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 캐릭터 원정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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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무재시(市) 무저구(?) 무화로(?) 676번 길.
빌딩 숲 그늘에 가려진 골목길 안쪽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용도조차 알지 못하는 10층짜리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위드 소프트웨어 본사 건물.
이름 따윈 허울뿐이다. 그 내면에 숨어 있는 건 그 누구도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괴기함의 덩어리였다.
그런 건물 앞에서 총 다섯 명의 인원이 모여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다섯? 왜 다섯 명밖에 없지? 전화로는 총 일곱 명이 모일 거라고 들었는데.”
도움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고 냉큼 수락해버린 박일봉의 성화에 하룻밤에 걸쳐 강원도에서 이곳까지 달려온 지그문트가 물었다.
까마귀를 연상케 하는 사냥용 외투와 모자를 푹 눌러쓰며 주무기인 화살을 손질하던 그는 사전에 알고 있던 인원수와 현재의 인원수가 맞지 않는 걸 알고 의문을 느꼈다.
거기에 자신의 몸집만 한 특대검을 휘두르며 몸을 풀던 레반이 답했다.
그가 박일봉과의 연락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본래 계획은 7명이었지만, 사정상 어쩔 수 없이 두 명은 빠지기로 했다.”
빠진 것은 레아, 스콜, 이 두 사람이었다.
전력이 필요하다며 사람을 불러 모았으면서, 도중에 인원을 빼버리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그문트가 짓자 이번엔 레테라가 설명해주었다.
“이건 오라버니……, 우리 주인에게 허락받지 못한 개인행동이니까. 우리가 이곳을 향한다는 걸 오라버니가 알면 극구 반대할 거야. 그래서 시선을 돌려줄 사람이 필요했어. 마침 레아가 제격이었지.”
레테라는 자신이 가지고 온 갑옷과 쌍검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 둘은 늘 하던 훈련을 한다는 명목으로 무기와 갑옷을 자주 빌렸지만, 레아 그 여자는 그렇지 못하거든. 그동안 막 나가던 업보지. 우리와 달리 그녀가 갑자기 무기를 달라고 하면 되레 의심 받을 수밖에 없어.”
“저로선 그 사람이 안 온 게 더 안심인데요.”
아직 레아에게 시달린 기억이 생생한 진혜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백조를 연상케 하는 하얀 갑주로 몸을 뒤덮었지만, 그녀의 떨림이 갑옷 밖까지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인원은 이 정도면 충분해요.”
그때, 바닥에 무릎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리고 있던 하티가 말하였다.
스콜 또한 같은 레아처럼 연성화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이 자리에 빠지고 그녀 혼자 왔다.
만약 하티가 어디 갔냐고 연성화가 묻는다면 스콜이 동네 경로당에 갔다고 증언해 줄 것이다.
앞으로 남은 살날이 불안한 노인들에겐 하티의 신앙심과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이 좋은 안심거리가 되어서 종종 찾곤 한다.
하지만 오늘 그녀는 신앙심으로 불안에 떠는 자들을 보듬어 주려 나온 게 아니다.
바로 성전(?戰)을 위해 이 자리에 왔다.
“자, 어서 그 율 개자식을 족치러 가자구요.”
율이 자신의 주인 연성화에게 준 모욕을 두고두고 품고 있던 하티가 살기가 넘쳐나는 모습으로 몸을 일으켰다.
독실한 종교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아니, 오히려 독실한 종교인이기 때문에, 하티에겐 신이나 다름없는 연성화에 대한 모독은 그녀의 살심에 불을 지피기 충분했다.
“응? 잠깐만. 너 뭔가 오해하고 있는 거 같은데?”
힐러라는 포지션을 무시하고 전열에 서서 당장이라도 위드 소프트웨어 건물로 쳐들어갈 것 같던 하티를 이상함을 느낀 레반이 제지했다.
