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 뇌명(?)이 울리다 3
* * *
율의 말은 진실이었다.
정말로 그가 말한 장소에 두 플레이어가 나타났다.
서로 무슨 사이인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쌓인 감정을 표출하듯 싸우기 시작했다.
자고로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싸움 구경이라 하지 않던가.
미리 장소에 도착해 습격을 준비하고 있던 석오태는 기습을 나중으로 미루고 그 싸움을 지켜보았다.
어차피 석오태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다던 녀석들이다.
저렇게 싸우다가 양쪽 다 쓰러지면 그야 좋은 일이고, 서로 힘이 빠지기만 해도 이득이었다,
그렇게 멀리서 싸움을 지켜보던 석오태는 이내 실망감에 휩싸이게 된다.
“뭐야, 저놈들?”
싸우기는 격렬하게 싸웠다.
그런데 아무런 장비 없이 맨몸으로 싸우고 있었다.
남자 캐릭터 쪽은 마법을 날리긴 하지만, 천생 근접 전투계로 보이는 상대와의 힘의 차이를 메꾸기 위함이었다.
플레이어들은 캐릭터들의 장비를 꺼내주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캐릭터들끼리 격정이 있을지언정 살의는 없었다.
격렬한 싸움이되 살기가 없는 싸움인 것이다.
“젠장! 뭐하는 거야! 서로 죽자고 싸워야지! 그러려고 싸우는 거 아냐? 저것들이 등신인가?”
이 정도면 아무리 서로 상처를 입더라라도 체력이 조금 소모되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기습을 준비하는 석오태에게 이득은 이득이었지만, 보다 큰 유리함을 원하는 그로선 이것조차 불만족스러웠다.
“아니면 뭐야? 싸우긴 싸우더라도 죽이긴 싫다는 건가? 그런 겁쟁이들이라면 차라리 낫겠군.”
석오태는 아직 사람을 죽인 적은 없다.
하지만 선을 넘을 준비는 이미 마쳐 있었다.
다른 플레이어라는 적을 인식해온 순간부터 항상 생각해온 일이다.
그는 자신의 우월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언제든 다른 사람을 죽일 준비가 되었다.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기까진 심리적으로 몇 가지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직접 죽이는 게 아니라 캐릭터를 통한 차도살인이라면 단계를 줄일 수 있었다.
죽이기 꺼려하는 쪽과 죽이려고 작정한 쪽.
긴박한 상황 속에서 유리한 건 후자 쪽이었다.
퍼어어엉……!!!
잠시 망원경에서 시선을 뗀 사이 저쪽 싸움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마법으로 만들어낸 불꽃과는 다르다. 매캐한 연기를 품은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뭐야?”
중요한 장면을 놓친 석오태가 다시 싸움이 벌어지던 구덩이 쪽을 바라보았지만, 폭발의 여파로 시계가 나빠져 잘 보이지 않았다.
대신 석오태보다 더 뛰어난 눈으로 지켜보고 있던 파니야가 설명해주었다.
“두 플레이어 중 하나가 인벤토리에서 화약통을 꺼내 터트렸습니다. 아무래도 두 캐릭터의 싸움을 멈추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뭐야? 그럼 이제껏 캐릭터들이 주인 의지에 상관 않고 지들끼리 치고받은 거야? 이거 참 가관이구만!”
플레이어의 말을 듣지 않고 싸워대는 캐릭터라니.
충직한 자신의 캐릭터와 비교하니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율의 말에 따르면 석오태에게 위험 요소가 될 듯싶어서 제거하러 온 거지만, 이제 보니 완전 허접들이었다.
제 캐릭터 통제 하나 못하는 수준이면 자신이 굳이 나서야 하나 싶지만…….
“그래도 돌아갈 순 없지. 경험치를 높이는 건 몬스터를 사냥할 때만이 아니니까.”
상대가 제대로 되먹지 못했다면 싸움을 피할 이유는 더더욱 사라진다.
그레토와 파니야가 강해질수록 그들이 모시는 자신의 위상은 더 높아지니까. 저런 만만한 경험치 제공처라면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폭발 때문에 싸움도 멈춘 듯 하고, 석오태는 슬슬 공격을 시작하려 하였다.
