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 통제불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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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과 신성 마법. 이 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식의 기적을 현실에서 행사한다.
마법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세계의 구조를 해석하고 자신의 뜻대로 이용하는 것이며, 신성 마법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진실을 믿고, 그 흐름 그대로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 접근 방식의 차이 때문인지 마법과 신성 마법은 서로 상극으로 인식되곤 한다.
그 중 공간을 이동하는 대표적인 기술을 꼽으라면 마법에선 ‘텔레포트’가 있고, 신성 마법에는 ‘헤븐즈 게이트’가 있다.
텔레포트가 대상자는 원하는 장소로 보내는 마법이라면, 헤븐즈 게이트는 지정된 장소로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든다.
통로의 출입구는 신비한 문양이 새겨진 써클이다.
그대로 뒀을 땐 그저 잘 지워지지 않는 낙서일 뿐이지만, 시전자가 마나를 불어넣었을 때 원하는 위치의 써클과 연결되며 써클 안의 물체를 다른 곳으로 전송이 가능해진다.
써클을 미리 설치해야한다는 점이 번거롭긴 하지만 텔레포트와는 일장일단을 가지고 있어 선호하는 사람은 선호하는 편이다.
그러나 누구나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헤븐즈 게이트는 중급에 해당하는 신성 마법으로, 전문 직업군이 아닌 이상 제대로 익히기 힘들다.
신성 계열의 직업, 성직자, 수도승, 그리고 성기사.
그 중 타워실드 같은 중장비를 다룰 만한 직업이라면 성직자밖에 없었다.
“…….”
진혜는 입을 열지 않았지만, 대답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레아를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런 무거운 타워실드와 중급 이상의 신성마법을 동시에 쓸만한 직업은 성기사밖에 없을뿐더러, 설사 성기사가 아니더라도 문제될 만한 건 아무것도 없다.
레아는 몇 걸음을 옆으로 옮기며 근처 땅을 발끝으로 두드렸다.
조금 전 레아가 직선으로 가도 될 걸 굳이 호선을 그리며 돌아서 가던 그 지대였다.
“두 번째 일격을 맞고 타워 실드 뒤로 몸을 숨겼을 때, 이곳도 서클을 설치했지? 만약 그대로 달려들다가 서클 안으로 들어왔으면 넌 바로 헤븐즈 게이트를 발동했을 거야. 그리고 난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강제전송 당했을 테지.”
“…….”
정답이었다.
포션을 마시는 건 사실 페이크고 실제로는 언제든 게이트를 발동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었다. 그것을 읽은 레아에 의해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 두 멍청이를 날려버렸을 때도 그랬겠지? 숙련도가 오르면 발동하기 전까진 그곳에 서클이 있다는 걸 눈치 못 챌 정도로 감쪽같이 숨길 수도 있으니까. 아마 서클이 숨겨져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등신 같이 그 위에 서 있었겠지.”
레반과 레테라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도 정답이었다.
처음엔 그저 안범석에게 우산을 건네주기 위해 방문한 게 전부였던 진혜가 그 두 사람의 존재를 눈치 채고 얼마나 놀랐던가.
신발장 앞.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그곳에 서클을 설치해두었고, 그녀가 발견한 타이밍에 두 사람이 서클 위에 서 있던 건 정말로 천운이었다.
두 사람이 심상치 않은 강자라는 걸 느낀 진혜는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놓쳤다간 그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자신이 없던 것이다.
그렇기에 두 사람이 눈치 채기보다 먼저 헤븐즈 게이트를 발동하여 어딘가로 전송시켰다.
“야, 한 가지만 묻자. 두 멍청이는 어디로 날려 보낸 거야?”
당장 전투가 속행되어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었지만 레아는 정말로 그게 궁금한 듯 물어왔다.
강자로서의 여유일까. 저렇게 태연히 질문해오다니.
어찌됐건 진혜로선 나쁘지 않았다.
뭔가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걸 느낀 안범석이 인벤토리를 열어 장비를 준비하는 기척이 느껴졌으니까.
시간을 벌어야 한다.
“……지금쯤이면 서해 바다에서 표류 하고 있지 않을까. 가능한 멀리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언젠가 써먹을 때가 있지 않을까 해서 바다 밑바닥에 설치해뒀던 써클로 보냈거든.”
헤븐즈 게이트는 주기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사라져버린다.
그럼에도 바다 밑바닥 같이 관리하기도 힘든 장소에 써클을 설치한 것은 언제가 나타날지 모르는 플레이어와 캐릭터를 경계했기 때문이었다.
