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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109화 (109/173)

〈 109화 〉 Hells? Health! ­ 3

* * *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헬스 트레이너이자 관리인인 안범석.

그가 목격한 것 처참히 깨져있는 3층 유리창과 머리에 커다란 혹을 단 채 기절해 있는 사람들이었다.

“소란 피워서 죄송합니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에게 나는 고개 숙여서 사죄했다.

이 사태의 주된 원인인 레반도 내 한 손에 머리를 붙들린 채 함께 고개를 숙인다.

“아, 아뇨. 그렇게까지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안범석은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우리의 행동을 말렸다.

그도 머슬 피프틴의 심한 스토킹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아무리 근육에 대한 열망 때문이라지만, 그게 도가 지나친 것 같아 손을 써두려고 할 때 사고가 터진 것이었다.

“유리창 값도 물어주셨고, 크게 다친 사람도 없으니…… 음…….”

말을 잇다 말고 안범석은 뒷말을 삼켰다.

크게 다친 사람이 없다고 하기엔 이미 심각한 부상을 내보이고 있는 인물이 딱 하나 있던 것이다.

그건 다름 아닌 레반이었다.

입술이 찢어지고, 눈가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으며 코에는 피마저 흘렀는지 휴지 두 개가 구멍을 막았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갓 구워낸 따끈따끈 한 빵처럼 그의 얼굴은 몰라볼 정도로 부풀어 올라 있었다.

“~~♪”

레반을 이 꼴로 만든 장본인인 레테라는 자긴 모르는 일이라는 듯 스트레칭을 하며 딴청을 부렸다.

레테라는 내 말에 따라 근육광들과 함께 건물 옥상에서 자유 낙하라는 미친 챌린지를 시도하려는 레반을 처단하러 갔었다.

당연히 레반은 평소와 같이 반항하려 했다.

하지만 자신을 두들겨 패는 게 다름 아닌 내 의지라는 말을 듣고 그는 왕에게 사약을 내려 받는 신하처럼 비장하게 무릎을 꿇으며 레테라의 구타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현재에 이른다.

안범석은 다행히 우리에게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어 보였고, 쓰러진 사람들도 레테라가 절묘하게 기절시킨 덕분에 무슨 일을 당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더 이상 운동도 정보 수집도 무리가 있었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이지만 나는 레반과 레테라를 데리고 돌아가기로 했다.

“결국 오늘도 수확이 없었네.”

트레이닝복을 갈아입고 나온 내가 신발을 신으며 중얼거렸다.

“근육돼지가 괜한 짓만 하지 않았어도 좀 더 수월하게 정보를 모았을 거예요.”

“너도 15명의 스토커에게 시달려봐라. 아주 그냥 돌아버린다고.”

옆에서 두 사람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헬스클럽 내부를 둘러보았다.

한 바탕 소동이 일어나긴 했지만 금세 진정을 되찾고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살을 빼기로 단단히 각오한 듯 트레이너의 퍼스널 트레이닝을 악착 같이 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큰 의욕 없이 설렁설렁 몸을 움직이는 사람도 보였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확인한 것 같은데 플레이어의 단서라곤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단순히 나오지 않은 것뿐일까?

회원으로 등록해놓고 게으름이나 개개인의 사정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을 터였다.

혹은 회원 자체가 아닐 경우는 어떨까.

플레이어가 이곳 회원이 아니라 단순히 회원과 가족 관계라면?

‘그건 아닐 거 같은데…….’

그럼 너무 복잡해질뿐더러 수색 범위도 넓어져 버린다.

율이 굳이 이 헬스클럽을 제시한 이유도 퇴색되어 버릴 것이다.

어딘가 놓친 부분이 있지 않을까.

플레이어가 이곳 회원이 아니라고 한다면…….

‘……트레이너.’

내 시선은 막 어느 회원에 퍼스널 트레이닝을 해주고 있는 안범석에게로 향했다.

회원의 벤치 프레스를 돕는 그가 ‘회원님 라스트 한 번만 더요!’라고 외치고 있었고, 갓 태어난 사슴 새끼처럼 두 팔을 부들부들 떨어대는 회원은 ‘그 라스트 소리만 아홉 번째에요!!’라고 격렬히 항의하는 모습이 보였다.

‘맞아. 꼭 회원에게만 단서가 있을 거란 보장이 없잖아?’

회원만 신경 쓰느라 트레이너의 존재는 우선순위에서 미뤄두고 있었다.

우리들이 접근한 회원들을 통해서 이 헬스클럽에 대해 들을 수 있었는데, 이곳에 트레이너는 총 세 명이 있으며, 전부 가족 관계라고 한다.

