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108화 (108/173)

〈 108화 〉 Hells? Health! ­ 2

* * *

욱씬! 욱씬!

온몸이 이 아프다.

팔을 1cm만 움직여도 그곳에 근육들이 땡깡부리는 철부지 어린애처럼 꽥꽥 비명을 질러대었다.

“하이고, 삭신이야…….”

노인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며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헬스클럽에 다닌 오늘로 3일째.

내 육체는 갑작스런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듯 연일 근육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열기와 땀을 식히고 있으려니 물통 하나가 내밀어졌다.

물통을 잡은 손을 따라가 보니 레테라의 얼굴이 보였다.

“수분 보충 하면서 하세요.”

“고마워.”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이며 바로 메마른 목을 적셨다.

그렇게 수분을 섭취하고 난 뒤, 나는 소란스러운 한쪽을 바라보았다.

레반이 운동하고 있는 장소였다.

신체에 부담을 주고 단련한다는 게 운동의 정의라면, 레반에게 헬스시설 이용은 그저 가벼운 체조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레반은 헬스장을 성실이 이용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에게 생긴 팬클럽이었다.

“근육의 성자님께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계신다!”

­근육! 근육! 근육!

덤벨을 아령처럼 써버린 지난날의 무식함을 뒤로하고, 이번엔 올바르게 쓰기 위해 두 손으로 어깨에 걸치며 스쿼트를 하고 있는 레반.

그리고 그 옆에서 5명의 사람들이 레반의 동작을 똑같이 따라하고 있다.

레반이 든 덤벨의 무게까지 똑같이 맞추는 정성까지 보이며 말이다.

그들의 시선에선 어떻게든 레반처럼 멋진 근육을 만들어 보이겠다는 강한 열망이 엿보였다.

다만 레반은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덤벨을 내려놓고, 간단한 윗몸일으키기로 전환했다.

“근육의 성자님께서 복근 단련을 하고 계신다!”

­근육! 근육! 근육!

팬클럽 사람들은 한 줌의 망설임도 없이 레반의 동작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따라 하기 쉬운 동작에 더 신이 났는지 5명이었던 인원이 8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줄어들기커녕 더욱 늘어난 찰거머리들에게 레반은 오만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표정을 짓다가 바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물통을 놓아둔 한쪽으로 걸아가 평범하게 뚜껑을 따고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근육의 성자님께서 물을 마시고 계신다!”

­근육!! 근육!! 근육!! 근육!!

바로 이때야 말로 물을 마실 타이밍이라는 걸 느낀 12명의 사람들이 바로 물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물을 마시는 레반과 다르게 프로틴 덩어리나 다름없는 액체를 몸 안에 흘려보내면서도 그들의 시선은 계속 레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형님!! 이 개자식들 패버려도 되겠습니까!?!”

참다못한 못한 레반이 마시던 물통을 바닥에 내던지며 노기가 서린 음성으로 외쳤다.

허가가 떨어지는 순간 정말 팬클럽 일원들이 바라던 대로 그들의 몸을 한낱 근육 덩어리로 만들어버릴 기세다.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다독였다.

“이해해줘. 다 너처럼 몸짱이 되고 싶어서 그런 거야.”

“아무리 그래도 너무 거슬립니다! 3일 내내 주변에서 파리처럼 얼쩡거리며 근육 만져 봐도 되냐느니, 3대 몇 치냐느니, 평소 운동을 어떻게 하냐느니 끊임없이 물어온단 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운동한다고 했는데?”

“그야 뻔하지 않습니까? 저야 단련이라곤 몬스터 잡아 죽이는 것밖에 하지 않았으니 늬들도 맹수나 잡으면서 단련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쥐뿔도 믿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비결을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면서 제 일거수일투족 전부 감시하면서 따라합니다!”

“뭐, 그야 당연히 못 믿겠지.”

현대사회에 맹수 잡으며 단련이 웬 말이겠냐고.

저들이 못 믿는 것도 이해가 갔다.

아무리 그래도 레반의 모든 동작을 따라하겠다는 것까진 이해 못하겠지만 말이다.

어제는 심지어 평소 생활 패턴까지 파악하겠다면서 미행하던 사람도 있지 않던가.

물론 금세 들켜버렸지만 말이다.

그 미행하던 팬클럽 사람은 오늘 헬스클럽에 나오지 않았다.

내가 말리기보다 먼저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는 레반에 의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

생명에 지장은 없고, 너무 순식간에 당한 터야 당시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병원에 실려 가면서도 근손실을 걱정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질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헬스에 광적으로 미쳐 있으면 사람이 이 정도로 망가지는 걸까?’

운동할 때 일어나는 고통을 이겨내려고 뇌에서 쾌락 물질을 분비한다고 들었는데, 그게 뭔가 오작동이라도 일으키는 걸지도 모른다.

뇌근육이라는 말의 근원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뭐, 헬스광(?)의 경의로움에 대한 생각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본론으로 넘어가 보자.

나는 레반에게 얼굴을 가까이 하며 물었다.

“그래서, 뭔가 알아낸 거 있어?”

