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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107화 (107/173)

〈 107화 〉 Hells? Health! ­ 1

* * *

무재시.

율이 있는 그 도시는 한 면에 서해와 맞닿은 신월시와 내륙 쪽에 있는 성월시 사이에 낀 작은 도시다.

이곳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조용한 도시라고 할 수 있었다.

이곳만의 특색이 없다고 할까.

유명한 관광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건물이 세워져 있긴 하지만 숨이 막힐 정도로 밀집하지 않았으며, 유동인구조차 많은 게 아니라서 그 흔한 러시아워조차 없었다.

누군가는 도시인 척 하는 시골 마을이라고 칭할 정도였다.

지루한 걸 싫어하는 젊은 층은 이곳을 잘 찾지 않았으며, 그러다 보니 번화가도 그리 발달하지 않아 도시 특유의 조용한 분위기는 오래도록 이어졌다.

이곳의 주민들은 그런 분위기에 익숙한 모양이다.

출퇴근 때처럼 거리에 사람들이 많아지는 시간대가 되면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얼굴은 하나 같이 생기가 감돌았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현대인의 음울한 인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인간 군상이었다.

그들에겐 여유가 있었다.

도시에 감도는 조용함과 느긋함을 즐기는 듯한 여유였다.

그 모습은 마치 그릇이 큰 사람을 보는 것 같아 동경심이 드는가 하면, 어딘가 일그러진 듯한 느낌이어서 약간의 거부감 또한 일어난다.

이 도시 정중에 빌딩 숲에 율의 회사는 몰래 숨어 있었다.

무재시를 방문한 김에 그곳에 들려보았지만 역시 회사 문은 방문자를 거부하듯 굳게 닫혀 있었다.

율이 변덕을 부리지 않는 이상 녀석과 얼굴을 마주하긴 힘든 모양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네. 이런 개성 없는 도시에 핵폭탄급 개성을 가진 녀석이 몰래 숨어 있다니 말이야.’

율은 만나지 못했지만, 위드 소프트웨어를 방문한 김에 건너편 스카이피아 카페에서 커피를 사 마셨다.

노점장이 끓여주는 커피는 여전히 맛있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천상에 맛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자꾸만 손이 가게 하는 신기한 맛이었다.

같이 온 레반과 레테라도 마음에 드는지 내 옆에서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점장이 귀머거리만 아니었어도 만드는 법을 한 번 배워보고 싶은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우리는 원래 목적이었던 헬스클럽을 찾았다.

‘머슴 머슬 클럽’이라는 미묘한 네이밍의 헬스클럽은 무재시 동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눈앞에 건물을 바라보았다.

3층 건물 전체가 우리가 방문할 헬스클럽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컸다.

건물 꼭대기에 내걸린 간판에는 예의 그 미묘한 헬스클럽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이름 옆에는 옛날 머슴 차림의 남자가 우람한 근육을 뽐내며 장작을 패고 있었다.

말 그대로 머슴의 머슬인가…….

별로 와 닿지 않은 언어유희고, 제작사의 센스가 떨어진다고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펄럭.

나는 접힌 흔적이 남아 있는 너덜너덜한 광고지를 꺼내 보았다.

분명 이곳이 맞았다.

광고지에 적힌 대로 무료체험 기간은 한 달.

친구, 혹은 가족은 두 명까지 동반 가능.

이곳의 신분증이 없는 레반과 레테라였지만, 내 동행이라는 걸 확인만 한다면 신분증 확인 없이 이곳 시설을 이용 가능하다고 한다.

신체 단련의 목적은 있지만 굳이 이웃도시로, 그리고 일반인 기준의 단련 따윈 소용없는 초인 두 명을 데리고 온 이유는 따로 있다.

“뭔가 느껴져?”

“아뇨.”

“특별히 느껴지는 기척은 없습니다. 적어도 캐릭터는 주변에 없다고 봐야겠지요.”

율은 플레이어끼리 만나게 되는 상황을 원한다.

일부러 싸우게 한다기보다는, 거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구경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 단서로써 제공한 게 이 광고지였고, 이 장소였다.

