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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106화 (106/173)

〈 106화 〉 나의 스테이터스 ­ 4

* * *

“흐음…….”

모든 테스트를 마치고, 나는 레반과 레테라가 작성해준 내 스테이터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많이 낮을 것이라고는 예상했다.

두 사람이 보여준 초월적인 능력이 얼마나 상식을 벗어나 있던가.

하지만 그건 당연히 고레벨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도 약했던 시기가 없는 건 아니지 않는가.

아무리 그들과 태생적으로 다른 나라도 하다못해 그 시기의 절반 쯤 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는 더 처참했다.

생명력, 지구력, 체력, 근력이 모조리 1.

그나마 기량은 가망이 있는지 2에서 머물고 있었지만 결국 도긴개긴이다.

단련하는 건 아니지만 적당히 아픈 곳 없이 건강한 성인 남자의 몸이라도, 그들의 기준으로선 오늘내일 할 만큼 허약하기 짝이 없는 모양이다.

“뭐, 결국은 기량이 가장 나에게 맞는 모양이군. 이걸 중심으로 단련하면 되나?”

그 말에 옆에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레테라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로 내질렀고, 반대로 레반은 분하다는 듯 주먹을 땅에 내려찍었다.

전력으로 했다간 큰 흔적과 함께 내가 놀랄 테니 적당히 힘 조절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희비가 교차한 것도 잠시, 레테라는 곧 뭔가 걸리는 게 있는지 표정을 굳혔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내게 말을 걸었다.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오라버니?”

말하기 전에 먼저 허락을 구하는 이 진중한 태도는 영 익숙해지지 않는다.

의견 정도는 쉽게 말해도 불편하지 않지만, 정작 본인들이 불편한 모양이다.

언젠가 익숙해지겠다고 생각하며 그녀의 말에 답한다.

“괜찮아. 뭔데?”

“기량보다 다른 스탯을 우선적으로 키워주시길 바래요.”

“? 다른 스탯이라니, 근력 말이야?”

그 말에 내가 두 눈을 깜빡거리며 반문했다.

그녀라면 기쁜 마음으로 내 기량을 단련시킬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레반도 놀람과 살짝 기대감을 가지고 레테라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보기엔 근력은 오라버니에게 쥐뿔만큼도 쓸모없어요.”

“아니, 이 년이?”

기대감을 배신당하자 레반이 울컥하며 폭발할 듯한 기색을 보였지만 레테라는 무시하고 말을 이어갔다.

“처음엔 오라버니께 기량을 중심으로 가르쳐드리고 싶었지만, 다른 스탯을 확인해보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저희가 예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낮았거든요. 나중이라면 모를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기량보다는 다른 스탯을 단련하시길 원해요.”

당장 레테라에게 한 방 날리려는 기색의 레반도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라는 듯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손가락을 턱 부근을 두드리며 고민했다.

그들이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면 따라서 나쁠 것 없을 것이다.

애초에 내가 단련하려는 이유도 위급상황 때 레반과 레테라의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서가 아닌가.

근력이나 기량보단 생명력, 지구력, 체력 등을 올리는 게 더 유용하다면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 좋아. 근데 다른 스탯은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을까?”

“그거야 그 스탯에 해당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단련하면 되겠죠. 이쪽 세상엔 레벨 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거 같으니 직접 신체를 혹사시켜야 해요.”

“예를 들면?”

“예를 들면…….”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던 레반과 레테라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더니 속닥거리며 의견을 나눈다.

역시 그것밖에 없나 하고 진지하게 눈빛을 교환하던 그들은 직후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가령 생명력을 단련하고자 한다면 중상 상태를 오래 유지하면 됩니다.”

“뭐?”

레반의 말에 나는 이게 뭔소린고 하며 바라보았다.

레테라가 설명을 덧붙인다.

“칼에 베여 내장이 모조리 흘러나와도 악착 같이 버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겨우 팔 하나 잘렸다고 쇼크로 죽는 인간이 있잖아요?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의 상처에 익숙해진다는 건 그만큼 생명을 유지하는 힘이 강해진다는 것. 오라버니의 경우에는 일단 가볍게 배때지에 칼을 쑤셔 박은 채 죽지 않고 버티는 것으로 수련할 수 있겠죠.”

“……다른 방법은 없어?”

포션도 없는 상황에서 병원에 실려 갈만한 중상은 겪기 싫었다.

아니, 애당초 배때지에 칼빵이라는 상황 자체가 격렬한 거부감이 일어난다.

흉측한 날붙이를 복부에 처박는 행위를 이놈들은 뭔 한의원에서 침 맞는 것 같이 가벼운 말투로 말한단 말인가.

