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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139화 (139/173)

〈 139화 〉 트릭 ­ 1

* * *

점심시간을 넘긴 번화가에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많았다.

단순히 하나의 목적지만 가지고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 느긋하게 가게를 구경하며 쇼핑을 즐기려는 사람, 관광이라도 온 듯 모여서 사진 찍는 사람, 카페테라스에 앉아 수다를 떠는 사람……. 혹은 제자리에 서서 누군가 자신의 노래를 들어주기 바라는 듯 노래하는 사람도 있었다.

각자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자유로이 흘러가는 거리 한가운데에 그 녀석은 섞여 있었다.

어디로 향해야 한다는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쇼핑을 즐기려는 것도 아니다.

후줄근한 츄리닝과 정돈 되지 않은 머리.

요즘은 백수조차 저런 복장으로 번화가에 나오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거리에 억지로 끼어든 부자연스러운 존재가 바로 그였다.

그런데 행인들 어느 누구도 그런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마치 그가 서 있는 공간 자체가 이곳과 단절된 것처럼.

“네가 왜 여기 있는 거냐?”

“내가 어디에 있는 데에 네 허락이라도 받아야 하나?”

내가 경계하며 묻자 율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답했다.

자세는 삐딱하지만 눈빛도 말투도 아무런 적의 하나 없이 가벼웠다.

내가 저쪽에게 무해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저쪽 또한 나 따위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일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원하면 어디든지 가는 거지. 원하기만 하면 백악관 집무실에서 그쪽 대통령과 콜라 한 잔 나누고 올 수도 있어. 아참, 이번에 콜라 싫어하는 양반으로 바뀌었지?”

넘쳐나는 한가함을 주체할 수 없는 사람처럼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던 율은 문뜩 네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안녕? 신요현의 첫 번째 멍멍이.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지?”

“…….”

처음 마주하는 율에게 레아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긴장된 눈빛으로 나를 지키듯 서서히 옆으로 이동할 뿐이었다.

마치 내 방패가 되어 싸우기 위한 위치를 선점하는 것처럼.

하지만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율을 바라볼 뿐 다른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그 모습에 율은 재미있다는 듯 감탄을 흘렸다.

“오호? 첫째는 그나마 신중하네. 둘째, 셋째는 날 잘 파악하지도 못한 채 덤벼들더니.”

“레아는 사대룡 솔플 레이드에 도전해봤으니까. 너 정도급 앞에서 신중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걸 지겹도록 학습했었지.”

내 앞을 가로막는 레아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빼며 말했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율을 마주한 녀석들은 하나 같이 사대룡과 맞먹을 정도의 위험한 존재감을 느낀다고 한다.

레반, 레테라가 느낀 것과 같은 것을 레아도 느꼈겠지.

다른 점이라면 경험의 차이다.

레아는 율에 대한 정보를 분석하기 위해 일거수일투족을 시선으로 쫓았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전투가 발생할 경우 모든 위험으로부터 나 하나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괜찮으니 비켜달라고 해도 제자리를 지킨 채 움직이지 않았다.

할 수 없다며 한숨을 쉬고 레아의 너머에서 율에게 말을 던졌다.

“이유를 묻는 질문이 싫으면 목적을 묻는 질문으로 바꾸지. 뭐 하러 왔어?”

“뭘 그리 서운하게 굴어? 게임 유저와 운영자라고. 서로 만나면 하는 일이 뭐겠어?”

서운하다는 감정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말하는 율을 향해 나는 눈매를 좁히며 답했다.

“네놈들이 무슨 말은 하든 우린 듣는 척만 할 거고, 게임은 우리 ㅈ대로 굴리겠다라는 선전포고?”

“하하하하. 내가 막장 짓을 좋아하긴 해도 그런 놈들보다는 양심적이라고?”

요즘 말이 많은 게임 회사 갑질과 사행성 조장에 대해 빗대어 말하자 율은 그 정도까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내가 보기엔 어느 쪽이든 개 같다는 점에서 피장파장이지만.

“게임 상의 관계 때문에 고생하고 있지? 멸신검의 행방이라던가.”

나도, 레아도 그 말에 표정이 굳어졌다.

우리에게 있어서 율이 거론한 문제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무슨 생각인 거냐?”

“무슨 생각이긴? 수다 좀 떨겠다는데 그 사람과 관련된 화제가 나오는 건 당연하지 않아?”