설마 1주일 전 안범석과 함께 피서 간 김에 설치했던 써클을 이렇게 금방 써먹게 될 줄은 본인도 몰랐다.
“풉!”
한편, 진혜의 말을 통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두 사람을 상상한 레아는 꼴좋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정말로 고소하다는 표정 때문에 도리어 진혜가 어이없어질 정도였다.
‘이놈들 동료가 아니었나?’
플레이어에 대한 태도도 그렇고, 레아의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는 진혜였다.
잠깐 입가를 가리고 큭큭 대며 웃던 레아는 이내 만족하고, 다음은 이제야 이해된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 망할 아버지가 플레이어라는 걸 의심하면서도 보내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알만 하네. 구도자의 팔찌 때문에 마나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멍청이를 두 명이나 장거리 전송 시켰는데 문제가 없었겠어?”
SoR에선 마나가 부족해도 스킬은 발동할 수 있다.
그 경우, 부족한 마나의 양은 생명력을 끌어다 쓰는 거로 보완한다. 생명력도 마나와 같은 에너지로 취급하기 때문인 모양이다.
이것을 위급한 상황에 비장미를 더한다며 좋아하는 플레이어가 있는가 하면, 마나보다 소비 효율이 엉망이라 있으나 마나한 기능이라며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진혜는 모든 능력치가 레벨 1 수준으로 제약된 상태에서도 헤븐즈 게이트를 사용했다. 레반과 레테라를 위험하다고 판단해서였다.
당연히 레벨1 수준의 마나량도 뻔했기에 생명력을 소모하는 위험성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도자의 팔찌를 풀고 헤븐즈 게이트를 발동할 수는 없었다.
팔찌를 벗고 써클을 발동시키는 그 찰나의 동작 사이에 적들이 눈치 챘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저들이 진혜의 존재를 눈치 채고 반응해 오면 헤븐즈 게이트 발동 타이밍을 맞출 수 없었다.
기습이 실패하면 싸움으로 번질 것이고, 그럼 자신의 주인인 안범석까지 위험해진다.
그렇기에 심각한 손해를 감내하면서까지 당장의 위험성을 치워낸 것이다.
요현을 한 번 놓아준 이유도 자신의 몸 상태가 엉망인 지금 그가 반항한다면 제압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대로 사무실로 걸음을 옮긴 진혜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듯 쓰러져 몸을 회복해야 했다.
이제야 좀 사정을 알겠다는 듯 레아는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진혜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볼일 다 봤으니 끝장을 내겠다는 듯 레아에게선 살의가 넘실대고 있었다.
꾸욱!
진혜는 타워실드의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주었다.
구도자의 팔찌를 벗어던진 지금은 그녀를 제약하는 건 없었다.
첫 일격에 입은 부상이 다 낫진 않았지만, 이 정도라면 SoR시절에도 질릴 만큼 견뎠었다.
‘쓰러트린다!’
뼛속 깊이 전해지는 강적의 감각에 진혜는 투지를 불태웠다.
동시에 그녀의 몸에 금속 갑옷이 뒤덮기 시작한다. 안범석이 그녀의 장비를 꺼내준 것이다.
촤르르륵!!
도시의 불빛이 잘 닿지 않는 장소였지만 본연의 광채를 잃지 않고 빛나는 백금의 갑주.
그것은 진혜의 모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가렸고, 그 탓에 체격이 1.2배는 더 증가한 듯 보였다.
타워실드를 쥔 반대편 손에 쥐어진 건 커다란 메이스.
팔뚝만한 철봉 끝에 뭉쳐 있는 금속 덩어리는 종교적 의미라도 담긴 듯 천사의 모습이 양각되어 있었지만, 그렇다고 메이스 본연의 기능에서 벗어나지 않는 디자인이었다.
아무리 신성해 보인다고 한들 상대를 때리고 쳐부수기 위한 기능성은 소실되지 않는다.
철컹!
완전한 전투태세를 갖춘 진혜가 금속소리를 내며 걸음을 내딛었다.
더 이상 온화한 생김새의 미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숨소리는 투구 사이에서 울려 음산한 울림을 자아냈으며, 투구의 틈 사이로 빛나는 안광은 살기를 품고 있었다.
하얀 바탕에 어깨 뒤로 흩날리는 망토 때문일까. 그 모습은 위압적이면서도 백조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분명 저것이 진혜가 가진 최고 장비일 테지.
피식.
그런 진혜의 모습을 보며 레아는 가볍게 웃었다. 성큼 내딛는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만전을 기하는 진혜와 달리 레아의 무장은 여전히 롱소드 하나다.
