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 이벤트의 뒷풀이 2
* * *
피곤할 때 마시는 커피란 양날의 검이다.
카페인은 피로를 없애는 게 아니라 잊게 해주는 것.
본인이 인식 못 하게 될 뿐이지 여전히 몸은 피로에 시달려 삐걱거리고 있다.
피곤하면 커피고 에너지 드링크고 마시지 않고 그냥 푹 자는 게 낫다.
오히려 커피를 마시면 수면 효율만 떨어질 뿐이니까.
하지만 나는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따끈따끈한 커피를 마셨다.
아직은 쉴 수 없었다.
극한의 환경에서 구르고 와서인지 온몸의 신경이 예민하고 두뇌는 평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아직까진 이런 감각이 좀 더 이어지게 놔두고 싶었다.
가짜 신월시에서 겨우 돌아왔긴 했지만, 아직 이벤트가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후우…….”
따뜻한 액체가 몸으로 들어오자 근육의 긴장이 풀어지고 흐릿했던 머리는 맑아졌다.
과연 커피. 현대인에겐 떼려야 뗄 수 없는 음료였다.
“커피 잘 타시네요. 고마워요.”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나에게 커피를 끓어준 오서연에게 감사를 전했다
신월시에서 돌아왔을 땐 그녀가 집 앞에 찾아와 있던 상태였다.
듣자 하니 그녀도 율의 능력인지 뭔지에 의해 가짜 신월시에서 벌어지던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가장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우리가 흑룡의 공격에 휩쓸리는 모습을 보고 걱정을 주체할 수 없어 달려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솔직히 고마움도 느꼈다.
우리가 한 고생을 누군가 알아주고 염려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심심치 않은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맛이 이상하지 않나요?”
“아뇨, 전혀. 마시기 딱 좋은데요.”
“그렇죠? 다행이다. 우리 사장님은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아직도 맛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며 항상 건너편 카페에 다녀오는 거 있죠?”
“스카이피아 카페요?”
위드 소프트웨어 본사 건너편에 있는 작은 카페를 떠올린다.
본사를 방문했을 때 한 번 들려본 적이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귀머거리 노인 한 분이 홀로 운영하는 곳으로, 그때 마셨던 커피가 무척 맛있던 걸로 기억한다.
“…….”
무심코 그녀가 끓여준 커피와 그 카페에서 마셨던 커피를 비교해본다.
물론 둘 다 맛있다고 하기에 충분했다.
충분하긴 하지만…….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자꾸만 그 카페 커피에 무게가 쏠린다.
본의는 아니게도 율이 자꾸 그쪽과 비교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 이름 모를 노인이 만드는 커피엔 그저 맛있는 걸로는 끝나지 않은 무게가 있었다.
옆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던 레테라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한 모금을 넘기 뒤 중얼거렸다.
“이거, 그 카페에서 마신 커피가 더…… 읍!”
터헙!
물론 오서연의 면전에 대고 말하면 상처받을 게 분명했기에 나는 레테라의 입을 막았다.
“네? 뭐라고요?”
“아뇨. 아무것도.”
나는 시치미를 뗐고, 눈치 빠른 레테라도 더 이상 별말 않고 커피를 홀짝였다.
하지만 오서연이 이상하다는 시선을 거두지 않아서 나는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그리고 저보다 누나인데 슬슬 말 놓는 게 어떠세요?”
“어? 그래도 되나……요?”
오서연은 어색하게 말꼬리를 늘리며 옆에 있던 레테라를 힐끔거렸다.
아무래도 말은 놓고 싶었지만, 위험한 사람들이 극진하게 모시고 있는 사람에게 함부로 말을 놓는 게 무서웠던 모양이다.
“얘들은 신경 안 써도 되요. 말 편하게 하는 정도야 넘어가겠죠. 그치?”
레테라를 돌아보았고, 그녀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버니께 무례한 언사만 없다면 상관없어요.”
“그럼 그럴……까?”
오서연은 조심스레 말을 놓고 배시시 하게 웃어 보였다.
“후우! 개운하다.”
그때 막 샤워를 마친 레반이 젖은 머리를 닦으며 거실로 들어왔다.
신월시에서 돌아온 우리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누가 본다면 전쟁터에서 구르고 왔냐고 말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한 일이 샤워였다.
두 사람의 강권으로 내가 가장 먼저하고, 그 뒤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해 레테라가 두 번째, 레반이 마지막이었다.
샤워를 하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으니 우리의 생태도 좀 볼만해졌다.
이것으로 거실로 나를 비롯한 네 사람이 모였다.
보이지 않는 유령 미경이까지 더 하면 다섯이었다.