“생명력 단련이 꺼려진다면 지구력 단련은 어떻습니까? 방법은 간단합니다. 지구력 테스트 때와 마찬가지로 전력질주만 반복하면 끝입니다. 처음은 50km 완주를 목표로 해봅시다, 형님!”

정식 마라톤이 40km가량인데 50km를 전력질주로?

하얗게 불태운 뒤 작렬이 산화하라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체력 단련도 괜찮아요. 몸에 무거운 추를 매단 뒤 수심 30m의 바다 밑바닥에서 상어 잡는다면 절로 단련될 거예요.”

만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비현실적인 수련법에 나는 머리가 아파왔다.

이놈들 아까 내 몸이 너무 허약하다고 걱정하지 않았던가?

설마 이게 허약한 나를 위한 초보자 맞춤 코스라고?

“자, 잠깐잠깐. 늬들, 처음엔 어떤 식으로 내 근력이나 기량을 단련시키려고 했어?”

이쯤 되면 처음 그들에게 맡기려고 했던 스탯들의 수련법마저 걱정되었기에 물어보았다.

“그거야 물론 형님에게 맞는 레벨의 수련법을 생각했습니다.”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레반의 모습이 오히려 더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일단 한 번 들어보자는 기분으로 잠자코 귀 기울이고 있으려니 레반의 말이 이어졌다.

“근력의 근원은 당연히 근육! 우선 온 몸을 비틀어서 근섬유를 모조리 끊어내는 것입니다! 근섬유가 회복하면서 전보다 더 강하고 탄력 있게 바뀔 겁니다! 이걸 200번 정도만 반복하면 형님도 몰라보게 강해질 수 있을 겁니다!”

제정신인가 의심되는 발언에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근섬유를 끊어내는 방법이 뭔지 모르겠지만, 지금 레반이 취하고 있는 빨래 짜는 동작과 관련이 없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때, 레테라가 한심하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오라버니. 저런 무식한의 말은 듣지 마세요. 오라버니의 몸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기력만 낭비할 거예요.”

그나마 레테라가 정상적인 말을 하려는 모양이다.

“그런 것보단 오라버니에 체질부터 바꿔야겠죠. 저희 세계와 이쪽 세계의 인간이 왜 이리 힘에서 차이가 날까 고민해봤는데 역시 환경에 문제에요. 이런 문명사회보다는 맹수들이 도사린 정글 속으로 들어가 야생의 감과 거기에 맞게 몸을 단련시키는 편이 더 나을 거예요. 기간은 대략 6년으로 잡는 편이…….”

“둘 다 대가리 박아.”

더는 들어줄 수가 없어서 강제로 머리 박게 하는 것으로 그들의 미친 소리를 끊어낸다.

그나마 정신적인 말을 한다는 거 취소한다. 둘 다 거기서 거기였다.

하나는 날 직접 마개조 시키려 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날 타잔으로 만들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나 혹시 방금 알게 모르게 사망 플래그를 피해간 게 아닐까.

등골에 소름이 훑고 지나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역시 사람은 사람에게 단련 받아야겠어.”

자로 잰 듯이 반듯한 자세로 대가리 박기를 실시하고 있는 레반과 레테라를 바라보며 나는 그렇게 결심했다.

***

스테이터스 측정을 마치고, 앞으로 방침을 정한 우리는 귀갓길에 올랐다.

과하게 몸을 움직인 탓에 내 옷차림은 하루 종일 뛰어놀다 온 개구쟁이처럼 엉망이었지만, 다행히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리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있었다.

돈 많은 백수의 이점이 이것일까.

학업이니 직장이니 하는 이유로 사람들이 빠진 주택가의 거리를 걷는 것은 제법 괜찮은 기분이었다.

“그럼 형님,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 나름대로 단련하거나, 아니면 전문가에게 맡겨야지.”

“전문가요?”

“응. 헬스클럽이라고 알아? 전문 트레이너의 도움이라면 기초 체력 정도는 키울 수 있을지도…….”

툭.

그 순간, 정말이지 절묘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타이밍에 그것은 날아왔다.

지상 위를 낮게 날던 그것은 막 걸음을 내딛는 내 발 끝에 부딪치며 여정을 멈췄다.

뭔가 하며 시선을 내려보자 웬 종이비행기 하나가 있었다.

본래는 뻣뻣한 광고지로 접은 것 같지만, 무슨 풍파를 겪어온 것인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마치 어서 펼쳐보라며 종용하듯 딱 내 눈앞에 위치에 내려앉은 종이를 묘한 눈길로 바라본다.

잠시 종이비행기에서 시선을 떼 레반과 레테라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 주변에 종이비행기를 날릴 만한 인물은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 이건 어디서 날아온 거지?

우연히 바람 타고 날아왔다고 하기엔 너무 기묘하게 안착하지 않았는가.

