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 마음에 남은 고통 1
* * *
요현이 휘둘리는 흉기를 보며 율에게 밸런스 패치 요구를 날리던 시간대에서부터 대략 3시간 전으로 돌아간다.
장소는 서해안 도로.
바다와 맞닿아 있는 도로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며, 그 위를 조명등 하나에 의지한 채 신나게 질주하는 바이크 한 대가 있었다.
부우우웅.
『오늘 오후 5시경, 서해에서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어선 14척이 집단으로 침몰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해경이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대부분의 배는 침몰에 선원들이 물에 빠진 뒤였으며, 나포를 피하기 위해 선박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서로 추돌해 사고가 일어난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구조된 중국어선 사람들은 ‘한국과 미국이 공동 계발한 생물 병기가 자신들을 공격했다!’라는 황당한 소리를 이어가고 있어, 수사기관은 약물 환각의 의한 사고에도 가능성을 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중국 놈들은 남의 나라 앞바다에 멋대로 들어와 놓고 뭔 지랄들인지 원…….”
바이크를 몰고 있던 남자는 휴대용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들으며 혀를 찼다.
그의 이름은 범균.
불곰파에 행동대장으로서, 얼마 전엔 도심 폭주 운전 혐의로 조사받다가 겨우 풀려난 상태였다.
그날의 일은 다시 떠오르기만 해도 치가 떨린다.
내가 가는 곳이 바로 길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건물 옥상이든 어깨가 끼일 것처럼 좁은 골목이든, 정말로 장소를 가리지 않고 초고속으로 바이크를 몰던 레반.
조금이라도 팔에 힘을 빼는 순간 뒤로 날아가 버리는 극한의 상황에서 생명줄을 붙잡듯 필사적으로 그에게 매달려야 했던 자신.
뒤로는 시끄럽게 사이렌을 울리는 경찰차. 하늘엔 조명을 날리며 쫓는 헬기.
그 후 다 끝난 줄 알았건만 폭주 운전 혐의로 자신을 끌고 가던 경찰.
정말 억울했다. 운전을 한 건 그 괴물인데 왜 바이크의 소유주일뿐인 자신이 조사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심지어 그 바이크는 레반이 가지고 가버려 이젠 있지도 않았다.
그가 속한 불곰파의 보스 우정석도 최소한 양심은 있었던 것인지, 바이크를 새로 뽑을 돈과 함께 휴가를 주었다.
그렇게 해서 범균은 새로운 애마와 함께 달리며 자유라는 것이 뭔지 실감하고 있었다.
과거에 질서를 지키려는 사람들을 고리타분한 멍청이들이라 욕하고, 폭주족이 되어 날뛰는 자신을 가장 자유롭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 자신을 뽐내기 위해 더욱 더 위험한 폭주 행위를 일삼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자신은 그저 눈에만 닿는 좁은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잘났다고 자만하던 것뿐이었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다. 교통 법규 정도 안 지키는 정도로 자기가 진짜 자유인이 된 거라고 착각하다니. 진정한 광란도 모르는 철부지가 품을 만한 생각이다.
광란의 질주에 몸을 맡기는 것만이 자유를 증명하는 건 아니다.
달리고 싶을 때 달린다. 멈추고 싶을 때 멈춘다.
쉬고 가고 싶을 땐 어딘가에 바이크를 멈춰 서서 풀밭에 드러누우면 그만이고, 어딘가로 가고 싶을 땐 다시 바이크에 올라타면 된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제 진정한 자유 아니겠는가.
“허허허…….”
그렇게 범균은 조직폭력배엔 어울리지 않는 해탈한 미소를 지으며 바이크를 몰았다.
레반에게 휘둘린 트라우마가 그를 인간으로서 한 층 더 성장시킨 모양이다.
“……응?”
이상한 느낌을 받은 건 그때였다.
장소는 서해 바다 쪽이었다.
밀물 때라 도로의 외벽 바로 아래까지 뻗어온 바닷물. 간간히 밀려오는 파도의 포말 말고는 별 특별할 것 없는 밤바다의 모습이다.
그랬을 테인데…….
콰콰콰!!!
달빛 아래에 비친 바다 한가운데에서 물이 솟구친다.
