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통제불가 1
* * *
밤은 깊어져 갔다.
해는 저물고, 햇볕이 있던 자리를 도시의 불빛이 채워졌다.
공기가 조금씩 축축해진다. 아마 머지않아서 비가 내리리라.
그런 축축한 공기 너머에서 빛나고 있는 간판을 바라본다.
근육질 남자가 부담스럽게 큰 근육을 뽐내고 있는 간판이었다.
머슴 머슬 헬스클럽.
아무리 다시 봐도 지은 사람의 심각한 네이밍 센스가 돋보이는 간판이었다.
레반과 레테라가 저곳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건만, 범인이나 원인에 대한 단서가 없다.
우리를 주시하고 있던 레아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녀는 두 사람이 사라진 순간 주변에 캐릭터는 없었다고 말할 뿐이었다.
“캐릭터가 없을 리 없는데…….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레아가 나를 집어던졌었던 폐건물 옥상에 다시 올라와 저 멀리 간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일단 이 사건은 캐릭터와 관련된 사건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선 설명할 수 없는 요소가 많으니까.
그런데 상대의 윤곽이 선명히 들어나지 않는다.
레반과 레테라를 사라지게 한 수단으로는 몇 가지 짐작 가는 게 있긴 하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가 않다.
무엇보다 어떻게 존재감을 감춘 채 두 사람을 기습할 수 있었는지가 가장 의문이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냥 밀어버리면 되지 않겠어?”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돌아본다.
폭이 10cm밖에 되지 않는 좁은 난간 위에 레아가 등을 대며 누워 있었다.
조금만 삐끗하는 순간 수십m 아래로 떨어질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레아의 모습은 푹신한 침대 위에 누운 듯 편안해 보였다.
그녀는 내가 머리를 싸매며 고민하고 있는 이 시간이 무척이나 지루한 모양이다.
교차하며 꼰 다리의 발끝이 빠른 박자로 까딱거리며 무료함을 항의하고 있었다.
“일단 의심 가는 녀석은 있다면서? 일단 그 녀석 조지고 사라진 멍청이들을 찾으면 오케이잖아?”
레아는 길게 생각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뒤집어엎고 싶은 모양이다.
레반을 작살내려 뒤쫓아 왔다가 목표물을 잃어서 몸이 쑤시기라도 한 걸까.
“불가.”
나는 허락하지 않았다.
뭐라고 더 항의하고 싶은지 입을 열려던 레아였지만, 내 다음 말에 그녀의 말은 쏙 들어가 버렸다.
“우리가 SoR에 적응할 때 가장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소리가 뭐였는지 기억해?”
“……『모르면 죽어야지』.”
그걸 어찌 잊겠냐는 듯 레아는 질린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말했다.
고인물이 많은 모 격투 게임에서 파생된 격언이었다. 원본은 ‘모르면 맞아야지’다.
격투 게임 특성상 상대의 콤보 공격에 적절한 대응법이 있는 법이다. 그것을 모르면 일방적으로 맞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격투 게임에선 그나마 맞는 정도다.
가까스로 HP가 남는다면 반격의 기회를 잡을 수 있고, 설령 그 판에서 진다고 해도 N선승제가 주류인 격투 게임이라면 다음 판이 남아 있다.
하지만 SoR에선 그냥 죽는다.
상자인 줄 알았던 미믹에게 잡아먹히거나, 평범한 줄 알았던 항아리가 갑자기 터져나가며 산성용액을 뒤집어쓴다거나, 매복해 있던 몬스터가 갑자기 등 뒤에서 즉사급 일격을 먹인다거나.
판단을 잘못하는 순간 얄짤 없다.
그동안 쌓았던 경험치가 일순간에 날아가고, 몬스터들을 쓰러뜨리면서 나아가던 던전 진행도가 완전히 초기화된다.
그간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처럼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이다.
그야 말로 모르면 죽어야지였다.