나는 묘한 예감을 가슴에 품으며 종이비행기를 집어보았다.

너덜너덜해진 것 빼곤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없다.

접혀 있던 이음새를 바로 펴며 종이비행기를 원래의 형태로 펼쳐 보았다.

『근육 빵빵한 몸매를 원하십니까?

그렇다고 이곳에 오십시오!

전문 헬스 트레이너들이 당신을 몸짱으로 만들어드립니다!

한 달 무료 체험 가능!

머슴 머슬 헬스클럽!

연재든지 연락하세요!』

……헬스클럽 광고지였다.

비대한 근육을 가진 남자가 몸 자랑 하듯 포즈를 취하고 있는 광고지를 나뿐만 아니라 레반과 레테라 두 사람도 게슴츠레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들도 느낀 것이다.

타이밍이 지나치게 절묘하다는 것을.

내 헬스클럽을 언급한 시점에서 날아온 헬스클럽 광고지라고?

마치 누군가 일부러 타이밍을 기다렸다가 건네준 것 같지 않은가.

심지어 광고지에 적힌 헬스클럽의 주소지가 무려 무재시로 되어있다.

무재시.

위드 소프트웨어 본사가 존재하는 지역이자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 쓴 무언가가 거주하고 있는 도시.

“그 녀석인가?”

“그 녀석일 겁니다.”

“그 녀석밖에 없어요.”

우리는 이 광고지가 율이 보낸 것이라 확신했다.

녀석이 있는 무재시와 이곳 성월시까지의 거리는 도저히 종이비행기가 바람 타고 닿을 거라 볼 수 없는 거리였지만, 그놈이라면 가능하고도 남다.

하지만 이건 무슨 의미인 거지?

운동할만한 장소 추천해 준 건가? 그놈이?

왜?

“함정일 겁니다. 딴 건 몰라도 그 자식이 우리가 고생하는 꼴 보며 즐기는 개자식이라는 건 확실하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레테라가 다른 관점에서 의견을 꺼냈다.

“반대로 함정이 아닐지 모르지.”

“뭐라고?”

“생각해봐. 그 작자 행동의 기본 동기가 뭐였지?”

레테라가 레반을 향해 묻는 질문이었지만 답은 광고지를 들여다보고 있던 내 입에서 나왔다.

“재미.”

그렇다.

게임 캐릭터가 현실로 나온 사태도, 그러한 경험을 한 플레이어를 이곳저곳에 방치하는 것도 순전히 율의 재미를 위해서였다.

그는 세상을 하나의 오락거리로 보고 있다.

내가 한때 레반과 레테라가 있던 세상을 오락거리로써 즐겼던 것처럼.

“그러니까 이 광고지대로 움직이면 그 작자가 재미있어할 만한 일이 일어난다는 겁니까? 그것이 우리에게 득이 되는지 실이 되는지는 아직 미지수고.”

레반이 조금은 납득이 가는 듯 말하였다.

고생 시켜 놓고 즐기는 것과 즐기기 위해 고생시키는 건 다른 일이다.

즐길 수단이 반드시 고생으로 한정되었다고 볼 수 없지 않는가.

아무리 질 나쁜 새디스트라도 같은 사람을 같은 방법으로 골려 먹였다간 가장 먼저 질리는 것은 본인일 것이다.

“살짝 희망을 줬다가 통수 치는 건 녀석이 자주 쓰는 패턴이니 방심할 순 없지만, 아직까지는 이게 어떤 의미일지는 모른다는 거지.”

나는 광고지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햇빛에도 비추어보며 말했다.

생각해보자.

율이 재미있어할 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그 녀석이 애초에 왜 이런 웃기는 게임을 만들었더라?

캐릭터를 가지고 플레이어가 마음대로 살아가는 꼴을 보고 싶다고 했지만 진짜 의도는 그게 아닐 것이다.

녀석이 가장 기대하고 있을 만한 경우라면…… 역시 그거려나.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버튼을 빠르게 두드리며 문자를 치고 전송 버튼을 누른다.

「플레이어냐?」

송신 번호는 서연 씨의 휴대폰이었지만 그곳으로 보냈다.

율의 연락처를 모를뿐더러 있을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녀석에게 전해질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다.

그리고 문자를 보낸 지 1초도 지나지 않아 답장이 돌아왔다.

문자의 내용은 역시 서연 씨의 말투가 아니었다.

「정답.」

짧고 간결한 한 마디.

그거면 충분했다.

“다음 목표 정했다.”

나는 여전히 근육질 아저씨가 부담스럽게 근육을 뽐내고 있는 광고지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호랑이를 잡고 싶어 하는 자에게 친히 호랑이굴을 짚어줬는데 한 번 들어가 줘야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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