그것도 노강화 아이템. 차라리 그녀의 맨주먹이 더 세고, 실제로도 그쪽을 사용하는 중이었다.
안범석에 의해 무장을 마친 진혜와 달리 레아 쪽은 요현으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 않았다.
레아는 힐끔 요현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뚫어놓은 구멍을 창구로 해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요현의 모습이 보였다.
옆에서 안절부절 거리며 진혜를 걱정하는 안범석과 달리 그는 굳은 얼굴로 이쪽을 바라볼 뿐이다.
걱정하는 건 아니다. 그저 제발 이쯤에서 만족하고 물러나주길 바라는 눈빛이다.
아마 이 싸움을 멈추고 싶겠지.
그러면서도 롱소드라는 최소한의 무기를 회수하지 않는 건 어째서일까. 위력 없는 아이템이더라도 레아에겐 전혀 쓸모가 없지 않다는 걸 알 텐데.
그래, 안다.
알고 있다.
레아의 강함은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걱정하는 마음이 이 롱소드라는 것 정돈.
‘멍청한 아버지.’
짜증이 난다.
누가 누굴 걱정해.
어떻게든 단서를 찾겠다면서 맨몸으로 위험지대에 들어가질 않나.
이쪽이 더 조마조마했다고.
그렇기에 이것은 요현을 향한 항의이며, 또한 레아 자신의 화풀이다.
이 가슴 속 울화를 날려버리지 않고서야 오늘 밤은 편안히 잘 수 없을 것이다.
철컹. 철컹.
저벅. 저벅.
갑주의 금속음이 내는 발소리. 근처 가게에서 훔친 신발이 내는 발소리.
두 개의 발소리가 점차 거리를 좁힌다.
그것이 딱 열 걸음 거리까지 좁혀졌을 때 한쪽이 행동에 나섰다.
타앙!!
먼저 땅을 박차고 달려드는 것은 진혜였다.
한 손에는 타워실드를 한 손에는 메이스를 들고 돌진하는 진혜의 모습은 마치 벽이 다가오는 것처럼 위압적이었다.
반면 레아는 여전히 롱소드를 놔두고 주먹을 쥐었다.
진혜에 비하면 그녀는 여전히 맨손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두려움 하나 없는 표정으로 진혜의 공격에 대응하려 할 때였다.
번쩍!!
진혜가 사라졌다. 바닥에서 빛나는 원형의 문양과 함께.
조금 전 위압감이 허상이라도 된 듯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럴 줄 알았지.’
레아는 놀라지 않았다. 대신 지체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성기사는 자신의 신체능력을 향상시키는 신성마법을 주로 배우며 사용한다.
헤븐즈 게이트 같은 보조형 신성마법은 잘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혜는 헤븐즈 게이트를 사용하고, 심지어 숙련도마저 높았다.
잘 어울리지 않는 신성마법을 탱커형 직업이 사용하는 이유라고 할 만한 건 하나였다.
‘기동성.’
고개를 돌린 그곳엔 진혜가 달려들어 메이스를 휘두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몸을 뒤트는 것으로 메이스를 피해내고 크로스 카운터를 먹이듯 한쪽 팔을 뻗었다.
바짝 세운 손날의 끝이 노리는 건 진혜의 투구.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나 있는 좁은 틈새였다. 그녀의 눈을 노리는 것이다.
후욱!!
그러나 레아의 손날은 목표를 꿰뚫지 못했다.
순식간에 나타난 진혜는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사라져 레아의 공격에서 벗어났다.
‘이미 써클을 잔뜩 설치해뒀군.’
레반과 레테라가 써클 위에 들어간 건 단순히 운이 나쁘기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진혜는 헬스클럽을 기준으로 여러 곳에 써클을 설치했다. 아마 누군가와 싸워야 할 상황을 대비한 것이겠지.
진혜 자신이 이동할 수 있는 통로는 여러 개 만듦으로써 중장형 장비의 단점인 기동성을 극복하려 한 것이다.
신체 강화와 회복에 이용할 수 있는 신성마법임에도, 굳이 한정된 용량을 헤븐즈 게이트에 쏟은 이유는 그것일 거다.
신발장 같은 사소한 곳에 써클이 설치되어 있던 걸 보면, 이미 이 주변 곳곳에 써클을 도배해놨다고 해도 무방했다.
지금 이곳이 바로 적의 홈그라운드 내였다.
“나와 같은 공격형 탱커 타입이군.”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레아는 오히려 상대에게 흥미를 느끼는 듯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번쩍! 번쩍! 번쩍!
곳곳에서 빛나는 써클이 나타나며 진혜의 모습을 일순 보이고 다시 감춘다.