파니야가 이곳 산봉우리에서 장거리 저격을 시작하면, 암석화 마법으로 저 근처에 숨겨 놓은 그레토 또한 행동을 계시할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기습에 당황하는 순간 바로 그테토가 뛰쳐나가 플레이어들의 목을 베기만 하면, 나머진 체력을 소진한 허수아비 두 명뿐.
참으로 거저먹는 싸움이었다.
화르르르르륵……!!
구덩이 쪽 상공에 수많은 불의 화살이 나타나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다.
“뭐야!?”
놀라는 석오태의 외침과 함께 화살이 지상으로 퍼부어졌다.
무차별적인 포격이지만, 화살이 불태우는 영역엔 숨어 있는 그레토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적이 우리의 존재를 눈치 챈 모양입니다.”
“젠장! 그레토 잘 숨겨 놓은 거 아니었어?! 암석화 마법이라면 들키지 않을 거라 했잖아!”
“암석화 마법으로 기척은 완벽하게 지웠습니다. 그레토가 먼저 공격하고자 하지 않는 한 들킬 일도 없고요. 저들이 모종의 방법으로 우리의 존재를 눈치 챘다고 밖엔…….”
“닥쳐!! 이 일은 나중에 따질 테니 어서 저놈들이나 처죽여!!”
“네.”
그렇게 말한 파니야는 마법을 시전 했다.
그녀 주위로 맺히는 수어 개의 물방울.
부드럽게 일렁이는 표면 안에서 상상도 못할 정도의 수압이 쌓여간다.
“아쿠아 라이플. 장전.”
파니야가 허공으로 손을 뻗으며 표적을 겨냥한다.
노리는 건 구덩이에서 올라와 그레토와 대치하는 플레이어 두 명.
“발사.”
파아아앗!!
주변을 떠다니던 물방울은 곳 무시무시한 수압이 그려내는 선명한 직선을 남기며 쏘아졌다.
표적을 향해 날아가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석오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선수를 빼앗기긴 했지만, 그래도 변하는 건 없다.
저놈들을 모조리 죽이고 그의 캐릭터는 더 큰 힘을 키울 것이다.
어차피 제 캐릭터 하나 통제 못하는 허접들이다.
어려울 건 무엇 하나 없었다.
***
의외로 일이 어렵게 돌아갔다.
그레토에게 주의가 쏠려 있을 줄 알았던 캐릭터들은 파니야의 저격에 무섭도록 빠르게 반응했다.
두 플레이어를 구덩이 밑으로 떨구는데 성공했지만 대처를 잘 한 건지 큰 부상을 입지도 않았다.
그뿐이랴.
원거리로 저격해오는 이쪽에서 맞서 저쪽도 저격으로 반격하며 석오태 일행이 있던 지지대를 일거에 휩쓸어버렸다.
그 사실이 석오태의 자존심에 큰 상처가 되었다.
절대적 우위에서 내려다보는 줄 알았건만, 어느새 토석류에 쓸려 내려와 허접이라고 생각하던 놈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대치하게 되다니.
처음 기습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유리할 때 입혀놓은 상처는 포션으로 모두 치료한 뒤였고, 그때와 달리 제대로 된 무기와 방어구로 무장까지 마쳤다.
처음 생각과 달리 일이 이상하게 꼬이고 있었다.
그리고 쫄 거라고 생각했던 플레이어들은 오히려 자신만만하게 싸움을 걸어오고 있다.
자신을 얕잡아보고 있기 때문이리라.
자신을 우습게보고 있기 때문이리라.
석오태는 상대가 겁을 먹기커녕 당당한 모습에 거기까지 피해망상을 가속시켰다.
“처죽여버려!!”
분노 어린 외침을 지르고, 그 분노를 대신 표출하기 위한 손과 발인 그레토와 파니야가 움직였다.
그레토가 정면에서 파고들며 압박하고, 파니야가 원거리에서 마법을 난사한다.
둘이 협력 플레이는 해본 적이 없지만, 어차피 둘 다 석오태의 캐릭터다.
