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싸움은 그만! 1
* * *
레아와 진혜가 맞붙는 시간으로부터 대략 5시간 전.
대한민국 서해에서는 요현이 겪는 게임과는 하등 상관없는 갈등이 벌어지고 있었다.
“빵쯔(※한국인 비하 용어) 놈들 해경 떴다!”
“씁! 이제 막 그물 풀었는데!”
육지가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십여 척의 배.
곳곳이 낡고 녹슨 선박은 바다에 떠 있는 것조차 신기할 지경이다.
명백히 한국의 해역으로 구분되어 있는 영역이지만, 그 배에 적힌 글자는 한글이 아니었으며, 그곳에 탄 이들이 내뱉는 소리도 한국어와 달랐다.
그들은 중국에서 온 어부들이며, 그들이 원하는 것은 서해 바다에 풍부한 해산물이었다.
남의 영역에 들어와 그곳의 자원을 멋대로 훔쳐가는 행위.
그들은 이것이 불법이고 범죄라는 것에 아무런 자각이 없었다.
“배 붙여! 서로 연결해!”
“연장 가져와! 다들 하나씩 쥐어!”
앞마당에 들어온 도둑을 잡기 위해 한국 해양 경찰이 출동했지만, 그들은 몸을 사리기커녕 강렬히 저항할 준비를 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선 자신들의 행위는 어디까지나 먹고 살기 위한 아주 당연한 행위일 뿐이다.
그렇기에 피해자들은 자신이며, 자신들의 일을 방해는 해경은 천인공노할 악당이라는 것이 바로 그들의 논리였다.
저 멀리서 해경의 배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사이렌이 울리고 조명이 반짝이며 중국어선 측에 정선명령을 내리지만 들을 턱이 없었다.
미쳤다고 얌전히 잡혀주겠는가.
붙잡혔다간 어마어마한 벌금이 뜯길 텐데.
어선들은 정선 명령에도 멈추기는커녕 더욱 속도를 높이며 달아났다. EEZ를 벗어나 공해까지 달아날 생각이다.
하지만 해경 함선은 어부들의 생각 이상으로 빨랐다.
이대로라면 공해로 벗어나기 전에 따라잡히리라.
해경이 자신들의 배를 나포하지 못하도록 십여 책의 배를 일렬로 세워 서로 고정시켰고, 선원들은 각자 무기를 쥐었다.
“개 같은 빵쯔 놈들. 오늘 어업 다 망쳤네.”
선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배와 배 사이를 쇠사슬로 고정시키던 선장이 중국어로 욕설을 내뱉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말은 바로 이런 때를 위해 있는 것이리라.
“선장. 몇 분 뒤면 따라잡히겠는데요?”
“도끼 뒀다 뭐해? 근처에 오기만 하면 던져서 대가리를 찍어버려.”
“해경들을요?”
“뭐 어때? 튀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될 거 없어. 국가적 문젯거리가 되면 뭐 어쩔 거야? 우리처럼 어업 하는 놈들을 이 잡듯이 뒤져서 잡아가기라도 한데? 공안도 대충 찾는 척 하다 무시해버릴 걸?”
선장은 이러한 조업을 하면서 쌓인 경험이 한둘이 아닌 듯 태연하게 말하였다.
그러는 사이 한국 해경의 함선에 소형 보트가 떨어져 나오며 빠르게 이쪽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선원들은 일정거리에 들어오는 즉시 도끼와 작살을 던질 준비를 하며 그곳을 노려보던 때였다.
우연히 해경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린 선원 하나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응?”
“거기, 뭘 얼타고 있어?”
“아니, 방금 저기에 웬 돌고래가 있지 않았어?”
“야 이 왕빠딴(※중국 욕) 새꺄. 지금 상황에 돌고래가 중요하냐?”
퍽!
일촉즉발인 상황에서 돌고래 따위에게 신경 쓰는 동료의 뒤통수를 후려친 선원이었지만, 그런 고통에도 그 동료의 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해양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아니, 근데 그 돌고래, 엄청난 속도로 바다를 일직선으로 가르며 이쪽으로 헤엄쳐오고 있었단 말이야…….”
자기가 본 게 현실인지 믿기지 않는지 말끝이 떨리기까지 한다.
바다를 항해하고 있을 때 수평선 끝에서 새까만 구름을 발견한 것과 비슷한 오한이 몸을 스쳤다.