목욕탕에서 흔히 보단 수압기와 비슷해보였다. 그런데 목욕탕도 아닌 장소에 수압기를 설치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 밤중에 돌고래라도 나타나 물장구를 치는 걸까? 그러나 돌고래치고는 너무 빠르다는 사실이 묘했다.
물장구치고 있는 듯한 물줄기는 곧장 육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솟구치는 물에 양은 점차 늘어만 갔다.
그렇게 해서 다다른 연안.
정체불명의 물체가 발이 닿는 지점까지 다다른 것처럼, 헤엄에서 구보로 이동방식을 변경한 것처럼, 그 스피드가 갑자기 폭증했다.
촤아아아아악!!!
모세의 기적처럼 바닥이 갈라지는 초자연현상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대체 그 중심에선 얼마나 큰 압력이 일어난 것일까.
바닷물을 일순 지워버릴 정도로 강력한 여파를 남기며 두 개의 그림자가 곧장 날아들었다.
바로 범균이 있는 방향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충돌.
대포처럼 쏘아진 두 개의 그림자가 범균을 치고 지나갔다는, 그런 끔찍한 사태가 벌어진 건 아니었다.
해안에서 도로까진 사람의 키 하나에 해당하는 단 차가 있었다.
그 그림자가 박은 것은 도로 바깥의 외벽 부분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범균의 안전을 보장하진 못했다.
측면에서 들어오는 상식 밖의 힘을 견디지 못한 도로가 그대로 휘어지고, 갈라지며, 종국에는 하늘을 향해 우뚝 치솟아버렸다.
마치 지진이 일어날 때 지각이 휘어진다는 습곡처럼 말이다.
난데없이 하늘을 향한 발판처럼 솟아버린 도로.
그럼 어떻게 되겠는가?
아무것도 없는 평지인 줄 알고 신나게 달리고 있던 범균의 바이크는.
부아아앙!!!
하늘을 날았다.
짤막한 부유감, 끌어당기는 중력 등을 느끼며 범균이 망했음을 직감했다.
우당탕탕!!!
바이크와 함께 사정없이 도로 위를 구르는 범균.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레반과 함께한 광란의 레이스에 대한 충격으로 평소엔 쓰지도 않던 보호 헬멧을 쓰기 시작한 범균이었다. 그것이 그의 생명을 구했다.
만약 쓰지 않았더라면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그의 머리는 두개골이 드러날 때까지 갈려나갔을 것이다.
“크, 크아아아악!!! 뭐야, 대체!!”
다만 생명만 무사할 뿐인지 다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몸 여기저기가 긁히고, 뼈는 손상된 듯 욱신거렸다.
바닥에 구르는 걸 멈추고 나서야 비로소 비명을 지를 여유를 되찾은 범균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타악! 탁!
정체불명의 힘에 의해 엉망이 되어버린 도로 위에 두 개의 인영이 내려앉았다.
틀림없이 아까 바다에서부터 나타난 두 그림자였다.
뭐지? 바다 속에 사는 괴물이 드디어 지상의 침략을 시작한 것일까?
하지만 나타난 건 물고기 괴물이 아니라 틀림없는 사람의 형상이었다.
물에 홀딱 젖은 남녀.
그 중 하나는 범균의 눈에도 익었다.
“다, 다, 당신은?!”
어찌 그 얼굴을 잊을 수 있겠는가!
미친개로 불리던 범균을 나이 팔십 먹은 스님도 도달하지 못할 해탈의 경지로 강제로 올려놓고 사라져버린 괴물을!
범균이 레반을 알아보고 소리를 내렸지만, 레반은 그쪽엔 시선 하나 주지 않았다.
옆에서 물에 젖은 지도를 펼치고 살펴보는 레테라를 바라보며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방향은!?”
“2시 방향으로 일직선! 산은 무시하고 달린다고 쳤을 때 예상 소요시간은 3시간!”
“젠장! 아직도 한참 남았네!!”
“누가 아니래!!”
타아앙!!!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도로 바닥에 확인사살을 남기듯 커다란 균열을 새기며 두 사람은 몸을 날렸다.
도로를 벗어난 숲으로 일직선.
