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 고인물이란 2
* * *
털썩!
암글라드가 재가 되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저 지켜보기만 했을 뿐인데 모든 기력을 소모했다.
이게 현실에서 보는 레이드 몬스터의 압박감인가.
뒤에서 보조만 한 내가 이 지경인데 직접 싸운 세 사람은 어떠할까.
아무리 인간을 벗어난 초인이라 해도 멀쩡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데미지가 큰 레반과 레테라는 물론 하티도 지친 건지 바닥에 주저앉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기진맥진해진 것도 당연했다.
앞서서 강력한 몬스터들로 힘을 빼놨기에 망정이지, 본래대로였으면 더 많은 인원이 모여도 잡지 못하는 게 암글라드다.
“그런 놈과 다짜고짜 마주치게 만들다니, 진짜 끔찍한 이벤트라니까…….”
이딴 상황을 즐기라며 꾸며 놓은 녀석의 대갈통을 쪼개서 그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싶을 지경이다.
경험치는 쏠쏠하게 얻었지만 대신 정신이 메말라 죽을 거 같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드러누워 작은 안식을 맛보고 싶었다.
일반인이 감당할 수 있는 심적 부담이 한계까지 달했으니까.
하지만 드러누울 장소는 이곳이 아니다.
미쳤다고 살얼음판 위에서 쉬겠는가.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온몸에 쌓인 피로를 풀어줄 따뜻한 목욕물과 푹신한 이불을 향한 욕망에서 힘을 얻은 나는 몸을 일으키고 암글라드가 쓰러졌던 자리로 다가갔다.
당연히 티켓을 줍기 위함이었다.
그것을 알아차린 레반이 엎어져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형님! 저희가 주워오겠습니다!”
“괜찮으니까 늬들은 좀 쉬어둬.”
다른 세 사람은 진이 다 빠진 모양이니 상대적으로 멀쩡한 내가 나서는 게 나았다.
어차피 근처에 몬스터의 기색도 없기도 하고 재빠르게 갔다 오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레반과 한 번 부딪침으로써 위력이 크게 줄긴 했지만 역시 암글라드의 돌진력은 무시무시했다.
마치 불도저에 밀린 것처럼 사방에 튀던 잔해도, 울퉁불퉁하게 융기된 땅도 전부 녀석이 쓰러질 때 밀려나 있었다.
덕분에 내가 밟는 땅은 포장된 도로처럼 깔끔했다.
그 깔끔하게 이어진 길 끝에는 암글라드가 사라진 자리가 있었다.
놈의 숨이 끊기자 거대했던 몸체가 재가 되어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노력의 보장이라는 듯 탈출 티켓 하나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티켓을 보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것을 주우러 다가갔을 때였다.
멈칫.
발걸음을 멈췄다.
티켓과의 거리는 5m. 몇 걸음만 걸으면 집을 수 있는 거리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뒷목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듯한 불길함 때문이었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거지?
모든 게 다 끝났다고 생각하며 안심해야 하는데, 전혀 안심이 되지 않는다.
아직 확실하게 끝내지 못한 게 있던가? 아니면 뭔가 놓친 거라도?
‘그러고 보니…….’
아까는 신경 쓸 여유가 없던 나머지 그냥 넘어갔던 문제가 하나 있었다.
몬스터들에게 공격 받는 와중에도 암글라드는 정확히 우리가 숨어 있던 장소를 찾아내었다. 상당한 거리가 있었음에도 말이다.
어떻게 알아낸 거지?
암글라드에게 추적 능력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는 얘긴…….
“레반! 레테라!”
불길함에 묘한 확신이 더해져 가면서 다급하게 그들을 불렀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부르기보다 먼저 무언가를 감지한 모양이었다.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레테라가 내 몸을 끌어당겨 자신의 몸으로 감쌌고, 레반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푸욱!!
레반이 방어를 위해 교차한 팔 위로 무언가가 날아와 박혔다.
화살치고는 짧은 모양새.
볼트라고 하는 석궁용 화살이었다.
현실에서도 흔히 사용될 리 없는 도구였지만, 그 단단한 레반의 피부를 파고들며 박힌 모습을 보아하니 게임의 볼트가 분명했다.
“괜찮아!?”
“문제없습니다.”
푸슉!
레반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팔에 박힌 볼트를 뽑아내었다.
하지만 화살을 뽑았음에도 상처부위가 보라색으로 변색되어 갔다.
독 볼트였던 것이다.
콰득!
레반은 망설임 없이 그 변색된 부분을 물어뜯어 크게 상처를 내었다.