아직 플레이어가 누군지 모르고, 위험한지 아닌지 판단할 근거도 없었지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레반과 레테라를 데리고 왔다.

“뭐, 마침 딱 3시고, 들어가 볼까?”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내가 말했다.

전화로 미리 얘기했던 방문 시간이다.

레반과 레테라의 외모로는 눈에 띌 것이 분명했기에 사전에 변장을 마치고 왔다.

미용실에서 구입한 가발, 컬러렌즈, 마스크로 눈에 띄는 이목구비를 숨겨서 자세히 보지 않는 한 외모가 특이하다는 걸 알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변장한 두 사람과 함께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카운터에서 적당한 인적사항을 적고, 직원이 말하는 대로 안쪽으로 들어간다.

짧은 복도 끝에는 트레이닝 룸으로 이어지는 문이 있었다.

‘자, 과연 이곳엔 무엇이 있을 것인가…….’

이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손안이 긴장으로 축축해지는 걸 느낀다.

그래도 여기까지 제법 험난한 길을 걸어왔는데 이 정도에서 위축될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않도록 각오하며 나는 문손잡이를 잡고 밀었다.

그 너머에 있는 건…….

“근육~~~!!!”

­근육~~~!!!!

쾅!

나는 반쯤 열었던 문을 거칠게 닫았다.

내가 무엇을 본 건지 알 수 없었다.

무시무시한 무언가의 편린을 목격하기라도 한 것처럼 손잡이를 잡고 있던 팔이 가늘게 떨려왔다.

“형님!”

“무슨 일인가요!?”

걱정스러워하는 레반과 레테라의 목소리를 뒤로하며 나는 내가 본 것을 이해하려 애썼다.

내가 본 것은 살색 덩어리의 물결.

근육.

틀림없었다.

내가 본 것은 분명 근육이었다.

아주 잘 단련되어 있어 조금만 더 애쓰면 악귀의 형상을 완성할 수 있을 거 같은 등근육과 그 너머로 수많은 작은 근육들을 목격했다.

내가 생각해도 뭘 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우선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이어서 뒤에 두 사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이번엔 아주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보았다.

아까 본 게 꿈은 아니었던 건지, 부담스럽게 꿈틀대는 근육이 내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근!!! 육!!!”

­근!!! 육!!!

“근~~~육!!!”

­근~~~육!!!

“좋습니다, 여러분! 오늘 참 멋진 근육이십니다!”

가장 앞에 선 남자가 근육을 강조하는 포즈를 취하고 외치면, 그를 마주 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일제히 복창하며 그 동작을 따라 한다.

웃통과 바지를 제외하고 전부 벗어 던진 열댓 명 정도의 사람들이 일제히 과도한 근육을 뽐내는, 흡사 광신도의 비밀집회 현장 같은 광경이었다.

뭐지, 이건?

내가 모르는 곳에서 신종 체조가 유행하기라도 했나?

아니면 근육의 신을 숭배하는 사이비 종교 집회에 잘못 찾아온 건가?

다양한 헬스 장비가 구비된 넓은 트레이닝 룸이었건만, 그것이 비좁게 느껴질 정도로 공간을 차지하는 근밀도의 비율을 컸다.

“자, 그럼 오늘도 언제나 안전에 유의하며 아름다운 근육을 단련하시길 바랍니다!”

­예엡!

트레이너인 듯한 남자가 외치자 그를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외쳤다.

진짜로 준비 체조였나?

그럼 저 사람들이 다 이 헬스클럽 회원이야?

그런데 그 구성원이 심상치 않았다.

대부분 몸 좋은 남성들인 줄 알았더니, 머리가 희끗한 노인이 있는가 하면, 단순히 가슴이 큰 건지 대흉근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건지 알 수 없는 여성도 있었고, 심지어 키가 내 가슴부근밖에 오지 않는 어린애도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전부 근육이 우람하다는 것.

그런데 어린애까지 저렇게 근육질이어도 되는 거야? 키 안 자란다고 하던데.

“……뭐냐, 이 근육 지옥은.”

