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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101화 (101/173)

〈 101화 〉 리벤지 ­ 3

* * *

레반은 예의 교각로 밑으로 향했다. 레아가 있는 곳이었다.

자신의 성장을 확인하려면 전투만 한 게 없었다.

그러나 레테라와 싸우며 확인하기엔 두 사람 다 요현과 떨어질 수 없었고, 그렇다고 집 근처에서 싸우기엔 그의 수면을 방해하게 될 게 뻔했다.

그렇기에 집과 떨어져서 그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으며, 거침없이 싸울 만한 상대를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다시 방문한 교각로 밑에서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레아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레반은 그녀가 보이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두두두!! 쿵쿵쿵!!

강 건너편에선 박살 난 다리 기둥 보수 공사가 한창이었다.

저곳은 지난번 레반이 레아와 싸우다 박살냈던 곳이었다.

“공사 소음 때문에 자리를 옮겼나 보군.”

싸우기보다 먼저 레아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레반은 개의치 않았다.

그녀를 찾는 건 쉬운 일이다.

언제나 요현의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 딴에는 먹이를 노리는 늑대처럼 배회하는 거겠지만, 옆에서 보기엔 가출한 녀석이 집안이 신경 쓰여 주변에 얼쩡거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분명 이번에도 요현의 거처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장소에 있을 것이다.

레반은 잠시 턱에 손을 얹고 생각에 잠겼다.

‘내가 만약 그 여자라면…….’

자신이 요현에게 반항하며 가출한다면 어디로 자리를 잡을까 생각해 보았다.

예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요현에게 반항한다니,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러나 오늘 겪었던 일로 조금이나마 레아를 이해하게 된 레반이다.

이벤트 세계에서, 요현이 귀중한 탈출 티켓을 넘겨주어 위험을 짊어지려 했을 때 레반이나 레테라나 정말로 그에게 화가 나고 반항하려 했었다.

그에게 반항을 한다고 해서 충정이 흔들리는 건 아니다.

오히려 강한 충정이 있기에, 반항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를 위한 선택을 하려 한 것이다.

뭐,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자기가 본캐라며 뻗대는 건 여전히 패주고 싶을 만큼 짜증나긴 하지만 말이다.

“……역시 거기겠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것, 비나 바람을 피할 만한 공간이 있을 것, 그리고 요현의 동태를 잘 파악할 수 있을 만한 곳은 한 군데밖에 없다.

목적지를 정한 레반은 지체 없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산이 많은 땅답게 도시 풍경 안에 산이 끼어 있는 건 그리 특별할 것도 아니었다.

요현이 사는 주택가에서 남동쪽으로 2km가량 떨어진 곳에는 산이 하나 존재한다.

높이 200m도 안 되는 작고 초라한 산으로 잘 찾는 사람은 없다.

별로 볼만한 경치도 없을뿐더러, 남쪽으로 800m만 더 가면 더 크고 볼거리도 많은 산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산에 있는 모자(?子) 바위라는 큰 바위 한 쌍이 존재한다.

큰 바위와 작은 바위가 ㅅ자 모양으로 포개어져 있는 형태로, 그 사이의 틈은 동굴처럼 되어 있어 비바람을 피하기 좋다.,

하필 절벽 위에 세워져 있어 찾는 사람은 없지만, 위에서라면 나무에 의해 시선을 가리지 않고 요현의 집을 바라볼 수 있었다.

거리 때문에 좁쌀 하나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더라도 캐릭터에게 그 정도의 거리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빙고. 역시 여기 있었군.”

모자 바위를 찾아온 레반은 그 꼭대기에 누워 있는 조그마한 인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레아였다.

원체 조신함과는 거리가 먼 그녀였지만, 거친 바위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레아의 모습은 마치 탕아를 연상시켰다.

“…….”

레반이 나타났지만 레아는 별 반응이 없었다.

자고 있는 건 아니었다.

분명 깨어있는 자의 기척이다.