“우린 율과 싸우러 가는 게 아니다. 녀석을 만나서 형님과 연성화에 대한 정보를 듣기 위함이지. 그렇기에 이 건물 내부를 뚫기 위한 인원을 모은 건데……. 뭐냐, 레타라? 너 제대로 설명 안 한 거냐?”
레반이 돌아보며 묻자 레테라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설명했어. 그런데 율 얘기가 나온 순간부터 잔뜩 흥분해선 내 얘길 통 들어 먹질 않더라. 집합 장소와 시간을 전하는 데만 한참 걸렸다고.”
“아뇨. 이해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율 개쌍놈이 준비한 간악한 함정을 돌파에 그놈의 모가지를 자르고 꼬챙이에 꿰어 매달아 놓자는 말씀이잖아요.”
“전혀 이해 못하고 있잖아! 그게 가능한 놈이었으면 우리가 진즉 저질렀지!”
레반이 소리치고 있을 무렵, 지그문트가 살짝 기가 질린 듯한 얼굴로 하티를 가리키며 레테라에게 물어왔다.
“저 여자랑 같이 다녀도 괜찮은 거냐? 눈빛이 저쪽 세계에서 싸우던 광신도 몹이랑 많이 흡사한데.”
“너도 주인이 모욕당하면 비슷한 일을 할 거잖아.”
“뭐, 그건 그렇다만…….”
딱히 부정은 하지 않는 지그문트였다.
그때 구석에 있던 진혜가 슬쩍 손을 들며 말했다.
“저기……. 그러니까 이 모임은 율과 싸우러 가는 게 아니라 만나러 가는 모임이라는 거죠? 그런 거라면 전 빠져도 되지 않을까요. 범석 씨와 약속 취소한 것도 아쉽고, 무엇보다 그 남자는 다신 마주치기 싫은데요…….”
“솔직히, 만나러 가는 정도라면 너희들끼리 해도 되지 않나? 나도 그 남자를 처죽이고 싶을 만큼 싫지만, 그렇다고 주인의 곁을 오래 비우고 싶진 않다.”
굳이 자신들은 필요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진혜와 지그문트는 빠지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그런 그들을 보며 레테라는 한숨을 쉬었다.
“너희들은 지금 전제를 착각하고 있어. 우리기 넘어야 할 문제는 ‘율과 싸우느냐 마느냐’가 아니야. ‘율에게 도달할 수 있나 없나’라고.”
“그러고 보니 건물 자체가 던전이라고 얘기했었지? 하지만 웬만큼 실력을 쌓았다면 그 정도 던전 쯤은 손쉽게 돌파할 수 있을 텐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던가.
율이 만들어낸 악질적인 ‘영역’을 이해시키기엔 입 아프게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체험시키는 게 나을 것이다.
“그럼 이렇게 하자.”
레테라는 건물 출입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들끼리 율이 있는 최상층까지 가는 거야. 그리고 그와 만나지 말고 일단 돌아와. 상처 하나 없이 돌아오는 걸 성공하면 그 이후부턴 우리만으로 수 있는 거라고 판단하고 알아서 할 테니까.”
그 말에 진혜와 지그문트는 서로를 돌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지만, 저쪽 세상에서 낯선 이와의 협력 플레이 정돈 흔했다.
차라리 이 귀찮은 일을 빨리 끝내고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들은 대동단결한다.
“단.”
레테라는 아직도 레반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하티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흥분해서 앞뒤 분간 못하는 광신도도 데리고 가.”
***
쨍그랑!!
“갑시다! 목표는 율 타도!”
“힐러는 탱커 뒤로 빠져!”
“하아……. 이 파티 괜찮으려나…….”
흥분해서 출입문 유리를 깨부수며 앞서 진입하는 하티, 그녀를 붙잡으려 뒤쫓는 지그문트, 파티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며 천천히 뒤따라가는 진혜가 건물 내부로 진입한다.
그리고 레반과 레테라는 약간 떨어진 장소에 서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건물 내부로 사라진 세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던 레반이 문뜩 중얼거린다.
“탱커, 원딜러, 힐러. 확실히 균형 잡힌 파티다만…….”