“형님 말대로 넌지시 물어보긴 했지만, 절 쫓아다니는 인원 중에 온라인 게임을 하거나 경험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들 말이, 근육 키울 시간도 아까운데 게임할 여유가 어디 있겠냐더군요.”

“흠. 과연 지극히 헬창스러운 답변이군. 알아내느라 수고했어.”

내가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자 레반은 그 동안의 고생이 보답 받았다는 듯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가 그의 뒤편을 가리키며 하는 말의 레반의 표정이 확 구겨졌다.

“그럼, 평소처럼 적당히 어울려줘. 네 팬클럽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조차 궁금한지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잖아.”

“……어우 씨! 저 징그러운 것들!”

레반이 투덜거리며 다시 적당한 운동을 하러 돌아갔다.

이 층에선 대부분 운동기구를 이용했기에 위층을 이용하려 계단을 올라가니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땀과 열기가 감돌던 주변이 순식간에 한산해진다.

레반이 주변 사람들을 모두 이끌고 가버린 틈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레테라가 다가왔다.

“저는 저런 근육 성애자들이 아닌 일반 회원을 중점으로 정보를 모아왔어요.”

“어떻게 됐어?”

“이 헬스클럽에 주기적으로 나오는 회원 50명을 전부 확인했는데, SoR이나 그와 비슷한 게임을 했던 사람은 없었어요. 온라인 게임을 즐긴다는 사람도 몇몇 있었지만 FPS나 AoS장르뿐이었죠. 뭔가 감추려고 하거나 수상한 낌새를 보이는 사람은 없었어요.”

“흐음…….”

결국 레반과 레테라 양쪽 모두 소득 없음에 나는 고민에 빠졌다.

주기적으로 나오는 회원 중에도 없다면, 등록만 해놓고 자주 나오지 않는 회원 중에 플레이어가 있는 걸까?

그들까지 일일이 조사했다간 얼마나 시간을 소모할지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 과정은 꽤나 지루할 것이다.

율은 우리가 이곳으로 왔을 때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거라 보았다. 그리고 플레이어의 존재를 묻는 내 문자에 긍정으로 답했다.

그런 그가 이렇게 지루한 과정만 반복하는 꼴을 보자고 보낸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있나?’

어디선가 단서를 못 보고 지나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헬스클럽에 오고 나서부터 지금까지를 쭉 되짚어 보았지만 특별히 이거다 싶은 건 없었다.

“레테라, 회원들 말고 다른 걸리는 점 없어?”

혹시 그녀라면 뭔가 발견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물어보았다.

레테라는 잠시 고민하더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트레이닝 룸 한쪽 면은 통짜 유리로 되어 있어 바깥의 풍경이 훤히 보였다.

이제 저녁시간대인지라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도시의 풍경을 주시하던 레테라는 어느 한 곳에서 시선을 멈추며 말했다.

“글쎄요……. 여기 외에 걸리는 점이라고 한다면, 이 주변을 알짱거리고 있는 저 여자 정도일까요?”

“응?”

“자기가 본캐라고 뻐기는 주제에 오라버니 말은 죽도록 안 듣는 그 여자 있잖아요.”

레테라가 말하는 게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녀를 따라 창밖으로 시선을 향하며 보이지 않는 금발 머리의 존재를 찾았다.

“레아? 녀석이 여기 있다고?”

“꽤 멀리서 어슬렁거리고 있어요. 지금 대략 저 두 건물 사이쯤에 있는 것 같네요.”

레테라가 가리키는 건 높이 솟아 있는 쌍둥이빌딩이었다.

거리가 멀어서 건물 두께가 내 검지 손가락만할 정도다.

“저 정도의 거리가 보여?”

“보이는 게 아니라 감지한 것에 가까워요. 뭐, 사실 녀석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도 우연이지만요. 저희 수준의 캐릭터가 작정하고 기척을 죽이면 근처에 접근할 때까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거든요.”

“……응? 그런 거야? 그럼 어떻게 찾아낸 건데?”

“저쪽에서 알아서 기척을 냈거든요. 아마 전에 근육 돼지하고 싸운 뒤 찢어진 옷을 입고 다니기 그래서 새로운 옷가게를 습격한 모양이네요.”

나는 조건반사적으로 빠르게 휴대폰을 꺼내 최근 뉴스를 확인했다.

마침 오늘 저녁 뉴스에 올라와 있었다.

옷에서 찢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수수께끼의 괴한이 여성용 옷가게를 습격해 옷 몇 벌을 훔쳐 달아났다는 내용이었다.

뉴스기사를 전부 훑어본 난 한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도대체 늬들은 왜 그러는 건데……. 왜 첫째, 둘째, 셋째 전부 막나가는 것밖에 모르는 거냐고.”

다른 방법 많았잖아.

같은 범죄라도 소매치기로 돈을 얻어서 옷을 샀더라면 훨씬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다.

하다못해 옷 내놓으라고 내 앞에 나타나기만 했어도 순순히 사줬을 텐데.

그런 한탄이 담긴 중얼거림을 들은 레테라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전 그나마 제일 얌전하게 행동하지 않았나요?”