“왜 하필 나지?”

“딱히 너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야. 난 주기적으로 다른 플레이어들을 만나러 다니거든. 게임 유저는 적당히 미쳐 있어야 재미있지, 과하면 재미만 망친다고. 운영자가 직접 뛰는 카운슬링 같은 거라고 할까?”

율이 카운슬링이라고?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이 이런 때를 위해 있다고 확신한다.

현재 유저들이 겪는 마음 고생의 지분을 따지면 절반은 이놈이 먹고 들어갈 테니까.

그러나 병을 받은 상태로 약을 안 받은 채 끝나는 것도 더 망할 기분이었기에 일단 잠자코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진실을 알려주겠다는 거냐?”

“진실? 네가? 농담하지 말라고. 너희들의 방황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넥X릭스 보면서 시간 때우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데 내가 왜 멋대로 끝내겠냐?”

이럴 줄 알았다, 개자식.

“진실은 안 알려주지 않아. 하지만 도움이 되는 조언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

“들어보겠어? 하지만 조심하라고. 내 모든 조언은 ‘리턴’과 ‘리스크’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거든.”

마치 도발하는 것처럼, 율 녀석은 말하였다.

자신의 말을 듣고 감당하게 될 괴로움을 견딜 자신이 있는지,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진실을 알고 싶은지 묻는 것처럼.

“아버지.”

레아가 슬쩍 나를 돌아보았다.

진실을 알고 싶은 건 그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저런 수상쩍은 제의를 받아들이는 게 그녀로선 영 탐탁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가 감내해야 할 리스크는 뭐지?”

하지만 나는 그런 레아를 눈짓으로 달래며, 일단 율의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이런 침체 상태가 언제까지 이어지는 것보다, 차라리 환부를 도려내는 고통을 감내해서라도 끝장을 보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글쎄……. 우선…….”

율은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엄지를 까닥이며 녀석이 가리키는 곳은, 다름 아닌 햄버거 프렌차이즈 가게였다.

“치즈버거 좀 사줘.”

***

“……이건 미친 짓이에요.”

모니터 앞에 앉은 오서연이 말하였다.

밑준비 자체는 1시간 만에 끝낼 수 있었다.

직업도 다르고 성향도 다른 다섯 캐릭터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유용한 팁을 마구 베풀었기 때문이다.

남은 건 실행하는 일뿐이다.

지금 당장 버튼 하나만 눌러도 작전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이 누른 버튼 하나에 그녀의 캐릭터 앨리스가 죽을지 몰랐다.

예전이라면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게임 캐릭터도, 이들은 몇 번이나 죽어도 되살아나지 않던가.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글레이그 대륙이라는 것이 이곳과 다른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 대륙이라는 걸 알았다.

게임 캐릭터도 데이터로 이루어진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라, 실제로 말하고 행동하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생물이라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자신의 캐릭터인 앨리스도 그러하리라.

어릴 적 좋아했던 꼬마 마녀를 모티브로 만들었던 캐릭터.

지금은 갖은 고생에 시달린 탓인지 고깔모자가 둘로 갈라져 커다란 귀처럼 길게 늘어졌다.

그것이 작은 체구, 똘망똘망한 눈동자와 어울리며 작은 토끼를 보는 듯한 사랑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런데 버튼 하나로 애정 어린 마음으로 키워온 토끼를 잔인하게 죽이라고 하다니,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설령 당사자가 죽지 않는다고 해도, 이건 기분의 문제였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죠! 이런 무식한 방법 말고도 다른 좋은 방법이 분명 있을 거예요!”

“방법이야 있겠죠. 대신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단점이 있어서 문제지만요.”

“우리에겐 여유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집을 오래 비울수록 형님이 걱정할게 뻔하니까.”

집을 오래 비어놓은 게 걱정인 레테라와 레반이 오서연의 제의를 기각했다.

“나도 빨리 돌아가고 싶다만. 확실히 글레이그 대륙을 다시 보게 된 건 흥미롭지만, 이 이상 집을 오래 비워놨다간 심심함과 건강함을 주체 못한 주인이 내 사냥 도구를 멋대로 가지고 멧돼지 사냥을 나설 수도 있다.”

“저도……. 범석 씨는 평소엔 침착한 사람이지만 저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생기면 이성을 잃기 쉽거든요.”

이미 한 번 겪은 게 있는지 지그문트와 진혜도 우심을 표정으로 드러내었다.