그리고 난 그 격언의 무게를 초보시절 레아와 함께 진절머리 날 정도로 경험했다.
“이게 진짜 컴퓨터 속 게임이라면 당장이라도 쳐들어갔겠지. 그리고 닥치는 대로 뒤엎었을 거야. 늘 그랬으니까. 하지만 여긴 더 이상 게임이 아니야.”
거침없이 행동할 수 있는 건 게임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캐릭터는 몇 번이고 부활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하티에게 들은 대로라면 현실에서 캐릭터가 죽으면 게임 속 배경이었던 글레이그 대륙으로 돌아간다.
멸망밖에 남지 않은 그 땅으로.
내 캐릭터들이 그런 곳에서 썩어가듯 서서히 사라지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돌격하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커. 어쩌면 저 헬스클럽 자체가 함정일지 몰라.”
“그럼 어쩌려고?”
“최소한 상대에 대해 파악만 한다면 대처할 수 있을 텐데…….”
순간 머릿속에 진혜라는 여성의 모습이 스쳤다.
가장 중요한 열쇠는 그녀가 쥐고 있을 터였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오후 9시 30분.
헬스클럽이 문을 닫을 시간이 가까워져 간다.
이대로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한 채 물러날 수는 없다.
각오를 굳힌 나는 기대고 있던 난간에서 몸을 뗐다.
“역시 가봐야겠어.”
“뭐?”
“한 번 더 그 사람을 만나려고. 그러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거 같아.”
그 말에 레아는 누워 있던 난간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헬스클럽을 가리켰다.
“댁 아까 본인 입으로 저곳 자체가 함정일 수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거지. 함정의 느낌이 나는 곳이 있다고 해서 언제까지 가만히 지켜만 볼 수는 없잖아? ‘찔러보기’ 기억하지?”
SoR에서 어서 가져가라는 듯 떡하니 놓여 있는 아이템이 있으면 되레 의심만 키울 뿐이다.
먹음직스러운 것일수록 함정일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수상한 장소가 있으면 돌멩이를 던져보거나 리치가 긴 무기로 쿡쿡 찔러보기도 한다.
이것을 찔러보기라고 부른다.
“뭐, 그것도 그렇네.”
내 말에 동의를 하며 레아가 천천히 몸을 풀었다.
호랑이굴에 돌입할 준비를 하는 것이리라.
약간 상기된 그녀의 표정은 앞으로 일어날 전투를 기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레아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나로선 그 기대에 초치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근데 저곳은 나 혼자만 갈 거야.”
“이 망할 아버지가 처돌았나.”
캐릭터가 있을지 모르는 장소에 혼자 간다는 그 바보 같은 소리에 매서운 눈빛이 나에게 날아와 꽂혔다.
레아의 시선에 닿은 피부가 바늘에 찔리는 것처럼 따끔거리는 걸 견디며 입을 연다.
“우리 둘이 갔다가 둘 다 당하는 것만큼 최악의 전개가 어디 있겠어? 그렇다고 너 혼자 갔다가 앞선 두 사람처럼 사라져버리면 내가 쓸 수 있는 수단은 없게 돼. 그러니 내가 찔러보기 역할을 할 거야.”
“…….”
레아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나를 노려보았다.
역시 쉽게 허락해주지 않는 건가. 하지만 내 역시 마음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현재 나에겐 레아가 유일한 무기이자 비장의 카드였다.
이 비장의 카드를 사용하는 타이밍을 잘못 판단해선 안 된다.
캐릭터의 흔적을 찾아내는 건 나, 드러낸 캐릭터를 찌르는 역할은 레아였다.
그녀가 납득하지 않는다면 납득할 때까지 설명할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레아의 입이 열린다.
“그래 알았어.”
의외로 간단하게 수긍해주었다.
거기에 놀란 건 나였다.
“어? 정말 괜찮아?”