레테라가 귓속말로 언급하길 그녀는 현재 낯선 방문자인 오서연에게 적대적인 눈빛으로 노려보는 중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묘한 한기를 느끼는 건지 오서연은 자꾸 팔을 문지르거나 외투를 걸치거나 하였다.
나중에 저 배척정신 뛰어난 유령 좀 잘 타이르라고 넌지시 말해두고, 나는 다 마신 커피를 내려놓았다.
“자, 그럼 다 모였으니 슬슬 확인해볼까?”
“……? 뭘 말이야?”
“전리품이요.”
오서연은 잘 알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의 모험을 지켜봐 왔다던 그녀였지만, 전리품이라고 할 만한 걸 얻는 모습은 보지 못했으니 당연했다.
실제로 그곳 몬스터들이 드랍하는 건 탈출 티켓이 전부였다.
그밖에 소득이라면 소소한 경험치와 레벨 업 정도일까.
나는 샌드웜이 죽고 흑룡의 공격에 휩쓸렸을 때, 머릿속에서 기계적으로 낯선 문자가 떠오르는 걸 느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캐릭터가 현실에 나오고 난 뒤 처음으로 겪는 레벨 업 메시지였다.
이번 싸움을 통해 레반은 자신의 한계를 넘고 한 단계 성장했다.
아쉽게도 레반에 비해 경험치가 부족한 레테라는 해당되지 않았지만, 그녀 또한 곧 레벨 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성장한 것은 분명하다.
레벨 업한 레반을 살펴보고 싶긴 하지만 그것을 확인하는 건 나중에 일이다.
그보다 먼저 살펴야 할 게 있었다.
레테라는 근처 벽에 기대어 놓았던 배낭을 가져왔다. 신월시에 갔을 때 내가 짊어지고 있던 것이다.
그녀가 배낭에서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는 건 다름 아닌 상자였다.
“이건……?”
“티켓을 뜯고 탈출하고 난 뒤, 저희는 처음 이벤트에 진입할 때 있었던 뒷산 한가운데에 서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에 이게 놓여 있더라고요.”
경첩이 달린 투박한 가죽재질의 상자다.
크기는 작았지만, 뭐가 들었는지 묘하게 무거웠다.
이 상자의 출처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이 이쪽 세상에서 사라진 사이에 산림으로 들어온 누군가가 떨어뜨리고 간 물건일지 몰랐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전리품이라는 걸 알았다.
그것은 추리한 것도 아니고, 직감으로 안 것도 아니었다.
그저 상자 위에 테이프로 붙여진 종이에는 삐뚤삐뚤한 글씨체로 ‘전리품’이라고 떡 하니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긴 말 할 것도 없이 율의 안배가 분명했다.
참으로 저렴한 외관에 처음엔 이것도 무슨 함정이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다.
그 자리에서 상자의 내용물을 확인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엔 요현도, 다른 두 사람도 극한까지 피로해진 상태였다.
우선 집으로 돌아가 한숨 돌린 뒤에 확인하기로 하며 그들은 상자를 가지고 왔다.
설명을 다 들은 오서연은 호기심이 어린 시선으로 상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이런 보상이 있었다는 건 모르는 눈치였다.
“율은 아무 말 없었나요?”
“응……. 애당초 모든 일은 그 양반 혼자서 벌이거든. 내가 알고 있는 거라고 해봐야 심심풀이로 말해주는 이야기밖에 없어.”
이벤트에 대해서 오서연이 직접 들은 거라고 해봐야, 앞뒤의 말 다 생략하고 “신월시의 위에서 몬스터들이 쏟아진다면 재미있겠지?”라는 소리를 들었던 게 전부였다.
그것만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나에게 알렸다가 스포일러 형벌을 받기도 했단다.
아무튼 그녀가 모른다는 건, 이 전리품의 정체에 대해서도 알 길이 없다는 건데…….
“역시 직접 열어서 확인할 수밖에 없나?”
“함정이 아닐깝쇼?”
레반이 우려를 드러냈다.
이미 한 번 미믹이라는 전례가 있기에 당연했다.
상자인 줄 알았던 것이 갑자기 흉측한 이빨과 혀를 드러내며 덮치는 광경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내 목덜미가 서늘해진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SoR에는 한 가지 규칙이 있어.”
“……?”
“개 같은 어려움과 구조로 플레이어를 괴롭히지만, 그 고난을 뛰어넘었을 때의 보상은 확실하게 줘. 애초에 액션 게임의 기본은 고난과 보상의 반복이잖아? 전투를 끝낸 병사가 쉬듯, 플레이어에게도 휴식기가 필요해. 그렇지 않으면 지쳐 떨어지거나 미치거나 둘 중 하나거든.”
