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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116화 (116/173)

〈 116화 〉 싸움은 그만! ­ 2

* * *

카아아앙!!!

식은땀이 흐른다.

카아아앙!!!

조바심이 난다.

투콰아앙!!! 카아앙!!!

벌써 수 백 번이 넘어가도록 육중한 메이스를 휘둘렀다.

그럼에도 눈앞에 벽은 전혀 허물어지지 않는다.

겨우 평범한 롱소드일 뿐이다.

제대로 된 파지법으로 쥔 게 아니라, 그저 어설프게 방패 흉내를 내도록 이상하게 쥐었을 뿐이다.

본래의 기능성에서 벗어난 사도(??).

그럼에도 그것은 놀랍도록 충실히 방패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질량은 수십 배는 더 나갈 육중한 메이스였음에도 강화조차 되지 않은 낡은 롱소드를 뚫을 수가 없다.

진혜가 어떤 식으로 메이스를 휘두르든, 레아가 쥔 롱스드는 그 힘의 방향을 한쪽으로 흘려보내거나 반발하듯 튕겨내며 대응해오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다.

날아오는 힘, 맞대응하는 힘, 무기의 중량, 형태, 각도, 관성, 힘이 쏠리는 방향, 근육의 반응……. 그 모든 걸 병적일 정도로 세세하게 컨트롤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광경이다.

그런 걸 레아는 당연한 듯 행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저 잘 막는 용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빠아아악!!!

“큭……!!!”

메이스가 밀려나면서 생긴 틈새에 레아의 주먹, 혹은 발차기가 귀신 같이 파고들어 오며 타격한다.

물론 그런다고 중갑으로 무장한 몸에 닿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두꺼운 철갑을 전체를 울리는 충격, 얼얼한 감촉, 그 둔탁한 피로감은 서서히 진혜의 몸에 쌓이고 있었다.

무기 없이 맨주먹만으로도 이런 위력이라니.

만약 중갑을 우그러뜨리기 충분한 위력의 무기가 레아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면 승부는 진작 났을 것이다.

“애초에 탱커란 뭘까? 그냥 어그로만 잘 끌고, 잘 막기만 하면 그게 탱커일까?”

쿠우우웅!!!

헤븐즈 게이트에 의한 진혜의 이동에 무섭도록 반응하면서 파고 든 레아가 일격과 함께 말을 날린다.

“탱커는 이기적이어야 해. 나를 포함한 아군에겐 단 하나의 데미지도 입어선 안 되지만, 적은 이쪽이 일방적으로 때리는 대로 얻어맞아야 하지. 상대가 100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쪽으로 단 하나도 통과시켜선 안 되며, 이쪽이 1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모조리 때려 박을 수 있을 만큼의 틈새를 만들어내야 하지. 그런 치사할 정도의 불균형이 바로 탱커가 노려야할 지향점이란 말이야.”

빠아아악!!!

공격형 탱커로서 한 수 가르쳐준다는 말을 지키듯, 레아는 싸우는 와중에도 여유롭게 훈수를 이어갔다.

진혜는 그것을 잠자코 들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분명 무기도 방어구도 앞서 있는 건 진혜였건만, 순수한 피지컬 하나로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진혜와 레아는 같은 공격형 탱커다.

하지만 다르다.

단순히 적을 이기기 위해 공격적으로 운용해온 진혜와 달리, 레아는 그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이기기 위해 공격을 운용해왔다.

이는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달랐다.

이 레아의 주인 플레이어는 도대체 무슨 광기를 가지고 캐릭터를 키웠단 말인가?

“우리 망할 아버지? 아주 그냥 미친놈이었지.”

진혜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레아가 씨익 미소 지으며 말했다.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게임 속에선 레벨1 챌린지, 노방어구 챌린지, 맨손으로 보스 때려잡기 챌린지나 즐기는 희대의 변태 새끼였거든.”

“너도 같이 즐겼잖아!! 어디서 혼자만 꽁무니를 빼고 있어!!”

우려스러운 눈으로 그녀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요현이 참지 못하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게임 캐릭터와 연결되었던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닌데, 그가 그녀를 모르겠는가.

그 괴랄한 도전을 즐겼을 때, 레아 또한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는 건 요현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캐릭터와 함께 느끼는 고양감이 마음에 들었기에 더욱 그런 변태적인 챌린지에 빠져들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사정을 이해할 리 없는 진혜는 싸우는 와중에도 괴생물체를 바라보듯 이쪽을 힐끔거렸고, 옆에 있던 안범석도 마찬가지의 눈을 하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요현에게로 잠시 분산되려던 주의가 그 소리로 인해 다시 싸움터로 집중된다.

두 사람의 싸움은 이미 레아 쪽으로 기운 상태다.

싸우는 동안 레아는 헤븐즈 게이트를 위한 써클의 위치를 모조리 파악했다. 진혜가 여유분의 써클을 남겨둘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공격은 매서웠다.

그럼 이제 남은 흐름이야 뻔하다.