나무가 쓰러지고, 바위가 부서지며, 잠을 청하던 동물들이 비명을 지른 소리가 지나간 뒤에야 부서진 도로는 적막을 되찾을 수 있었다.
폭풍 같이 자신을 휩쓸고 지나가버린 두 괴물 때문에 범균은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적막한 파도 소리와 몸을 관통하는 통증들이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말해줄 뿐이었다.
잠시 뒤, 범균은 정신을 가다듬은 범균은 옆을 돌아보았다.
뽑은 지 불과 이틀조차 되지 않은 그의 새 바이크가 지금은 망가진 채 검은 연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숨을 크게 들이쉰 범균이 곧 두 주먹을 땅에 내려찍으며 외쳤다.
“저 양반은 왜!!! 운명의 자석이 끌어당기는 것도 아닐 텐데, 왜 하필 여기에 나타나서 나를 괴롭히는 거야!!! 대체 왜!!!”
해탈에 도달한 줄 알았던 범균은 끝나지 않는 고통에 머리를 감싸 쥐고 울부짖어야 했다.
***
생각하자.
눈앞에 있는 건 UFC에 나가도 위화감이 없을 것 같은 헬창 트레이너고, 나는 방구석 게임 폐인이었다가 최근에 운동을 좀 해본 게 전부인 일반인이다.
상대 손에 쥐어져 있는 건 한 번 휘두르면 콘크리트 기둥을 안쪽의 철근째 뜯어내버리는 흉기.
반면 내 손에 있는 용기와 허세와 공기가 전부.
이런 걸론 상대가 안 된다.
대화를 시도한 노력도 결국 수포로 끝났다.
안범석의 저 돌아간 눈깔을 봐라. 지금 눈앞에 있는지 누군지도 분간 못하는 것 같았다.
“나약한 놈, 나약한 놈, 나약한 놈……!!”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릴 중얼거리는 건 덤이다. 나약한 놈이 뭔데? 나한테 하는 소리여?
그냥 이대로 도망갈까?
아냐. 출입문이든, 벽에 난 구멍이든, 그쪽으로 향하는 도중 따라잡히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콰아아아앙!!!
건물이 흔들리는 게 느껴진다. 레아와 진혜의 싸움이 이어지는 거겠지.
건물을 떠받드는 기둥 중 하나가 날아갔기 때문일까. 그 흔들림은 유독 크게 느껴졌다.
소리로 봐선 3층인가? 진혜가 몸을 피한 건지, 레아가 던져버린 건지 몰라도 그 부근에서 싸우는 건 확실하다.
싸움이 워낙 거세서 이쪽에서 일어난 이변은 눈치 못 챈 듯싶다.
‘지금 레아를 부른다면…….’
그녀라면 분명 내 목소리를 포착하겠지.
진혜와 싸우는 와중에도 이곳까지 달려올 것이다.
그것만으로 모든 게 끝난다.
이미 혼자서 진혜를 압도하고 있는 레아라면 레벨1 능력치에도 미치지 않는 안범석을 상대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가장 확실한 방범이며, 가장 간단하게 끝낼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안 된다.
지금 레아를 불러선 안 된다.
그녀라면 반드시 안범석을 죽이고 말 테니까.
레아가 지금까지 안범석을 건들지 않는 건 그가 선은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플레이어로서 한 발 떨어진 곳에 있었기에 그녀도 같은 캐릭터인 진혜만을 노렸다.
하지만 흉기까지 꺼내들고 날 공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녀는 안범석을 죽일 것이다.
내가 게임 속에서 늘 그러했듯이.
당하면 갚아준다는 게 신조였으니까.
살모사파 때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심지어 레아는 레반이나 레테라처럼 통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말린다고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하아…….”
복잡해진 머리 때문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직도 숨을 몰아쉬며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는 안범석을 향해 푸념을 늘어놓았다.
“거참, 나쁜 사람이었으면 처음부터 그렇게 굴던가. 애매하게 행동하니 뭐라 판단하기도 힘드네.”
사람이란 한 면만 보고서 판단할 수는 없다.
요 며칠간 헬스클럽을 다니면서, 나는 플레이어가 아닌 트레이너 안범석의 모습을 봐왔다.
