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128화 (128/173)

〈 128화 〉 사람을 찾습니다 ­ 2

* * *

새벽녘에 깬 통에 다시 자기엔 애매한 시간이었다.

나는 침대로 향하기보단 방 밖으로 나섰다. 어차피 일어난 거 평소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해야겠다.

­드르렁!

­…….

복도로 나오자 건너편 방에선 레반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옆방은 조용했지만 아마 가까이 귀를 대보면 새근거리는 소리를 내며 잠든 레테라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

레반과 레테라는 아직 꿈나라다.

저렇게 자고 있는 것도 처음에 비하면 나아진 거지, 이곳에 이사 왔을 시기엔 내가 방 밖으로 나오자마자 반응하여 번개처럼 튀어나왔었다. 덕분에 밤중에 화장실 갈 때마다 소란스러움을 겪어야 했다.

그들은 자면서도 내 움직임을 항상 감지하고 있었다.

말이 호위를 위해서지, 받는 사람 입장에선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오죽하면 며칠 동안 컴퓨터로 야동 한 번 못 볼 지경이란 말인가.

주기적인 유령 아가씨 성불 방법 탐색이라던가, 심부름 등으로 외출시켜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 않았다면 스트레스 때문에 미쳐버렸을 것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 생활에 익숙해져서 내가 새벽에 나오는 정도로 일일이 튀어나오며 반응하지 않았다.

다만 자면서도 감각을 깨우는 건 여전해서, 내가 바퀴벌레를 발견하고 ‘아’ 소리를 내는 순간 무기를 쥐며 튀어나올 게 뻔했다.

그들이 자극받지 않도록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오고 부엌으로 향하기 위해 거실로 향했다.

­……그런데 그 남자! 촌스럽게 체크무늬 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나온 거예요! 얼마나 놀랐는지! 하지만 얼굴이 잘생겨서 OK였습니다.

­와하하!

아무도 없는 거실에선 TV 화면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24시간 방송되는 케이블 방송의 예능 프로인 모양이다.

사람도 없는 곳에 전기세 아깝게 왜 TV를 켜놓은 지 의문이 들 수 있지만, 놀랍게도 보는 사람이 있었다.

“미경아, 거기 있어?”

­흐윽!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귀신이 흐느끼는 듯한 귀곡성이 들려왔다.

이미경. 이 집에 짱박혀 있던 지박령이다.

지금은 어째 애완동물에 가까운 포지션으로 함께 생활하고 있는 그녀는 살아있는 생물과 달리 잠이 없었다.

그렇기에 밤중에 심심한 그녀를 달래주기 위해 이렇게 TV를 켜놓는 것이다.

­으흑?

“아, 어쩌다 보니 일찍 일어나서 말이야. 잠이나 좀 깰 겸 커피나 타려고.”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레반, 레테라와 달리 미경의 모습을 볼 수도 없고, 말을 알아들을 수도 없는 나지만 유일하게 흐느끼는 귀곡성만은 들을 수 있었다.

오래 접하다 보니 귀곡성에 담긴 뉘앙스만으로 미경의 의사를 대충 알아들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아무리 그래도 유령과 태연하게 얘기를 나누는 광경이라니, 남들이 보면 기겁해서 뒤로 넘어갈 만한 광경이었다.

쪼르르르.

“후우! 후우! 후릅…….”

우려낸 커피를 잔에 따르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액체를 식히며 한 모금 머금어본다.

흠……. 맛있긴 하고, 잠을 깰 용도로선 제격이긴 한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율의 회사 건너편에 있던 노인이 운영하는 작은 카페를 떠올려본다.

노인이 타준 커피는 평범한지만 기억에 오래 남는 맛이었다.

한 번 재현에 보려고 여러 번 시도해보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역시 세월에 의해 다져진 노하우는 따라잡기 힘든 건가?

아무튼 잔에 따른 커피를 들고 부엌을 빠져나와 TV 켜진 거실을 지났다.

“곧 있으면 레반이나 레테라가 일어날 테니까 산책 잘 다녀와.”

­흐윽!

귀곡성으로 대답하는 이미경.

진짜 거의 애완동물 포지션이 된 거 같은데 그녀는 이걸로 괜찮은 걸까?

뭐, 죽었다고 해도 본인 인생이니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거실을 뒤로하고, 계단을 올라 내 방으로 돌아왔다.

타온 커피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컴퓨터를 켰다.

어젯밤에 커뮤니티에 올린 게시글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SoR가 서비스 종료되고 많은 관련 커뮤니티가 문을 닫는 가운데, 아직 몇 개의 커뮤니티는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중 방문자 수가 가장 많은 커뮤니티에 접속한다.

따뜻한 커피 한 모금으로 남아 있는 잠기운을 몰아내며 내가 작성한 게시글을 확인했다.