그 오한의 근원은 순식간에 현실이 되었다.
쿠콰아아아아아아아앙!!!!!!!
일렬로 늘어선 선박 중 가장 끝에 하나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배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그리고 그 어이없는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야 말았다.
수직으로 치솟은 물기둥.
ㅅ자 모양으로 꺾인 채 공중에 떠 있는 망가진 선박.
그 부유는 한순간이었지만 선원들에겐 너무나 길게 느껴질 만큼 충격적이었다.
풍덩!!!
“끄아아아아악!!!”
그것이 중력에 의해 다시 바다로 처박히며 크나큰 진동을 일으키자 서로 연결되어 있던 선박들이 일제히 출렁이며 날뛰었다.
그 위에 선원들은 배 밖으로 튕겨져 날아가지 않도록 아무거나 붙잡은 채 이 악물고 버텨야 했다.
흔들림은 곧 잦아들었지만 선원들의 혼란은 꺼질 줄 몰랐다.
“지금 그거 뭐야!? 어뢰?!”
“요즘 빵쯔쪽 해경은 어뢰까지 쏘냐!?”
“뭔 놈의 어뢰야! 해경 놈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배가 터져나갔는데!!”
“그럼 방금 전 그건 뭐냐고!!”
조타실 기둥에 매달려 있던 선장이 고개를 내밀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선원들에게 외쳤다.
“멍청아! 일단 쇠사슬부터 풀어! 배가 줄줄이 가라앉는 꼴 보고 싶냐?!”
선장 말대로 조금 전 터져나간 선박이 물에 잠기기면 거기에 연결되어 있던 배들도 서서히 그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배의 나포를 막으려고 했던 쇠사슬이 저승길 길동무마냥 다른 배들을 끌어당기고 있던 것이다.
정말 어뢰라도 터진 것 같았던 충격이었지만, 부서진 배에 타고 있던 선원은 무사한지 살려달라는 비명소리도 들려왔다.
정신을 차린 선원들이 서둘러 쇠사슬이 묶인 난간 쪽으로 다가갔을 때였다.
“으, 응?”
“누, 누구……?”
가라앉는 배와 연결된 난간 위.
웬 남자가 서 있었다.
배가 침몰하는 상황에서 남자가 서 있는 게 무슨 대수인가 할 수 있었지만, 적어도 이들에겐 대수였다.
조업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동양인이라기 보단 서양 쪽, 그조차도 부족해서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은 낯선 기운을 풍긴다. 이런 놈이 있었다면 절대 못 모를 리가 없다.
무엇보다 덩치가 컸다.
족히 180은 넘어 보이는 키에 우람한 근육이 더 해지니 웬 바위덩어리가 떡하니 버티고 선 것만 같았다.
바닷물에 홀딱 젖어 있지만, 물기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사납게 솟아 있는 저 황갈색 머리카락은 무엇일까.
원래 머릿결이 센 것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머리로 이글이글 올라오는 열기 때문에 벌써 수분이 증발해버린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후자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남자는 어부들 눈앞에 나타나자마자 노기 서린 엄청난 괴성을 질러댔기 때문이다.
“빌어쳐먹으으으으으으으으으을!!!!!! 육지가 도대체 어디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것은 진혜의 헤븐즈 게이트에 당해 서해에 표류하게 된 레반이었다.
***
진혜와 안범석은 이 웃기는 게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며칠 전 율이 개최한 첫 번째 이벤트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그저 둘이서만 조용히 살아가길 바랬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게 바라는 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진혜는 다른 적대적 플레이어와 캐릭터들과 마주치는 걸 항상 염두해두고 있었다.
그것은 안범석과 함께 놀러갔던 피서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회만 되면 이곳저곳에 헤븐즈 게이트의 써클을 설치하는 걸 버릇으로 두던 진혜는 바다 속에도 써클을 설치해두기로 하였다.
헤븐즈 게이트는 주기적으로 신성력을 충전하며 관리하지 않으면 열흘에서 보름 사이에 소멸해버리지만, 항상 만약에 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수를 남겨두는 건 좋았다.
그래서 바다를 방문한 김에 그녀는 육지가 보이지 않는 영역까지 잠행했다.