가볍게 운동을 즐기려는 사람부터 진지하게 자신의 몸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그들을 응원하며 도와주었다.
처음 다루는 운동기구의 사용법을 자세히 알려주고, 퍼스널 트레이닝 중엔 성질 급한 회원이 숫자로 못 세냐면서 엉덩이를 걷어차고 화낼 때 그냥 쓰게 웃으며 넘어가던 사람이었다.
그 모든 모습이 연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이렇게 흉기를 들고 대치하는 상황에서조차 그를 죽이고픈 극단적인 마음까지는 들지 않았다.
“나도 참 귀찮은 성격이라니까. 그다지 고칠 마음은 들지 않지만.”
“후욱……!!”
거친 숨을 내뱉고 있는 안범석을 향해 두 주먹을 쥐어 보이며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역시 레아를 부를 순 없다.
답도 없는 쓰레기라면 모를까, 뭔가 사정이 있어 보이는 양반의 목숨을 빼앗게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전투태세를 갖추면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거 플레이어끼리 현실 PK 좀 하실라우?”
“우, 우아아아아악!!!”
그 말에 반응한 걸까. 아니면 내 전투 자세가 그를 자극한 걸까.
안범석은 아까와 같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쥔 것은 고작 단검 하나였지만, 그 특유의 덩치와 위압감이 더해지니 광전사 하나가 눈앞으로 달려드는 것 같았다.
그 광전사에 비하면 나는 한없이 초라하다. 하지만 싸울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그걸 가르쳐 준 게 다름 아닌 안범석 저 양반이었다.
“아이템 지정, ‘양크 부족의 야만 방패’ 소환!!”
쿵!!
“……!!”
그 순간 나와 안범석 사이에 나타난 건 나무껍질을 엮어서 만든 듯한 커다란 방패였다.
모서리를 바닥에 찍으며 우뚝 선 방패의 크기는 나는 물론 안범석을 뒤덮을 만큼 컸다.
양크 부족의 야만 방패 등급: 보통 분류: 중형 방패 방어력: 90 내규도: 50/50 필요 스탯: 근력10 기량6 「밀림의 양크 부족 전사가 사용하는 방패. 양크족 특유의 신장 때문인지 방패 또한 무게에 비해 무척 거대하게 설계했다. 괴물의 입처럼 꾸며놓은 앞면이 부정한 기운을 먹는다고 양크 부족은 믿고 있다.」
아이템 설명대로 방패의 앞면엔 괴물의 입과 같은 장식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향하는 방향은 안범석이 아니라 나다.
이 방패는 앞쪽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형태라 이렇게 소환할 필요가 있었다.
콰앙!!
괴물의 앞니를 털어버리려 작정한 것처럼 방패의 면을 후려쳤다.
모서리만으로 겨우 균형을 잡고 서 있던 방패가 순순히 밀려나며 뒤로 넘어진다.
바로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던 안범석의 머리 위로 말이다.
쿵!
안범석은 크기만 크지 가벼워 보이는 방패를 온몸으로 밀어내려고 하였다.
확실히 이것은 나무로 만들어져서 크기에 비해 무게가 무척 가벼웠다. 그래서 몸을 덮을 정도의 크기임에도 중형 방패로 구분되는 장비였다.
그러나 그 가벼움도 SoR의 기준이었다.
“으윽!?”
안범석이 당황스러운 음성을 흘렸다.
3대 500도 거뜬히 친다고 자부하는 그의 몸이 방패를 밀어내지 못하고 점차 기울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방패의 필요 스탯은 근력10, 기량6.
안범석의 신체능력보다 높았다. 들 수가 없는 것이다.
타앗!!
마무리를 짓듯, 나는 쓰러지는 방패 위로 몸 날렸다.
확실히 처음부터 레아에게 모든 걸 맡겨서 해결했으면 이런 수고스러움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내가 하는 선택들이 하나 같이 어려운 길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어려운 길? 가지 뭐,”
그런 게 바로 고인물 아니겠는가.
빠아아악!!
몸을 날린 그대로 체중을 실어 방패를 걷어찬다.
방패에 밑에 깔라지 않기 위해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안범석도 그 일격까진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넘어가고 말았다.
쿠우웅!!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