새까만 피가 바닥에 쏟아지는 게 싶더니 어느새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과격해 보이는 방법이었지만 독은 확실히 뽑아낸 모양이다.
그 뒤 레반은 암글라드와의 싸움으로 인해 너덜거리는 천을 찢어 상처부위 위쪽을 묶었다.
그 모습을 보고 한시름 던 나는 이내 분노 어린 시선을 정면에 던졌다.
암글라드의 몸체에 의해 밀려난 잔해더미가 산처럼 높이 솟아 있는 장소였다.
조금 전까지 아무도 없던 더미 앞에서 누군가의 모습이 드러났다.
“씨, 씨팔! 그러게 빨리 쏘라고 했잖아!”
신경질적으로 손톱을 물어뜯는 비대한 남자가 바로 옆에 선 갑옷 차림의 여성을 타박했다.
낯설지 않은 그 모습을 본 내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썩을. 역시 그때 리타이어 시켜놓는 건데.”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렇기에 더 빡친다.
우도혁과 실비아.
전에 자비를 베풀어서 한 번만 놔주기로 한 그 녀석들이었다.
그리고 우도혁의 한쪽 손에는 내가 주우려고 했던 암글라드의 탈출 티켓이 쥐어져 있었다.
***
첫 만남이 좋지 않긴 했다.
다짜고짜 습격해 온 걸 뭐가 좋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정도로 처절한 상황이었고, 아직 상대에 대해 잘 모르기에 딱 한 번만 면죄부를 주었다.
그런데 그것을 이런 식으로 갚을 줄은 몰랐다.
독 묻은 석궁으로 공격해 오고, 티켓을 강탈한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암글라드가 어떻게 우리를 찾아낼 수 있었는지도 이제야 알 거 같았다.
“타인에게 몹 유도는 비매너인 거 모르냐, 새꺄.”
실비아가 갑옷 위로 걸친 망토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복장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흑갈색 망토.
처음 봤을 땐 없던 저런 망토를 아무 이유 없이 걸치고 있을 리 없다.
내 기억이 맞다면 저 아이템은 분명 ‘개구쟁이 마법사의 투명 망토’일 것이다.
이름대로 사용자의 모습을 감춰주는 효과가 있다.
은신처럼 기척까지 확 줄어 주진 않지만, 공격하면 풀리는 은신과 다르게 공격하는 와중에도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숨어서 몬스터를 공격하기엔 안성맞춤이다.
실비아가 쥔 석궁 또한 그러했다.
석궁은 궁술 스킬이 없더라도 사용할 수 있는 원거리 무기였다.
재장전에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용하기에 따라선 보통 화살보다 활용도가 넓어진다.
저 두 가지의 조합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뻔했다.
이놈들이 암글라드를 공격해서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유도했던 것이다.
살려뒀더니 이딴 식으로 뒤통수친 녀석들을 노려보자 우도혁은 오히려 뻔뻔스럽게 콧방귀를 뀌었다.
“흥! 자, 자업자득이다!”
“뭐가 어째?”
내가 눈썹을 세우자 우도혁은 흥분했는지 말을 더듬으며 외쳤다.
“내, 내가 도와달라고 했는데!! 그걸 무시하고 가버렸어!! 그, 그런 주제에 잘난 척 설교까지 해!? 그런 식으로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비웃으며 다녔겠지! 너, 너 같은 놈은 죽는 게 나아!”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는 하는데, 이건 뭐 똥 지린 놈이 성내는 수준도 아니고.
뒤통수를 쳐온 놈이 오히려 자기가 정당하다고 뻗대고 있으니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논리마저 순 억지였다.
레테라도 마찬가지인지 황당 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내게 물었다.
“저 돼지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예요?”
“심각한 피해망상이지. 자기의 요청을 거절한 걸 가지고 자신의 안에서 날 천하의 쌍놈으로 만들어버렸어.”
저런 놈이 정말 있긴 있구나.
자기가 하는 짓은 모두 정당하고, 남이 하는 짓은 다 비겁한 짓이라는 사고방식의 녀석들.
속된 말로 내로남불이라던가.
하지만 이건 명백히 선을 넘었다.
아무리 내 행동에 앙심이 생겼다고 해도, 잘못하면 녀석이 유인한 암글라드에게 우리가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
저놈은 거기에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는 것인가.
심지어 고생해서 쓰러뜨린 암글라드가 흘린 탈출 티켓마저 가졌다.
“그건 우리가 쓰러뜨린 몬스터의 드랍템이야. 돌려줘.”
순순히 말을 들어줄 것 같진 않지만 일단 말이라도 해본다.
그러자 우도혁 녀석은 비대한 얼굴 살집을 흔들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면서 보란 듯이 우리에게서 훔쳐 간 티켓을 흔든다.