출입문에서 들어오지도 그렇다고 나가지도 못한 채 나가 중얼거렸다.

여길 근육이고, 저길 봐도 근육이다.

사방이 전부 근육투성이여서 멀미가 일어날 지경이었다.

나는 그냥 발걸음을 돌려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

“아, 오늘부터 체험하러 오신다던 분들이시군요.”

조금 전까지 정체불명의 근육 집단 앞에 서서 그들을 선도하고 있던 남자가 우리를 발견하며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다가왔다.

“저기…… 방금 그 정체불명의 의식 같은 건 뭐죠?”

“보셨습니까? 매일 오후 3시마다 모여서 하는 저희만의 몸풀기입니다.”

“저 사람들도 회원인가요?”

“네. ‘근육이 전부다!’라는 저의 사상에 공감하여 모여든 단골 회원들로, 편의상 ‘머슬 피프틴(15)’이라고 부릅니다.”

“뭔가요, 그 게임 중간보스로 쓰다 버릴 듯한 이름은?”

간판명을 보면서 느꼈던 미묘한 네이밍 센스의 주인이 누구인지 짐작이 가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무튼 만나서 반갑습니다. 전 이 헬스클럽에서 트레이너를 맡고 있는 안범석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트레이너는 굳은살이 잔뜩 박힌 손을 내밀었다.

꽤 키가 큰 사람이었다.

키가 175인 내가 이렇게 올려다볼 정도면 대략 190쯤 되지 않을까.

짧지만 빳빳하게 세워진 스포츠형 헤어과 굵은 턱선. 그리고 비대한 근육과 그에 따라 발달된 넓은 어깨가 고릴라 같은 인상을 풍겼다.

“……신요현입니다.”

나는 눈앞으로 내밀어진 우악스런 손을 마주 잡았다.

으득! 으득! 으득!

아파아파아파아파!

이 남자, 고릴라처럼 생긴 외형에 어울리고 싶은 건지 악력도 장난이 아니었다.

손아귀가 빨개지는 걸 너머 새파래지는 게 아닐까 하는 악력을 견디고 나서야 고범석은 손을 풀었다.

그러고는 옆으로 걸음을 옮기며 레반에게도 악수를 청했다.

레반은 어딘가 시큰둥한 모습으로 손을 내밀었다.

“레ㅂ……이 아니라 이만입니다.”

언젠가 내가 지어주었던 현대식 이름으로 자신을 밝히며 레반은 안범석과 손을 맞잡았다.

“……흐음?”

그러자 레반은 묘하다는 듯 눈에 이채를 띄웠고, 안범석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오! 이만 씨는 악력이 아주 세시군요! 팔뚝의 근육도 심상치 않는데, 어디서 본격적으로 단련하고 오셨나 봅니다?”

“으음…… 네. 뭐 그렇죠.”

레반은 적당히 대답했고, 상대가 그리 대화하고 싶어 하지 않다는 걸 느꼈는지 안범석은 레테라에게로 옮겨갔다.

“이태나예요.”

역시나 전에 지어준 이름이었다. 그녀도 안범석과 악수를 나누었다.

이번 경우는 레테라가 절묘하게 힘 조절을 한 덕분인지 안범석은 그녀의 강함을 눈치 채지 못했다.

대신 레테라가 레반이 보였던 것처럼 표정에 이채를 띄운다. 뭔가 특이한 걸 발견한 것 같았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안범석은 우리 세 사람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럼 첫날 체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처음이고 하니 헬스 기구들을 한 번 체험해보고 싶어요.”

“그렇군요.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그건 괜찮을 것 같네요.”

“그럼 근처에서 다른 회원들을 도와주고 있을 테니, 도움이 필요하거나 궁금한 게 생긴다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트레이닝복으로 환복하실 거면 저쪽 탈의실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안범석은 입구 근처에 있는 또 다른 문을 가리켰다.

남녀로 나뉜 탈의실의 문이었다.

안쪽에는 보안을 위해 열쇠 달린 사물함이 구비되어 있었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샤워실까지 있다고 한다.