서로 선호하는 전투의 메커니즘 정도는 공유하고 있다.
초장부터 빠르게, 상대가 감히 반항할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상대를 짓밟는 것으로 우월감 느끼는 석오태의 성격이 그대로 녹아있는 부분이었다.
콰아앙!! 파아아아앗!!
지상에선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오는 그레토.
하늘에선 파니야가 쏘아대는 마법의 탄환이 뒤덮는다.
단순하지만 적절한 콤비 플레이를 두고, 거기에 대응하는 레아와 스콜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
“……? …….”
별 대화는 나누지도 않았다.
그냥 저 달려드는 놈은 내 거니까 건들지 말라고 말하는 듯한 레아의 손짓.
그럼 자신은 저쪽에서 싸울 테니 잘 해보라는 듯 성큼성큼 옆으로 걸어가는 스콜의 모습이 전부였다.
레아는 달려드는 그레토를 정면으로 맞이해갔다.
그를 막는다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마탄엔 대응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마탄을 피하거나 막아내고자 하면 그레토에 대한 대응이 늦어질 것이다.
레아가 위험을 빠져나갈 방법이라면 스콜이 마법으로 둘 중 하나를 요격해주는 거겠지만, 느긋하게 마법을 준비하고 있는 스콜의 모습을 봐선 아무리 봐도 타이밍을 맞추진 못한다.
‘멍청한 놈들! 역시 콤비 플레이를 할 줄은 모르나보군!’
석오태는 현실 파악 못하는 듯 움직이는 두 캐릭터를 보며 비웃음을 머금었다.
한 뿌리에서 비롯된 그레토, 파니야와 달리 레아, 스콜은 각기 다른 주인을 두고 있다.
심지어 조금 전까지 서로 싸우던 사이.
상대에게 맞춰주긴 싫어서 혼자 해결하려다 자멸할 것이 뻔히 보였다.
그렇게 그레토가 뽑아 든 대도와 파니야의 마탄이 동시에 레아에게 쏟아졌다.
콰아아아아아앙!!!!
무시무시한 힘을 품은 폭음.
주인의 안전을 위해서인지 캐릭터들은 꽤나 거리를 두고 격돌했지만, 전해지는 충격파만으로 피부가 아파올 만큼 떨려올 지경이었다.
캐릭터들의 강함이 피부로 느껴지는 것 같아서 석오태는 전율했지만, 그것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쿠우웅!!
폭음 뒤에 뒤로 튕겨져 나오는 게 바로 자신의 캐릭터인 그레토였기 때문이다.
바닥을 구른 건 한순간으로 그레토는 바로 일어섰다.
하지만 강하다고 자부한 그가 한순간만이라도 땅 위에 구르게 된 광경은 석오태의 시야에 오래토록 남아 있었다.
“……어?”
부우우우웅!!!
멍한 표정을 짓는 석오태에 눈에 한손으로 무언가를 빠르게 휘돌리는 레아의 모습이 보였다.
그레토의 공격도, 파니야의 마법도 닿지 않았다.
전부 저것이 튕겨낸 것이다.
돌아가는 헬기의 날개처럼 너무 빠르게 회전하여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레아가 회전을 멈추고 긴 장대와 같은 물건을 옆구리 사이에 끼는 것으로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할버트였다.
미늘창, 혹은 도끼창이라고도 불리는 대형 무기.
황동 거인 도끼창 등급: 특이 분류: 도끼창
공격력: 395
내구도: 189/200
필요 스탯: 근력30, 기량20
『유적을 지키는 황동 거인을 쓰러뜨린 용자에게 주어지는 무기. 표면에 새겨진 기이한 무늬는 마법적 효과가 부여되어 있으며, 각종 마법을 막거나 튕겨내는 게 가능하다. 이는 유적을 남긴 이들이 마법을 적대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통짜 쇠로 만들어진 것으로 모자라 끝에 창날과 도끼날을 달고 있어 무게가 상당할 것이다.
중량무기에 해당하는 그것을 레아는 경량무리라도 되는 듯 너무나도 가볍게 다루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레아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있을 때 다른 곳에서 폭음이 일어났다.