애초에 야성적인 감이 발달한 그녀가 이 정도로 접근했는데 세상모르고 잘 리도 없었다. 일부러 무시하고 있는 거라 봐야겠지.

바위 밑으로 다가온 레반이 고개를 올려보았다.

레반이 있는 위치에선 레아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하늘을 향하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무척 언짢게 구겨져 있다는 게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이봐. 이렇게 왔는데 아는 척이라도 좀 하지 그래?”

“…….”

레아는 대답 대신 주먹을 하늘로 뻗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위 위로 내리쳤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주먹을 내리친 자리로부터 파문이 퍼져나가듯 바위의 한쪽이 무너져 내렸다.

사람 머리만한 파편들이 바로 아래에 있던 레반의 머리 위로 쏟아진다.

“엇차.”

우르르르!!!

레반은 가볍게 발을 빼내는 것으로 돌 세례로부터 벗어났다.

자신의 몸집보다 더 높이 쌓인 바위의 잔해를 바라본 레반은 바위가 부서진 덕분에 더 자세히 보이는 레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왜 이리 짜증이야? 그날이냐?”

“한 번 더 그 주둥아리 놀리면 네 혀를 뽑아 멧돼지 먹이로 줘버리겠어.”

“넌 아직 이쪽의 상식이 부족하구나. 야생동물에게 함부로 먹이 주면 안 된다고.”

처음 이곳에 올 당시 압도적으로 상식이 부족하던 레반이 어느덧 상식을 논하고 있었다.

경고에도 멈추지 않는 그의 깐족거림에 레아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드디어 바위에 눕혔던 몸을 일으키며 레반의 예상대로 언짢음이 가득한 표정을 드러내었다.

“뭐 하러 왔냐? 죽여 달라고?”

“아니, 리벤지전(戰)을 하러 왔다.”

“리벤지? 웃기시네. 지난번에 변변찮은 유효타 한 번 먹이지 못하고 꼬리 만 녀석이.”

레아의 비웃음에 레반은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어그로 하난 특출 난 녀석이다.

하지만 이번엔 레반도 가만히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글쎄. 작정하고 싸우지 않아서 안도한 건 너 아니야? 여차하면 무기를 쓸 수 있는 나와 빈손인 너를 비교해보라고.”

“무장을 해야만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걸로 자위질이냐? 불쌍하네. 이걸 뭐라고 하지? 정신승리?”

“신사적인 예의라는 거지. 야생소녀의 삶을 만끽하는 네 년과 달리 난 형님에게 어엿한 문명인으로서 성장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있거든. 형님의 뜻을 존중하는 한 사람으로서 제 몸을 지킬 수단도 없어 속으로 벌벌 떠는 레이디를 겁박하는 건 좀 못할 짓이지. 안 그래?”

그 능글맞은 태도에 이번엔 레아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딴 건 몰라도 요현과의 관계를 내세워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듯 말하는 레반의 모습이 무척이나 거슬렸다.

‘기껏해야 부캐 주제에’라는 생각이 그녀의 뇌리를 스치고 사라진다.

“네가 무장을 하고 오든 안 하고 오든 상관없어. 너 따위 밟아버리는 건 일도 아니야.”

“그럼 덤벼보든가.”

“소원대로 해주지.”

말 끝나기 무섭게 레아가 행동을 개시했다.

콰직!

단단하기 그지없는 화강암 재질 바위에 레아의 손가락이 푹 들어간다.

스쿠퍼로 아이스크림을 둥글게 말아 퍼 올리듯, 레아의 손가락에 깎여 나간 바위가 무수한 돌조각이 되어 레반에게로 쏘아졌다.

하나하나가 성인 주먹보다 더 큰 돌조각은 근거리에서 쏘아낸 산탄총보다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레반은 별로 어렵지 않게 날아오는 돌조각들을 쳐내었다.

이런 건 그저 눈속임에 지나지 않았다.