내 손가락의 끝이 상자를 톡톡 두드렸다.
“우린 방금 고난 하나를 뛰어넘어 왔어. 사대룡에게서 살아남는 하드한 난이도로. SoR를 해온 경험상 여기서 갑자기 통수를 치진 않을 거라고 봐.”
물론 100%로 확신할 수 없다는 게 인생이라는 거지만.
그래도 나는 조심스레 상자에 손을 대었다.
상자에 잠금장치를 풀자 묘한 불안과 기대가 한 되 섞이는 게 느껴졌다.
레반이나 레테라를 시켜 열어도 되지만 이것만큼은 남에게 맡기기 싫었다.
참으로 두근거리는 순간이 아니던가.
나는 온몸에 감각을 집중하며 상자를 열었고, 다른 사람들은 긴장된 눈으로 그것을 지켜보았다.
경첩에 의해 상자가 문처럼 활짝 열리고, 그곳에 있는 건…….
까꿍!
“……!?”
마치 삐에로가 튀어나오는 장난감 상자마냥 웬 인형이 튀어나왔다.
그것만으로 놀라 하마터면 뒤로 넘어갈 뻔했다.
레반과 레테라는 당장이라도 달려들려다가 인형의 모습을 확인하곤 애매하게 동작을 멈추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상자에서 튀어나온 건 마치 율을 작게 만든 듯한 인형이었다.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과 검은 츄리닝. 사람 가지고 노는 듯한 악동 같은 미소까지 소름 끼치도록 잘 재현해 놨다.
어이, 표정이 왜 그래? 지친 분위기를 환기하려고 애써 분신 인형을 만든 건데 좀 재밌는 반응이라도 보이라고. 그나저나 이벤트는 어땠어? 즐거웠냐? 설마 무서워서 똥오줌 지린 건 아니겠지?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애당초 극한의 상황에선 뜻대로 굴러가는 건 하나도 없을뿐더러, 중요한 건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느냐…….
빠악!!!
이어지는 꼬마 율의 수다를 도저히 들어줄 수 없던 나는 상자째로 걷어차며 벽으로 날려버렸다.
쿵!
벽으로 날아가 부딪치는 율 인형과 상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미끄러지듯 벽에서 바닥으로 내려오는 상자와 싸커킥 자세를 취한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미안. 갑자기 올라오는 빡침을 참지 못했어.”
“이해합니다.”
“그럴 수 있죠.”
“오히려 저걸 보고 아무렇지도 않으면 어딘가 문제 있는 걸 거야.”
다른 사람들은 공감해주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리품이라고 해서 기대하며 열었더니 튀어나온 율을 만나는 빡침은 이루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난 이딴 거나 보자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을 견디며 버티고 있던 건가.
그냥 잠이나 잘 걸 그랬다.
거참 성질머리하고는.
바닥으로 내려온 율 인형은 한쪽 옆구리에 상자를 끼고, 한 손으로는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
이런 식으로 대해도 되는 거냐? 애써 좋은 거 건네주러 왔더니만.
“전리품이라는 게 네 모습으로 말하는 인형이라면 필요 없어. ……아니지, 필요하긴 하겠네. 샌드백으로 쓰거나 불태워버리거나.”
하하하! 꽤 좋은 발상이다만, 이건 비매품이야. 손오공이 털을 뽑고 훅 불면 나오는 분신들 있지? 그거랑 비슷해서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버리거든.
“그럼 이번엔 그 시간제한 안에 널 때려죽이면 되는 거냐? 정말 고맙네. 네놈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를 이렇게 해소할 기회를 주다니.”
나와 같은 마음인지 레반과 레테라가 손가락을 가볍게 풀며 앞으로 나섰다. 그들도 쌓인 게 많았다.
두 사람의 흉흉한 기세에도 율의 인형은 뭐가 재미있는지 실실 웃으며 옆구리에 낀 상자를 두드렸다.
뭐, 어떻게 하든 너희들 자유지만, 그전에 마땅히 받아 가야 할 보상이나 받으라고.
“보상?”
아까 상자를 열었을 땐 율 인형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시답잖은 장난질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보상이 있단 말인가.
너 말고 이벤트에 참가한 플레이어 모두 상자를 가져갔다. 지금쯤 이렇게 보상을 받는 과정을 거치고 있겠지. 참고로 캐릭터만 참가한 자들에겐 없어. 그놈들은 개죽음당한 거거나 아님 경험치로 만족해야지.