“크윽……!!”
그곳에서도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파니야가 한쪽 팔을 새까맣게 태운 상태로 몇 발자국 물러난 것이었다.
그녀가 노려보는 방향을 따라가니 허공에 거대한 불의 창을 생성하는 스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파이어 스피어……?”
조금 전까지 스콜이 준비하고 있던 게 저 마법이었나 보다.
생성시간이 오래 걸리는 대신 빠르고 강력한 대미지를 상대에게 입힐 수 있다.
하지만 저런 눈에 띄는 걸 대체 어느 순간에 날린 거지?
뻔하다. 한순간밖에 없다.
레아가 두 사람의 공격을 모조리 쳐낸 순간.
공격을 날린 직후 실패로 이어지기까지 그 짧은 틈새를 노리고 정확히 파고들어 파니야에게 일격을 먹인 것이다.
가까스로 실드 마법을 발현했지만 허를 찌르는 공격에 완전히 대응하지 못하고 팔 한쪽을 내주고 말았다.
“아쿠아 블래스트!!”
화상에 짓무른 팔에서 올라오는 고통을 억누르면서 파니야는 바로 반격을 계시했다.
허공에서 생성된 물줄기가 격류가 되어 스콜을 향해 쏘아졌다.
파이어 스피어는 아직 생성 도중이다.
이 속도라면 스콜이 다음 일격을 날리기 전에 선수를 잡을 수 있었다.
콰가가각!!!
그런데 이변이 바로 옆에서 일어났다.
레아가 할버트 자루로 대도를 튕겨내고, 그렇게 한 바퀴 휘돌린 도끼날 아래쪽을 갈고리 삼아 그레토의 목에 걸었다.
할버트에 가해지던 원심력과 레아의 완력을 버티지 못한 그레토가 땅 위로 스러졌고, 그런 그의 몸을 그대로 갈아대듯 할버트를 끌어당긴 레아는 적당한 벽을 향해 휘둘렀다.
바로 파니야가 날린 아쿠아 블래스트의 물줄기를 향해서였다.
콰아아아아아앙!!!
초고수압의 물굴기와 그레토의 단단한 갑옷이 부딪치자 물줄기는 폭발하듯 흩어졌다.
충격에 의해 그레토의 몸은 할버트에서 벗어나 로드킬 당한 고라니처럼 공중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그리고 그와 부딪친 물줄기의 기세는 한껏 약해졌다.
아쿠아 블래스트가 잠시 가로 막힌 사이에 완성된 파이어 스피어가 물줄기의 정면을 향해 쏘아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거센 격류를 불타는 창 하나가 꿰뚫으며 거슬러 오른다.
“크으윽!!”
힘에서 완전히 밀렸다는 걸 깨달은 파니야는 분하듯 이를 갈며 땅바닥 위로 몸을 날렸다.
물줄기를 꿰뚫은 파이어 스피어는 그의 로브자락을 불태우며 지나갔다.
한편 창에 닿자 엄청난 고열에 의해 수중기가 폭발해 그 주변을 가득 메웠다.
뿌연 증기 속에서 그레토는 몸을 추스렸다.
뜨거운 증기도 증기지만, 짙은 안개에 갇힌 것처럼 가시거리가 극단적으로 짧아졌다. 언제 어디서 상대의 공격이 날아올지 알 수 없었다.
그레토는 언제든 반응 하기 위해 대도를 움켜쥐었고, 직후 측면에서 날아오는 할버트의 도끼에 반응해 대도를 휘둘렀다.
카아아앙!!!
기습이 무색하게 허무하게 튕겨져 나가는 할버트.
거기서 그레토는 눈을 부릅떴다.
할버트가 너무 가벼웠다.
이것은 레아가 휘두른 할버트가 아니다.
고속으로 휘돌린 할버트를 부메랑처럼 측면으로 내던진 것뿐이다.
그렇다면 진짜는…….
후욱!!
씨익.
짙은 수증기를 가르며 그레토의 정면으로 나타난 레아의 얼굴엔 미소가 만개해 있었다.
카아아아아앙!!!!
