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사람을 찾습니다 3
* * *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요?”
아침밥을 먹으면서 내가 해준 얘기를 듣고 레테라가 되물어왔다.
옆에서 함께 밥을 먹던 레반도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그전에 형님께 친구가 있었습니까?”
“레반. 내가 혹시 최근에 화나게 한 일 있었냐?”
얜 안 그러던 놈이 왜 가만히 있던 내 가슴을 후벼 파는 거지?
내가 살짝 상처 받은 눈길로 바라보자 레반이 당황하며 말을 이었다.
“아, 형님을 상처 주려고 한 말이 아닙니다! 그저 형님이 친한 누군가를 만나러 간 경우를 보지 못한 터라…….”
“저도요.”
같은 마음이라는 듯 레테라도 슬쩍 손을 들며 말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냥 내 폐인 생활에 대한 업보였다.
“친구의 유무는 넘어가기로 하고, 그냥 한때 친하게 지냈던 녀석을 만나러 가려는 것뿐이야. 그리 놀랄 일은 아니잖아.”
확실히 놀랄 일은 아닐 터였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질문을 해온 건 정말로 친구가 있었다는 것에 놀랐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사람치곤 얼굴 한 구석에 수심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혹시, 예전에 오라버니와 함께 게임했다던 그 사람인가요?”
“……티 나냐?”
“그 쌍년……이 아니라, 레아와 문제를 빚을 때마다 지었던 표정이 보여서요.”
그 말을 듣고 얼굴을 매만져 보았다.
레테라가 말한 게 어떠한 표정인지 모르겠지만, 눈썰미가 좋은 그녀가 그렇다니 그런 거겠지.
나는 슬쩍 웃으며 말했다.
“레아와 언제까지 티격태격할 수도 없고. 나도 옛날 일 떠올릴 때마다 기분 우울해지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니거든. 이번 기회에 해결해 보려고.”
그 말을 끝냄과 동시에 식사를 마쳤다.
목을 축임과 동시에 입안을 헹구기 위해 냉장고에서 꺼내온 생수병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레테라가 물 잔을 내미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괜찮다는 듯 방긋 웃으며 말했다.
“저희가 옆에 테니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혹여 그 자식이 형님께 실례되는 짓을 하면 저에게 맡겨 두십시오! 제가 그 즉시 녀석을 묻어버릴……!”
“그랬다간 내가 네놈을 묻어버릴 줄 알아라.”
아무리 녀석과 좋지 않게 헤어졌다고 해도 위해를 끼치고 싶은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레반이야 평소의 충정으로 말한 거겠지만, 나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걸 생각해서 좀 살벌하게 정색하긴 했다.
“네, 넵…….”
근데 그런 내 모습이 레반이 겁먹을 정도일지는 몰랐다.
물 잔을 내밀고 있던 레테라도 표정이 굳은 건 마찬가지였다.
어색해진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나는 다시 물잔을 받아들고 입을 열었다.
“그리고 반드시 녀석과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 아주 운이 좋아야 만날 수 있다는 거지.”
““?””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레반과 레테라는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동네 야산을 찾았다.
크기도 작고 볼품도 없어 찾는 사람이 거의 없던 산의 산책로는 1주일 전에 일어난 원인 불명의 붕괴 사건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실상은 레반과 레아가 치고받고 싸운 것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소문이 퍼지며 산 어딘가에 미스터리 써클이 있다는 둥, 예전에 산속에서 죽은 처녀 귀신의 원혼이 재앙을 불러온 것이라는 둥, 별의별 꼬리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우리는 산속으로 들어가면서 한 암반 앞에 관광객처럼 모여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왜 저렇게 몰려들었나 했더니 암반 한 곳에 사람 모양으로 찍혀 있는 구멍이 있었다.
마치 듬직한 덩친의 성인 남자를 붙잡아 암반 위에 냅다 후려갈긴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그곳을 바라보는 레반이 치욕이라는 듯 표정을 일그러뜨렸고, 그 옆에선 사정을 짐작한 레테라가 여우 같은 미소를 지으며 비웃고 있었다.
그렇게 정규 산책로를 몰래 벗어난 우리는 산 중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정말 이쪽 맞아?”
“네. 지난번 때도 그렇고, 아예 이쪽에 터를 잡은 듯합니다.”
레반의 말을 들으며 나아간 곳엔 부서진 바위조각을 집처럼 쌓아 올린 정체불명의 구조물이 보였다.
아무래도 비를 피하고자 벽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은 모양인데, 하필이면 재질이 돌이다 보니 선사시대 사람들이 남긴 고인돌을 연상시켰다.
그러한 집인지 무덤인지 모를 돌덩이 위에는 눈에 익숙한 금발 여성이 햇볕을 쬐며 누워 있었다.
“뭐 하러 셋씩이나 몰려왔어?”
레아는 우리를 돌아보지 않고 말해왔다.