헤븐즈 게이트가 발동할 때 생기는 그 찰나의 빛을 악착같이 추격하여 진혜를 공격하고, 그녀가 피하면 그곳에 나타난 써클을 때려 부수는 것이다.

덕분에 진혜가 기동력을 살릴 기회가 점차 줄어들고 있었고, 설사 써클 개수에 여유가 있다 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격렬한 싸움에 이미 진혜는 마나도, 체력도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

콰아아아앙!!!

또 다시 레아의 공격이 무섭도록 매섭게 날아와 꽂혔다.

얼굴을 감싸던 투구의 한쪽이 찌그러지고, 진혜의 고운 뺨에 찢어진 상처가 선명히 남았다.

풀무장인 상대를 맨주먹과 피지컬만으로 찍어 누르다니, 게임이었으면 흥분해서 밤에 잠도 못 이룰 짜릿한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이제 충분히 싸웠잖아!! 그만해!!”

“ㅈ까!! 아직 멀었어!!”

참 오지리도 말을 안 듣는다, 레아 저 녀석은.

어쩌지. 이러다 진짜 사단 날 거 같은데.

롱소드를 회수할까? 아니. 안 돼.

저 보잘 것 없는 롱소드 하나가 그나마 증명 가능한 나와 그녀 사이의 유대다. 억지로 회수한다고 싸움을 멈출 리도 없고, 도리어 나를 향한 반발심만 키울 것이다.

다른 건 없나? 싸움을 멈출 방법.

‘레반과 레테라만 있었어도…….’

확실히 그들이라면 레아와 진혜의 싸움을 중재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헤븐즈 게이트를 통해 날려졌다는 건 조금 전 진혜의 입으로 증명되었다.

그 두 사람을 데리고 올 수 없을까?

헤븐즈 게이트를 잘만 이용하면…… 무리겠지.

진혜는 나와 레아를 통틀어 적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순순히 내 말에 응해줄 리 없었다.

애초에 이 싸움도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는 불신 때문.

다짜고짜 레반과 레테라를 날려버린 진혜나, 그런 그녀를 때려눕히려는 레아나 불안의 싹을 잘라버리려는 행동 동기는 같았다.

어떻게 해야 두 사람에게 서로 적이 아니라는 걸 인식시킬 수 있는 거지?

으득! 으득!

“……안범석 씨?”

최대한 지혜를 짜내려 머리를 벅벅 긁고 있을 때, 이상한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의 상태가 이상하다.

우람한 근육이 아깝게 잔뜩 수그린 몸.

시선은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애꿎은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씹어대고 있다.

그러면서 의미불명의 소리를 중얼거렸다.

“나약한 놈, 나약한 놈, 나약한 놈, 나약한 놈……!”

“아, 안밤석 씨?”

뭐지? 이 양반이 프로틴을 잘못 먹었나, 갑자기 왜 이래?

가뜩이나 진혜와 레아 때문에 골치 아픈데, 그나마 진혜의 플레이어라는 양반은 싸움을 말릴 생각은 안 하고 위험한 눈빛으로 진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공포에 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망할 아버지는 그만 싸우라며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지만 그녀는 무시했다.

그는 레아가 싸우는 상대의 눈빛을 정면에서 확인하지 못하니 저란 태평하기 짝이 없는 소릴 하고 있는 거다.

콰아앙!!!

“크윽……!!”

레아의 발차기에 정통으로 맞은 진혜의 투구가 날아갔다.

핏기가 사라져 창백해진 얼굴.

투구 너머로 일격을 연달아 때려 박았기 때문인지 여기저기가 멍들고, 호흡은 거칠었으며, 땀이 범벅인 피부를 그녀의 머리카락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고운 미모가 엉망이 되었다.

그에 비해 레아는 살짝 몸이 달아오른 정도. 방금 웨밍업을 마친 듯이 쌩쌩한 상태다.

“뭐라고 할까……. 김빠지는 녀석이네.”

“…….”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는 진혜를 향해 레아가 말했다.

제법 손맛은 느껴지는 상대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역량이 떨어지는 건 아니야. 하지만 지나치게 몸을 사리고 있어. 헤븐즈 게이트로 기동성을 높이는 모습을 보고 나처럼 공격적인 싸움을 선호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런데 조금만 불리해지면 금세 위축되는 게 보이거든.”

레아는 캐릭터의 성격이 플레이어의 플레이 성향을 따라간다는 사실은 모른다. 그러나 캐릭터와 플레이어가 서로 영향을 줄 것이라는 건 레아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보통 캐릭터의 싸움 스타일을 보면 그 주인이 어떤 성격인지 조금은 보이는 법이다.

“평소에도 그렇게 허세 가득한 겁쟁이처럼 싸워왔냐? 네 주인이 어떤 인간인지도 뻔하구나.”

“……닥쳐라.”

이드득. 이를 가는 소리를 내며 진혜가 말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이…… 우리에 대해 뭘 안다고 떠들어!!”