보통 인간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캐릭터인 진혜에겐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깊이가 낮은 서해 바닷물 속에선 다른 캐릭터를 죽이기커녕 데미지를 줄 수도 없을 테지만, 어느 방향이 육지인지도 알 수 없는 망망대해라면 발을 묶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진혜는 적당한 장소에 써클을 설치한 뒤, 그것을 통해 귀환했다.
만약 이 써클을 진짜로 사용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이동된 녀석은 돌아오기 위해 상당히 고생 좀 할 것이다.
차라리 방향을 잘못 잡아 아예 중국으로 넘어가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긴 힘들 거란 걸 진혜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이 써클로 이동시킬만한 대상이라면 캐릭터 말고는 없을 테니까.
이동한 게 캐릭터라면, 그것도 플레이어와 떨어진 상태라면, 분명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돌아오려 할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가 반대 입장이었어도 그러했을 테니까.
그리고 실제로 진혜의 예상대로 되었다.
“육지가 어디야!!”
레반이 다짜고짜 중국인 어부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리며 외친 말이다.
망망대해에서 방향을 잡지 못한지 한참.
저 멀리 떠다니는 배 무리를 발견하자마자 초고속으로 헤엄쳐왔다.
그 힘을 주체 못해 가장자리 배 측면을 정통으로 들이박아 침몰시키고 말았지만 알 바인가.
지금은 그것보다 주인인 요현에게 돌아가는 게 더 급박한 일이었다.
“대답해! 육지가 어디냐고!!”
“끄아악!! 이놈이 뭐라고 떠드는 거야!?”
그러나 레반이 쓰는 언어는 한국어다.
율이 게임을 만들 때 언어를 따로 설정하기 귀찮았던 건지, 게임 내 인터페이스는 물론, 게임 세계의 문서기록, 문명인들이 사용하는 언어까지 전부 한국어로 통일해버렸다.
따라서 레반이 쓸 수 있는 언어도 한국어밖에 없었다.
반면 이곳 선원들은 모두 중국인들이다.
한국에 온 것이라고는 영해 침범밖에 해 본적 없는 자들이 한국어를 알아듣겠는가?
배울 생각 자체가 없었고, 설령 나포되더라도 해경 쪽에서 알아서 중국어로 통역해 대화를 시도해주니 배울 필요성은 더더욱 없었다.
멱살 잡힌 중국인 어부의 입장에선 웬 외국인 괴한이 알 수 없는 언어를 떠들며 이쪽을 겁박하고 있는 걸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이 자식!”
보다 못한 동료 선원 하나가 등을 훤히 보이고 있는 레반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자루를 꽉 준 두 손과 정확히 뒤통수로 향하는 도끼날. 명백히 살의를 가지고 저지른 행위였다.
빠악!!
“크아아악!!”
일격은 훌륭히 적중해 들어갔다.
그러나 터져 나온 비명 레반의 것이 아니었다. 도끼를 휘두른 어부 쪽이었다.
자루까지 통짜로 된 쇠도끼가 물에 젖은 종이처럼 한껏 우그러지고, 그 충격이 고스란히 팔로 전해진 어부의 팔도 정상이 아니긴 마찬가지였다.
레반이 고개를 뒤로 돌린다.
가뜩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는데 귓가에서 앵앵거리는 벌레를 발견한 듯 그의 눈빛은 살벌했다.
“사, 살려…….”
레반은 그 어부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알아듣지 못했다. 알아들을 마음도 없었다.
설사 알아들었다고 해도 가만히 놔두겠는가. 죽일 생각이었으면서 자신은 죽이지 말라는 뻔뻔함에 주먹에 힘만 더 해졌을 것이다.
퍼억!!!
파리 내쫓듯 휘둘린 팔에 그 어부의 얼굴이 치여 날아갔다.
갑판 위를 사정없이 굴러간 끝에 난간에 걸쳐서 널브러진 어부의 갓 잡아 올린 문어처럼 보였다.
어부의 턱에서 코까지 이르는 얼굴 부위가 함몰되어 피범벅이야 차라리 좀비가 예뻐 보일 모양새가 되었다.
죽은 건가 했지만 간헐적으로 꿈틀거리는 몸하며, 미약하게 쌕쌕 거리며 들려오는 숨소리로 보아 가까스로 숨은 붙어 있는 모양이다. 그조차도 머지않아 끊길 듯 보였지만.