자기가 그나마 나을 거라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이건 글러먹었다.

아마 내 캐릭터 셋 모두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을 테지.

나는 다시 한 번 뉴스를 살펴보았다.

괴한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고, 경찰은 CCTV로 추적하려 했지만 무슨 경우인지 그 일대의 CCTV가 ‘우연히’ 동작불량을 일으키는 바람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하! 우연히라니.

웃음밖에 안 나온다. 참 써먹기 좋은 핑계거리 아닌가.

지난번 레아가 옷가게를 털 때와 다르게 이번엔 벼락도 뭣도 없었다.

그런데 또 그때와 같은 CCTV 불량이라니.

공권력 같이 게임과 하등 상관없는 게 개입해서 어지럽히는 게 싫다고 말한 율답게, 이쪽 세상으로 파고들 여지를 원천 차단하는 게 분명했다.

지 멋대로 세상을 주무르는 듯한 행태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려니, 다시 창밖을 주시하던 레테라가 말해왔다.

“어쩌면 플레이어는 여기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뭐?”

“같은 플레이어를 둔 캐릭터끼리의 싸움도 율이라는 남자에겐 좋은 유희거리일 테니까요. 저 여자가 다시 오라버니의 근처를 알짱거린다는 건 또 다시 오라버니를 노린다는 의미가 분명해요.”

레아가 또 나를 납치하려 한다고?

확실히 가능성 있는 얘기다.

시간이 지나도 변화가 없자 다시 나를 압박하려 할 수 있을 테지.

확실히 율이라면 그것도 즐기고도 남았다.

그렇다면 플레이어는 페이크일까?

하지만 그럼 왜 헬스클럽을 언급할 필요가 있던 거지?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레반이 올라간 위층, 정확히는 3층 지점에서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어이쿠, 발이 미끄러졌네에에에!!!!!!”

쨍그랑!!!

연기성이 다분한 그의 어색한 외침.

그리고 유리 깨지는 소리.

나와 레테라는 동시에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쿠웅!!!

헬스클럽 3층에서 유리를 깨고 떨어진 듯한 레반이 지축을 울리며 착지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위로 깨진 유리조각이 우박처럼 우스스 떨어진다.

바닥 위로 내려온 레반은 나와 눈을 마주쳤다.

척!

그리고 후련한 표정으로 엄지를 내밀었다.

팬클럽에게 시달리던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린 듯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이 불길하여 나는 레테레에게 입을 열었다.

“……레테라.”

“네. 오라버니.”

“그러고 보니 어제 레반이 눈여겨보던 동화책이 있던데, 그거 제목이 뭐였지?”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요.”

즉, 팬클럽 때문에 스트레스를 버티지 못한 레반이 탈출을 시도했다?

그들이 겁을 먹으면 그 자리에서 끝나는 것이고, 끈질기게 레반을 뒤따르려 했다간 떨어질 것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갔다 물에 빠져 죽은 생쥐 떼처럼 말이다.

3층 높이라면 죽지는 않겠지만 분명 병원행은 확정이었다.

팬클럽 회원들을 죽이지 않고 정리할 깔끔한 방법이라는 듯 레반은 방긋 웃어보였고, 나는 그의 대가리를 쪼개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유리조각이 떨어진 레반의 근처엔 사람 그림자처럼 보이는 게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레반을 따라가는 게 단련이라고 믿는 광신도들이 기어코 몸을 날린 것이다.

“미친놈들아, 뭐하는 짓들이야!!”

창에 바짝 달라붙어 외쳐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이미 3층에서 몸을 날린 10여명의 사람들은 바닥 위로 떨어졌고…….

쿠구궁!!!

……전원 큰 무리 없이 바닥에 착지했다.

크게 다칠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광경에 나는 물론이고, 이 상항을 유도한 레반까지 놀랐다.

“후후후……. 우리를 너무 얕보지 마시옵소서, 근육의 성자여.”

바닥에 착지한 근육질 사람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이 멀쩡하게 몸을 일으키며 말하였다.

“우리는 모두 근육 하나만을 바라보며 단련된 몸. 이 정도 높이에서 추락 따윈 일도 아닙니다.”

그를 뒤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몸을 일으키며 자신들이 건재함을 알렸다.

“하, 하하하하…….”

그 모습에 레반은 무심코 웃음을 흘렸다.

화가 난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지만, 귀에 걸릴 듯이 올라간 입꼬리는 그가 호승심에 불타고 있다는 걸 말해주었다.

“……재미있군. 너희들이 보이는 근성에 나까지 피가 끓어오른다.”

덩달한 흥분한 레반이 불끈 쥔 주먹을 하늘로 뻗어 올린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근육맨들을 선도하듯 큰 목소리로 외쳤다.

“어디 갈 때까지 가보자!! 따라와라!! 다음은 5층 높이다!!!”

­근육!!!!

레반이 5층 건물을 찾아 내달리기 시작하자 팬클럽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른다. 그 모습을 유리창 안쪽에서 지켜보고 있던 난 입을 열었다.

“……레테라. 저 새끼들 전부 쥐어 팬 다음 데려와.”

“네, 오라버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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