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 트릭 3
* * *
의심암귀로 폭발하기 직전이었던 캐릭터들의 시선이 한 명의 인영을 주시하였다.
오서연.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조력자 포지션이었던 여자였다.
존대를 하고 있었지만, 말투만 존대였을 뿐이지 그녀를 향한 존의 따위는 없었다.
신요현과 말을 놓으며 친근한 관계가 맺고 있었기에 레반과 레테라도 그녀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본 말투로 원래 높임말을 쓰던 하티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자신들의 넘쳐나는 경험과 지식으로 멸신검이 사라진 트릭을 추리해보고, 오서연은 그게 실제로 가능한지 시도해보는 게 다였다.
그녀도 플레이어이긴 하지만 게임 경험은 그들의 주인의 비해 압도적으로 적었다.
때문에 실연 이외의 조력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있어요! 아직 시도해보지 않는 방법이!”
그런 오서연의 입으로부터 이런 소리가 튀어나왔다.
처음에 느낀 건 놀람이었다. 다음으로 의심이 스쳤다.
고인물의 캐릭터인 자신들로 밝혀내지 못한 트릭이다.
확인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머릿속에서 모조리 짜내 보았지만 결과는 전부 실패였다.
그런데 자신들도 생각하지도 못한 걸 오서연이 생각해냈다는 것이 믿을 수야 있겠는가?
설령 있다고 해도 실질적인 도움은 안 되는 방법일 게 뻔했다.
그런데도 오서연이 저렇게 기세 좋게 나서는 모습에 의아함을 느끼고 있으려니 자신들의 모습에 생각이 미쳤다.
남에 집에 들어와서 싸우기 직전인 녀석들.
자신들이 싸우기 시작한다면 집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오서연은 그것을 막기 위해 허세라고도 끼어든 것이다.
이곳의 집주인은 그거였으니까.
그런 오서연의 모습에 캐릭터들은 미안함을 느꼈는지 머슥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서로의 살기를 풀었다.
“죄송합니다, 오서연 씨. 남의 집에서 보일만한 꼴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런 허세 안 부리셔도 돼요.”
“다시 처음부터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죠.”
하마타면 맞붙을 뻔했던 레반, 레테라와 하티 사이에서 화해의 분위기 감돌자 오서연은 안도하는 한편 억울했다.
자신이 집이 무너지는 게 두려워 근거도 없이 주장을 하고 나섰다는 오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안 싸워서 다행이긴 한데, 진짜로 방법이 있거든요!? 왜 그렇게 미안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는 거예요!? 진짜라구요!”
“설마 트릭을 알아낸 건가?”
세 캐릭터가 오서연의 말을 믿을 생각을 않고 뜨뜻미지근한 시선을 보내고 있을 때, 보다 못한 지그문트가 물어봐주었다.
드디어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겠다 싶은 오서연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트릭을 알아낸 건 아니에요. 단지…… 반칙의 가까운 편법이 떠오르긴 했어요.”
“반칙의 가까운 편법?”
“어렵게 생각하실 거 없어요. 여러분들은 도저히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보통 어떻게 하세요?”
오서연의 질문에 캐릭터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각자 답했다.
“1. 정답을 아는 놈을 족친다.”
“2. 문제를 만든 놈을 족친다.”
“3. 이딴 문제를 제시해놓고 비웃고 있는 놈을 족친다.”
“4. 던져 버리고 딴 거나 하러 간다.”
“5. 풀 수 있을 때까지 풀어 본다.”
다섯 캐릭터의 대답 중 진혜가 가장 얌전하고 정상적이라는 사실에 오서연은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정상인의 비율이 소수고, 대다수는 과격한 사고방식을 가진 이밖에 없어서였다.
“저는 일단 정답을 확인해요. 선생님께 물어보는 것도 좋고, 문제지 뒷면 정답지를 살펴보는 거죠. 우선 정답을 확인하고, 풀이 과정을 보며 왜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되었는지 이해하는 거예요.”
자신이 학창시절에 공부하던 방식을 가르쳐 주던 오서연 진혜의 질문을 받았다.
“정답을 확인한다……? 율에게 물어본다는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제가 아는 사장님은 풀이과정을 엄청 이해하기 어렵게 알려주기만 하지 절대 정답을 알려줄 분은 아니거든요.”
‘‘‘‘‘그건 그렇지.’’’’’
말은 하진 않았지만, 율을 만나본 경험이 있는 캐릭터들 전원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럼 어떻게 확인한다는 겁니까?”
“여기 정답지가 있잖아요?”
탁탁.
오서연이 자신 있게 두드린 것은 바로 컴퓨터 모니터였다.
캐릭터들은 의구심을 드러냈다.