무기를 휘두른 것도 아니고, 겨우 손짓 한 방에 어부를 이 꼴로 만든 모습을 보고 다른 어부들이 오싹해졌다.
사람들만 있어야 할 갑판에 웬 듣도 보도 못한 맹수 한 마리가 섞여 있는 기분이었다.
“저, 저건 대체 뭐야?”
선장도 당혹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해경 문제만 해도 바빠 죽겠는데, 웬 인간 병기 같은 외국인 하나가 배에 올라타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야, 다른 배에 인원들 전부 불러와! 뭔가 위험한 놈 같으니 쪽수로 밀어내야겠어!”
선장은 아직까진 자신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쇠사슬로 연결된 선박들에는 총 100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상주해 있었다.
저임금으로 노예처럼 굴릴 수 있는 노동자들. 이들의 쪽수야 말로 최대 무기였다.
가장자리 쪽 배에서 소동이 일어났는데,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인지 다른 쪽 배에서 사람이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직접 부르기 위해 근처에 있는 부하에게 시켰을 때였다.
“야! 거기 왕빠딴 새꺄! 빨리 안 움직여?!”
부름에도 응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부하에게 화가 난 선장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레반이 있는 곳과 정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 선장. 저거…….”
레반의 접근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던 그 어부는 이런 쪽에 감각이 민감하기라도 한 것일까.
다른 곳의 이변을 눈치 챈 그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배 횡렬의 반대편을 가리켰고, 선장이 그 손가락을 따라 눈을 돌리기도 전에 크나큰 폭발이 일어났다.
쿠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횡렬 중 끝에서 세 번째 선박이 느닷없이 터져나갔다.
정말로 말 그대로 터져나간 것이다.
갑판에서 조타실에 이르기까지, 불꽃놀이에서 폭죽이 산화하듯 갈가리 쪼개진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그렇게 터져나간 배 밑바닥에서 웬 은발의 아름다운 여성이 걸어 나왔다.
물에 젖어 몸에 딱 달라붙은 머리카락과 옷.
오랜 배생활로 여자 한 번 본 적이 없는 어부 입장에서는 절로 음심이 일어날 듯한 자태지만, 그녀의 양손에 쥐어져 있는 처참한 살덩어리를 본 순간 그런 마음은 쏙 들어가 사라져버렸다.
배에 있던 선원들이 끔찍한 몰골이 된 채 그녀의 손에 질질 끌려 나오고 있던 것이다.
“정말 미치겠네! 어떻게 된 게 말이 통하는 놈이 하나도 없어!”
레반과 마찬가지로 배에, 그것도 이미 깊숙이까지 뒤져본 레테라가 외쳤다.
끌고 나온 사람들을 쓰레기 버리듯 배 밖으로 던져버린 뒤 그녀는 레반을 돌아보았다.
“야, 근육 돼지! 지도를 찾아! 뭐하는 놈들인지 몰라도 바다 위를 항해하는 이상 지도와 나침반 정돈 있겠지!”
“오케바리! 지도란 말이지!”
평소에 서로 으르렁 대던 두 사람도 지금은 대동단결해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자신들을 이곳으로 날려 보낸 게 캐릭터라면, 요현은 현재 그들의 보호 없이 캐릭터 대면하는 위험해 노출되어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캐릭터라면 가장 눈이 돌아갈 만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행동도 평소 이상으로 과격했다.
지도를 찾으라는 말에 다짜고짜 조타실 벽을 쳐부수며 진입하는 것이 그 예였다.
쿠콰과아아앙!!!!
“지도!! 지도 내놔, 이 새끼들아!!”
콰가가각!!! 콰아아아앙!!!
“말도 안 통하는 놈들은 걸리적거리지 말고 비켜!! 이쪽은 한시가 급하다고!!”
콰아아아앙!!!
단단히 뭉치고 있던 선박들이 눈이 돌아간 두 맹수에 의해 실시간으로 유린당하고 있었다.
어부들은 그러한 폭거를 막을 수 없었다.
철판을 맨손으로 구기며 배를 헤집는 사이보그 같은 녀석들을 무슨 소리 막는단 말인가?
휘말리지 않게 배 난간을 붙든 건 예사요, 심한 경우는 배를 버리고 바다에 뛰어들기까지 했다.
“히, 히이이이익!!!”