가족끼리 헬스클럽을 운영해 나가는 것이다.

하나는 원래 이곳의 원주인이자 안범석의 아버지인 사람 안연천.

지금은 노년을 이유로 건물을 안범석에게 맡기고 휴양중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안범석의 친척으로, 최근 데드 리프트 도중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한다.

앞으로 4개월은 더 병실행이지만 정작 본인은 근손실을 걱정하고 있다나 뭐라나.

결국 이 헬스클럽에 남은 트레이너는 안범석뿐인 것이다.

홀로 헬스클럽을 관리하고 트레이너의 업무까지 수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테지만, 안범석은 별다른 내색 없이 열심히 활동하는 중이었다.

비대한 근육질 몸을 보면 게임에 큰 연이 있을 사람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래도 이곳에서 자주 보는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깊이 파고들지 않은 것은 그뿐이었다.

“잠깐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한 번 떠볼만한 가치는 있겠다고 판단한 나는 신던 신발을 다시 벗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인사 좀 하고 올게.”

나는 안범석을 가리키며 말했고, 두 사람은 인사 이상의 목적이 있다는 걸 눈치 챈 듯 신발장 근처에서 얌전히 대기했다.

어차피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다 보니, 굳이 붙어 다녀서 수상하게 보이지 않게 배려해준 모양이다.

막 벤치 트레이닝을 끝낸 안범석은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나를 보곤 먼저 반갑게 말을 걸었다.

“오! 벌써 가시는 겁니까?”

“네. 한바탕 소동을 벌인 뒤라 계속 있기가 좀 그러네요.”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처음 도가 지나쳤던 건 저 사람들이고, 지금은 별로 큰 상처 없이 전보다 더 의욕적으로 운동하고 계시는데요.”

안범석의 말대로 소동의 원인이 되었던 머슬 피프틴은 모두 열을 올리며 진지하게 단련에 힘 쏟고 있었다. 더 이상 레반에게 관심을 돌리지 않을 정도다.

레반에게 질렸다거나 이제와서 겁을 먹은 건 아니었다.

그저 겉모습은 건강한 여성 정도에 그쳤던 레테라에게 자신들의 강인한 육체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는 사실에 충격 받았을 뿐이었다.

그러한 충격은 더욱 더 육체를 단련하겠다는 의지로 이어졌다.

“이 강철 같은 몸이 그렇게 맥없이 쓰러졌을 리 없어! 분명 내 단련이 부족한 탓이다!”

“근육은 절대적이다! 근육은 절대적이다!”

“프로틴 싹 다 긁어와!! 오늘은 마시고 죽겠어!!”

저러다 진짜 죽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들의 단련엔 광기마저 서려 있었다.

대체 그들에게 근육이란 무엇인 걸까…….

식사, 인간관계 싹 거르고서라도 게임 하나에 몰두하려는 게임 폐인의 심리와 같은 걸까.

문뜩 나 자신의 게임 라이프가 타인에 시선에선 저렇게 보이지 않았을까라는 자아성찰이 일어났다.

“그나저나 이곳에 나온 지 오늘로 3일째인데, 어떻습니까?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까?”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원래 적당히만 건강하자는 주의로 살아왔거든요. 그래서 온 몸에 근육이 이렇게 없다는 건 확실히 실감했어요.”

나는 여전히 근육통에 시달리는 팔을 주물렀다.

본래의 목적은 따로 있긴 해도, 부가 목적인 운동을 게을린 한 건 아니었다.

제법 진지하게 임했지만 온몸이 아프기만 할뿐 전보다 성장한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원래 누구나 처음이 힘든 법입니다. 저도 예전엔 고생 좀 많이 했죠. 특히 전 과도비만이라서 그 어려움은 더 했습니다.”

“과도비만? 안범석 씨가요?”

의외였다.

레반이 나타나기 전까진 머슬 피프틴의 우상이었고, 두 사람도 일반인치곤 제법 강한 축에 속하다고 인정할 정도의 인물이 눈앞에 남자였다.

거의 천성적인 무골기질인 줄 알았던 저 몸이 지방 덩어리로 가득했던 시기가 있었단 말인가?

“네. 이런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그냥 걸어 다니는 비계 덩어리였죠. 몸무게도 세 자리 수였습니다.”

“잘 상상이 가지 않는데요.”

“정말입니다. 그때의 사진도 있어요. 만약 5년 전에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도 쭉 돼지인 채였을 겁니다.”

대강 상황이 그려졌다. 변화의 계기는 사랑인가.

그전까지는 운동과 담을 쌓은 듯 보였다.