그리고 하티는 오서연을 재촉하듯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말했다.

“이 방법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에요. 그냥 눈 딱 감고 버튼을 누르면 되요!”

“하지만…….”

오서연이 계속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보다 못한 레테라는 그녀의 뒤로 슬쩍 다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율이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달칵.

그 소리에 놀란 오서연은 반사적으로 마우스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그녀에게 있어선 쥐나 바퀴벌레가 집안에 나타났다는 소리보다, 율이 나타났다는 소리가 더 생리적으로 받아 들릴 수 없는 일이었나 보다.

같은 시각, 누군가로부터 얻어낸 치즈버거를 맛나게 씹고 있던 율이 불합리한 처사에 눈썹을 꿈틀거린 건 덤이다.

어쨌거나, 그 마우스 클릭으로 방아쇠는 당겨졌다.

모니터에 비춰진 앨리스.

어찌된 영문인지 커다란 대포 안에 들어가 있는 그녀가 시전 준비 중이던 마법을 사용했다.

모니터 좌측 아래로 시스템 문구가 떠올랐다.

­‘앨리스’가 ‘블레이즈 트랩’을 사용했습니다.

블레이즈 트랩.

블레이즈라는 이름 그대로 화염 계열의 마법이다.

지정 장소에 마법 서클을 만들며, 그 서클에 자극이 가해지거나, 시전자가 원격으로 신호를 주면 불을 내뿜으며 폭발한다.

지금 현재 설치된 블레이즈 트랩은 10개.

그리고 언덕 위에서 왕궁을 바라보고 있는 대포 또한 10개였다.

본래는 정보 길드와 일부 고인물들만 알던 왕궁의 비밀통로를 통해 무기고에서 빼온 대포들이었다.

비밀 통로는 오서연이 알 턱이 없었던 정보였지만, 고인물를 부모로 둔 세 캐릭터는 당연한 듯 알고 있었다.

그 대포들의 심지엔 앨리스의 블레이즈 트랩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발동하자 심지에 불이 붙으며 대포알을 일제히 발사했다.

펑!! 펑펑펑!! 펑펑!!

콰아아앙!! 콰아아앙!!! 콰아아아아앙!!!

날아간 대포알이 왕궁의 외벽을 때렸고, 경비를 서고 있던 왕국군 병사들이 적의 습격인 줄 알고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사람들의 시선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 시점에서 대포알 대신 앨리스를 담고 있는 마지막 대포.

다른 대포보다 심지가 좀 더 길었던 그것이 불을 뿜었다.

퍼어어어어어엉!!!!

대포가 불을 뿜자 옛날 만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앨리스가 불똥을 흩날리며 하늘을 날았다.

왕궁을 아무렇게나 조준하던 다른 대포들과 달리 그 대포는 정확히 한 장소를 조준하고 있었다.

바로 왕궁 내에 자리한 왕실직속 공방이었다.

거리와 각도 계산은 원딜이 특기인 사냥꾼이 맡아주었다

대포의 폭발과 추락 대미지에 죽지 않도록 어느 전문 탱커가 방어구 조언도 해주었다.

덕분에 불붙은 앨리스에 몸은 무난하게 대장간 지붕 위에 닿을 수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정확히 대장간 지붕 위로 떨어진 앨리스는 무너지는 잔해와 함께 아래로 추락했다.

흙먼지가 일어나며 사방이 뿌옇게 보이는 가운데, 유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건 앨리스의 빨간 체력바였다.

앨리스 남은 HP 2/920

“거봐요. 아슬아슬하게 살아남는다고 했잖아요.”

“아아아아아!! 미안해, 앨리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앨리스의 몰골은 엉망이었고, 그것이 오서연의 죄책감을 자극했다.

대체 왕궁에서 빼내온 대포로 왕궁을 포격하면서 날아가는 미친 발상은 어떻게 해야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이게 고인물 캐릭터의 기본 소양이란 말인가?

그러나 언제까지고 그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뿌연 먼지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며 앨리스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쿵! 쿵!

­에이드멀: 내 공방을 멋대로 어지럽히는 개자식이 누구냐.

화면에서 NPC의 대사가 떠올랐다.

이름은 틀림없이 그들이 찾던 에이드멀이었다.

그러나 흙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NPC와 거리가 멀었다.

3m에 달하는 거대한 덩치.