그들에게 있어서 저것은 문제지였지 정답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게임 화면을 가리켜 정답지라고 말하는 오서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신요현도, 연성화 양도 각자 나름대로 게임을 파고들어 보았지만 정답을 알아내진 못했어요. 전 그 두 사람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이 게임이 담긴 하드디스크를 넘겨 줄 때 사장님은 말했어요. ‘출구 없는 미로를 풀어보라며 던져주진 않는다’라고요. 분명 정답은 이곳에 있어요.”
신요현과 연성화의 노력이 부족하진 않았다.
그들의 게임 지식도 남들보다 훨씬 뛰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도달하지 못했다.
율이 정답이 있음을 확증했음에도 말이다.
어째서 그렇게 된 걸까.
원인은 두 사람의 게임 환경에 있었다.
그 당시 두 사람은 캐릭터와 배경이 실존한다는 걸 모른 채 게임을 플레이 했다.
그 시각이 문제였다.
한정된 시각만으로는 미로 속에서 출구를 발견할 수 없다.
“발상을 전환하세요! 게임이라는 틀에 묶여 있는 한 도달하지 못하는 거예요! 열쇠는 바로 여러분과 같은 캐릭터들에게 있어요!”
???
자신들에게 열쇠가 있다는 오서연의 말에 캐릭터들이 당혹스러움을 드러냈다.
오서연은 그중 레테라를 콕 집어서 물었다.
“레테라 씨! 이곳이 아니라 저쪽 대륙에 있을 땐 어떤 느낌이었죠? 신요현과 함께 할 때 말이에요.”
“네? 그야…… 별 생각 없었어요. 그땐 오라버니가 바라는 대로 움직이겠다는 생각뿐이라서…….”
“그럼 채팅할 때는요?”
“채팅? 그땐 가만히 공중에 떠오른 글을 지켜봤어요. 오라버니가 다른 이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라는 걸 알았거든요. 오라버니의 존재감은 게임 내내 느끼고 있었지만, 채팅은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좋았죠.”
“즉, 채팅의 내용이 보였다는 거죠?”
“네. 저와 같은 플레어블 캐릭터만 볼 수 있고 다른 NPC는 보지 못해요. 그것 덕분에 일부나마 오라버니가 아는 지식을 학습했어요. 그게 왜…… 아.”
말을 이어가던 레테라가 갑자기 뭔가 떠올린 듯 움찔거렸다.
처음엔 희미한 발상이었다.
오서연의 말과 언급된 단어를 조합하자 떠오른 작은 단편처럼 스쳐지나가는 정도의 잡생각일 뿐이었다.
그러나 떠오른 그 생각을 붙잡고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하자, 잡생각인 줄 알았던 그것은 더욱 선명해지며 퍼즐조각처럼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아, 아, 아아아아아아앗!!!”
머리를 굴리던 레테라의 멍한 음성은 곧 경악이 되었다.
역시 레테라를 콕 집어서 물은 게 정답이었다.
이 중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그녀는 단편적인 대화만으로 오서연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가능하겠죠?”
“가능해요! 그 당시 오라버니라면 생각하지 못하는 게 오히려 당연한 방법! 이것이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는 걸 알지 못하는 한 시도조차 못할 방법이에요!”
레테라의 긍정에 자신감을 얻은 오서연은 바로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상황 전개를 이해하지 못한 레반과 하티가 끼어들었다.
“뭐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건데?”
“맞아요. 둘이서만 알지 말고 저희도 좀 가르쳐 줘요.”
“간단해! 받기로 할 물건이 사라졌을 때 가장 먼저 행방을 물어야 하는 건 누굴까?”
레테라의 물음에 레반이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거야 당연히 물건을 주기로 한 사람이지.”
“멸신검을 오라버니 일행에게 건네주기로 되어 있던 건 누구지?”
“신공 에이드멀이잖아? 설마 에이드멀에게 직접 묻겠다고? 그게 여기서 가능할 리 없잖아?”
현실 플레이어가 NPC와 대화하는 건 상호작용 메뉴 중 ‘잡담하기’를 눌렀을 때뿐이다.
NPC에게 사적인 질문 같은 건 어불성설인 것이다.
차라리 그들이 직접 글레이그 대륙으로 돌아가서 물어보는 게 더 현실적일 것이다.
그 경우엔 돌아오지 못한다는 심각한 문제점이 뒤따르지만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글레이그 대륙에서 이쪽으로 넘어오기 직전 신요현의 상황을 알았으면, 레반이 직접 공방에 처들어가 에이드멀을 두들겨 패는 한이 있더라도 그날 있었던 일을 불게 만들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만약의 일이다.
그들이 살아 있다는 걸 모르는 신요현이 그들에게 자신이 않고 있는 고민을 토로할 일은 없을 테니까.
“……응?”
거기까지 생각한 레반도 묘한 것이 번뜩이는 걸 느꼈다.
그렇다.
게임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절대 시도할 리가 없을 것이다.
자신의 캐릭터에게 직접 말을 거는 일 따윈…….
그럼 반대로 캐릭터가 살아 있다는 걸 안다면?
휘익!!
레반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가 오서연의 모습을 확인했다.