시야에 혼란을 줄 생각인 걸까.
공터의 바닥은 물론 건물 벽에서도 나타났으며, 심지어 가로등 위까지 나타났을 땐 약간 어이가 없었다. 참 별 곳에 다 설치했다.
하지만 굳이 시각적 정보에 흔들릴 이유는 없다.
결국 레아를 공격하기 위해서 지근거리에 나타나야 할 터. 이미 가까운 두 군데는 파악을 마쳤다.
공격을 한다면 여기를 통해서겠지.
지금 진혜의 행위는 혼란을 주기커녕 스스로 써클의 위치들을 공개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라고 생각하게 한 뒤.’
번쩍!
레아의 근처에서 새로운 써클이 나타났다. 앞선 두 써클과는 다른 세 번째 써클이었다.
레아가 두 써클에 주의가 쏠리도록 한 뒤, 아직 사용하지 않은 세 번째 써클을 통한 기습 작전이었다.
“이미 읽혔어!”
등 뒤에서 나타난 써클이지만 레아의 움직임은 이미 진혜보다 한 박자 앞서고 있었다.
바로 몸을 회전시킨 레아가 뒤를 향해 발차기를 날려 써클에서부터 날아드는 타워실드를 후려쳤다.
콰앙!!
“……!!”
그런데 여기서 레아의 예상을 벗어나는 사태가 일어났다.
타워실드가 너무나 가볍게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리고 날아간 타워실드가 있던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페이크였나!’
자신이 아니라 타워실드만 이동시켜 등 뒤에 나타난 척을 한 거였다.
레아 알아차렸을 땐 이미 늦었다.
처음 경계했던 두 써클 중 하나에서 빛이 나며 메이스를 든 진혜가 나타나 허점이 훤히 드러난 레아를 향해 휘둘렀다.
카아아앙!!!
‘잡았다!’
속으로 환호를 외치던 진혜는 이윽고 이상을 감지했다.
방금 울린 소리는 레아의 뼈와 살을 부수는 파육음이 아니었다.
‘금속음’이었다.
빠악!!!
“……!?!”
이상을 감지한 것과 동시에 측면에서 무언가가 날아와 턱을 후려쳤다.
메이스를 정통으로 맞았을 터인 레아에게서 반격이 들어온 것이다.
날아온 건 그녀의 발뒷꿈치.
그 충격으로 골을 울리고 투구가 한순간 벗겨질 듯 흔들렸다.
시야가 크게 흔들리는 그때 겨우 써클을 발동한 진혜가 레아에게서 멀찌감치 물러났다.
그렇게 거리를 두자 방금 진혜를 후려쳤던 발을 내리는 레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이었다.
“어,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진혜의 메이스는 적중했다.
성공적으로 허를 찔렸고, 그 상태의 레아로선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을 터였다.
……막아?
진혜의 시선이 레아의 왼손으로 향했다. 그녀가 롱소드를 쥐고 있던 손이었다.
분명 별 쓸모가 없는지 장식용처럼 들고 있기만 했던 롱소드.
그런데 지금 그것을 쥔 모습이 달라져 있었다.
손잡이를 역수로 쥐고, 바깥 방향으로 뻗어 있는 검면을 왼쪽 팔뚝에 가까이 가져다 붙인다.
절대 일반적인 검의 파지법이 아니다.
그보다는 마치 ‘방패’처럼…….
‘설마 그 금속음은…….’
“방금 그건 제법이었어.”
이어지던 진혜의 생각을 레아의 목소리가 끊어버렸다.
롱소드로 메이스를 막아냈던 왼팔이 뻐근한지 이리저리 돌리고 있던 레아가 조금 전 공격이 제법 위협적이었음을 인정하고 솔직한 감상을 내뱉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야. 방패는 버리지 말았어야지. 탱커가 왜 탱커인데? 데미지를 각오하면서까지 딜을 넣으려는 건 딜러의 역할이라고.”
그렇게 말한 레아는 롱소드를 든 왼팔을 내밀었다.
롱소드임에도 마치 방패처럼 앞으로 내밀고, 말아 쥔 주먹은 무기처럼 뒤로 당긴다.
그 상태로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췄다. 전투태세를 갖추듯이.
그것만으로 레아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압력이 한층 강렬해짐을 느꼈다.
레아의 틈을 겨우 찾아내고 벌려서 공격을 때려 박았건만, 이제는 그 작은 틈새마저 사라지고 견고한 벽만이 남은 것 같았다.
“진짜 공격형 탱커가 뭔지 한 수 가르쳐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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