“늬들? 몰라. 알 생각도 없어. 이쪽을 이해해줄 생각도 없는 녀석들이 뭐가 이쁘다고 이해해줘?”

롱소드 자루로 어깨를 툭툭 두드리던 레아가 검끝을 한쪽으로 향했다.

그녀의 부모, 플레이어이자 주인인 요현이 있는 방향이었다.

“이 바보는 든든한 아군이 실종되고, 너희들이 위험한 놈일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가능한 싸움을 피하려고 시도 했어. 늬들이 우리를 이해해줬으면, 정말 싸움을 바라지 않았다면 가장 먼저 해야 했던 건 기습도, 무장도, 뭣도 아니라 무기를 내려놓는 거였다고.”

“웃기지 마라. 네놈들을 뭘 믿고…….”

“못 믿지? 나도 못 믿어. 그러니까 이 자리에서 널 작살내려는 거고.”

신요현이 고집부리지 않고 본래 그녀의 장비를 넘겨주었으면 이런 말싸움을 할 것까지 없이 진즉 정리 되었을 것이다.

현재로선 이미 결판은 났다고 봐도 될 구도였지만, 레아는 투기를 거두지 않았다.

아직 진혜의 눈빛이 살아있다.

그저 살아있기만 할까. 궁지에 몰리면 몰릴수록 더욱 사납게 번들거리기까지 한다.

절대로 져서는 안 된다는 것처럼.

무슨 수를 써서도 이기겠다는 것처럼.

전투 중 간혹 보이는 몸을 사리는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투기였다.

저런 진혜의 눈빛은 저쪽 세상에 있을 때 종종 보아왔다.

순수하게 호승심이 강한 경우도 있었지만, 승리에 집착에서 무슨 짓이든 서슴치 않는 캐릭터가 대부분이었다.

살기 위해서 뭔들 못하겠냐만은, 이런 놈들은 대개 눈살이 찌푸려지는 비매너 행위를 해오곤 한다.

그리고 진혜가 이렇다는 건 플레이어 자체에도 뭔가 그럴 만한 요소가 있다는 것.

겉은 멀쩡한 척 꾸미고 뒤로는 무슨 흉계를 꾸밀지 모르는 녀석들과 한가하게 대화나 하자고?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

그때, 진혜가 갑자기 뭔가를 느낀 듯 한쪽을 바라보았다.

바로 요현과 그녀의 주인인 안범석이 있는 방향이었다.

그 순간 스치는 건 작은 망설임, 양심의 고통, 그러나 해야 한다는 의지와 독기.

직후, 진혜가 뒤로 몸을 날렸다.

다시 땅에 맞닿은 발밑에서 뿜어져 나오는 건 원형 모양의 빛이었다.

헤븐즈 게이트의 발동이었다.

지금까지 헤븐즈 게이트는 진혜의 공격 신호와 다름없었다. 단거리 공간 이동으로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덮쳐와 레아는 노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헤븐즈 게이트를 본 순간 대비를 해야 했지만…….

“그럴 줄 알았다, 개 같은 년.”

레아는 대비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다는 듯이.

왜냐하면 진혜가 노리는 건 자신이 아니었으니까.

휘번뜩.

어느 한 곳을 무섭도록 노려본 그녀가 한 손에 쥐고 있던 롱소드를 투척했다.

비가 내리는 날씨에 얼마나 거칠게 싸워댔는지, 사방에 자욱한 흙먼지를 꿰뚫는 하나의 섬광.

쏘아진 화살처럼 날아간 롱스드 끝에 있는 건…… 다름 아닌 요현이었다.

“……응?!”

이상해진 안범석의 상태를 살피다 쎄한 느낌이 들어 공터를 돌아보던 요현은, 곧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온 흉악한 날붙이에 놀라 그 자리에서 경직되었다.

롱소드는 요현의 머리카락 몇 올을 자르며 스쳐지나갔고, 그의 바로 뒤에서 귀를 찢는 금속음이 터져 나왔다.

카아아앙!!!

“치잇!”

요현을 스치며 지나간 롱소드는 바로 그의 뒤편에 있던 진혜에 의해 튕겨져 나왔다.

그를 덮치려는 듯 손을 뻗던 진혜였지만, 정확히 그녀의 미간으로 파고들려는 롱소드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요현에게 내민 손을 그대로 위로 당겨 갑주로 롱소드를 막아내었다.

덥썩.

튕겨져 나간 롱소드는 순식간에 치고 들어온 레아의 손으로 되돌아갔다.

롱소드를 붙잡자마자 그녀는 몸을 휘돌렸고, 롱소드의 무게로 기세를 탄 반대편 주먹을 내지른다.

주먹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안범석이 있는 방향이었다.

단순한 위협이 아닌 듯 진심을 담은 살의, 감히 자신의 주인을 노렸다는 노골적인 분노의 표출, 쏘아지는 진혜의 신형, 경악한 요현의 눈빛, 모든 것이 한 순간에 겹쳐지고 일순간에 터져 나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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