말투는 언제 그렇듯 까칠함이 가득했다.
그런 레아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표정을 찌푸린 레반과 레테라를 대기하게 하고 앞으로 나섰다.
“스콜과 만나보려고 해.”
타악!
스콜. 한때 함께 길드를 만들며 여행했던 벗의 이름이 나오자 레아가 즉각 반응했다.
고인돌 위에서 뛰쳐 내려오더니 내 앞으로 착지한다.
그리고 흥분한 듯 동그랗게 뜬 눈을 바짝 들이밀었다.
“정말이야? 녀석을 찾았어?”
“아니.”
내 즉답에 레아의 흥분이 급속도로 빠져나간다.
사탕을 기대하고 달려왔는데 사탕이 없다고 들은 어린아이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이번엔 허망해하는 레아의 모습이 마음에 든 건지 “푸훕!”하는 웃음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레반인지 레테라인지 구분할 것 없이 둘 다겠지.
그 반응이 레아를 자극한 건지 그녀는 당장이라도 싸우려 달려들 듯한 모습을 보였다.
두 팔을 벌리고 그녀를 가로막았다. 그리고 그녀가 폭발하기 서둘러 말을 이었다.
“하지만 초대장은 보내놨어.”
“그게 무슨 소리야?”
자세한 설명을 요구한다는 듯 레아가 눈매를 좁히며 물어온다.
대답이 마음에 안 들면서 분풀이로 깽판을 부릴 게 뻔하기에 나는 신중하게 말하였다.
“인터넷에 글을 남겨 놨거든. 녀석이 게임을 끊은 상태였다면 그런 글을 남겨 봤자 소용히 없겠지. SoR 관련 정보를 아예 접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SoR의 갑작스런 서버 종료 사태를 접하고 그에 관련된 글을 찾아본다면, 어쩌면 내 글을 발견해줄지도 몰라.”
“…….”
“거기에 녀석과 나만 알 수 있는 장소에 만날 날짜와 시간을 적어놨어. 그 녀석이라면 보는 순간 이게 가짜나 사칭이 아니라 정말로 내가 보낸 메시지라는 걸 눈치채겠지.”
“그럼…….”
“하지만 말해둘게 있어. 이렇게까지 했지만 정작 그 녀석과 만나게 될 확률은 낮아.”
아무리 모든 SoR 관련 커뮤니티에 글을 남겼다지만, 그것만으로 녀석이 내 글을 발견할 거라 생각하는 건 너무 낙관적인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녀석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 없는 약속에 불과했다.
이러한 요소들을 레아에게 설명해준 뒤 다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오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지만……. 현재로선 이게 유일한 방법이야. 나는 당일 약속 장소로 가서 녀석을 기다리려고. 그리고 여기에 네 의사를 물으러 온 거야. 너도 따라오겠어?”
“하, 무슨 그런 뻔한 질문을 하고 있어?”
내 말을 묵묵히 경청하고 있던 레아가 바보 같은 질문을 한다며 입꼬리를 올렸다.
“당연히 가야지. 약속 시간은 언제야?”
예상 그대로의 대답이었기에 나 또한 씨익 웃으며 약속 시간을 얘기해주었다.
“10월 31일. 오늘을 기점으로 딱 1주일 뒤네.”
“너무 길잖아! 왜 그렇게 늦게 잡아놨어!”
놀이공원 늦게 간다고 칭얼대는 어린애도 아니고, 1주일이 길다고 말하는 레아를 보니 쓴웃음이 나왔다.
그만큼 고대해 왔다는 소리겠지. 내가 녀석과 다시 만나는걸.
“너무 이르게 잡았다간 녀석을 못 만날 확률이 커지기도 하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고 그 대학교 창립기념일이 10월 31일이거든.”
***
성월 대학교.
내가 재학하고, 지금은 휴학 중인 대학교였다.
난 이곳을 만남의 장소로 정했다.
내가 이곳에 다니기 때문이 아니다. 과거 스콜이 이 대학의 이름을 언급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SoR에서 페르페우스라는 괴상한 말 몬스터와 싸운 직후의 일이었다.
나는 페우페우스의 특징인 짝눈이 우스꽝스럽다고 말했고, 스콜은 성월 대학교 정문에 있는 말 동상도 저런 짝눈이라고 말했었다. 소문으론 업자가 돈 들고 날랐다고 얘기하면서.
게임을 하는 동안 현실 얘기를 잘 하지 않는 우리였지만, 별로 의미 없이 하는 대화란 어느 쪽으로 흘러가든 이상할 게 없었다.
레아: 뭐야. 너 성월 대학교에 다녀?
스콜: 그렇지 뭐.
채팅 내용은 담담했지만, 그것이 올라 올 때까지의 텀이 어째 평소보다 길었다.
현실 얘기는 그다지 꺼내고 싶어 하지 않는 거라고 판단한 난 바로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
당시 내가 고3이고 상대가 대학생이라면 저쪽이 연상이었다.