“몇 분 걸릴 거 같아?”
“전에 우리가 겪은 일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5분쯤?”
“난 3분쯤으로 보고 있는데.”
“내기할까? 시간이 좀 더 가까운 사람이 커피 사기로.”
“콜.”
위드 소프트웨어 건너편에는 스카이피아라고 하는 작은 커피 체인점이 자리해 있었다.
건물 내로 들어간 이들을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먼저 그곳으로 들어가 각자의 커피를 주문했다.
사회생활에 익숙해지라는 의미에서 요현은 두 사람에게 주기적으로 용돈을 주고 있었기에 소지금은 있었다.
카페는 지난번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손님이 하나도 없고, 나이 많은 노인이 홀로 카운터에 앉아 운영하고 있었다.
주름지고 쳐진 눈살이 내려와 앞이 보이는지도 모르겠고, 가는귀 먹었는지 무슨 말을 걸든 전혀 반응하지 않는 노인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주문할 때만큼은 귀신 같이 알아들으며 커피를 탔다.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레반과 레테라는 밖으로 나와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건물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조용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콰아아아아아앙!!!!
건물 유리 중 한쪽이 깨지고 폭음이 터져 나온다.
시작된 모양이다.
마침 노인이 완성된 커피에 휘핑크림까지 얹어져 전해주었기에, 두 사람은 그것을 마시며 곳곳이 폭발하고 부서지는 건물을 구경했다.
누가 보면 테러 현장인 줄 알 것이다.
신기할 정도로 주변은 물론, 카페에 노인마저 건물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쥐가 치즈를 파먹는 것처럼 곳곳이 폭발하고 무너지는 건물에서 다양한 것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쏘아진 화살이었고, 신성력을 한 되 뭉친 창이었으며, 누군가가 사용한 듯하지만 어마어마한 힘에 의해 찌그러져 날아가는 대방패였다.
쨍그랑!!
마지막엔 낯익은 세 인물이 9층 위치에 창문을 깨며 밖으로 몸을 던졌다.
잠깐 사이에 몰골이 엉망이 된 지그문트가, 마찬가지로 엉망이 된 모습의 하티, 진혜를 양팔에 짊어지고 탈출을 감행하듯 몸을 날리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뒤를 쫓듯, 깨진 창문은 물론 그 층 자체를 무너뜨리듯이 거대한 형체가 튀어나왔다.
쿠콰아아아아아아앙!!!
쿠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것은 타르처럼 끈적끈적한 덩어리로 이루어진 괴물이었다.
몸은 뱀처럼 길쭉하면서 입은 양옆으로 길게 찢어지고 상어와 같은 이빨이 가득했다.
머리 두께만 5m에 달할 것 같은 그 괴물은 창문 밖으로 도망친 지그문트 일행을 쫓아 몸을 내밀었다.
뱀처럼 기다란 몸이 뻗어오며 공중에서 달아날 길이 없는 세 사람을 집어삼키려던 순간이었다.
크륵!?
괴물은 돌연 추적을 멈췄다.
몸이 건물에 고정되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이 이후로는 자신에게 허락된 공간이 아니라는 것처럼.
크르르르…….
괴물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지상으로 향해 떨어지는 지그문트 일행을 노려보았다.
그러다 자신이 튀어나온 구멍으로 쏙 들어가 사라졌고, 그 구멍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금방 원상복구 되었다.
그것과 동시에 9층에서 몸을 날린 지그문트, 하티, 진혜 세 사람이 레반과 레테라 눈앞으로 추락했다.
콰아아아앙!!!
아스팔트 바닥에 균열을 남기며 처박힌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레테라가 입을 열었다.
“3분 22초. 내가 이겼네.”
“쳇! 이놈들, 좀 더 버티지…….”
내기에서 져서 아쉽다는 듯 레반이 투덜거리며, 레테라가 산 커피값만큼의 돈을 그녀에게 건넸다.
