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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캐릭터가 살아났다!-146화 (146/173)

〈 146화 〉 원흉 대면 ­ 2

* * *

화르르륵!

주변 숲이 불길에 휩싸인다.

이곳이 도시와 떨어진 외진 곳이라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인명 피해가 났을 테니까.

그러나 이대로 불길을 방치해도 큰 화재로 번질 건 자명한 사실.

불을 일으킨 장본인들이라면 끌 수 있을 것이다.

혹여 폭주해서 수습할 수 있는 한계 너머까지 저질러버린 일이라면(옛날부터 종종 그랬다) 나와 레아가 나서서 도우면 될 일이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의 어느 누구도 불타고 있는 숲에는 신경 쓸 수 없었다.

우리들의 모든 시선은, 우리끼리만 있는 줄 알았던 장소에 나타난 의문에 인물에게 집중되었다.

철그럭.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덮인 중갑.

너무 무거워 보이는 외관 때문에 안쪽에 사람 대신 로봇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되는 자가 불길을 등지고 서 있었다.

갑옷의 표면이 약간 달아오른 것 말고는 특별한 외상은 없었다.

스콜이 날린 파이어 애로우의 직격은 피한 것이 분명하다.

“너 누구야?.”

“…….”

연성화가 경계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갑주의 남자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바위처럼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바로 앞에서 적의 어린 시선으로 대치하는 레아와 스콜을 두고도 저런다는 건 싸울 마음이 없다는 건가?

그러나 그런 것치곤 이 타이밍에 이곳에 숨어 있다는 것 자체가 수상하다.

이 녀석이 나타난 게 우리의 이전이든 이후이든, 들키지 않게 숨어 있었다는 건 우리가 이곳에 올 것을 미리 알았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리고 숨어 있던 방법도 의문이었다.

“장비를 보아하니 ‘은신’ 스킬을 익힐 만한 직업이 아니야. 그렇다고 ‘개구쟁이 마법사의 투명 망토’처럼 은밀 계열 아이템도 아니지. 어떻게 우리 캐릭터들에게 들키지 않고 이렇게 가까이 숨어 있던 거지?”

“…….”

내 물음에도 침묵으로 일관한다.

타이밍으로 봐선 율이 말한 멸신검을 가져간 자가 이놈일 테지만, 녀석의 말만 맹신에서 다짜고짜 공격을 날리기도 뭐했다.

아직도 저쪽은 적대와 우호, 어느 쪽의 제스쳐도 취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멍하니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었다.

“야, 연성화. 일단 무장시키자.”

레아는 지금 장비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 상태였고, 스콜도 완드 하나를 꺼낸 것만 제외하면 레아와 다를 바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레아와 스콜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치고받던 부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때문이다.

저들끼리 멋대로 저지른 일이었지만, 나와 연성화도 어느 정도의 책임소지는 있었기에 그들을 마냥 탓하기도 뭐했다.

아무튼 지금 상태로 놔두기엔 좋지 않다는 건 연성화도 알고 있었다.

상처 치료는 나중으로 미루더라도 그들의 장비는 꺼내주는 게 맞았다.

“알았…….”

연성화가 동의하고 내가 머릿속으로 인벤토리를 펼치던 순간이었다.

타앗!!

레아와 스콜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또 다시 우리 말을 듣지 않고 멋대로 상대를 공격하는 건 아니었다.

그들이 몸을 날린 건 다름 아닌 나와 연성화가 있는 방향이었다.

뻗어오는 두 사람의 손.

공격하는 것도 붙잡으려는 것도 아닌, 단순히 밀어낸다는 것 하나만을 목적으로 가진 손바닥이 각각 나와 연성화의 어깨에 닿았다.

투웅!

“……?!”

두 사람으로선 힘 조절을 한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초인의 힘을 가진 녀석들이다.

우리 두 사람은 어깨에 빠질 듯한 충격과 함께 뒤로 한순간 붕 떴다.

동시에 머릿속에 드는 건 ‘왜?’라는 의문이었다.

레아와 스콜이 벌인 돌발행동의 원인을 바로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정말 짧은 시간 동안 그 일은 일어났다.

콰가가가가가각!!!!!

하얀 선이 지나갔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사선이었다.

동시에 작은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돌도, 피도.