진짜는 그 직후에 날아오는 일격이다.

섬광과 같은 기세로 치고 들어온 레아.

그녀의 발차기가 돌조각을 쳐내느라 미세하게 벌어진 레반의 틈을 파고들었다.

콰아아아아앙!!!

레아의 발차기에 닿으며 레반의 몸이 뒤로 밀려난다.

땅 위에 새겨지는 두 줄기의 고랑이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 10m가량 이어졌다.

가슴을 적중 당한 레반이 넘어지지 않고 버팀으로써 생긴 흔적이었다.

레아는 의외라는 듯 두 눈에 이채를 띄었다.

돌격밖에 모르던 무식한 녀석이 지금 일부나마 충격을 흘려보냈다는 사실을 눈치 챈 것이다.

그 증거로 보통이라면 충격에 밀려 뒤로 날아갔을 터인 레반이 공격을 버티며 가슴을 뭉개 버릴 듯 파고들었던 레아의 발을 두 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후읍!”

짧은 호흡과 함께 레반이 허리를 뒤틀었다.

충격을 분산한 것으로도 모자라 아직 힘이 남아 있는 레아의 발차기를 한쪽 방향으로 유도하기까지 한다.

상대방의 힘을 이용하는 그 모습은 근력캐라기 보단 기량캐의 모습이 강했다.

레아가 보기엔 서툴긴 하지만, 분명하게 드러나는 기량의 흔적은 예상 외였다.

지난번에 만났을 땐 순수 근력캐였기에 놀람은 더 크게 다가왔다.

레반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몸이 딸려가는 걸 막을 타이밍을 놓칠 정도로.

“하앗!!”

레아의 발과 발목을 붙잡은 채 허리를 뒤튼 레반이 그대로 패대기를 치듯 레아의 몸을 통째로 휘둘렀다.

급격히 지상과 머리가 가까워지는 걸 느낀 레아가 두 팔을 교차하며 머리 위로 뻗었다.

콰가악!!!!

원형의 파문이 퍼지며 지반이 크게 주저앉는다.

거기에 레아의 머리가 파묻히는 일은 없었다.

짐승의 손톱처럼 바짝 세운 열 손가락이 바닥에 고정된 채 그녀를 지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그극……!!!

땅에 균열이 퍼져가는 것처럼 레아의 팔에도 힘줄이 뻗어간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모습은 전혀 기괴하게 보이지 않았다.

과하게 비대하기 보단 아름다울 정도로 작고 견고한 근육이 그녀의 팔을 감싸고, 그것이 교차하고 있던 원래대로 되돌린다.

“……!!”

팽이처럼 회전한 레아의 몸.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레반이었지만, 오히려 그 힘에 딸려가는 것을 느꼈다.

손끝에서 일어난 강력한 악력이 팔을 타고 오르고 어깨와 허리를 지나 다리에 다다랐을 때는 레반이 감당하기 힘든 회전력이 된 것이다.

한쪽 발이 레반을 끌어당겼을 땐 이미 한 바퀴 크게 돈 반대편 발이 레반의 측면을 노리고 있었다.

춤을 추는 것 같으면서도 회전을 무기로 삼는 그 모습은 카포에라라는 무술과 닮아 보였다.

물론 타격에서 끝나는 카포에라와는 달리 레아의 움직임은 멀쩡한 사람도 가위처럼 썰어 버릴 듯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파아앙!!

그러나 들리는 건 살을 뭉개는 소리가 아닌 발차기의 위력을 견디지 못한 공기가 터져나가는 소리였다.

그것만으로도 조금 전 공격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알 수 있었지만 맞지 않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레반이 레아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없다는 걸 느끼자마자 붙잡은 그녀의 발목을 놓아버린 거다.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으로 잘만 하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상태였지만, 레반은 그것을 포기하는 걸 망설이지 않았다.