간단한 설명을 마치고 안범석은 다른 회원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멀어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레반과 레테라는 저마다 입술을 달싹이며 중얼거렸다.

“근력 5.”

“기량 3.”

“……!”

그들이 중얼거린 소리를 들은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 번 내 스테이터스를 측정함으로써 적당한 기준점이 생긴 탓일까?

레반과 레테라는 한 번의 악수만으로 상대방의 능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방금 그거 안범석 씨 얘기야?”

“네. 지금껏 만난 인간 중 제일 센 편입니다.”

“그냥 근육만 단련한 것치곤 기량도 제법 높네요. 뭔가 다른 단련도 하는 걸까요?”

제일 세거나 높다고 해도 일반인 기준이었다.

하지만 내가 겨우 1,2 사이를 오간다는 걸 생각하면 저 수치는 대단한 거다.

근력 하나만을 보더라도 5배라니, 헬스에 미치면 저 경지까지 갈 수 있는 건가.

그 미쳤을 때의 대가가 자신의 근육을 뽐내며 근육근육 노래를 부르는 거라면 별로 닮고 싶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럼 오라버니, 이제부터 어찌할 건가요?”

탈의실에서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뒤, 레테라가 물어온 말이었다.

나는 주변을 힐끔 거리다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

“당연히 정보 수집이지. 흩어져서 이곳 회원들에 대해 알아내 보자. 깊게 알아낼 필요는 없어. 그 사람이 예전에 SoR 게임을 즐긴 적이 있는가 없는가면 충분해.”

나는 그들에게 고개를 가까이하며 강조하듯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알겠지? 절대 수상하게 보이면 안 돼. 일반인 척하며 다른 회원들과 말문을 트는 거야.”

“알겠습니다. 그럼 전 아령을 하며 저쪽에 접근해보겠습니다.”

레반은 한쪽에서 아령을 들고 있는 근육질 노인네를 가리키며 말했다.

덤벨처럼 무게판을 끼운 형식의 아령이었다.

덕지덕지 붙어 있는 두꺼운 판을 보니 무게가 얼마인지 짐작하기도 힘든데 노인은 거뜬히 들고 있었다.

“전 런닝머신에서 뛰며 저 여성에게 말을 걸어볼게요.”

마찬가지로 레테라는 런닝머신 위에서 맹렬히 달리고 있는 근육질 여성을 가리켰다.

일반적인 체형의 사람이 근육질인 사람보다 적으니 내가 웬 이상한 나라에 왔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꼭 성과를 가져오겠다는 듯 비장한 표정과 함께 자리를 뜨는 레반과 레테라를 보며 나 또한 운동 겸 정보 수집을 위해 움직이려 하였다.

레반이 내 시선을 잡아끌기 전까지는 말이다.

“……레반?”

“네, 형님.”

“너 지금 뭐하냐?”

“아령을 들고 있습니다만?”

레반은 노인의 것처럼 무게판을 양쪽에 끼운 쇠봉을 한 손으로 들고 있었다.

단지 노인과 다른 점이, 레반이 들고 있는 쇠봉은 훨씬 길고, 무게판 또한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사실이었다.

“그건 바벨(Barbell)이야, 이 멍청아!!”

레반은 100kg는 족히 나갈 듯한 바벨을 아령 들 듯 가볍게 들고 있었다.

그저 모양새만 보고 아령이나 바벨이나 같은 물건인 줄로만 안 것이다!

“오오! 저렇게 거대한 바벨을 한 손으로 가볍게 들다니……!!”

“저 팔뚝의 근육을 봐! 처음 봤을 땐 눈치 못 챘던 강철 같은 근육이 아름다울 만큼 견고하게 두드려지고 있어!”

“성자다! 근육의 성자가 강림하셨어!”

머슬 피프틴이 레반의 기행을 바라보며 신의 강림을 목도한 것마냥 무릎을 꿇고 그를 우러러보았다.

레반에게 쏟아지는 엄청난 관심을 보며, 나는 일반인인 척 한다는 당초 계획이 완전히 물 건너갔음을 느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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