온몸에 우람한 근육이 흉터와 문신에 뒤덮여 있었고, 한 손에 쥔 거대 도끼는 바닥에 질질 끌리며 음산한 쇳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 저 사람이 에이드멀 맞아요? 대장장이라기 보단 고대 던전 깊숙한 곳에서 마주친 보스 몹이 더 어울리는 포스인데요?”

“에이드멀 맞습니다. 거인 대장장이 에이드멀.”

“과거엔 전쟁 영웅이었다는데, 자신이 죽인 영웅의 피가 묻은 무기를 제련하여 영웅의 영혼을 가두는 취미를 가졌다고 하죠.”

“그래서 한때 에이드멀이 만든 무기엔 저승으로 떠나지 못한 영웅들의 한 서린 외침을 들려온다고 하던가.”

“그리고 그런 무기들을 취미로 대장간에 장식해 놓는다고 들었어요.”

“완전 사이코 대장장이잖아요!! 저런 놈이 왜 토벌 대상이 아닌 거야?!”

생각 이상으로 살벌한 캐릭터 설정에 오서연이 기겁하고 있을 때였다.

화면 속에 에이드멀이 작업을 시작하려는 일꾼처럼 거대 도끼를 손바단 위에서 두드리며 앨리스를 내려다보았다.

­에이드멀: 네놈 모가지를 썰어다가 방패 앞에 장식해두마.

“고대 아즈텍 급의 미친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어요!!”

“빨리 준비한 아이템이나 제시해라. 꾸물대다간 진짜 네 캐릭터 머리가 벽걸이 박제처럼 방패에 장식될지도 모른다.”

그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오서연은 서둘러 인벤토리 창을 열어 캐릭터들이 구하게 한 어느 아이템을 클릭했다.

드래곤 블레이드 크로스 등급: 특이 분류: 술

전설적인 술 장인이 만든 ‘드래곤 블레이드’ 시리즈 중 하나.

용의 비늘로 만든 검이 교차된 마크는 특이나 귀하며,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한다.

그것 또한 캐릭터들의 지혜를 십분 빌려 획득한 희귀 아이템이었다.

그들은 에이드멀을 만날 때 이 아이템이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제시한다]

주저 없이 제시한다는 버튼을 누르자 당장이라도 거대 도끼를 휘두를 듯했던 에이드멀이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 놀란 듯 풍성한 수염을 잘게 떨어댔다.

­에이드멀: 으으으음?! 그것은 전설의 술, ‘드래곤 블레이드 크로스’?! 내가 이 귀한 걸 좋아한다는 걸 어찌 알고!

거대 도끼를 내려놓고 술병을 받아든 에이드멀은 언제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냐는 듯 호의어린 시선을 보내왔다.

­에이드멀: 그렇군. 이걸 내가 건네주려 이런 난리를 피운 건가? 멋지군! 난 호쾌한 녀석을 좋아하지! 따라와라! 대장간을 이용하게 해주도록 하지.

에이드멀이 지붕 잔해에 반쯤 파묻힌 앨리스를 직접 꺼내주고, 옷에 묻은 먼지까지 털어주었다.

이렇게 보니 할아버지와 손녀처럼 보일 정도로 훈훈한 광경이었다.

그때 한쪽 문이 벌컥 열리며 갑옷을 입은 병사가 들어왔다.

­왕국군 병사: 에이드멀님! 이쪽 지붕에도 의문의 대포가 날아오지 않았습니까!?

­에이드멀: 이곳엔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냉큼 꺼져버려!! 목 잘리고 싶냐!!

­왕국군 병사: 허억?! 실례했습니다!!

왕국군 병사를 쫓아낸 에이드멀이 다시 훈훈하게 앨리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에이드멀: 아무튼 내 공방에 온 걸 환영하네, 젊은 친구여.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면 무엇이든 말하게.

[신공 에이드멀의 관계가 ‘친밀’이 되었습니다.]

[에이드멀의 공방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NPC 캐릭터와 한 방에 친밀 단계까지 오르는 건 처음 봤어요.”

오서연이 화면에 떠오른 문구를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을 때 캐릭터들은 당연한 일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드멀이 왕국에서도 알아주는 애주가라는 건 의외로 잘 안 알려진 사실입니다.”

“아무튼, 이로써 실험의 무대는 갖춰졌네요.”

이제 드디어 신요현과 연성화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트릭에 대해 해명해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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