“그럼 가지 말라며 바지 끄댕이라도 붙들어주리? 네 뜻대로 해주겠다고.”
이렇게 건조하게 말하니 약간 시원섭섭한 감정도 있지만, 레반과 레테라의 경우처럼 길게 실랑이를 벌이지 않아도 되는 건 다행이었다.
“그럼 난 주위를 맴돌다가 네게 무슨 일이 생기거나 신호를 줄 때 처들어가면 되지? 전투가 벌어질 게 뻔하니까 내 무기나 꺼내줘.”
“그래, 알았어.”
레아가 사용하던 장비들은 모두 내 인벤토리 안에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다.
그녀를 최적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 인벤토리를 연 뒤 그녀의 무구들을 고르고 꺼내려 할 때였다.
“…….”
일말.
정말 일말의 불안감이 내 행동을 멈췄다.
“뭐해? 빨리 무기 꺼내달라니까.”
재촉하는 레아의 말이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킨다.
나는 머릿속에서 펄쳐졌던 인벤토리 창을 다시 닫은 뒤 말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뭔데?”
“……설마 장비를 받자마자 혼자 쳐들어가지는 않을 거지?”
“나참. 날 못 믿어?”
그 말에 레아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다.
“물론 믿고 있지.”
그런 레아의 웃음을 보고 나 또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네가 내 말을 무시하고 전부 박살내버릴 거라는 걸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어.”
내가 이 녀석을 모르겠는가.
이유도 없이 시비를 걸던 유저를 길드 째로 작살내고 다녔던 녀석이었는데 그걸 모르겠냔 말이다.
아마 이대로 완전 무장을 시켰다간 날 이 자리에 기절시킨 뒤 홀로 쳐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무슨 함정을 준비해뒀든 무시해버릴 정도로 헬스클럽을 건물 째로 날려버리는 무식한 짓거리를 저지르겠지.
함정을 타파할 수는 있어도 괜한 사람까지 휘말릴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방법이었다.
“…….”
아무 말이 방긋 웃고 있는 레아의 모습이 나에게 흔들림 없는 확신을 주었다.
그녀가 나에게 손을 내민다.
잔말 말고 무기나 내놓으라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진다.
레아가 가장 원하는 무기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지금도 내 인벤토리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겠지.
그것은 레아 전용의 무기라서 레반도, 레테라도 못 다룬다.
하지만 레아의 손에 쥐어진 순간, 그 효용은 신화급 무기에 맞먹을 정도로 올라간다. 실제로 신화급 무기를 다루는 유저를 꺾은 적이 있으니 틀림없을 것이다.
문제는 레아가 내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이대로 무기를 쥐어줬다간 통제 불가 몬스터 하나가 탄생하겠지.
그리고 그 몬스터는 주변의 피해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날뛸 것이다.
“역시 무기는 줄 수 없어. 일단 지금은 노강화 롱소드 하나를 쥐어줄 테니까, 다른 무기는 내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그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옥상 밖으로 던져버렸을 때처럼 내 멱살을 붙잡은 레아가 이번엔 옥상 출입문 벽에 메다붙이듯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쿠우웅!
“쿨럭!”
등에서 퍼지는 충격이 기침으로 뿜어졌다.
레아의 팔뚝에 목이 눌리고, 그대로 몸이 밀려 올라간 탓에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버둥거렸다.
“네 머저리 같은 소리 더 이상 못 들어줄 거 같으니 무기나 내놔. 그럼 내가 다 끝내줄 테니까.”
숨이 막히는 괴로움을 느끼며 짐승의 것처럼 사납게 빛나는 레아의 안광과 눈을 마주한다.
목을 누르는 레아의 팔뚝을 두 손으로 붙잡으며 겨우 소리를 낼 수 있는 틈을 만들고 항의했다.
“아까랑……말이……다르잖아……!!”
“글쎄. 기억 안 나는데.”
이 년, 내 작전에 동의한 걸 기억 안 난다는 소리로 시치미를 떼고 있다.