그레토의 투구에 꽂히는 주먹.
맨주먹으로 싸웠을 때와 다르다.
단단한 금속 건틀릿에 감싸인 주먹은 단단한 그레토의 투구를 우그러뜨리고 충격을 울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육중한 무게조차 잊고 그레토가 증기를 일순간에 거두어내며 날아갔다.
바닥에 떨어진 할버트를 낚아채고 그를 뒤쫓는 레아가 고하듯이 중얼거렸다.
“너한텐 당한 게 많아서 말이야. 이번에 제대로 갚아줄게.”
쿠과과아아아아앙!!!!
네 캐릭터들의 싸움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 양상은 일방적이었다.
레아나 스콜이나 상대를 돕거나 끼어드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저 표적으로 삼은 상대만 집요하게 노릴 뿐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작정하고 협력 플레이를 하던 그레토, 파니야 보다 더 높은 시너지를 내고 있었다.
“뭐, 뭐야, 이것들…….”
협동 플레이 따윈 모르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너무나도 능숙하다.
바라보지 않더라도, 대화를 나누지 않더라도 서로의 움직임 따윈 훤히 알 수 있다는 듯이.
그들은 일방적인 걸 너머 압도적이라 할 만큼 석오태의 캐릭터들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석오태가 바라던 것에서 정반대의 장면이 펼쳐진 것이다.
“나, 날 함정에 빠뜨렸구나!”
이 모든 게 함정이다.
저들은 처음부터 한 편이었고, 석오태를 노리며 서로 싸우는 척 연기를 했다.
정보를 흘린 율과도 뒤로는 손을 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선 이런 일이 있을 순 없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냐고?
그거야 당연히 자신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적어도 석오태는 그것 때문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내가 캐릭터를 두 명이나 가지고 있으니까! 위기의식을 갖고 먼저 처리 하러 한 거지?! 그렇게까지 내가 강한 게 질투 났냐! 쓰레기 같은 새끼들!! 사람도 아니야!!”
“……너 혹시 등신이냐?”
그가 악지르는 소리를 듣고 있던 신요현이 말하였다.
진짜 캐릭터의 힘이 자신의 힘인 양 말하는 석오태의 모습에 그는 어이가 없었다.
캐릭터를 부릴 수 있는 수로 높낮이가 결정되면, 가장 강한 건 캐릭터를 세 개나 가진 신요현일 것이다.
이놈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캐릭터가 많다는 건 얼마나 진지하게 게임 폐인 생활을 해왔냐는 척도밖에 되지 않는다.
캐릭터가 현실로 나오면서 그제야 특별해진 거지, 그들이 원채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플레이어가 특별하기에 캐릭터를 부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특별한 건 네가 아니라 네 캐릭터들이잖아.”
그저 명령만 내리는 사람과 그 명령을 수행하며 극한의 경험을 쌓아온 사람이 같을 리가 없다.
이들은, 그저 주인인 그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따르는 것뿐이다.
“닥쳐!! 더 이상 나도 수단과 방법은 안 가려!! 그레토!!”
“……!!”
레아의 도끼날에 맞고 갑옷이 크게 손상된 채 물러나던 그레토가 석오태를 돌아보았다.
“‘그걸’ 쓴다!”
“……알겠습니다!”
쿠우웅!!
그레토는 사용하던 대도를 거꾸로 뒤집더니 땅에 때려박았다.
그리고 허공에 손을 뻗어 무언가를 쥐는 시늉을 했고, 거기에 맞춰 석오태가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내려 한다.
그것을 직감한 레아가 그전에 끝장을 내려고 레아가 그레토를 향해 달려들던 때였다.
우르르르르릉……!!!
그 울림에, 그녀는 반사적으로 다리를 멈췄다.
파니야에게 마법을 쏘아내려던 스콜도 마찬가지였다.
캐릭터들의 싸움을 지켜보던 신요현과 연성화의 표정마저 딱딱하게 굳어갔다.
오래된 기억을 자극하는 울림.
그 서글픈 뇌명(?)이 울리고 있었다.
신요현도 연성화도 아닌, 상대쪽 캐릭터의 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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