『SoR에서 ‘스콜’이라는 캐릭터 네임 사용하신 분 없으십니까?』

어젯밤 자기 전에 커뮤니티에 남긴 글이었다.

스콜을 찾기 위한 단서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해서 올려본 글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남기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장 위에서부터 달린 댓글들을 살폈다.

­들어본 적 없음.

­몰라요.

­걔가 누구여?

­내가 ‘스캇’이라는 네임 쓰긴 했는데.

└꺼져, 똥쟁이 새꺄.

└너 지난번 불담동 하늘다리 그 새끼지? 아이피 주소 똑같잖아.

내용은 짐작하던 대로였다.

MMORPG를 즐기는 유저가 얼마나 많은데, 특정 유저 하나만 기억하긴 힘들겠지.

이것도 소득이 없는 건가 하며 스크롤을 내리던 손가락은 어느 순간 불현듯 멈췄다.

스콜에 대해 언급하는 댓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스콜이라면 몇 년 전에 잠깐 번쩍하고 사라진 2인 길드의 그놈 아냐?

└아, 기억난다. 그 미친개 두 마리.

└타이탄 길드에서 사냥터 통제하니까 둘이서 쳐들어가서 초토화시킨 놈들?

└같이 다니는 여기사 캐릭터 쓰는 놈과 싸워봤는데 존나 미친 새끼더라.

└어떤 식으로?

└내가 100연발 석궁을 장거리에서 갈겼는데, 모조리 피하며 달려들더니 도끼로 대가리를 찍어버리더라고.

└와, 100연발 석궁을? 그거 피하기 엄청 어려운데. 개미친 게임 폐인이었나 보다.

“그 정도까진 막장은 아니었어! 단순히 파훼법을 알고 있던 거뿐이라고!”

나를 무슨 괴물인 듯 묘사해놓은 댓글을 발견하곤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버렸다.

스콜을 찾기 위해 올린 글에서 그와 함께 다니던 나에 대한 평가까지 듣고 말았다.

100연발 석궁은 고대 문명이 남겨놓은 무기 중 하나로, 개틀링 건처럼 초당 수십 발의 화살을 난사하는 미친 성능을 가졌다.

화살을 어마어마하게 소모하기 때문에 어렵게 얻게 된 사람도 잘 쓰지는 않는다. 대량에 화살을 구매하려면 그만큼 돈이 깨져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화살을 일일이 제작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소모된다.

결국 100연발 석궁은 돈 먹는 하마지만, 한 번 쓰면 확실한 효과를 보장하는 무기로 인식되어 왔다.

그런 무기를 파훼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스콜과 함께 서로에게 마구 갈기며 파훼법을 연구했기 때문이다.

나나 녀석이나 난관을 난관인 채 두기 싫어하는 성격을 가졌다.

그렇기에 SoR 속 PvP 매타에 영향을 줄 만한 100연발 석궁이 등장하자 바로 연구를 시작했고, 그 덕에 타이탄 길드를 털면서 쌓아놓은 재화를 모두 소모하는 해프닝까지 겪었었다.

그때 일을 떠올리자 무심코 웃음이 나왔다.

“나랑 스콜 녀석, 꽤 유명했구나?”

커뮤니티는 안 하고 게임에만 빠져 살던 나날이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지 잘 알지 못했다.

그냥 여기저기 사고치고 다니며 적당히 알려져 있겠구나 생각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커뮤니티 글을 확인해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뭔데? 그놈들 뭐하는 놈들이야?

­이미 죽은 게임에서 이런 얘기해 봤자 뭐해.

└장례식장에서 옛날 얘기 꺼내는 거지 뭐.

­SoR 2년차 미만으론 모를 만하지. 그놈들 엄청 유명한 놈들이었어.

­제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타이탄 길드 초토화, 최초로 뒤틀린 거인 2인 레이드 성공, 마슈벅시아 신전 최초 발굴, 현자 길리트가 주는 ‘불가능한 퀘스트’ 클리어.

└엄청 많네!

└어, 잠깐만. ‘불가능한 퀘스트’ 그거 클리어 할 수 있는 거였어!?

­드레이크 무리 사냥하다가 한스 강 댐을 무너뜨린 사건은 두고두고 회자될 만하지. 그곳 수재민 구제하느라 여기저기 뛰어다니기까지 하던데.

└앜ㅋㅋㅋ 내가 게임 시작할 때부터 한스 마을이 왜 물에 잠겨 있는지 궁금했는데, 이유가 그거였냨ㅋㅋㅋㅋ

­뭐랄까. 업데이트 한 번 없고, 유저들도 고여 가기만 하던 게임 세상에 갑자기 나타난 풍운아 같은 녀석들이었지. 난 마음에 들었어.