울컥 하고 빡침이 올라온 나는 팔뚝을 붙잡아 매달리고 있던 두 손을 빠르게 레아의 머리로 옮겼다.
그대로 그녀의 머리를 잡아당김과 동시에 오른쪽 무릎을 올려친다.
빠아악!!
“……!”
아무리 초인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목이 졸리는 걸 견디며 반격해올 줄은 생각 못한 모양이다.
놀란 레아가 상체를 뒤로 빼자 내 목이 해방되었고, 그대로 나는 바닥에 주르륵 미끌어졌다.
“크아악!!”
그리고 그대로 레아의 얼굴을 찍었던 무릎을 부여잡고 바닥 위를 뒹굴어야 했다.
분명 콧등이라는 신체적으로 약한 부위를 때렸건만, 정작 레아는 놀라는 것 이상의 데미지는 없었다.
도리어 피부에 아래에 강철이라도 숨겨놓은 듯한 충격이 내 무릎을 덮쳤다.
역시 몸 하나는 무식한 튼튼한 놈들이다. 설마 때린 놈이 대미지를 입을 줄이야.
다리를 부상당한 축구 선수처럼 바닥 위를 데굴데굴 구르는 내 모습을 레아가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본다.
“뭐하는 건지…….”
레아는 내 상태를 살피기 위해 손을 뻗었고, 나는 그 손을 붙잡으며 레아의 몸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렇게 바짝 다가온 레아의 얼굴에 내 이마를 들이박는다.
빠악!!
그리고 당연히 대미지는 나에게만 들어왔다.
피부 밑에 강철이 있다는 말 최소 한다. 일말의 충격을 흡수해주는 자비심도 없는 깐깐함을 보니 다이아몬드급 강도다.
시야가 노래졌다가 파래졌다 다시 원래 색으로 돌아오는 신기한 현상을 겪으며, 나는 이마를 부여잡고 바닥을 굴렀다.
거의 자해에 가까운 행위에 기가 찬 건지 레아가 외쳤다.
“아까부터 뭐하는 거냐고! 고통을 느끼는 취향에 눈을 뜨기라도 했어!?”
“시끄러! 네가 네 마음대로 하겠다며 지랄하는데, 나라고 내 마음대로 하면 안 되냐!!”
나 역시 기어코 폭발했다.
그동안 미안한 감정 때문에 져줬지만 이젠 다르다.
자식새끼의 안하무인이 도를 넘었는데 언제까지고 쩔쩔 맬 소냐.
아무튼 거의 자해에 가까운 반항으로 인해 더 이상 레아가 힘으로 날 압박하는 일은 없었다.
레아 녀석이 사납긴 해도 내가 다치길 바라진 않는 건 레반이나 레테라와 같다.
내가 위험부담을 안는 작전을 거부하는 것도, 혼자 모든 걸 처리하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함부로 다가갔다가 또 자해를 각오한 반항이 올 거란 생각에 레아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거대한 덩치를 가진 코끼리가 겨우 작은 쥐를 밟을까 조심스러워하는 모양새와 닮았다. 묘한 대치가 만들어진 덕에 나도 고통에서 해방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머리가 식혀지고 난 뒤, 바닥에 주저앉으며 레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늬들이 게임에서 나오고 여러 가지가 바뀌었어. 나도 더 이상 게이머인지 철부지 애새끼 셋 키우는 미혼남인지 헷갈릴 정도야.”
철부지 애새끼에 비유당하니 레아의 눈썹이 불쾌하다는 듯 치켜 올라간다.
까칠한 반응이 나오기 전에 내가 먼저 말을 끊었다.
“하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
“난 너희들의 승리를 위해 움직인다. 어떤 적이 와도 굴욕적이게 무릎 꿇지 않도록. 싸우고 이겨내서 당당하게 설 수 있도록.”
더러운 패턴을 가진 보스 몬스터를 밤새도록 연구했다.