5년 전이라면 아직 SoR가 한창 서비스되는 시기다.

고도비만이었다가 운동을 5년 전부터 시작한 거라면, 그 이전까지는 바깥활동을 잘 하지 않을 환경에서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가령 하루 종일 게임에 빠져 산다거나.

여기서 한 번 떠볼까.

“혹시 예전에 온라인 게임이라던가…….”

“범석 씨.”

말을 꺼내려 했지만 갑자기 들려온 고운 목소리에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자신을 부르는 미성을 알아들은 안범석이 반색하며 고개를 돌렸고, 나도 그를 따라 등 뒤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눈치 챘다.

근육광들의 열기가 가득했던 헬스클럽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돌변했음을.

쇼크를 받고 몸이 부서져라 운동기구를 다루고 있던 사람들이 얼어붙은 듯 동작을 멈춘다.

프로틴을 마시던 사람도 아까운 프로틴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여자친구인 듯한 사람이 그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분위기가 돌변한 이유는 신발장이 있는 곳에서 막 구두를 벗고 들어오는 여성에게 있었다.

키 160정도인 작은 체구의 여성.

검은 머릿결은 등까지 내려와 부드럽게 찰랑거렸고, 백옥처럼 고운 피부에 이목구비는 동양적 아름다움이 강하게 부각되어 있었다.

눈에 띈다는 의미로는 레반과 레테라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이세계적인 외모인 그들과는 다른 현실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오히려 친숙함 때문인지 첫인상에 대한 호감은 이쪽이 더 높았다.

“진혜 씨!”

안범석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여성의 이름을 불렀다.

이름이 진혜인 걸까.

다른 건 몰라도 안범석이 진혜라는 여성에게 푹 빠져 있다는 건 분명해보였다.

잔뜩 상기된 얼굴하며, 약간의 경직으로 더욱더 부각되는 근육.

쿵쾅쿵쾅 뛰는 그의 심장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 했다.

두근! 두근! 두근!

아니, 이건 환청이 아니다.

정말로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건 안범석의 것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내 심장소리였다.

내 심장이 거칠게 날뛰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여성의 아리따운 외모 탓이 아니었다.

‘뭐야……?’

걸어오는 진혜의 뒤편을 바라본다.

그녀는 방금 신발장에서 구두를 벗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분명 먼저 신발을 신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레반과 레테아의 모습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없다.

레반도, 레테라도 감쪽 같이 사라져서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에 숨은 것도, 나를 놔두고 먼저 가버린 것도 아니었다. 신발장 근처엔 숨을 공간도 없을뿐더러, 그럴 만한 이유도 없다.

나를 놔두고 가버렸다는 건 더더욱 말이 되지 않는다.

안 그래도 과보호 끼가 있는 녀석들이다. 예전에 살모사파에게 납치된 적이 있던 뒤로는 그게 한 층 더 심해졌다.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비워야하는 일이 있더라도 둘 중 하나는 반드시 내 곁에 남는다.

그런데 지금 두 사람 다 사라져버렸다.

안범석과 얘기 하고 있던 1,2분 남짓한 짧은 시간.

그 사이에 소리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 두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서 태연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여성이 있었다.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두근!! 두근!! 두근!!

그녀가 다가올수록 심장 소리는 더 크게 울렸다.

내 놀람을 드러내듯. 여기에서 벗어나라고 나에게 경고하듯.

무언가를 당한 것이 분명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한 가지,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 까닭에는 저 여성이 관련되어 있을 거라는 본능적인 추측이 밀려왔다.

그러는 사이 여성이 점차 거리를 좁혀왔다.

진혜는 내 옆에 있던 안범석에게 다가가 손에 들고 있던 우산을 넘겨주었다.

“자요, 범석 씨. 저녁부터 비가 쏟아진다고 해서 건네 드리려 왔어요.”

“그거 때문이 이 멀리까지? 우산이야 편의점에서 사면 되니 굳이 안 주러 와도 되는데…….”

“아뇨. 범석 씨가 조금이라도 비를 맞는다고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요. 그런데…….”

부드럽게 휘어진 진혜의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이며 이쪽을 향했다.

검은 머리에 갈색 빛이 감도는 눈동자.

미인이라는 것만 빼면 별 특별할 것도 없는 눈이었지만, 나는 거기에서 익숙한 빛을 느꼈다.

낯선 무언가를 탐색이라도 하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빠르게 훑는 눈빛.

그건 묘하게 레반, 레테라의 눈빛과 닮아 있었다.

“못 보던 분이네요?”

순수한 물음이 담긴 질문 하나에 내 등줄기에 식은땀이 타고 흘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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