보통 경우라면 형이라고 불러야겠지만, 이제 와서 그렇기도 어색한 통해 그냥 묻어두는 게 나았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나 또한 성월 대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입학 초기엔 학과 건물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면서 녀석을 찾아다녔었다.
녀석의 현실 모습은 알지 못하지만, 만나기만 하면 알 수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대학교 어디를 가던 녀석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너무 기웃거린 나머지 변절자가 아닌가 오해받을 뻔한 헤프닝까지 있었다.
어떻게 된 걸까. 단순히 학교가 넓어 만나지 못한 걸까? 휴학 중인 걸까? 이미 졸업한 걸까?
아니면 성월 대학교에 다닌다는 말 자체가 거짓이었나?
무엇이 정답인지 알지 못한 채 나는 그 녀석을 찾는 걸 포기했다.
이제 영원히 만날 리 없는 상대에게 매달리는 게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랬었건만…….
“진짜 언제 봐도 짝눈이란 말이지…….”
약속한 10월 31일.
사람이 없어 썰렁한 대학 정문 앞에 놓인 말 동상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함께 따라온 레반과 레테라도 말 동상을 올려다보며 감상을 내뱉었다.
“꼭 페르페우스처럼 생겼습니다.”
“녀석처럼 가시는 없지만, 저 웃긴 짝눈이 재현도가 높아요.”
재학생들에겐 그저 언제 치워버리나 궁금한 엉터리 말 동상이었지만, 비슷한 생물이 사는 세상에서 온 이들에겐 높은 재현도의 예술품이었나 보다.
두 사람은 동상을 바라보게 놔두고, 나는 근처에 있던 레아에게로 다가갔다.
“1주일이나 기다린 이유가 이거 때문이야?”
“응. 창립기념일엔 학교가 쉬니까. 평소 정문을 드나드는 학생들이 빠지면 남은 건 이런 휴일에도 명백한 목적이 있어서 학교를 방문한 사람뿐이겠지. 누가 온다면 발견하기 쉬울 거야.”
“그런데 조금 전에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는 인간 몇 명이 지나가던데?”
“……그들은 신경 쓰지 마. 대학원생이라는 서글픈 운명을 짊어진 사람들일 뿐이야.”
“???”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레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내 상관하지 않기로 하고 아무도 없는 정문 쪽을 계속 응시하였다.
누군가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것처럼.
그렇게 정문을 바라보던 레아가 문뜩 말했다.
“이번엔 도망칠 생각하지 마.”
“하하. 걱정 안 해도 돼.”
그동안 녀석을 찾는 걸 꺼리던 행동 때문에 도망갈지 모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레아의 으름장에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여기까지 와서 그런 짓 안 하니까. ……설령 그 녀석과 또 다시 다투게 되더라도.”
“그딴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진짜 때릴 거다.”
기분 풀게 해주려고 농담한 건데 더 악화시킨 모양이다.
“괜찮아. 그때와는 다르잖아. 분명 서로 화해할 수 있을 거야.”
레아는 중얼거리듯 그렇게 말했다.
그것은 나에게 말하는 소리겠지만, 동시에 레아 자신에게 들려주는 소리처럼도 들렸다.
그녀는 항상 나와 녀석을 화해시켜주고 싶어 했다.
플레이어는 캐릭터의 부모와 같은 존재.
그렇다면 그날 내가 녀석과 다툰 장면은 레아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부부 싸움처럼 보이기라도 했을까.
그렇다면 관계를 개선시켜주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할지 몰랐다.
부부 싸움이라니, 표현하기엔 우습지 그것을 지켜보는 아이의 시점에선 전혀 우습지 않다. 그때 입은 마음에 상처가 어른이 된 이후로도 사라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하면 말 다 한 거지.
그렇다면, 내 역할은 뭘까?
과거에 경험으로 무서워하는 아이에게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윽.
“……!”
아무 말 없이 레아의 손을 잡아주었다.
레아는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전처럼 까칠하게 내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지긋…….
“응?”
그러던 중 한쪽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동상을 구경하고 있던 레반과 레테라이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레반은 이걸 세이프로 봐야 할지 아웃으로 봐야할지 애매하다는 표정.
레테라는 살기와는 다른 새까만 감정이 흘러넘칠 것 같은, 어딘가 묘하게 무서운 표정이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나는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무슨 말을 하고 싶든 지금은 그냥 이대로 놔둬 달라는 의미였다.
그 의미를 받아들인 듯 레반과 레테라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레테라는 미련이 남은 듯 잠시 힐끗거리긴 했지만 다시 고개를 돌린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시선을 뗀 뒤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3시 정각.
약속한 시간이 되었다.
나는 레아와 함께 정문 쪽을 바라보았다.
과연 그 녀석은 나타날 것인가? 나타나지 않을 것인가?
‘어느 쪽이냐? 스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