부하들은 통제가 안 되고, 연결된 배들이 차례차례 부서지며 침몰하는 미칠 것 같은 상황에 선장도 아무것도 못하고 조타실이 바닥에 웅크리고 있어야 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그런 조타실의 양옆의 벽이 무서운 굉음을 내며 터져갔고, 레반과 레테라가 그 안으로 들어왔다.
“찾았다, 지도!”
“나침반도 있어!”
바닥에 웅크린 선장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레반과 레테라는 각자 지도와 나침반을 회수했다.
그러나 지도를 확인한 두 사람에 얼굴은 곧 구겨졌다.
“뭐야, 이 이상한 글자들은? 알아 볼 수가 없잖아?”
레반이 낯선 중국어와 어지럽게 그어져 있는 항로를 보며 눈썹을 구기고 있을 때, 레타라는 지도 가장 자리에 있는 땅의 모습에 주목했다.
“이 모습 도서관 책에서 본 적 있어. 아무래도 산둥 반도와 한반도 사이에 있는 바다 같아.”
“어째 말이 안 통하더니 중국 쪽에서 온 놈이었어?”
“동쪽으로만 가면 오라버니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겠지만, 가능한 쓸데없는 시간 소모를 줄이고 싶은데…….”
땅 모양에서나마 조금 전 자신들이 있던 무재시의 위치를 특정하던 레아는 지도를 뒤집은 뒤, 여전히 바닥에 벌벌 떨고 있는 선장을 향해 물었다.
“현재 위치 찍어 봐.”
“네, 네에?”
선장이 말을 알아듣지 못하자 레테라는 배 바닥을 탕탕 두드리고 지도를 가리키는 제스쳐를 지으며 다시 말했다.
“이 배!! 현재!! 위치!! 찍어 보라고!!”
말이 탕탕 두드리는 거지, 실제로는 철판 바닥이 음푹 파이고, 배 전체가 출렁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었을까.
가까스로 레테라가 원하는 바를 인지한 선장이 허겁지겁 지도 위에 자신들의 위치를 찍었다.
그것을 확인한 레테라는 현재 위치에 무재시를 잇는 최단 경로를 그렸고, 나침반을 통해 그곳으로 가기 위한 방향을 확인했다.
“좋아! 돌아가는 방향은 알았어!”
“아까 지도 찾다가 배 모터 뜯어냈는데 이걸로 돌아갈까?”
레반의 손에는 도대체 어디서 뜯어온 것인지 모를 모터와 대형 프로펠러가 쥐어져 있었다.
“그것 보단 우리가 헤엄쳐서 가는 게 더 빠를걸.”
“하긴 그러네.”
쓸모없겠다고 생각한 레반은 덜렁거리던 모터를 냅다 집어던졌다.
정확히 자신들이 돌아가야 할 방향을 향해서였다.
콰아아앙!!!
그렇게 구멍이 뚫린 벽 너머로 드넓은 대해가 모습을 드러냈고, 레테라와 레반은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몸을 날렸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오라버니!!”
“지금 저희가 돌아갑니다, 형님!!”
풍덩!!
그렇게 한바탕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간 두 사람은 처음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바다 속으로 사라져 갔다.
사방이 뻥 뚫린 조타실에 홀로 남겨진 선장만이 영혼이 빠져나간 표정으로 구멍을 통해 밀려들어오는 바닷물을 바라볼 뿐이었다.
“뭐, 뭐였던 거야, 방금 그건…….”
우르르릉!!!
“……!!”
하지만 두 사람이 사라졌다고 전부 끝난 게 아니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확실히 이들은 여기서 끝난 거다.
레반과 레테라의 의해 손상된 배들이 모조리 바닷물 속에 가라앉고 있었고, 가까스로 떠 있는 배조차 연결된 쇠사슬 때문에 함께 잠겨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대부분의 선원이 바다에 빠진 채 허우적거렸고, 선장도 타이타닉을 재현하기 직전인 배 끝에 올라서서 다가오는 해경 보트를 향해 팔을 흔들었다.
“살려주세요, 해경 나리!! 살려주세요!!”
그리고 여느 때처럼 불법 어선 단속을 위해 달려왔다가 눈앞에 펼쳐진 괴상한 광경을 목격한 해경들은 당황스런 음성을 흘려야했다.
“이게 뭔 난리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