율의 말대로라면 하티는 이 보상을 가져가지 못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놈들이라며 복수형을 언급한 걸 보면 주인 없이 캐릭터만 참가한 경우도 하티에 외에도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보상이 뭔데?”
그거야 네 행동에 따라 달라지겠지.
“뭐?”
스코어제거든. 고블린을 쓰러뜨리면 1점. 오크를 쓰러뜨리면 3점. 웨어울프를 쓰러뜨리면 5점. 이런 식으로 강한 몬스터를 쓰러뜨릴 때마다 점수는 높아져.
율 인형은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그것을 활짝 열었다.
여전히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는 상자였다.
그리고 네가 쌓아 올린 점수의 순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되지. 성실히 일한 만큼 보답을 받는다. 이것만큼 판타지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어? 정당한 대가조차 받기 힘든 이 세상에서 말이야. 안 그래?
“…….”
묘하게 날카롭게 찌르는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같은 생각이긴 하지만 저놈과 공감하긴 싫었다.
묵묵부답인 나에겐 신경 쓰지 않고 율 인형은 손가락을 튕겼다.
자, 그럼 너희가 달성한 점수를 보자고.
따악.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 상자에서 직사각형의 홀로그램이 출현했다.
슬롯머신이 돌아가듯 홀로그램 화면에서 맹렬히 숫자가 회전하고 있었고, 그것이 천천히 속도를 줄여가며 점차 일정 숫자를 맞춰갔다.
우리는 그 숫자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이윽고 돌아가던 숫자는 완전히 멈추고, 내 이름과 함께 순위가 나타났다.
『플레이어: 신요현』
『스코어: 10579점 1위』
“1위?”
눈앞에 점수를 믿을 수 없어 그렇게 되물었다.
1위라는 자리에 집착한 건 아니지만, 평생 어디 가서 받아 본 적 없는 숫자를 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가장 성실히 몬스터를 잡고 다닌 게 너희들이라는 거지. 특히 암글라드를 쓰러뜨린 게 결정적이었네. 그놈은 혼자서 2000점의 점수를 가지고 있거든. 반대로, 너희처럼 몬스터에게 도전하지 않고 플레이어에게서 티켓을 빼앗는 데 급급한 녀석들은 점수가 낮아. 참 아이러니하지? 현실에선 정직하게 살아봤자 보답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한데 여기선 오히려 득을 보다니.
율 인형은 짜리몽땅한 몸에 거의 있지도 않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뭐, 그것 또한 게임의 묘미 아니겠어? 고난과 보상의 반복. 자식에게 게임을 금지시키면서 고난을 주는 것밖에 모르는 몬스터 페어런츠도 좀 배워야 하는데 말이야.
“갑자기 몬스터 페어런츠 얘긴 왜 나와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오서연이 의문을 표해왔다.
그야 그런 녀석들이 게임 개발자의 숙적이니까.
돌아온 건 율치곤 지극히 상식적인 발언이었다.
아무튼 주의를 환기시킨 율 인형은 홀로그램을 몇 번 두드린 뒤 말하였다.
1위 상품은……. 축해해. 스코어 점수만큼 환전이야. 한우 스테이크는 원 없이 먹을 수 있겠는걸.
“보상이 돈이야?”
마침 잘 된 일 아니야? 멍멍이들이 집 부순 걸로 받은 보험금도 다 떨어졌잖아.
그거야 맞는 말이긴 하다만, 그래도 솔직히 게이머로서 더 좋은 아이템 보상에 끌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신화급 아이템 하나 정돈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는 사이 율 인형은 홀로그램이 떠올랐던 상자를 덮었다.
그럼 질식사 조심하라고.
“……질식사?”
불길한 소리에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고 되물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율 인형은 닫았던 상자를 활짝 열었다.
거기에서 쏟아져 나온 건 황금빛 격류였다.
갑작스러운 말이지만 금이라는 물질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무거운 광물이다.
한손 안에 쏙 들어올 정도의 금괴 하나가 1kg에 달한다고 하니 말 다한 거다.
그런데 상자에서 그런 금으로 된 동전이 쏟아져 나왔다.
촤르르르르륵!!!!!
“크허억!?!”
순식간에 내 몸을 뒤덮어 넘어뜨리고도 멈추지 않는 황금물결이 어마어마한 무게로 나를 짓누른다.
온몸에 압력이 가해지며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점수 1점당 10개의 금화로 치고, 총 십만오천칠백구십 개의 금화로 환전 완료. 순식간에 부자가 됐네. 기쁘지?
‘그전에 깔려 죽겠다, 미친 새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
율에게 쌍욕을 박아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몸을 짓누르는 압력 때문에 목소리조차 나오지 못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