그러는 동안 아스팔트 구멍에서 기어 나온 지그문트가 황당함을 가득 실은 목소리로 외쳤다.
“저 건물은 뭐야!!!”
“뭐긴 뭐야. 게임 회사지.”
“저딴 게임 회사가 어디 있어!! 던전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기괴하잖아!!”
아무래도 율이 꾸민 거친 환영식을 제대로 체험하고 온 모양이다.
저 건물은 초대장이 없는 자에게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들어가 보니 어땠어?”
“미치는 줄 알았다. 갑자기 상하좌우가 엉망진창으로 뒤바뀌지,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 할 때마다 불과 화살 세례가 쏟아지지, 게다가 조금 전 본 것처럼 글레이그 대륙에서도 본 적 없는 괴물마저 나타난다고!”
그 말을 들은 레테라가 눈매를 좁히며 자세히 물었다.
“다섯이 모여서 가면 좀 나아질까? 아니면 빠져 있는 두 명까지 어떻게든 보태서 일곱 명 전원이 쳐들어간다면.”
일곱 명.
신요현과 연성화에게 들키는 걸 감내해서라도 레아와 스콜까지 동원해서 끌어올리는 최대전력이었다.
레아와 스콜은 만난 적이 없지만, 레반과 레테라와 대충 엇비슷한 전투력이라고 봤을 때의 결과를 지그문트가 계산했다.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건물 내부엔 저놈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적어도 비슷한 급은 돼 보이는 게 몇 체나 존재했다. 마치 처음부터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존재한 것처럼.”
그 말을 듣고 레테라와 레반은 실망한 듯한 한숨을 쉬었다.
“역시 쉽게 되지 않네.”
“아무래도 전에 왔을 때보다 난도가 더 강화된 모양이군. 골치 아프게 됐어.”
그 대화를 듣고 있던 지그문트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혹시 우리를 실험쥐로 이용한 거냐?”
“아니. 그냥 누가 저 흥분한 광신도의 머리를 식혀주길 바랬을 뿐이야.”
레테라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움푹 들어간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려 있는 하티의 모습이 보였다.
지그문트가 짊어지고 나왔기에 기절한 줄 알았는데, 그저 짧은 시간에 신성력을 모조리 소모해 탈진한 거였다.
“흑흑……. 율을 족쳐서 주인님의 한을 풀어드리고 싶었는데……! 저런 괴물 하나조차 넘지 못하다니!”
“하나가 아니었어요……. 족히 십여 마리였다고요.”
그 괴물들의 공격을 모조리 탱킹 해야 했던 진혜가 악몽을 꾼 것처럼 헬쑥한 얼굴로 하티의 옆에서 딴죽을 걸었다.
지인들을 끌어모아 만든 원정대는 초장부터 전멸 위기에 처했다.
그 정도로 율이 만든 던전은 가차 없었다.
레테라는 생각에 잠기듯 손가락으로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레벨 100 이상의 캐릭터 다섯이 모였는데도 쳐들어가는 건 무리인가……. 그럼 차선책을 쓸 수밖에.”
“차선책? 그런 것도 있었냐?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가능한 쓰고 싶지 않았으니까. 우리가 율을 직접 만나서 담판을 짓는 게 더 확실하잖아? 하지만 그녀에게 맡기기엔 사람이 영 못 미덥거든.”
“그녀?”
레반이 되물었을 때, 골목길 입구 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여기서 뭐하세요?”
겉으로는 차가운 도시 여자처럼 꾸민 여성이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겉모습과 달리 목소리는 온화했고, 한 손에는 빵집에서 사온 빵봉지를 쥐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오서연.
평범한 인간임에도 율의 사장 놀이에 어울려 비서직을 맡게 된 여성이었다.
점심시간이라서 잠시 외출했다 돌아온 그녀는 건물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 중 낯익은 이들을 발견하고 말을 걸어왔다.
“왔네, 차선책.”
“네?”
순간 자신에게 쏠리는 그들의 시선을 보고 오서연은 뭔가 잘못 돌아가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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