강력한 무기를 두고 어느 것이 더 효율이 좋은지, 캐릭터를 어떻게 키워야 더 나은 건지 끊임없이 비교하고, 선택하고, 활용했다.
키보드 자판과 마우스 버튼이 닳아서 부서질 때까지 캐릭터와 함께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웠다.
그 모든 것의 이유는 변치 않는다.
참으로 심플한 이유다.
이기고 싶으니까.
유치원생부터 늙어죽기 직전에 노인까지 통용되는 최고의 동기부여가 아니던가.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내가 위험을 부담하는 게 싫은 건 알겠는데, 이게 내가 생각한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수야. 적을 파악하고, 정확하게 꿰뚫기 위한 수. 만약 네가 아직 날 파트너로서 믿고 있다면 지금은 내 말에 따라줘.”
레아를 바라보며 진중하게 부탁했다.
그녀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불만스럽게 입술을 움직였지만 끝내 거절의 의사는 내뱉지 않았다.
“……칫.”
그저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그것이 수긍의 의미라는 걸 안 나는 속으로 안도했다.
레아가 끝내 수긍하지 않았다면 이대로 다투느라 날이 샐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네가 원하는데 홀로 저곳에 들어간다면, 난 언제 돌입하면 되는 거지?”
그 물음에 나는 주머니에 있던 걸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레아에게 던졌고, 레아는 가볍게 받아내며 의아한 표정으로 손아귀의 물체를 바라보았다.
“이건……?”
“네 휴대폰. 언젠가 너에게 주려고 미리 개통시켜 놨어. 쓸 줄 알아?”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마다 손에 쥐고 있던 게 이런 거야. 대략적인 사용법 정도는 파악했어.”
안에 내 휴대폰 번호는 물론 레반과 레테라의 것까지 저장되어 있었다.
두 사람이 사라졌을 때 휴대폰에도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전혀 연락이 안 돼서 실질적으로 통화할 수 있는 상대는 나뿐이었다.
애초에 이들이 휴대폰을 통해 하하호호 얘기를 나눌 것 같지도 않지만.
“네가 돌입해도 문제없다고 판단할 때 연락할게. 그 착신전화가 돌입 신호라고 생각해줘.”
“……한 가지 조건을 더 붙이자.”
휴대폰의 낯선 감촉을 확인하듯 이리저리 매만지고 있던 레아가 말해왔다.
그것만으로는 안심이 안 된다는 듯 그녀는 돌입 조건을 한 가지 더 추가한다.
“지금도 저 건물에서 캐릭터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아. 하지만 만약 캐릭터의 기척이 나타나면 난 주저 없이 쳐들어 갈 거야. 댁의 그 허약한 몸으로 상대에게 들킨다면 나에게 전화를 걸 여지도 없을 테니까.”
너무 과민한 생각 아닌가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타당했다.
레아에게 연락하기도 전에 휴대폰을 쥔 손이 손목째 부러지는 사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겠지.
“알았어. 나도 그걸 상정하고 움직일게.”
“흥.”
레아는 난간에 등을 기대며 주저앉았다.
반대로 나는 그녀와 교대하듯 주저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다시 헬스클럽 간판을 바라보았다.
도시의 밤풍경 속에서 빛나고 있던 간판 불이 막 꺼진다.
영업시간이 다 되어 가며 폐점 준비를 하는 것이리라.
회원들은 다 빠져나왔을 테지만, 트레이너이자 관리인인 안범석은 마지막까지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를 기다리겠다고 말한 진혜도 함께 남겠지.
가장 수상한 용의자 둘만 남은 헬스클럽.
미확정 위험요소도 그만큼 높아졌지만, 진위를 밝혀내기에도 절호의 기회임은 틀림없다.
“그럼 가볼까.”
근육광들의 성지처럼 꾸며놓은 저곳의 장막을 들춰낼 때가 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