 거야?! 한참 떨어진 곳에 숨어 있었는데!

그런 경악성이 담긴 시선을 암글라드에게 던졌고, 녀석은 잔뜩 분노가 서린 눈을 나에게 향하고 있었다.

쩌적……!!

단단하던 녀석의 외피, 그 투구 같은 머리 한쪽에 작은 균열을 새긴 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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