그리고 선이 지나간 땅 위엔 선명한 직선이 남았다. 그 선 주변 땅까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지나간 하얀 선의 정체는 물이었다.

땅을 가를 정도의 초고압의 물줄기가 마치 칼날처럼 지나간 것이다.

바로 우리가 있던 자리를.

레아와 스콜이 밀치지 않았다면 나와 연성화는 저 수압의 칼날의 휩쓸렸을 것이다.

쿠웅!

둘에 의해 밀쳐져 바닥에 구른 뒤에야 겨우 그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땅과 격돌한 충격에 아파할 새도 없이 바로 고개를 들었다.

“레아! 너 괜찮아!?”

“스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두 캐릭터의 상태였다.

가까스로 우리를 밀쳐내 구해내는데 성공했지만, 정작 그들이 손을 빼낼 여유가 없었다.

우리를 밀치는 데 사용했던 레아의 오른팔, 스콜의 왼팔이 피로 물들었다. 마치 거대한 칼에 베인 듯한 상처였다.

그들이 캐릭터였기에 이 정도였지, 일반인이 맞았다면 신체 어느 부위든 완전히 절단 났을 것이다.

바로 시선을 움직여 물줄기가 날아온 방향을 살폈다.

그 방향엔 파이어 애로우의 영향으로 불타고 있는 숲만 있을 뿐, 다른 건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 저 타오르는 공간 안에 숨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줄기의 각도를 떠올린 나는 시선을 불의 벽 위쪽으로 향했다.

그곳에 보이는 건 어두운 밤하늘과 함께 우뚝 솟구쳐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산봉우리였다.

저곳이다.

무려 2km가량 떨어져 있긴 하지만, 그 물줄기의 각도를 생각하면 날아올 만한 곳은 저곳밖에 없다.

“저격……!?”

“캐릭터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고!?”

나보다 한 박자 늦게 몸을 일으키며 같은 결론에 도달한 연성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다른 캐릭터, 그것도 명백한 살의를 가진 기습으로 존재를 드러낸 것도 충분히 놀라울 진데, 아직 급격한 상황 전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르르!!

“……!!”

“……?!”

요란한 흔들림과 함께 발밑이 푹 꺼지는 감각이 올라왔다.

조금 전 물줄기. 그것이 땅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던 모양이다.

그것이 우리가 올라왔던 구덩이의 모퉁이를 잘라냈고, 물줄기의 칼날을 피하느라 땅의 가장자리까지 물러났던 우리의 주변 지대가 분리되며 구덩이 밑으로 미끄러진 것이다.

“아버지!!”

“주인!!”

다급하게 달려드는 두 캐릭터와 그들의 비명 같은 외침만을 남겨두고, 나와 연성화는 무너진 지대와 함께 구덩이 밑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

신요현과 연성화가 구덩이 밑으로 추락하려는 순간 레아와 스콜은 지체 없이 몸을 날렸다.

다른 때였다면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방해하는 이만 아니었다면.

“크윽!”

스콜은 진심으로 분노한 것처럼 그동안 무덤덤했던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렸다.

“파이어 월!!”

스콜이 완드를 휘두르자 그 경로를 따라서 거대한 불의 벽이 펼쳐졌다.

그것은 바로 신요현과 연성화의 머리 위까지 뻗어갔고, 그 위를 또 다시 날아온 초수압의 물줄기가 때렸다.

파아아앙!!!

불의 벽과 물줄기의 칼날이 부딪치며 폭발음이 일어났다.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고열의 면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고압의 선이 부딪친 결과는 수증기의 폭발이었다.

물줄기는 막아냈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벽을 세운다면 그것을 우회하겠다는 의미인지 물줄기가 파이어 월을 피해가는 각도로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전부 하나 같이 신요현과 연성화를 노리는 노골적인 살수였다.

“이 자식이!!”

스콜은 파이어 애로우를 쏘아내며 공중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모조리 요격했다.

물줄기가 완전히 증발되어 사라지면 새로운 물줄기가 쏟아졌고, 그것을 다시 불화살이 막으려 날아간다.

덕분에 불길로 인해 밝아진 밤하늘에선 불과 물의 선이 마구 엉키며 어지럽게 정신없는 격전을 그려내었다.

스콜이 적의 공격을 막아내느라 발이 묶여버렸다.

결국 신요현과 연성화를 구해낼 수 있는 건 레아뿐이었다.