“나, 나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하면 줄 수도 있지.”
“…….”
우월감을 즐기고 있군.
마치 우리 안에서 굶주린 개 앞에서 보란 듯이 고기를 뜯는 듯한 간악한 표정에 신물이 올라올 지경이다.
“저딴 말 들을 필요 없어요. 어차피 저쪽도 찾고 있던 두 번째 분량의 티켓인데 돌려줄 리가 없어요.”
“알아. 그래서 더 짜증 나.”
당장 달려가서 저놈의 면상에 주먹을 꽂아 넣고 싶었다.
어차피 여긴 법도 없고 제 3자의 시선도 없으니 강냉이 몇 개 털어내도 문제없겠지.
레반과 레테라에게 힐끔 시선을 던져보았다.
지금 당장 달려들어서 제압할 수 있겠냐는 물음이었다.
그러나 부정적인 미약한 고갯짓이 돌아왔다.
어렵다는 의미였다. 확실히 쉬운 일이었다면 내가 말하기보다 먼저 그들이 저지르고도 남았을 것이다.
문제가 되는 건 저 쌍놈을 지키고 있는 실비아의 존재였다.
저딴 놈이라도 충심으로 지키고 있는지 그녀는 예리한 눈을 빛내며 우리의 움직임일 주시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공격해올 기색이 느껴지면 바로 반응할 것이다.
확실히 그녀는 레반이나 레테라보다 전투력이 떨어지지만, 우도혁이 티켓을 끊고 탈출할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었다.
평소 컨디션이라면 모를까 지금 지칠 대로 지친 두 사람이 저들을 순식간에 제압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뒤로 힐끔 시선을 던져보았다.
도리도리!
대기하고 있던 하티가 고개를 저었다.
암글라드와 싸울 때 마나를 다 소모해버려서 지금 쓸 수 있는 신성마법도 없는 모양이다.
지금 이 상황을 역전할 수 있는 패가 하나도 없는 건가?
나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빠, 빨리 무릎 꿇고 사죄해! 혹시 내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잖아!”
“……후우.”
더 신경을 긁듯 들려오는 우도혁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숨을 내쉰다.
할 수 없지,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나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주머니에서 꺼낸 건 휴대폰이었다.
나는 그것을 눈앞에 있는 우도혁과 실비아에 향했다.
“자아, 김치~.”
찰칵.
“……???”
난데없이 터지는 플래시에 저쪽 남녀도, 이쪽의 아군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휴대폰에 찍힌 사진을 확인했다.
확실하게 우도혁과 실비아의 얼굴이 찍혀 있었다.
“됐어. 이제 가봐.”
“뭐, 뭐라고?”
아무런 미련 없는 배웅에 우도혁이 오히려 황당하다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가 티켓을 보란 듯이 내밀며 말한다.
“무, 무슨 생각이야? 이게 필요 없다는 거야?”
“필요하긴 하지만 어차피 안 돌려줄 거잖아? 그럼 됐어. 빨리 티켓이나 뜯고 현실로 꺼져.”
그러면서 나는 두 사람이 찍힌 사진을 그들에게 내보였다.
“그리고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야. 늬들의 얼굴은 기록했다는 것과 우리 중 셋은 확실하게 이곳을 나갈 수 있다는 걸. 잠깐 우위에 있었다고 잊은 거 아니겠지? 이 두 사람의 힘은 네 캐릭터의 힘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는 거.”
움찔하고 떨리는 우도혁의 어깨가 언뜻 보였다.
짜증나는 이 상황에서 그나마 얻은 작은 재미라는 듯 나는 이빨이 드러날 만큼 진한 미소를 지었다.
“지난번과 같은 자비는 더 이상 없어. 그 눈에 띄는 몸뚱아리 꼭꼭 숨기고 다니는 게 좋을 거야. 현실에서 만나는 즉시 네 캐릭터는 죽여 버리고, 우리에게 시비를 건 네 면상은 제대로 뭉개놓을 테니까.”
진심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엔 이놈을 판단할 근거가 적었기에 놔주었지만,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다.
이놈은 리타이어 시킨다.
단 한 줌의 자비도 없이 철저하게.
그런 단호한 의지가 담긴 눈빛을 읽은 걸까.
우도혁이 땀을 뻘뻘 흘리며 입을 더듬었다.
“너, 너……!”
“왜? 어떤 놈은 통수에 몹 유도도 모자라 고생해서 얻은 티켓을 훔쳐 가는데 안 되는 게 뭐 있어? 정 그렇게 무섭다면 서비스로 한 가지 좋은 방법을 알려줄게.”