­난 예전에 우연히 만나서 채팅해본 적 있는데, 둘이서 대형 길드에게 싸움을 걸었다곤 생각 못할 만큼 예의 바른 녀석들이더라고.

­순 개새끼들이던데? 갑자기 나만 보면 공격해대서 하마타면 게임 접을 뻔했다고!

└그 녀석들이 시비 걸지도 않았는데 먼저 공격하는 경우라면, 상대가 초보자 괴롭힐 때밖에 없을 텐데?

└너 이 새끼, 초보자 사냥꾼이냐?

└너 현실에서 맞고 다니는 거 뉴비에게 풀지 마, 새꺄.

└나가 뒈져.

뭐랄까. 옛날 앨범을 꺼내 보는 기분이었다.

나조차도 잊고 있던 별의별 사건들이 SoR를 즐기던 유저들에게서 듣는 게 조금 낯간지럽기도 했다.

‘그래, 그런 일도 있었지’라며 내 입가에선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그런 미소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런데 그 녀석들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게 되었지. 한 명도 아니고 둘이 동시에.

­왜 사라진 거지?

­그놈들 행방 아는 놈 있어?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 게임 접는 거야 흔한 일이잖아.

“…….”

거기까지 읽던 난 모니터에서 시선을 뗐다.

옛날을 떠올리며 즐거웠던 기분이 다시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왜 한때 그토록 좋아했던 게임을 그만둬야 했는가.

왜 항상 기대감을 품으며 로그인했던 레아라는 캐릭터를 찾지 않게 되었는가.

왜 더 이상 그 녀석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꺼리게 되었는가.

“……젠장.”

의자를 뒤로 눕히며 팔로 얼굴을 덮었다.

게임으로 만난 인연이었지만, 난 정말로 그 녀석과 함께 모험하는 게 즐거웠다.

현실에서 뭘 하는 사람이었는지 모르고, 묻지도 않았다. 그저 온라인에서 만나는 스콜이라는 인물 하나를 두고 진지하게 마주했다.

그게 문제였던 걸까.

녀석에 대해 깊이 파고들지 않은 채 친하게 지냈던 게 문제였던 걸까.

이젠 녀석을 떠올릴 때마다 느껴지는 건 배신감.

그리고 그럼에도 믿고 싶다는 모순된 감정뿐이었다.

“후우…….”

한숨을 내쉰 뒤 다시 컴퓨터를 바라보았다.

이 불쾌한 기분이 싫어서 이제까지 계속 언급조차 하지 않고 도망 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마주해야 할 때다.

굳이 레아와의 약속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 나와 그녀에게 필요한 건 납득이다.

그런 식으로 끝나버린 녀석과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납득.

화해하는 것도 그렇고, 이대로 영원히 절교하는 것도 그렇다.

어떤 형태가 됐든 납득이 갈만한 결말이 필요하다.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나와 레아도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

“좋아.”

결심을 굳힌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녀석이 SoR 종료 소식을 접하고, 옛생각 때문에 우연히 커뮤니티를 방문할 확률은 어떻게 될까?”

확률은 낮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단서도 없는 녀석과 소통을 시도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온라인상으로는 안 돼. 장난삼아 사칭하는 가짜가 판칠 수 있어. 나와 녀석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키워드가 필요해.”

그 점을 감안하여 짤막한 글 하나를 작성한다.

그것을 한 커뮤니티에 올리고, 내용을 복사 붙여넣기 하여 다른 커뮤니티에까지 글을 올렸다.

됐다.

낚싯줄은 충분히 던져 놨다.

이제는 녀석이 제발 줄을 붙잡아주길 바랄 뿐이다.

피곤한 한숨을 쉬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을 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오라버니. 아침 식사 다 됐어요!”

“응?”

레테라의 목소리에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야? 시간이 벌써 그렇게 지났나?

커튼을 거둬 바라본 창밖은 날이 밝아 있었고, 컴퓨터 옆 탁상시계도 7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맙소사. 아무래도 댓글들로 너무 오래 추억 회상에 빠져 있었나 보다.

이래서 대청소할 때 앨범을 펼치면 안 된다고 어머니가 말했구나.

“알았어! 금방 내려갈게!”

“네~!”

호응하며 물러나는 레테라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평상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대로 방문을 열고 떠난 뒤 남겨진 모니터엔, 옛친구에게 메시지가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캐릭터 ‘레아’의 유저다.

다른 사람이 이 글을 진짜라고 믿든 안 믿든 상관없어.

네가 이 글을 보고 있든 말든, 그것도 상관없어.

하지만 만약 네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내가 너와 만나길 원한다는 걸 알아줘.

10월 31일 오후 3시. 네가 언젠가 말했던 대학교 정문 앞 동상 앞에서 기다리겠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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