단거리에서 낼 수 있는 최대 속력과 함께 떨어지는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든 레아였지만, 그녀 또한 방해자를 맞게 된다.

쿵!

두 사람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날린 건 레아만이 아니었다.

이제껏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던 갑주의 남자가 묵직한 발걸음과 함께 달려들었다.

경로는 레아와 겹쳐져 있지만, 그가 노리는 건 신요현도, 연성화도 아니었다.

바로 두 사람을 구하기 위해 빈틈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레아의 등이었다.

스릉!!

망토에 가려져 있던 칼집에서 쇳소리와 함께 거대한 날붙이가 튀어나온다.

펄럭이는 망토 속에서 드러나는 건 정제된 검(?)의 형태가 아닌 길게 휘어진 대도(大?)였다.

오로지 베는 행위에 특화된 그것이 레아의 등을 향해 떨어졌다.

레아는 그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바로 자신을 노리는 살기는 감지할 수 있었다.

“이 개새끼가!!!”

부모의 영향인지 스콜보다 더 거침없이 분노를 표현하는 레아가 몸을 휘돌렸다.

이대로 뒀다간 두 사람을 붙잡기도 전에 자신의 몸이 두 동강 나 바닥에 쓰러질 판국이었다.

한껏 몸을 휘돌린 그녀는 그 기세를 한쪽 다리에 담에 자신에게로 떨어지는 검면을 후려쳤다.

카아아앙!!!

측면에서 날아온 충격을 견디지 못한 대도가 본래의 경로를 이탈한다.

갑주의 남자는 그것을 억지로 되돌리려 하지 않았다.

대신 대도가 튕겨지는 기세에 그대로 몸을 맡겨 반대편 주먹을 휘둘렀다.

마찬가지로 갑주에 뒤덮인 주먹을 레아는 두 팔을 교차하는 것으로 막아냈다.

퍼어어억!!

충격에 튕겨져 나가는 레아의 신형.

일부러 맞아주면서까지 신요현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그 의도를 눈치 챈 건지 상대는 직전에 각도를 바꿨다.

결국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 레아가 두 발을 땅에 대며 멈춰 섰고, 그 사이에 신요현 일행의 모습은 완전히 구덩이 밑으로 사라졌다.

우르르르……!!

“이 새끼……!!!”

지대 째로 구덩이 밑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레아가 마그마처럼 이글거리는 음성을 토해내었다.

늑대와 닮은 이미지를 가졌던 레아가 지금만큼 짐승의 모습을 드러내던 때는 없었다.

특히 제 가족, 새끼가 위협을 받은 어미와 같은 분노였다.

“진정해야 한다, 레아.”

그런 레아를 스콜의 목소리가 다독인다.

레아가 날아온 방향이 우연히도 스콜의 근처였던 모양이다.

힐끔 시선을 움직인 레아는 지금도 부지런히 하늘에서 날아오는 저격을 막고 있는 스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너도 두 분의 기척이 느껴지잖아? 두 분 다 무사하다.”

“알아. 하지만…….”

확실히 레아도 느껴졌다.

구덩이 아래에서 아직 멀쩡히 움직이는 두 사람의 기척이.

떨어지는 순간 대처를 잘한 것인지 특별히 다친 구석은 없는 듯보였다.

그러나…….

“……그게 이 새끼들을 용서할 이유가 되진 않지.”

“그건 동감한다.”

다짜고짜 자신의 주인에게 살수를 보인 행위.

그것은 레아와 스콜이 인내할 수 있는 선을 아득히 넘어서는 행위였다.

지금 두 사람의 상태는 변변치 않다.

속에 쌓인 걸 풀겠다는 요량으로 한바탕 서로 싸워 댔고, 그렇게 힘이 빠진 상황에서 별 다른 장비 하나 없이 자신들을 공격할 준비를 완벽하게 마친 듯한 적들을 상대해야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두 사람은 웃었다.

주인들이 위험해 쳐했다는 사실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지만, 정작 그들은 웃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런 위기 따위 정말 이골 날 만큼 겪어왔기 때문이다.

“옛날 생각나니 좋군.”

“늬들도 처발라 먹어주마, 개새끼들아.”

그건 틀림없는 분노와 야만이 한 되 섞인 싸움꾼들의 웃음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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