나는 손가락 하나를 세운 뒤 말을 이었다.
“우리를 여기서 쓰러뜨리고 가면 돼. 그럼 후환 없앨 수 있으니까. 그러는 게 너 같은 겁쟁이에게 딱 맞는 방법 아니야? 지금만 한 기회는 없지. 내 캐릭터들을 쓰러뜨리고 완벽한 우위를 차지하면서 나를 내려다볼 기회 말이야.”
어서 죽이려 와보라는 듯 나는 양팔을 벌렸다.
하지만 우도혁의 반응은 오히려 뒷걸음질 치는 것이었다.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기세에 밀린 것처럼.
“왜 도망쳐? 지금이 기회라니까? 마침 우리는 조금 전의 전투로 잔뜩 지쳐 있는 상태야. 아주 거저먹는 거라고. 이런 절호의 기회인데 무서워서 도망치려고? 남자 맞냐? 네 사타구니의 불알 두 짝 쓸모없는 거 같은데 친히 떼주리?”
그 모욕적인 언사가 먹혀들어 간 걸까.
울컥한 듯 표정을 구긴 우도혁이 당장 앞으로 나오며 저놈을 없애버리라고 외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한 손이 그놈을 가로막았다.
실비아의 손이었다.
“주인님, 말려들면 안 됩니다.”
“하, 하지만 실비아!”
“저와 약속한 거 잊지 않으셨지요? 처음 기습이 실패하면 티켓만 회수하고 바로 탈출하기로 한 거.”
‘칫.’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흥분한 우도혁이 움직여 주길 바랐다.
딱 몇 걸음만 앞으로 나온다면 거기서부터는 완전히 레반과 레테라의 영역이다.
실비아가 무슨 수를 써온다고 한들 그들이 티켓을 뜯고 탈출하기 전에 제압할 수 있는 거리인 것이다.
내 의도를 알아차린 레반과 레테라도 당장 달려들 수 있도록 티 나지 않게 몸에 힘을 주고 있지 않은가.
우도혁은 넘어갈 뻔했지만, 실비아는 넘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우리가 지친 상태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불리하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고 있었다.
“씨, 씨팔! 혀, 현실에서 눈앞에 나타나기만 해봐! 나, 나도 무슨 짓을 해서라도 널 죽일 테다!”
그렇게 말한 우도혁은 망설이는 손길로 티켓을 뜯기 위해 움직였다.
콰아아아앙!!!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던 레반과 레테라가 섬광과 같은 속도로 우도혁을 향해 쏘아졌다.
흙먼지를 비산 시키며 날아간 두 사람이었지만, 도중에 실비아에게 저지당했다.
스킬 발동 실드 차지!
언제 꺼냈는지도 모를 대형 방패가 두 사람을 향해 튀어나왔다.
아무래도 등과 망토 사이에 언제라도 쓸 수 있도록 방패를 숨겨두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튀어나온 방패라는 장애물과 두 사람의 몸이 격돌한다.
쿠콰아아아아앙!!!
방패가 우그러지며 실비아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스킬까지 썼음에도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는지 실비아의 팔은 방패와 함께 뒤틀려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맡은 바의 임무를 다했다.
“히, 히익!!”
찍!
갑작스런 격돌에 놀란 우도혁이 서둘러 티켓을 뜯었다.
그의 몸이 순식간에 빛나는 무언가에 뒤덮이더니, 이내 감쪽같이 사라진다.
저게 탈출 티켓의 효과가 발현되는 모습인가.
하늘로 떠오른다거나, 텔레포트 마법처럼 마법진이 나타난다거나 할 것도 없이 단순하게 지워지듯 이 세상에서 모습을 감춰버렸다.
도중에 녀석을 붙잡는다는 편법도 쓸 수 없어 보인다.
우도혁이 사라지고, 방패에 실린 위력에 밀려 뒤로 물러난 실비아는 추가적인 공격이 들어오기 전에 우도혁의 뒤를 따랐다.
한 팔은 뒤틀려 있어 쓸 수 없었기에, 대신 그녀는 티켓의 한 쪽을 입에 물고 있었다.
“……미안하오.”
마지막 양심이었던 걸까.
그녀는 입으로 티켓을 뜯어내었다.
우도혁과 마찬가지로 빛나는 무언가가 실비아의 몸을 감쌌고, 레반과 주먹과 레테라의 발이 내질러졌을 땐 이미 빛무리만이 모래알처럼 흩어질 뿐이었다.
“…………엿 됐네.”
실비아마저 놓치고, 나는 그저 하염없이 짙은 먹구름이 낀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구름처럼 앞길이 막막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