대신 그렇게 자유가 된 몸을 숙이며 자신을 덮치는 반대편 발을 피하고, 그대로 레아와는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며 주먹을 끌어다 모았다.

헛발질로 공격이 빗나간 레아와 레반의 회전이 겹쳐진다.

두 사람의 얼굴이 짧은 시간 교차된 순간을 놓치지 않고 레반이 주먹을 내질렀다.

퍼어어어어억!!!!

몸통에 한 방.

깔끔하기 그지없는 클린 히트였다.

명치를 부술 듯 파고든 주먹에 레아의 몸이 꺾이며 뒤로 날아갔다.

그녀에게 휩쓸린 나무들이 수수깡처럼 부러져 나갔고, 수풀과 나뭇잎들이 하늘로 치솟으며 주변을 어지럽혔다.

“아자!!”

드디어 한 방 제대로 갚아준 레반은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를 질었다.

그동안 안하무인인 레아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자신이 성장했다는 게 확실하게 느껴졌다.

근력과 위력 자체는 이전과 동일하다.

하지만 기량이 성장하니 그저 강력하기만 한 일격을 좀 더 효율적으로 맞힐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타격감이 남아 있는 주먹을 바라보며 기량에 투자하기로 한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콰아아앙!!

박살난 나무의 잔해들을 날려버리며 그 흙먼지 속에서 레아가 몸을 일으켰다.

나무와 부딪치면서 청바지와 후드 자켓이 조금 찢어졌고, 레반의 주먹에 정통으로 맞은 명치 부근은 티가 원형을 찢어져 시퍼렇게 변한 맨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레아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몸에 묻은 먼지를 털며 잔해 속에서 걸어 나왔다.

“공수전환이 빨라졌네.”

“뭐야, 벌써 움직이냐?”

“겨우 복장뼈와 늑골 3대 부러뜨린 것 정도로 김칫국 마시지 마.”

“쳇. 거 더럽게 튼튼하네.”

일반인이었다면 병원에 실려 가야 할 정도의 부상을 그들은 별 거 아닌 상처 정도로 취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미지가 적으면 더욱 공격을 퍼부으면 그만이라는 듯 레반은 가볍게 스탭을 밟았고, 몸에 남은 충격을 해소하듯 이리저리 근육을 풀던 레아는 그 움직임에 주시했네.

“기량이 늘었군. 단 며칠 사이에 이룰 수 있는 성장 폭이 아니야. 레벨 업 한 거냐?”

“네놈이 파업하며 놀고 있는 동안 난 충실히 형님의 캐릭터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중이었거든.”

“럭키 펀치 하나 맞았다고 기고만장 하기는. 여자 손 한 번 닿았다고 발정하는 동정새끼냐?”

“그 럭키 펀치에 맞아버린 건 안 쪽팔리고? 대용품이라고 그렇게 무시했던 녀석에게 크게 한 방 맞고 날아가다니, 나였으면 쪽팔려서 혀 깨물고 뒈졌다, 임마.”

늘어난 건 기량만이 아니었나 보다.

지난번 말로도 몸으로도 밀린 일에 단단히 앙심을 품고 있던 건지, 단단히 준비하고 온 레반은 그녀의 말을 제법 잘 받아치고 있었다.

레아는 한쪽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그로 실력이 많이 늘었구나?”

“오냐. 너 대신 탱커 역할 좀 하느라 어그로 능력 좀 키웠다.”

“내 앞에서 탱커를 운운해? 그 탱킹 능력 좀 시험하려면 좀 쳐맞아야겠네.”

“X 까셔. 내가 네 탱킹 능력을 시험해주마.”

맹수가 적을 향해 으르렁거리는 듯한 대화가 오간다.

그런 맹수들이 벌일 일이라면 앞뒤 신경 안 쓰고 서로를 물어뜯기 위해 달려드는 일뿐이다.

부채꼴 모양으로 흙을 비산시키며 달려든 두 사람의 일격이 교차한다.

콰아아아아아아앙!!!!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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