빠르게 타자를 친 오서연은, 그것을 볼 플레이어가 없는 채팅 하나를 올리고 있었다.
[채팅: 앨리스. 나야. 이 메시지가 보이니?]
“대화를 시도한다고요? 자신의 캐릭터에게?”
자신 때에는 꿈꿔 보지도 못했던 발상에 놀란 하티도 모니터에 바짝 얼굴을 들이밀었다.
[채팅: 이건 다른 플레이어에게 전하는 말이 아니야. 그곳엔 더 이상 플레이어는 없어. 이건 오직 앨리스, 내 캐릭터인 너에게만 전하는 메시지야.]
거기까지 친 오서연은 잠시 고민하듯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 후 다시 타자를 치기 시작한다.
“일단 앨리스가 제 메시지를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지 확인해볼게요.”
[채팅: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두 손을 번쩍 들어줄래?]
앨리스가 채팅을 읽었다면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화면 속 캐릭터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예상과는 다른 모습에 오서연이 당황했다.
“……? 반응하지 않아요. 설마 여러분과 달리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건…….”
“아니. 계속 하세요.”
망설이는 그녀를 재촉한 건 진혜였다.
그녀는 주인인 안범석과의 교류가 게임상에서부터 이어졌다.
덕분에 게임 속 자신의 모습이 현실에 플레이어에겐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캐릭터가 너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면 안 되니까 작용하는 일종의 필터링이었다.
“저쪽 세계의 캐릭터의 모습은 이쪽 세계에 그대로 비춰지지 않아요. 한 번 필터링을 거치거든요. 저 캐릭터는 당신의 말을 시행했을 거예요. 하지만 너무 간단한 동작이라서 생략된 거예요.”
“그것보단 뒤로 백덤블링을 시켜보는 게 나을 거다. 꽤 크고 어려운 동작이니까.”
그 후 지그문트의 조언을 받아 앨리스에게 백덤블링을 부탁했다.
그러자 드디어 화면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꽈당!]
오서연이 백덤블링을 부탁하자 화면 속 앨리스가 갑자기 넘어진 것이다.
몸이 뒤로 휘도는 장면은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앨리스가 덤블링을 시도하다가 실패해서 넘어진 장면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 뒤 몇 번이나 백덤블링을 시도하는 건지 화면 속 캐릭터가 넘어지는 걸 반복하다, 갑자기 제자리에 바로 섰다.
드디어 백덤블링에 성공한 거였다.
“됐어요! 소통이 돼요!”
오서연이 환희와 대견함이 섞인 박수를 치고, 캐릭터들도 환성을 질렀다.
“됐어! 이제 남은 건……!”
“……에이드멀의 증언뿐이야!”
“하지만 에이드멀이 주인님 일행을 기억 할까요?”
“그건 저 늙은 대장장이의 기억력을 믿는 수밖에 없지.”
“일단 대화를 시도해보죠.”
드디어 돌파구를 찾았다는 듯 앨리스를 바로 공방으로 이동시켰다.
언제나처럼 손님을 맞이하던 에이드멀은 앨리스부터 오서연으로부터 전해 받은 질문을 받게 되었다.
에이드멀: 멸신검? 그 이름을 듣게 될 줄은 몰랐군.
반응이 돌아왔다.
잡담 선택지를 클릭해서 나오는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정말로 캐릭터를 통해 게임 속 NPC와 사적인 대화에 성공한 것이다.
에이드멀: 내 대장장이 인생 중 가장 까다롭기 짝이 없는 요물이었어. 만들면서도 얼마나 내 능력의 한계를 느껴야 했는지……. 신공이라는 허명 반납해버릴까 생각했을 정도야.
에이드멀은 먼 추억을 회상하는 듯한 수염을 쓸며 말하였다.
에이드멀: 하지만 결국 완성시킬 수 있었지. 번번이 실패하고 무기를 깨먹어 좌절할 때마다, 포기하지 말고 다시 도전해보라는 듯 재료를 조달해오는 두 녀석이 있었거든.
신요현과 연성화.
레아와 스콜의 이야기일 것이다.
드디어 본격적인 이야기에 가까워진 걸 느낀 캐릭터들 중 누군가가 마른 침을 삼켰다.
에이드멀: 그 강력하다는 파천뇌황을 쫓아다니며 놈의 일부를 재료로 수집해오다니, 정말이지 엄청난 놈들이었어. 그 인상 때문인지 아직도 기억에 남아. 못 본지 오래됐지만, 인상착의를 말하라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오서연까지 에이드멀의 말에 긴장이 되는 걸 느끼며 가장 중요한 채팅을 쳤다.
[채팅: 앨리스. 그 둘 중 누가 멸신검을 회수해갔는지 물어봐줘.]
앨리스가 그것을 확인하고 바로 에이드멀에게 전한다.
잠시 뒤, 드디어 기다리던 에이드멀의 입이 열렸다.
에이드멀: 멸신검?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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